쌀 (반양장)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아고라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지지리도 가난한 주인공, 우룽은 고향 펑양수를 떠난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올라탄 것은 석탄 운송기차였고, 당도한 곳은 대홍기라는 쌀 집 앞이었다. 그는 뽀얀 쌀과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쌀집 일꾼으로 일하게 된다. 쌀집 사장인 펑 사장과 그의 딸 쯔윈, 치윈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우룽은 버틴다. 그렇다고 이 소설을 그 흔하디 흔한 시골청년 성공기로는 착각 하지 말길. 이 소설은 그야말로 극악무도하다. 눈살이 찌푸려진 후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눈살을 펼 수가 없다. 인물 하나하나가 등장 할 때마다 ‘으악’소리가 절로 나온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정처 없이 떠돌다 잠드는 곳이 바로 잠자리였다. 그런 사람들은 심지어 표정조차 개와 다를 바가 없었다. 피로에 절어 있는 것이나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흉악한 몰골을 드러낸 채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 (p.7)

개같은 우룽의 행적과 우룽이 자신을 닮았음을 아는 부둣가 깡패 아바오는 정치 깡패 뤼 대감과 엮기고, 허영과 어리석음 뿐인 쯔윈을 통해 설킨다. 그나마 똑똑한 줄 알았던 치윈은 폭력에 무력해지고, 애새끼들은 하나같이 포악하고 지 형제도 나몰라한다.

부에 대한 복수, 욕정의 복수, 권력쟁취를 위한 복수.
끝없는 복수와 응징을 통해 말하는 건 ‘니미 좆같은 세상’이라는 악 바친 고함이다.

보고 싶지 않는 우룽의 생애를 보면서, 좀 허무하더라도 “세상만사 다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결론이 나길 바랐다. 내가 바라는 결론이 유치하고 촌스럽다고 해 좋다. 세상은 힘들어도 살만은 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우룽의 금의환향이 성공하여 회개되기를, 피 고름이 흘러도 제 고향 플랫폼에는 내려나 보고 죽기를 바랬다. 그러나 에필로그는 내 순박한 바람을 깡그리 무시한다. 아들 차이셩이 죽은 아비의 입 속에서 금 틀니를 빼내는 것으로 결말을 짓는다. 참으로 쌀가루 집안다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우룽은 금으로 만든 틀니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우룽이 맨 마지막으로 들은 것은 기차가 철로를 밟고 힘차게 달리는 소리였다. (p.378)

다른 분들의 리뷰를 둘러보니, 우룽을 처음에는 순박한 사람으로 평가한 글이 보인다. 첫 장에, 우룽이 걸인의 객사를 보고 놀라 도망치는 내용이 있다. 그 장면에서 그를 선하게 보시시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놈은 원래부터가 막되 먹은 놈”임을 가르쳐주고 싶다. <쌀>을 결말부분을 읽고 있을 때 <양의 탈을 쓰다>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성격장애자가 우룽과 정확히 일치한다. 죄책감의 자리라고는 쌀 한 톨 크기만도 남아 있지가 않고 경쟁자의 입 속의 밥알까지도 훑어내어 빼앗는 조정자, 그가 우룽인 것이다. 쑤퉁은 심리학도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냈을 수가 있었을까. 이게 거대 중국의 거대한 작가, 쑤퉁이 가진 날카롭고 상처 깊은 인간의 통찰이 인가 싶다.

ps. 결론부분에게 애써 기대했던 촌스런 우룽의 회개는, 정말 회개해야만 하는 나의 촌스런 인간관이었다. 이래서 내가 추리소설이나, 호러소설,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는 소설은 싫어한다. 세상이 추악하다는 걸 확인 하게 될까봐 지래 겁내 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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