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박현욱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건 제2회 세계일보 문학상 수상작인 "아내가 결혼했다"를 통해서였다. 1억원

이라는 고료를 지나치게 내세우는 그 상에 대한 못마땅함과(문학상의 가치를 고료라는

잣대로 재려드는 것 같아 신문하단의 광고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마치 독일

월드컵 시즌을 겨냥한 듯 축구를 소재로 다룬 그 소설의 속보임에(첫인상은 분명 그러했다)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했음에도 쉬이 책을 집어들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지인들의 추천과 인터넷 서평에서의 호평들에 께름직

함을 잠시 미뤄두고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었다. 감히, 2006년에 읽은 책을

재미라는 기준으로 정렬한다면 꼭대기 근처에는 갈 만한 소설이었다. 재치넘치는 작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몇몇 인터뷰까지 챙겼다. 그의 전작(前作)에 관심이 가게 된 건 당연지사. 그 중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작품, "동정 없는 세상"을 선택했다.

 

 소설은 “지난 몇 년간의 내 개인사는 섹스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의 투쟁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고백하는 주인공 준호가 여자친구 서영과 "한 번 하기" 위한 과정을 신인답게 발랄하고 경쾌하게,

그리고 사뿐하리만치 가볍게 풀어낸 작품이다. 내가 "사뿐하리만치 가볍게"라고 쓴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통상, 소설이 가볍다는 건 약점으로 지적된다. 신선하고 경쾌하더라도 결코 가벼워선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부유하는 10대들의 성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엔 작가가 선택한 가벼운 서술 방법은 이 소설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진지하게 사뭇

근엄하게 접근했다면 이 소설은 음란하고 어두컴컴한 그렇고 그런 소설에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여자친구와의 첫 경험을 묘사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대화인 “여긴가”  “거기인 거 같기도 해”가

외설스럽게 읽히지 않는 이유도 이 소설의 가벼움에서 기인한다. 이 가벼운 소설을 읽은 후에

생각케 되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의식을 상기해 보면 작가의 능력에 반할수 밖에.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참 매력적이다. 동정 딱지 떼는 것만이 꿈이지만 마지막엔 인문학

공부를 선택하는 성장을 보여주는 준호, 성관계에 있어서 결코 피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당찬 소녀 서영, 성장 소설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조력자 캐릭터인 서울대 출신의 백수 명호씨,

아버지의 부재를 아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아들의 미래에 어떤 구속도 하지 않는

숙영씨. 명호씨와 숙영씨 같은 경우에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캐릭터일 수는 있지만, 오히려

그 점에서 현실의 부모들에게 한 번쯤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 절친했던 친구 녀석 생각이 난다. 녀석이 "대학생 10명 중 6명이 성경험이 있다"는

신문기사(정확한 수치는 가물가물하다)를 보고 오더니 대뜸 "나, 대학교 너무 가고 싶다. 웬만하면

섹스 할 수 있다는 거잖아" 라고 정색을 하며 말하더라. 결국 준호는 우리 모두의 청소년시절

자화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처럼 관례나 계레를 통한 공식적인 성인식이 없는

이 시대에 "동정 떼기 = 성인 세계로의 진입" 이라는 등식이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굳어진 듯 하다.

하지만 사회는 청소년의 성경험을 탈선이나 엇나감이라는 시선에서만 바라보는 것 같다. 이제는

청소년들의 성경험을 현실 그대로 인정하고 청소년들의 성이 건강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가게끔

인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하여 이 땅의 청소년들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성경험을 통해 자신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한층 건강해지지 않을까.

절대 가르치려고 들지는 않지만 교훈적인 소설 "동정 없는 세상"은 그 길에서 충분히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소설이다.

 

 

 

1.수능이 끝났네요. 고생한 수험생들 이 책 한 번 읽어보세요. 술술 읽혀서 시간 떼우기에도

딱이랍니다.

2.젊은 작가들이 저는 참 끌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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