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가 한창일 때였다. 선배들과 점심을 먹는 중이었는데, 티비 뉴스에서 조국 관련 뉴스가 나왔다. 그때는 티비만 틀면 그랬다. 그런데 선배들이 하나같이 조국 일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최순실 사태 때 같이 광화문 광장에 가서 오들오들 떨면서 "이게 나라냐?"고 외쳤었는데, 윤석열 검창총장을 욕하면서 조국 일가의 행태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단다. 나경원 아들을 거론하면서(나경원이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된 것도 아닌데) 그것보다는 낫단다. 배가 아프다고 말하고 식사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나경원보다는 조국이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조국은 위법이 없을 수도 있고, 법적 처벌을 모두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우리'라고 쓰고 싶지만) '촛불 정신'(만약, 그런 게 아직 남아 있다면)이 어떤 장관 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위법이 없으니 적합 판정 수준에 머무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편법으로 법의 틈새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누리는 사람들이 적어도 공직에는 부적합하다는 공감대가 촛불 정신의 최소한이 아닌가. 최악의 경우에 범법자, 최선의 경우에 위선자인 사람이 촛불 정권의 '법무부 장관'이라는 걸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냥 받아들이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많은 장면들을 보고 나는 상처를 받았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까지는 아니어도, 법 없이 사는 사람은 아니어야 할 것 아닌가. 이명박, 박근혜 때의 여러 작태들은 나를 분노하게 했는데, 조국 사태 때의 주변 풍경은 나를 쓸쓸하게 했다.
세상에 알려진 조국 일가의 행적은 조국 정도의 엘리트를 기준으로는 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고들 변호한다. 동의한다. 아마 대한민국 엘리트의 평균성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자식을 의사나 변호사 만들고, 기민하게 움직여서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자식에게 노동 소득과 자본 소득을 최대한 많이 제공, 상속하려는 욕망을 많은 엘리트들의 욕망일 것이다. 그럴 만한 자원을 가지기 힘들 뿐, 평범한 국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간 해왔던 무수한 '정의'로운 발언과의 모순은 차치하고) 그 과정에서 위법과 편법을 쓰는 건 다른 문제다. 표창장을 위조했네 마네 하고 있는데, 엄마가 재직 중인 대학교에 딸이 봉사활동을 하러 가고 그것을 의전원 입시를 위한 스펙으로 활용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말이 안 되는 거다. 그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을 표방한 현 정권의 법무부 장관 후보 일가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부터 먼저 분노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남편이자 아버지인 당사자는 몰랐을 수도 있지 않냐고 한다. 조국은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살기라도 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아버지가 딸이 자신의 아내가 재직하는 학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걸 모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아들의 인턴 관련 사안이나 언론을 통해 드러난 자식들의 학업 상황에 대한 조국의 지대한 관심을 보면 몰랐을 리가 없어 보인다. 몰랐다면 자기 집에서 벌어지는 위법 혹은 편법적인 일도 모르는 사람이 한 국가의 법무부를 주관하는 자리에 오른다는 말밖에 안 된다.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명인 진중권이 왜 이렇게 신랄하게 정권과 옛 동료인 조국을 비판하는지 너무 잘 알겠다. 한때 '사회주의'를 같이 꿈꿨던 친구의 삶이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가득찼다는 것을 알게 된 거다. 그리고 그 욕망을 돈, 권력 등의 사회적 자본을 활용해 실현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느꼈을 배신감이 이해가 간다. 나 역시 같이 촛불을 들었지만 조국을 옹호하던 사람들에게 배신감과 서글픔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말했더니 '일베', '토착왜구' 따위의 단어를 입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열이 받다가도 진짜 서글퍼진다. 나는 당신들보다 더 많은 걸 원해서 분노하는 것인데, 겨우 이 정도에 만족하는 당신들이 왜 나를 폄하하는 것인가. 당신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토착 왜구'가 아니라, 당신들이 가진 빈곤한 '정치적 상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