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 세상을 뒤바꾼 위대한 심리실험 10장면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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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때 막연한 (그 때는 심리학이 독심술쯤 되는 걸로 착각했다) 기대감을 가지고 심리학

개론을 수강했다. 강의 초반에는 예상을 빗나가도 한참 빗나간 강의내용과 두께만으로도 나를

압도한 교재 탓에 강의에 흥미를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신청한 건데 어떻게든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함과, 내 선택을 끝까지 믿어보자는 무책임한 자기 최면으로 졸린 눈을

비벼가며 강의를 들었다. 다행히 졸음을 견디며 들은 강의는 날 배신하지 않아서 서서히 강의에

흥미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심리학 복수전공을 하면 어떨까하는 대책없는 생각까지 했던 걸

보면 심리학 수업을 꽤 재미있게 들었던 것 같다. 준수한 학점은 덤으로 따라왔다.

 개론과목의 성격 탓에 심리학의 다양한 영역을 조금조금씩 건드린 강의 내용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내가 학습한 대부분의 것들은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의 단계로 이동하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파블로프, 스키너, 밀그램과 같은 심리학자와 그들이 행한 놀라운 실험만큼은

뇌리에 강하게 틀어박혔다. 종강 후 언제 그랬냐는 등 심리학은 내게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었다.

 신문 북섹션에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가 출간되었다는 우연히 접했다. 가까이하기엔 멀었던

당신이 수줍게 고백을 해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문학에 편중됐던 당시의 독서습관은 끝내

이녀석과 나와의 인연을 미루게끔 했다. 휴가 때 서가에 꽃힌 이 책을 우연히 발견했고, 기회다

싶어 낚아서 복귀 때 챙겨와서 읽게 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어 그런지, 더 많이 즐겁고 두뇌가 행복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흥미롭고 충격적인

실험에 얼마간의 흥분감마저 느끼며 책을 읽다가도 책이 던져주는 날카로운 메세지에 생각에

잠기게 된다. 책이 던지는 질문에 빠지다 보면 독서가 더뎌지기도 하지만 그건 이 책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장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독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고 많이 고민하게끔

하는 책이야말로 진정한 양서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은 20c 가장 혁신적이고 논쟁적이었던 심리 실험 10가지에 대해서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저자가 다양한 자료 조사를 통해 이야기체를 통해 재구성해낸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 금기의 영역에 대해서 대담한 질문들을 바탕으로 한 실험들은 대단히 흥미롭다.

 심리학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미 알고 있는 실험도 여럿이겠지만, 실험의 배경이나

관련된 인물들과의 인터뷰, 실험이 당시 사회에 끼친 영향까지 덧붙여지기 때문에 더욱 폭넓게

이해할 수 있다.

 심리학에 문외한이라도 전혀 상관 없다. 심리학에 관심은 있는데 개론서의 어마한 두께와 딱딱한

내용에 질린 독자라면 더없이 제격이다. 심리학이 대중의 관심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쏟아진 많은

심리학 관련 책들 중 시류에 편승해 부실한 내용을 얄팍한 상술로 포장한 책들도 있었는데 이

책은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

 심리학 수업을 들으며 순전히 만원이라는 공돈을 바라며 피실험자로 심리실험에 참가한 경험이

있다. 물론 이 책에 나오는 실험들처럼 충격적이라거나 과격한 실험은 아니었다. 범죄 현장을

묘사한 지문을 보고 수사의 단서로 삼을 만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고르는 문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혹시 그 때 내가 피험자로 참가했던 그 실험의 연구결과가 장차 큰 반향을 일으키는

위대한 실험은 아니었을까 하고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엉뚱하면 어때?

이 책에 나오는 위대한 심리 실험들도 당시에는 사회적인 비난을 받고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엉뚱하고 기발한 기발한 상상에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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