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꽃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난 김영하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검은 꽃'을 읽기 전엔 그의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 단 하나만 읽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그의 느낌이 좋았고 괜히 무게 잡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러티브의 구성은 거의 최고였고 의미있는 주제의식이 돋보였다.

그랬다. 난 다른 작품도 읽어보기로 하고, 동인문학상 수상작인 '검은 꽃'부터 읽어보기로 결심하고

이 책을 집어든 것이었다. 우스운 건, 내가 김영하씨의 책을 읽는 순서가 출간인과는 역행하고 있다는 거다.

아무렴, 작품을 제대로 음미할 수만 있다면 별 상관 없는 거지..

 

"유한자 인간의 기품과 슬픔 뇌쇄적으로 그려"라는 이유가 2004년 동인문학상에 이 작품이 수상된 것에 대

한 심사위원들의 촌평이다. 저 평가의 말 한 마디가 작품 전체를 충분히 관통해내고도 남는 말이라고 생각한

다. 일단은 저 평가를 거대한 줄기로 남겨 두고 내가 읽으며 느꼈던 바를 곁가지로 보충해보고자 한다.

 

난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서 공통된 무언가를 추출해내고자 했다. 물론 몰락하는 조국과 폭압적으로 변해가

는 제국주의 열강의 경쟁으로 인해 핍박받는 민중들의 고난한 삶을 재현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공통

점을 가진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난 이것보다 인물들의 근원을 한 번 생각해 봤는데, 내가 파악하

기에 이 작품의 등장인물든은 모두 다 에고이스트이다. 철처한 에고이스트들이다. 이들이 행동하고 사고하

고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서 다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자신을 위해, 그 자신의 욕망의 충족을 위

해, 이것이 제 1의 명제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장면들이 나오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외일 뿐 이들은

기본적으로 에고이스트들이다. 그것이 불행한 시대의 산물인지, 작가 의식의 투영인지는 좀 더 판단해 볼 만

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에고이스트이기 때문에 거기엔 영웅도 그에 대한 추종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이 작품이 다른 역사소설들을 능가하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웅을 통한 구원이란 건 존재하지

도 않고, 그럴 의도도 없다. 신대한의 성립과 멸망(이런 말을 붙이기조자 민망한)의 과정을 통해서도 이는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작품 중간중간의 "역사에 요행이란 없었다"등과 같은 작품 뒤에 숨어있는 화자의 말들

은 역사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거기엔 비장함도 숭고함도 없다. 힘과 힘이 부딪히고 싸우고

강한 자가 남는다. 이러한 숨은 화자의 코멘트들이 이 작품의 색깔을 더욱 뚜렷이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쓰고 싶은 말은 많지만, 원래의 의도가 인상적인 느낌을 중심으로 써 보고자 하는 것이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만 써야겠다. 다음에는 다른 김영하씨 작품의 리뷰로 돌아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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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장수 2005-05-1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이는 말
-김영하씨는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박광수라는 인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역시도 한 때는 천주교 신부를 지망한 적도 있다고 했는데, 그러한 점에서 파계하고 무당으로 돌아간 박광수라는 인물이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이 박광수는 '오빠가 돌아왔다'에 포함된 단편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도 같은 이름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