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고 믿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게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예술의 길이 아닐까. 그러니까, 초등학교 운동장이 남학생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서, 여학생들이 체육과 가까워지기 힘든 환경이라고 비판하고 고발하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거다. 문제를 드러내고, 관심을 환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이것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예술의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예술은 남학생들이 운동장을 점령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대신, 여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어 노는 이야기(이미지, 리듬)을 만들 것이다.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가 정확한 사례다. '축구'와 '생활 운동'에 대한 매우 훌륭한 에세이집인 이 책은(그렇다. 에세이 수준으로만도 이미 이 책의 성취는 빼어나다.), 다 읽은 독자들에게 '여자들이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장면을 경쾌하고 친숙한 느낌으로 각인시킨다. 아마, 이 책을 읽고 운동을 시작한 여성들이 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이 책을 읽고 여자 축구에 관심이 조금 생겼고, 여자 프로 축구 경기를 조만간 한 번 보러가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이 책이 '남자들만 운동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데에 충실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운동(sports)'를 소재로 한 이 책은 '운동(movement)'의 전략에 대해서도 시사점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원하는 세상의 방향이 있다면, 그 방향을 멋지고 경쾌하고 근사하게 그려낼 것.
책에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가 있었다면, 드라마에는 역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다. 혹자는 'www'를 'woman woman woman'이라고도 하던데, 그 말이 우습게 들리지 않을 만큼 포스터부터 이 드라마가 지향하는 바가 분명하다. 그리고 16부 내내 매우 멋진 여성 서사가 진행된다. 임수정과 이다희 투샷이 잡힐 때마다 느꼈던 설렘이란. 그러니까 한국 드라마, 영화판이 '남탕'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의미가 있을 거다. 그러나 그건 비평이나 사회학의 문제인 것 같고, 드라마판에 있는 사람이라면 '여탕'이 더 흥미롭고 시장에서 먹힐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검블유가 훌륭하게 해낸 것처럼. 사실, 나는 좋은 서사라면 '남성', '여성'의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결국 그렇게 될 때 세상이 조금은 더 나아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여성' 서사라는 것의 특수한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를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안은 멋진 '여성' 서사를 만들어 내는 일일 거다.
이 주제의 예능 버전은 <캠핑 클럽>일 거다. 여자 4명만으로도 오롯이 일주일에 2시간을 채워서 방송이 나오고,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담보한다. 덤으로 시청자들에게 저마다의 추억에 젖게도 해 주고, 따뜻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한다. 그렇다. 예능은 남성들이 점령해서 여성 예능인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말 하는 것에도 당연히 귀 기울일 필요가 있을 거다. 그렇지만 그런 말이 세상을 바꾸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캠핑 클럽>의 성공은 분명히 세상을 바꿀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 예능의 성공을 똑똑히 보고 있고, 앞으로 또 다른 여성 예능을 기획할 테니까.
"당신이 틀렸어요"라고 말하면 그 '당신'인 "아, 그렇죠? 제가 틀렸네요."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인간이란 자신을 공격하는 메시지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가 작동할 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게 맞는 것 같은데, 한번 봐볼래요?'라고 제안하면 그래도 몇몇은 '아,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겠네요'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캠핑 클럽>은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오랜 고민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