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해서 특별해진 이야기들

일의 기쁨과 슬픔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단편소설은 퍼즐 맞추기 같은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큰 서사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적합한 재료들을 고르고 재료들의 모양을 고려해서 위치를 잡아주고, 재료의 배합과 위치를 바꿔 보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점점 다듬어지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결국 플롯이나 구성에 대해 말한 것 같은데, 그냥 퍼즐 맞추기라고 할 때 조금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 것 같았다.

 작년에 꽤나 화제가 되었던 장류진의 <일의 기쁨과 슬픔>은 퍼즐을 잘 맞춘 작품집 같았다. 불필요한 조각도 없고 조각들이 제 위치에 있어서 빈 부분도 튀어 나온 부분도 없달까. 프로필 사진으로 자신의 근황을 회사원들에게 알리는 '빛나'의 캐릭터는 작품의 끝부분에서 '내' 마음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고(<잘 살겠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유후인의 노천 온천에 머무게 하려면 여자 주인공은 퇴직 후 후쿠오카에 자리잡아야 하고(<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냉장고송'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그걸 성공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장우의 냉장고 등급은 '4등급, 다소 낮음'이어야 하고(<다소 낮음>), 어릴 적 보던 성경책을 근처 성당에 기증하려고 생각하는 '나'의 집에 오는 가사도우미는 혼자 일할 때 찬송가를 우렁차게 부르고(<도움의 손길>), 결말의 극적 효과를 위해 '여자'가 사는 오피스텔은 쌍둥이 구조여야 하는 식이다(<새벽의 방문자들>).

 맞다. 이건 특별한 게 아니다. 대부분의 단편은 저 정도의 구상은 이뤄진 상태로 나올 거다. 다만,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게 작위적이거나 과하지 않게 펼쳐진다. 그게 작가 특유의 잘 읽히는 문장과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소설 읽는 맛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다. 소설집의 제목에 걸맞게 '회사원 소설 / 직장인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 이 작품집의 이런 자연스러움은 물론 작가의 실제 경험 덕분일 거다. 작가의 이력이나 몇몇 인터뷰를 확인해 보니 실제 경험이 상당히 녹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구성과 전개의 자연스러움 편안한 문장과 함께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인공들의 캐릭터였다. 한국 단편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매우 예민한 상태에 있거나 신경증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일의 기쁨과 슬픔>의 주인공들은 그냥 옆에 있는 평범한 내 친구나 지인 같다. 그러니까, 평범한 사건도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문제적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사는 보통의 존재가 일상적 사건을 겪으면서 드러나는(드러내는) 엇갈림, 일상의 균열, 시대의 공기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특별한 게 없다고 갸웃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래서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별거 아닌 걸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거기서 시대의 분위기를 환기해 내는 것도 특별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게 작가님과 내가 비슷한 연배여서 비슷한 경험과 감각을 공유하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장류진 작가가 자신의 삶의 경험을 반영하는 작품들을 꾸준히 써준다면 나는 흔쾌히 독자가 될 것 같다. 같이 나이 들어가는 작가가 있다는 건 꽤나 든든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몇몇 대사가 '차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대사를 인용하면서 마친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언제든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믿는 남자들은 특별히 재미있게 읽을 듯 - 나는 보통으로 재미있게 읽음)에 나오는 남녀 간의 대화.  

"지훈씨, 나랑 자고 싶었어요?"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여자는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해봐요. 나랑 자고 싶었죠?"

"지유씨는 아니었나봐요?"

"전, 반반?"

뭐, 이런 게 다 있지.

"아무래도, 자려는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그러니까, 꼭 잘 필요가 있나, 그런 거죠."

"네?"

"자면 뭐 해요. 어차피 자고 나면 다 똑같잖아요. 지훈씨도 그걸 모르지 않잖아요."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자기가 어떻게 알아. 이 여자는 왜 이렇게까지 확신을 하는 거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잤는지 안 잤는지보다는, 자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 자체가 중요한 거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지유씨는 또다시 백분토론 패널처럼 말했다.

(중략)

"우리 대화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어요?"

"네."

"음… 제가 말을 잘하는 게 아닐까요?"

 이걸 옮기기 위해 타이핑하면서도 히죽히죽 웃고 있다. 막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막 장면이 그려지고 그렇다. 이 대사가 재미있다면 이 책을 읽고 실망하지 않을 거다.

 다만, 작가님 판단인지 편집자님 판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은 보완해서 넣든지 제외하든지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