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걸의 시집>은 몇 년 전에 읽고 두 번째 읽는 것 같다. 문학 전공자들의 비평집보다 훨씬 더 독자를 끌어당기는 다양한 매력이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건 솔직함 내지 정직함이다. 꾸며서는 한 권 분량의 에세이를 쓸 수는 없을 터이기에, 에세이의 매력은 결국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데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드러낸 솔직한 모습이 매력적이어야 할 텐데, 그런 점에서 좋은 삶을 살지 않고서는,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서는 울림이 있는 에세이는 나올 수 없는 거겠지.
"우리 엄마는 한때는 소녀인 적이 있었답니다."를 "우리 엄마는 지금도 소녀일 때가 있답니다."로 고쳐주고 싶었다는 일화(그래서 '올드걸의 시집'이라는 제목이 나온 것)에서 시직하는 이 에세이집은 주어진 인생의 국면들에서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마주해 온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읽기에도 좋지만, 아무래도 위스키나 와인 한 잔 따라놓고 읽기에 더 좋다고나 할까.
사랑하는 일을 왜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 그런 설정이 많이 나온다. 다른 사람을 사랑해놓고 배우자 혹은 애인에게 눈물 흘리며 속죄의 발언을 한다. 난 그것이 못마땅하다. 사랑을 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사랑했다는 것인가? 이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다. 사랑의 자유의지를 전제하는 것이다. (중략) 이런 얘길 하면 묻는다. "니 남편이 그래도?"라고. 마음 같아선 그의 사랑을 존중해주고 싶다. 한때나마 뜨겁게 사랑했던 남자가 남편이다. 그에게, 다시는 사랑은 가능하지 않다고 전제하는 게 나로서는 더 쓸쓸하다.(24쪽)
'한때나마' 뜨겁게 사랑했던 고백이야 심상한 것이라 해도, 남편에게 다시는 사랑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더 '쓸쓸하다'는 선언은 처연하게 읽힌다. 물론, 백날 이렇게 말하고 적어봤자 자칭 도덕주의자들은 끄덕도 하지 않겠지. <헤어질 결심>이 불륜을 예찬하는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헤어질 결심>에서 두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이 영화를 불륜 예찬이라고 핏대 세우는 사람보다 불륜을 저지를 확률이 더 낮을 것이고, 남편이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아내가 그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아내보다 적어도 자신의 (한때나마 뜨거웠던) 사랑에 더 충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고 나는 이런 말을 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고 쓸 자신이 없다. 그래서 이렇게 비겁하게 좋은 글을 빌려서 한 마디 보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