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에 대한 기억은 늘 막연하고 몽롱했다. 싸움은 싸움마다.개별적인 것이어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할 때마다 그 싸움이나에게는 모두 첫 번째 싸움이었다. 지금 명량 싸움에 대한 기억도 꿈속처럼 흐릿하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의 교서를 받았을 때 나는 김더라음과 곽재우의 삶을 생각했다. 나는 김덕령처럼 죽을었고 곽재우처럼 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단지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 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