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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자 - 오직 한 사람을 바라보며 평생을 보낸 그녀들의 내밀한 역사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왕의 여자에 대한 모든 것.
history는 his story일까.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대부분이 "그"들의 이야기다. "그"들과 함께 했던 "그녀"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류중심의, 정치사 중심의 역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왔던 터라, "역사"라면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다루는 분야의 학문이라고 생각해왔던 것도 같다. 그래서 요즘 들어 종종 보게 되는, 미시사에 관한 책들, 그리고 "주류"들이 행한 "정치"가 중심이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내겐 새롭고도 반갑다.
오늘 읽은 책은 [왕의 여자]다. 사극의 영향 때문인지 "왕의 여자"라는 제목에서 내가 떠올린 것은 궁에 사는 수많은 여인들이 한 남자 "왕"을 차지하기 위한 질투와 그에서 파생되는 각종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내 짐작과는 다른 책이었다.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조선 시대 궁중에서 생활했던 여자들의 삶에 대한 모든 것이다. 어제 인터넷신문에서 "5시 5분"을 읽을 때 "다섯시 다섯분"이나 "오시 오분"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라는 기사를 보고 뒤통수를 한대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 "다섯시 오분"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지금껏 한번도 단 한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었기에. 이 책이 주는 느낌이 그랬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그들의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가져보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글쓴이는 김종성. "[오마이뉴스]에 '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 읽기'코너를 장기 연재하고 있다."(책 앞날개)는 글쓴이는 그간 주로 역사와 동북아의 정세에 관한 책을 주로 써온 사람이다. 책은 크게 3개의 장으로 나뉘어진다. 1장 궁궐의 노비, 궁녀 / 2장 왕의 첩, 후궁 / 3장 또 하나의 주상, 왕후/ 전체분량은 300여쪽.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왕의 여자"들은 주로 조선시대로 한정되지만 역사적인 근거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그 이전시대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사극이나 역사소설 등을 통해 잘못된 역사 관념이 참 많다는 것이다. 궁녀는 궁에 사는 사람들이니 지위가 높았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선발의 기준에(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하더라도) "외모"가 포함되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궁녀를 '천것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신분'으로 설정하는 텔레비전 사극이나 대중문학이 역사적 실제와 동떨어져 있음"(p32)을 글쓴이는 구체적인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 tv사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인들의 영향으로, 조선의 왕들은 예쁜 궁녀들을 마음껏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내 추측도 틀린 것이었다. "미모의 후궁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미모는 후궁 선정에서 그다지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다."(p188)는 설명은 내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기도 했다.
책에서 글쓴이는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조선의 궁녀, 후궁, 왕후들에 대한 객관적인 통계자료를 제시하고 있고, 기존학자들의 연구를 반박하기도 한다. 덕분에 나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왕의 여자들의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됐고, 잘못된 추측들을 수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