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 - <심리록>으로 읽는 조선시대의 과학수사와 재판 이야기
이번영 지음 / 이른아침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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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인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 치고는 너무 험한 주제의 책을 읽었나? [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이라.. 비록 살인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역사 속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해 펼쳐든 책이다. 어쩌면 가장 처절한 삶의 기록일 수도 있을테고,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 일반 서민들의 삶을 살펴볼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들었다.

 

   글쓴이 이번영. 책앞날개에는 글쓴이에 대해 "전북 부안 출생 / 서울대 문리대 졸업 / 경기고 등 서울시 교직 종사 " 등의 간략한 약력아래에 그의 작품 제목의 나열로 소개를 그치고 있다. 글쓴이에 대한 소개가 다소 불친절하다 싶을 정도로 간략해서 인터넷에서 저자 이름을 검색해봤지만 책앞날개에 소개된 것 이외엔 더 이상의 정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지난해 출간된 그의 전작 "왜란 : 소설 징비록" 3권 시리즈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기사에서 "소설가 이번영(65)"이라고 그를 소개하는 것을 통해 그의 나이와 "소설가"라는 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 나는 책을 읽을 때나 선택할 때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도 중요시하는 편인데, 이왕이면 글쓴이에 대한 정보가 좀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는 제목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조선의 "살인자"와 그에 대한 재판의 과정을 소설처럼 각색해 싣고 있다. 18건의 살인사건과 그 재판 기록. 그 사건들은 전부다가 조선 후기 정조 임금 통치 시기의 사건들이다. "이 책은 정조가 남긴 <심리록>을 기반으로 하고, 다산이 남긴 <흠흠신서>의 내용을 덧붙여 정조 당시의 대표적인 옥사 18건을 추리고, 그 사건의 전말과 소송의 과정을 소설의 기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p11) 몇 해 전에 케이블tv에서 "별순검"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나는데, 몇편 보지 못했지만 그 드라마와 비슷한 느낌의 책이랄까.

 

   살인자들의 이야기인데, "재미있다."는 표현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책은 재미있게 잘 읽힌다. 사람살이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이 책에 실린 사건 대부분에서는 여자의 정절을 강조하는 조선시대의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case02의 "간음의 소문이 퍼져 산 채로 수장된 청상과부 살해사건"이나 case04의 "자신의 목을 세번이나 찔러 죽은 의문의 자살사건", case05의 "퇴기 노파를 새색시가 18차례나 찔러 살해한 잔혹사건", case07의 "외간남자에게 팔목을 잡힌 여인이 스스로 팔을 자른 자해사건" 등이 그런 예이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case05의 주인공 김은애에 관한 것이었다. 18살, 갓 결혼한 새색시가 자신에 대한 고의적이고 추악한 소문을 낸 노파에 분개해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에 대한 정조의 최종 판결은 석방이고, 오히려 그녀의 이야기를 이덕무에게 전기로 쓰도록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도록 했다는 것. 요즘에는 이와 같은 사건에 대해 어떻게 판결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사건에 대한 조사와 재판의 과정이 결코 비과학적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과정도 눈여겨 볼 만했다. <무원록>을 바탕으로 한 시체검안과 사인규명 등의 방법이 그러했고, 살인사건에 대해서는 왕이 직접 그 사안을 살피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 역시 무척 흥미로웠다.

 

   정치사 중심의 역사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이 담겨 있는 역사를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었던 책, [역사로 남은 조선의 살인과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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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100 아티스트 - 대한민국 음악의 발견
Mnet 레전드 100 아티스트 제작팀 지음 / 한권의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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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길지 않은 나의 인생을(쓰고보니 노래가사다...) 돌아보면, 음악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다시피 한 내게도 어떤 날, 어떤 사람을 생각할 때 함께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가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도 있다. 가을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을은 그런 계절일까. 유난히 가을을 타는 나는, 솔직히 가을이 싫다. 이 무렵이면 스물스물 올라오는, 뿌리를 알 수 없는 이 울적함이 참 힘든, 그런 계절이기에.

 

  무겁지 않은 책을 한 권 읽었다. 사실 이 책은 두껍고, 판본도 작지 않은데다 사실 무겁다. 그러나 소설 읽듯이 선후관계를 따져가며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순서대로 읽어야 할 책은 아니고  가볍게 책장을 왔다갔다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 대한 평가절하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잡지다.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이 책은 목차와 본문을 왔다갔다하며 관심가는 부분을 발췌독을 할 수 있고,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가 우연히 펴든 곳에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거나 낯선 이름에게도 시선을 한번쯤 주게 되는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책 제목을 보고서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목차에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이 있나 없나를 먼저 살펴봤는데, 다행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사람의 이름이 있어서, "이건 읽어야 해!" 했던 거다. 그리고 책을 받자마자 가장 먼저 목차에서 "임재범"이란 이름을 찾았고, 해당 페이지를 찾아서 펼쳐들었다. 그에 대한 소개글을 "진심을 노래한 카리스마 보이스". 그리고 그의 이미지로는 너무나도 유명한 "여러분"을 열창하던 모습이 캐릭터화되어 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서는, 이 책에 대해 실망했다. 철저히 내 관점에서 말하자면, 인터넷 기사 한 꼭지를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키피디아보다 가벼운 듯한 느낌이랄까.....

 

  책 전체에 대한 설명이 늦었다. 책 앞날개에 실린 이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Mnet은 2013년, 글로벌 문화의 중심에 선 K-pop의 뿌리를 100여년에 가까운 대중가요 역사 속 아티스트에게서 찾고자 [레전드 100-아티스트] 프로젝트를 기획,진행하였다." 이 책이 그 결과물인 셈이다. "보컬", "싱어송라이터", "록&밴드", "퍼포먼스", "대중음악사의 아이콘"이라는 5개의 카테고리로, 전설들의 이름을 담고 있다.  첫쪽에는 그의 이름과 아주 간략한 프로필, 그의 캐릭터가 그려져 있고, 두번째와 세번째 쪽에서는 그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넷째쪽에는 그에 대한 타인이나 본인의 인터뷰를 아주 간략히 실어놓은 형태로 하나의 전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인터넷 기사 하나 정도의 분량이라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그렇게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면 분야별 "전설"들을 선정해 책으로 엮어낸 것 그 자체가 아닐까...내가 기대했던 것은, 그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좀 더 깊은 이야기였는데, 오히려 나의 바람대로 이 책이 엮였더라면 그게 더 통속적이고 수준낮은 잡지로 전락해버리는 것일지도...

 

  가을이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을 함께 했던 전설들의 노래를 찾아서 듣기 좋은 계절이다. 이 책은 기억 저 편에 넣어둔 전설들을 추억하기에 좋은 책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책에 소개된 전설들이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인 것 같지만, 아니다. 그들 대부분은 이 책에 자주 실린 표현대로 "현재진행형 가수로 전설을 이어가고 있"(p110)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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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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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채널e 중에서 역사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방송분을 역사채널e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아니다. 지식채널e와 역사채널e는 별개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는 다른 방송인 모양이다. 지식채널e를 일부러라도 찾아서 즐겨 보는 편인데, 역사채널e도 찾아서 봐야겠다. [역사e]를 읽었다. 이 책은 EBS의 프로그램인 역사채널e를 활자화한 책이다. 책의 내용을 보니, 예전에 내가 시청한 적이 있는(지식채널e인 줄 알고 시청한 모양이다.) 방송분도 몇 편 있어서 더 반가웠다. 이 책 [역사e]는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 아래에는 7개의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모두 21편의 역사이야기를 포함하고 있다.

 

   1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첫번째로 이야기하고 있는 "어떤 젊음"이라는 주제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은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에 관한 이야기다. 시작부분에서 던지고 있는 말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세상에 풍운은 많이 일고 해와 달은 사람을 급급하게 몰아붙이는데 한번의 젊은 나이를 어찌할 것인가."  내 기억의 출처가 역사채널e인지, 혹은 이회영을 다룬 다른 책에서 본 말인지 정확하지는 않으나, 이 말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예전에 수첩에다 적어두고 내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부끄럽다. 내가 이 인상적인 질문을 내 수첩에다 적어두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나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내 젊은 시간을 이렇게 낭비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다음에 나는 이 시간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을까 하는.. 내 개인을 위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우당 이회영이 서른 살의 자신에게 던진 이 질문은 그런 차원의 질문이 아니었다. 그가 던진 질문은 나라의 독립을 위한 헌신의 각오였다. 부러울 것 없는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가 스스로의 삶에 만족했더라면 그런 질문이 필요없었을 터이다. 가진 것 누리면서 살아도 충분했을 삶이었을테니.. 그러나 그는, 그의 형제들은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가산을 정리해 독립운동에 헌신.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가 젊은 날 던진 질문에 그는 온 몸으로, 그의 삶으로 대답했던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각각의 주제는 역사채널e의 포로그램을 활자화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시작한다. 관련 사진과 그림자료가 풍부하다. 그리고 짧지만 무척이나 강한 잔상을 남긴다. 이어서 각 주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뒤따라 붙는다.

  2부 나는 누구인가의 7번째 주제 "보이지 않는 시선"은 무척 흥미로운 주제였다. 일본의 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인 도리이 류조가 조선총독부의 명으로 조선인들을 사진으로 남긴 것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있는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사진이라지만, 어떤 것을 사진으로 찍을 것인가에는 이미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는 것. 사진이 조선의 낙후된 모습을 선택해서 촬영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킨 것이다.

  3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의 첫 주제 "999번째 수요일"에서는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읽다가 눈물이 났다. 그리고 "위안부"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최근 "강제적인 일본군 성노예 enforced sex slaves"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단다.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문제의 성격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라는 말을 했단다. 역사와 사람과 시간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준 책이었다. [역사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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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한국사를 조작하고 은폐한 주류 역사학자를 고발한다
이주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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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과격한 제목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제목부터 이렇게 강하게 나오는가 싶어서 펴든 책이다.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부제는 "한국사를 은폐하고 조작한 주류 역사학자들을 고발한다." 부제 또한 과격하다. 책의 논조는 더욱 과격하다. 책을 읽다 말고 여러번 책 앞날개에 실린 글쓴이 소개를 살펴보게 되는 책이었다. 글쓴이 이주한. "단채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간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이자 역사비평가로 활동 중"(책앞날개).

 

   책을 읽다보면 다른 책보다 좀더 꼼꼼하게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설렁설렁 읽어도 글쓴이가 무슨 말 하고 있는지 알아들을 수 있어서 더러는 편하게 드러누워서 읽게 되는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은 엎드려 읽기 시작했다가 벌떡 일어나 책상에 정자세하고 읽었다. 오랫만에 밑줄까지 그으면서, 소화되지 않을까 싶어서 꼭꼭 씹어가며 읽었다. 책읽다가 몇번이나 글쓴이 소개 다시 보고, 책 읽다가 글쓴이가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역사학자들에 대한 정보가 궁금해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기도 하고... 그렇다고 결코 산만하게 읽었다는 소리가 아니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되더란 말이지... 내가 책을 읽다가 글쓴이에 대한 소개를 여러번 다시 읽어본 것은, 이 분 이런 글 쓰고도 위험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예전에 내가 읽었던(그러니까 이 책에서도 가끔 언급되고 있는 역사학자가 쓴) 책 도입부에서 그 책의 글쓴이는 "이러한 주제로 이런 인물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만류하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미 죽은지 몇백년 전의 인물에 대해서 쓰려고 하는데도 주위에서 그런 만류를 했던 것은, 그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인물이 현재까지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자칫 부정적으로 기술했다가는 많은 적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번에 읽었던 그 책도 그렇지만, 이 책 [한국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읽으면서 "역사"라는 게 얼마나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는 중요한 학문의 분야인지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내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역사, 그러니까 국사 교과서에 언급되어 있는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해 준 적 없다. 교과서에 실린 역사는 "사실"이므로 그대로를 암기 잘 해서 시험만 잘 치면 되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글쓴이에 의하면 그건 나 같은 "학생"들이 만든 문제가 아니다. "세계에서 한국만큼 자국 역사를 소홀히 여기고, 의미나 흥미를 잃게 하고, 암기해야 할 지겨운 교과서 과목으로 전락시킨 나라도 없다."(p26). 그러니까 이건 우리나라 역사학의 뿌리에서부터 비롯된 문제?

 

   그런데 대학교에 와보니 우리 역사에는 수많은 "이견"들이 존재하며 "사실"이라고 암기해왔던 것들은 그 이견들 중에서 좀더 입김이 쎈 쪽 그러니까 주류학계의 주장일 뿐이더란 말이지. 내 문제의식은 거기까지였다. 핑계를 대자면 공부가 부족한 탓이 가장 클테고, 내 앞에 놓인 현실에 목졸려서 한국사학계에 존재하는 그 많은 논쟁들을 감히 깊이있게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해봤다. "그렇구나." 정도에 그쳤던 부분인데 글쓴이는 그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고, 할 얘기가 많다고 이 책에서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그 선전포고의 대상은 바로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주류"들... 그 주류들이 누구냐 하면 이병도를 시작으로 이기백, 노태돈, 송호정으로 맥을 이어오는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출신들의 역사학자들. 글쓴이에 의하면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지금 현실은 첫단추부터 잘못 잠근 상태라는 것. 일제의 식민사관을 만들었던 쓰다소키치, 이케우치 히로시 같은 일본인 사학자들을 스승으로 둔 이병도가 한국역사학계의 주류가 되면서 일제의 식민사관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너무나 엄청난 이야기들이라 내 역량으로 이 책의 내용을 오해의 소지없이 정리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내가 이해한 범위내에서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주류 사학자들고조선과 단군을 부정, 왜곡하고 한반도의 역사는 위만이라는 "이민족"의 침입에 의한 선진문물의 도입으로 우리의 역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식민사관을 부인하지 않는다. 내가 늘 궁금하게 여겼던 부분도 이 부분이다. 현행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통해서는 단군신화 이후의 고조선에 대한 역사는 너무나 빈약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무제에 의한 한사군의 설치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고, 철기시대의 국가들(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뜬금없이 등장하다가 다시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전개로 넘어가고 만다. 그 시간의 연결고리가 무척 궁금했었는데, 내가 이해한 바로는 글쓴이의 문제제기 또한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고조선의 영역이나 한4군의 위치비정에 관한 문제, 그리고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둘러싼 논쟁들을 제대로 풀어내어야 이 부분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 서술이 가능할 것 같다. 또한 글쓴이는 현재 주류 역사학자들의 논리는 일본의 식민사관이나 임나일본부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에 제대로 맞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런 왜곡된 주장들을 지지 내지는 뒷받침해준다."아무도 식민사학자라고 자칭하지 않지만 한국 주류 사학은 여전히 식민사학이다."(p117).

 

   나는, 아직 공부가 거의 되지 않은 터라 이 책에서 말하는 논쟁들의 많은 부분에 대해 어느 쪽을 편들 수(? 표현이 좀 이상하다만) 없다. 부끄럽다. 심정적으로는 어느 쪽이 더 맞는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내가 아는 것과 연결을 시켜보기에는 아직까지 모르는 게 너무 많으므로.... 좀더 역사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우선은 책을 덮어둔다. 앞으로 역사책을 읽을 때 좀더 따져보면서 읽게 될 것 같다.

 

    "역사는 해석이 다양할수록 진실에 가깝게 다가선다."(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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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체성 -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
박석희 외 지음 / 미다스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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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한 권 읽었다.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은 조선의 정체성"이라는... 제목이 제법 길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은 "조선의 정체성"이다. 앞에 붙은 "경복궁에서 세종과 함께 찾는"이라는 부분은 이 책을 펴든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저 수식어 쯤으로 보일 법하다. 책의 디자인이나 제목의 전체적인 늬앙스가 그렇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펴들면서 "역사책"을 기대했다. 평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가 "역사"이기도 하지만  "조선의 정체성"이라는 제목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읽은 이 책은 다루고 있는 내용의 성격상 분류를 해보자면 역사책은 아닌 것 같다. 이 책은 역사 에세이 혹은 경복궁의 문화관광 안내서 혹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 경복궁 문화관광에 대한 소견이나 발전방향 등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 중반부까지를 읽으면서 내가 이 책에다 붙여본 제목은 "경복궁 답사 전에 알고 가야할 것들"이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는 "세계 최초"를 주장할 수 있는 우리의 문화재들의 나열,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글쓴이의 경복궁 관람에 대한 정책 방향의 제시다. 재미있게 읽었고, 내가 몰랐던 부분들을 알게 해 준 면에서는 유익한 책이었지만 내 기대의 방향과는 많이 다른 책이기도 했다.

 

 

   글쓴이 박석희는 "1981년부터 지금까지 경기대학교 관광개발학과에서 교수직을 맡고 있다."(책앞날개)고 한다. 처음에는 관광분야의 교수님이 역사책을 썼구나, 독특하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앞서도 말했지만 그것은 내가 제목만으로 이 책을 역사책이라고 판단한데서 비롯된 오해이기도 하다. 이 책은 경복궁을 어떻게 "관광"해야 제대로 보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이랄까. 경복궁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간략한 조선의 역사 이야기, 주로는 세종의 흔적들을 찾아내어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경복궁 복원 과정의 세세한 문제점들과 글쓴이가 생각한 방향의 보완점들을 제시하고 있는 그런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경복궁 답사 해설서 같은 책이라 해야 할 법도 하다.

   글쓴이는 최근에 나온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을 재미있게 시청한 모양이다. 글의 여러 곳에서 "대장금" "뿌리깊은 나무" "해를 품은 달" "대풍수"등의 사극에 나온 대사와 인물의 생각들을 그대로 인용하여 세종의 사상과 경복궁의 곳곳을 설명하고 있다. 글쓴이가 언급한 사극을 한편도 시청하지 못한 나로서는 공감이 되지 않았다. 독자의 흥미를 위해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를 인용한 것 같으나 글쎄다. 한글 창제와 관련된 세종의 고민과 관련된 부분 등이 책에서는 드라마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드라마에 나온 대사들을 역사적인 사실로 대체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 부분이라 아쉬웠다. 실록에서도 충분히 역사적인 근거를 찾아 이야기할 수 있었을 부분일텐데 말이다.

 

   지방에 사는 터라 경복궁을 가볼 일이 흔하지 않다. 이 책에는 경복궁 곳곳의 사진들이 컬러판으로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다. 몇해 전에 가본 경복궁을 떠올리며, 책에 실린 사진을 보며 글쓴이와 함께 경복궁 구석구석을 따라다니며 경복궁을 제대로 보는 방법, 경복궁에 숨겨진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해설가를 따라가며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책 곳곳에는 지금도 복원중인 경복궁의 잘못된 복원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글쓴이가 제시하는 복원의 방향에 대한 생각도 들어볼 수 있었고...

 

   경복궁을 둘러보기 전에 미리 읽어본다면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답사 안내서 겸 경복궁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관광전문가의 에세이 같은 책이다. 사족을 한마디 붙여본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이 책의 제목은 다시 한번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책 제목만 보고서는 이 책을 누구나 역사책의 방향에서 접근할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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