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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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 자기 자리를 찾아야만 완성되는 퍼즐이라면 그 과정을 견디기만 하면 될 것이다. 그것은 자리의 존재 여부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인생은 그 자리에 대한 확신을 찾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자리를 스스로 찾아 나서고 누군가는 정해진 자리에 만족하기도 한다.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일까?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는 한스의 짧은 생을 통해 무척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 한스는 정해진 자리가 아닌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스의 생은 한스가 아닌 주변 어른들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목사님, 교장 선생님은 그가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나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했다. 물론 한스에게는 충분한 재능이 있었다. 주변의 높은 기대와 관심이 한스를 짓눌렀지만 단 한 번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들이 정해준 자리에 자신을 맞춰야만 했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친구 하일너를 만나면서 한스는 조금씩 변화한다. 무엇이든 당당하고 자유로운 하일너와 단단한 우정을 키운다. 하지만 제도와 관습에 반하는 행동을 보인 하일너가 징계를 받았을 때 한스는 그를 옹호할 수 없었다. 한스의 마음에는 언제나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날품팔이꾼이나 하는 짓이야. 너는 모든 공부를 좋아서 자발적으로 하는 게 아니야. 단지 선생님들이나 아버지가 무서워서 하는 거라고. 1등이나 2등이면 뭐해? 나는 20등이지만 성적에 목을 매는 너희 공부벌레들보다 멍청하지 않아.” 95쪽

 

 성적과 대학 입시에 얽매였던 시간을 돌아보면 하일너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학생으로 공부에 주력하는 한스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십 대라는 시기는 애매하다. 어떤 신념이나 자아가 확립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 시기를 보낸 어른들에게는 한스만이 옳았다. 하일너는 그 틀을 스스로 벗어던졌고 그곳에 남은 한스는 학업에 매진하지만 신경쇠약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그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달래주지 않았다. 한스에게 기대를 갖는 이는 없었다. 이제 그는 마을의 희망이 아니었다. 거기다 사랑의 아픔까지 겪어야만 했다. 왜 그를 안아주는 이가 없었을까. 잠깐의 꾀도 부리지 않고 공부만 했던 한스에게 필요했던 건 서기나 기계공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괜찮다는 말이었다. 아니, 서기나 기계공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줘야 했다. 기계공이 되기로 하고 수습공의 길을 걷는 한스가 힘든 그 과정을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한스는 어떤 것에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자연이 주는 평온만이 유일한 행복이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과일주스의 이 향기를 마시는 건 좋은 일이다. 이 향기를 마시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멋지고 좋은 일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소리 없이 내리는 5월의 이슬비와 좍좍 쏟아지는 여름비, 서늘한 가을 아침이슬과 봄날의 포근한 햇볕과 여름의 뜨거운 뙤약볕, 하얗게 또는 장밋빛으로 빛나는 꽃들, 수확을 앞둔 잘 익은 과일나무의 적갈색 윤기, 그리고 그 사이사이 한 해가 주는 갖가지 아름다운 일과 즐거운 일들을 말이다.’ 164쪽

 

 어쩌면 이토록 평범한 것들이 주는 즐거움을 너무 빨리 알게된 게 한스의 불행인지도 모른다.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것들이 허무하게 여겨졌을 테니 말이다. 한스에게 좋은 집과 높은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한 삶이 아니라 하일너처럼 느끼는 대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버지나 목사, 교장 선생님 중 누구라도 한스에게 원하는 만큼 낚시를 해도 좋다고, 신학교에 떨어져도 괜찮다고 말을 해줬더라면 그는 그토록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퍼즐을 잘 맞춰가고 있을 것이다. 아니 퍼즐 한 조각 잃어버렸다고 좌절하지 않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는 게 당연한 것처럼 분명 한스의 절망과 고뇌는 다른 이름이 되어 빛났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찾고자 방황하는 수많은 한스와 그들에게 걱정스런 시선을 걷어내지 못하는 어른들이 이 책을 읽기를 바란다. 우리는 더이상 또다른 이름의 한스를 잃어서는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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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이 있던 주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미용실에 다녀온 후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뽑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다시 흰머리가 나오지만 뽑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팔이 아플 정도로 뽑았다.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미용실에 갈 때는 퍼머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비가 내린다는 예보는 맞지 않으려나 보다. 아직 비는 내리지 않고 점심으로 요리한 비지찌개는 실패했다. 레시피를 따라 했지만 완벽하게 실패했다. 그나마 썰어 넣은 김치가 맛있어 먹을 수 있었다. 일주일째 책을 읽지 못하고 있다. 손에 잡고 있고 눈으로 보고 있으나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여 지인이 추천한 시집과 신간 시집을 둘러본다. 설레는 봄처럼 환한 빛깔의 시집과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한다. 이렇게 고운 색의 표지라니, 직접 보면 얼마나 눈부실까. 

 

 

 

 

 

 

 

 

 

 

 

 

 

 

 

 

 마음산책 블로그에 올라온 신간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과 복효근의 『따뜻한 외면』과 이영광의 『홀림 떨림 울림』의 표지에 반할 수밖에.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이란 함민복의 시집도 그렇다. 봄을 알리는 씨앗을 담은 듯하다. 열병을 앓게 될지 모르지만 손에 닿는 봄, 이런 책들을 곁에 두면 아주 기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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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7 09: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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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28 2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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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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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이 바뀌거나 새해가 되면 잊고 있었던 이들에게서 문자가 온다. 연락을 하지 않았던 시간이 길었던 탓에 목소리가 아닌 짧은 글로 안부를 전하는 게 의식처럼 되버렸다. 그들 중 일부는 단체 문자를 보낸다. 나는 단체 문자의 형태로 온 문자에는 답을 하지 않는다. 정말 나의 안부가 궁금하다면 전화를 할 것이고, 다시 문자를 보낼 테니까.

 

 누군가를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는 방법은 참으로 많다. 눈을 마주하지 못하는 그리운 이에게 나를 전하는 방식으로 이런 시집을 건네도 좋겠다. 박 준의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어쩌면 시인에게 이 시집이 그런 존재가 아닐까.  입춘이 지났으니 겨울의 끝이라 해도 좋을 날들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시를 오래 바라보았다. 소리를 내어 읽기도 했다.

 

 낙서

 

 저도 끝이고 겨울도 끝이다 싶어

 무작정 남해로 간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는 벌써 봄이 와서

 농어도 숭어도 꽃게도 제철이었습니다

 

 혼자 회를 먹을 수는 없고

 저는 밥집을 찾다

 근처 여고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몸의 왼편은 겨울

 몸의 오른편은 봄 던 아픈 여자와

 늙은 남자가 빈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집

 

 메뉴를 한참 보다가

 김치찌개를 시킵니다

 

 여자는 냄비에 물을 올리는 남자를 하나하나 지켜보고

 저도 조금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을 봅니다

 

 남자는 돼지비계며 김치며 양파를 썰어넣다 말고

 여자와 말다툼을 합니다

 조미료를 그만 넣으라는 여자의 말과

 더 넣어야지 맛이 난다는 남자의 말이 끓어넘칩니다

 

 몇 번을 더 버티다

 성화에 못 이긴 남자는

 조미료 통을 닫았고요

 

 금세 뚝배기를 비웁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잔뜩 낙서해놓은 분식집 벽면에

 

 봄날에는

 ‘사람의 눈빛이 제철’ 이라고

 조그맣게 적어놓았습니다 (76~77쪽)

 

 봄날은 내가 기다리는 날이다. 봄날에 특별한 일이 있는 건 아니다. 다른 이름의 계절이 돌고 돌지만 봄이라는 계절은 막연한 희망이 생긴다. 얼었던 땅이 녹는 것을 지켜보는 일, 밤새 분주한 몸놀림으로 아침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을 보는 일, 어제보다 조금 더 길게 내리는 햇볕을 보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일깨워주는 계절이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의 사인(死因)은 너와 았으면 한다

 

 창문들은 이미 밤을 넘어선 부분이 있다 잠결이 아니라도

 나는 너와 사인(死因)은 너와 았으면 한다

 

 이곳에서 당신의 새벽을 추모하는 방식은 두 번 다시 새

 벽과 마주하지 않거나 그 마주침을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

 까 고민하다 잠이 드는 것

 

 요와 홑청 이불 사이에 헤어 드라이의 더운 바람을 틀

 어넣으면 눅눅한 가슴을 가진 네가 그립다가 살 만했던

 광장(廣場)의 한때는 역시 우리의 본적과 사이가 멀었다

 는 생각이 들고

 

 나는 냉장고의 온도를 강냉으로 돌리고 그 방에서 살아

 나왔다

 

 내가 번듯한 날들을 모르는 것처럼 이 버튼을 돌릴 줄 아

 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맥주나 음료수를 넣어두고 왜 차

 가워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들의 낯빛을 여관의 방들은 곧

 잘 하고 있다

 

 “다시 와, 가기만 하고 안 오면 안 돼” 라고 말하던 여자의

 질긴 음성은 늘 내 곁에 내근(內勤)하는 것이어서

 

 나는 낯선 방들에서도 금세 잠드는 버릇이 있고 매번

 은 꿈을 꿀 수도 있었다 (34~35쪽)

 

 호우주의보

 

 이틀 내내 왔다

 

 미인은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를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꼭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용서 았다

 

 이발소에 처음 취직했더니

 머리카락을 날리지 않고

 바닥을 쓸어내는 것만 배웠다는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미인은 내가 졸음을

 그냥 지켜만 보는 것이 불만이었다

 

 나는 미인이 새로 그리고 있는

 유화 속에 어둡고 캄캄한 것들의

 태(胎)가 자라는 것 아 불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바꿔 읽는 놀이를 하다 잠이 들었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44~45쪽)

 

 때로 생은 철저하게 혼자인 시간을 부여한다. 부르지 않은 고독이 친구처럼 곁을 맴돌고 온기를 나눌 이를 찾을 수없는 순간들. 사귐에 익숙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겨를이 없는 생인 것이다. 사는 일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시집을 읽으면서 부르지 못한 이름들을 시를 빌려 불러본다.(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

 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

 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

 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

 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 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 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55쪽)

 

 여름에 부르는 이름

 

 방에서 독재(獨裁)했다

 기침은 내가 억울해하고

 불안해하는 방식이었다

 

 나에게 뜨거운 물을

 많이 마시라고 말해준 사람은

 모두 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팔리지 않는 광어를

 아예 관상용으로 키우던 술집이 있었다

 

 그 집 광어 이름하고

 내 이름이 았다

 

 대단한 사실은 아니지만

 나는 나와 은 이름의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벽면에서 난류를

 찾아내는 동안 주름이 늘었다

 

 여름에도 이름을 부르고

 여름에도 연애를 해야 한다

 여름에도 별안간 어깨를 만져봐야 하고

 여름에도 라면을 끓여야 하고

 여름에도 두통을 앓아야 하고

 여름에도 잠을 자야 한다

 

 잠,

 잠을 끌어당긴다

 선풍기 날개가 돈다

 

 약풍과 수면장애

 강풍과 악몽 사이에

 

 오래된 잠버릇이

 당신의 궁금한 이름을 엎지른다 (58~59쪽)

 

 박 준의 시는 특별하지 않아 특별하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상실이며 추억이고 일상이다. 나와 은 계절을 사는, 쏟아지는 비를 함께 보거나 싸구려 여관에 잠시 몸을 의탁하는 그런 생을 사는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라 더 끌린다. 예쁘거나 좋은 것만 보이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슬픔과 커져가는 절망을 건네는 것이다. 그 슬픔과 절망을 아는 이는 시를 읽으며 가슴이 절이거나 생목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나쁘거나 아프기만 한 게 아니다.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앓다 보면

 오래전 살다 온 추운 집이

 

 이불 속에 함께 들어와

 떨고 있는 듯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날에는

 길을 걷다 멈출 때가 많고

 다음에도 길을 잃는 버릇이 있습니다

 

 눈을 감고 앞으로 만날

 악연들을 두려워하는 대신

 

 미시령이나 구룡령, 큰새이령

 높은 고개들의 이름을 소리내보거나

 

 역(驛)을 가진 도시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면

 얼마 못 가 그 수첩을 잃어버릴 거라는

 이상한 예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넣어 하나하나 반찬을 물으면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 기도 했고

 

 손을 빗처럼 말아 머리를 빗고

 좁은 길을 나서면

 

 어지러운 저녁들이

 제가 모르는 기척들을

 

 오래된 동네의 창마다

 새겨넣고 있었습니다 (82~83쪽)

 

 어디선가 슬퍼하고 있을, 어디선가 아득한 시간을 손으로 꼽고 있을 당신을 생각한다. 나와 당신과의 거리는 닿을 수 없이 멀겠지만 큰 목소리로 이런 시를 읽어주고 싶다. 당신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전하는 안부를 듣고 싶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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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2013-02-14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안녕!

박준 시인은 제가 박연준 시인으로 혼동을 해서 시집의 제목을 좀 특이하게 짓는 시인구나 하고 생각했지 뭐에요. 제목으로 봐서는 김춘수 시인의 <꽃>보다 더 의미심장할 것 같은데, 시는 좀 어려운데요... 못알아 듣겠어요. ㅠ.ㅠ

자목련님은 시 먹는 자목련! 오늘은 무슨 시를 읽고 계세요? 그나저나 겨울이 끝나간다니, 봄을 기다리셨나요? (이런 질문은 좀 간지러워요. :))

자목련 2013-02-16 10:08   좋아요 0 | URL
이 시집,좋아요. 댈레웨이 님의 표현대로 시 먹는 거(체할지도 모르지만, ㅋㅋ) 계속 하고 싶어요!!
요즘은 장승리의 <무표정>을 읽어요. 언제나 봄을 기다려요. 자목련도 피고, 작약과 수국을 만나는 여름을 기다릴 수 있는 봄, 봄이 좋아요!!
 

 

 어젯밤에는 폭설이 내릴 거라는 일기 예보를 듣고 커튼을 계속해서 들춰 보았다.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앵커의 말처럼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 싶었다. 곧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린 눈을 확인했다. 입춘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설날인 정월 초하루까지 자신의 존재를 보여줄 기세다. 연휴가 짧아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고생할 것 같다.  

 

 뚜렷한 이유 없이 불안하다. 얼마 전에는 잠들기 위해 수면제를 먹어야 했고, 어제는 꿈을 꾸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꿈이었다. 겨울과 봄이 힘 겨루기를 하듯 내 몸이 그러하다. 겨울이라는 어떤 기운과 봄이라는 어떤 기운이 충동한다고 해야 할까. 뭐, 그렇다는 말이다.

 

 저녁에는 반가운 이와 짧은 통화를 했다. 긴 겨울밤에 뭘 하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모니터를 붙잡고 있거나 텔레비젼을 붙잡고 있다고 말했다. 때때로 책도 붙잡고, 전화기도 붙잡고 있는데 그 말은 하지 못했다. 건강에 대해(특히 어지럼증) 이야기를 나눴고, 2월이 끝나기 전에 만나자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 명절 인사를 주고 받았다.

 

 주전자 가득 보리차를 끓였다. 입맛이 촌스러워 그런지 나는 보리차가 제일 좋다. 한 번은 올케 언니가 연잎을 넣고 끓인 물을 마신 적이 있는데 좋았던 기억이 있기는 하다.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를 주문하면서 읽지 못한 『어루만지다』도 같이 주문하려고 한다. 유안진 시인의 산문집 『상처를 꽃으로』와 정지아의 『숲의 대화』, 김선영의 특별한 배달,현의 번역으로 만나는 『어린 왕자』도 읽고 싶다.  새로운 표지로 나온김선우의 사물들』도 천천히 다시 읽고 싶다. 내가 가진 책은 이제 구간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의 표지가 더 마음에 든다.

 

 

 

 

 

 

 

 

 

 

 

 

 

 

 

 

 읽고 있는 책은, 미나토 가나에의 『왕복서간』이다. 『고백』, 『속죄』에 대한 평을 듣기만 했는데 직접 소설을 읽기는 처음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주보고 할 수 없는(소설에서는 어떤 사건들)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 받는 내용이다. 표정을 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글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안다. 때로 글은 맨얼굴 그 이상으로 선명하게 주름과 잡티를 보여준다. 글은 때로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물이며, 무작정 화내고 쏘아대도 좋을 친구이며, 글은 조각 조각 비밀을 숨겨 놓기 좋은 숨은 그림 찾기라 할 수 있다. 그런 글이 있어 좋다. 글이라는 위로가 있어 좋다. (이렇게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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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3-02-07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글이라는 위로가 있어서 저도 좋은걸요!!! 그런데 자목련님 정말 일관되게 책 많이 읽으세요!!!!!
그런데 그런데 어디 아파요??????아프지 말기에요!!!!

자목련 2013-02-07 20:27   좋아요 0 | URL
읽기 보다는 쭉 책을 사고 있어요. ㅎ
<어지럼증>으로 힘든 건 지인이구요.
저는 부실하고, 저질 체력입니다..

2013-02-07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07 2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러니까 월요일에 나는 두 사람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게는 아주 중요한 메일이었다. 한 사람은 월요일에 메일을 읽자 마자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고 전화로도 이야기를 나눴다. 메일로 질문했던 것에 대한 답을 주었고 연락을 못했던 10여 개월에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도 나눴다. 안부를 묻고 나중에 또 연락하자며 통화를 끝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오늘 오후에 답을 주었다. 그 역시 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주었다. 두 사람에게 같은 내용의 질문을 한 건 아니다. 차마 부끄러워 이곳에 밝힐 수 없지만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원했던 답을 듣지 못했기 때문일까. 울적하고 울적하다.

 

 이런 기분을 전환시키려면 뭔가 사야 하는데 자제 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그냥 책을 담기만 한다. 곁에 두었으므로 곧 읽게 될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그치지 않는 비』, 창비에서 나온 『덧없는 환영들』은 제목과 표지가 이 저녁의 나를 위로한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지만 여기까지. 소설가 이혜경의 산문집 『그냥 걷다가, 문득』은 왠지 다정하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읽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은 박경철의 『문명의 배꼽, 그리스』,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읽는 강성은의 시집 『구두를 싣고 잠이 들었다』와 박연준의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그리고 좋은 리뷰를 쓸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장승리의 시집 『무표정』, 과 박준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다. 나열한 시집은 아주 오랜 시간 내가 아끼게 될 것 같다. 당신들의 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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