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별걸 다 기억하는 역사학자' 한홍구의 네번째 역사이야기가 출간되었다. 이번에도 한홍구는 FTA, 국가보안법, 사학개정법, 병역제도 등 다분히 논쟁적인 이야깃거리를 들고 나왔다. 저 어디 역사문서 보관함에나 들어있을 법한 죽은 역사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이 뜨거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저자는 또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졌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이 책이 한겨레 21에 연재했던 글을 묶었다는 것만 생각해봐도한홍구가 펼치는 역사이야기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때 역사에 제법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학을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품었던 것 같다. 브루스 커밍스의 책부터 해서 몇 권의 한국현대사 서적을 겨우겨우 읽었다. 대한민국사 1, 2권도 이 때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 현대사의 이해'라는 학교 강좌도 찾아서 듣고 세미나도 할려고 했지만 사정이 닿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역사란 단지 사료의 집합일 뿐이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다. 사관이니 뭐니 하는 것도 사료없이는 어떤 설득력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사관에 대한 사료의 절대우위를 선언해버렸다고 해야 될까. 왜 그런 비겁한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한 번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상 역사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된 것은 정해진 길이었다.

  그러니, 이 책을 읽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답하기 어렵다. 그 무섭다는 시간의 힘인 건지, 오랜만에 발견한 대한민국사라는 이름의 책이 그냥 반가웠던건지, 아님 또 다른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예의 그 비겁한 결론에서는 조금이나마 멀어지고 있다는 징표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랜만에 읽은 역사책으로 "대한민국사"는 썩 훌륭한 벗이었다. '지금' '한국'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고 있는 그의 글은 역사에 대한 공부가 결국 오늘 우리(사회)에 대한 이해와 반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일관되게 보여주기에 나약한 내게 다시금 힘을 준다. 주관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태도나, 쉽고 재미있는 문체를 위한 노력은 비전공자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해주는 이 책만의 미덕이다.

  책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거나 아예 몰랐기에 오히려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3부의 마지막 꼭지인 '국립묘지를 보면 숨이 막힌다'와 5부의 '최일병, 김일병, 그 다음은'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민족이 근대의 산물인 이상, 민족국가간의 전쟁이 만들어낸 국립묘지 또한 근대의 발명품일 수밖에 없다. 전쟁 희생자를 기린다는 미명 하에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국가동원의 선전물로 이용되는 국립묘지의 태생도 서글프지만, 생존시의 계급과 성명에 따라 묘역의 크기까지 구분짓는 한국적 상황은 서글프다 못 해 서럽기까지 하다. 죽음마저도 구분짓는 비인간적인 발상에 잠시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한홍구만큼 병역과 군대문제에 지속적으로 발언하고, 또 그에 걸맞는 활동을 보여준 이도 드물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번에는 한층 더 나아가 병역 문제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구체적인 논의는 책에 잘 설명되어 있고 내 눈길을 끈 부분은 "군대문제를 개선하고 바꿀 수 있는 힘과 역량은 예비역들에게 있는 것인데 예비역들이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라는 한 여학생의 지적이었다. 어디 관심만 없는 정도인가. 군대문화를 확대재생산하는 가장 큰 주체야말로 예비역들이 아닌가. 예비역들 반성해야 한다. 더불어 입대하기 전에 비해 군대문제에 관심도 줄고 감각도 둔해진 현역인 나도 반성해야 한다. 안에 갇힌 자는 더욱 경계해야하거늘 많이 게을렀다. 오랜만에 읽은 이 한 권의 역사책을 계기로 다시 역사에 관심도 가지고 자주자주 나를 돌아보겠다고 다짐해본다.

 덧) 이런 어설픈 자기 고백은 좋아하지도 하지도 않는 편이지만, 앞으로 좀 더 멋진 인간이 되자라는 자기 다짐으로 한 번 써봤다. 

덧2) 아무리 생각해도 유시민에 대한 글은 일기로나 쓰는 게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3-03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