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읽고 함께 살다 - 한국의 독서 공동체를 찾아서
장은수 지음 / 느티나무책방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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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들이 줄고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든 것은 영상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줄의 글을 읽는 것보다 1~2분짜리 동영상에서 더 많은 정보와 즐거움을 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독서에 대한 중요성은 시들지 않는다. 책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수많은 감정과 삶의 이치를 알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것을 계기로 삶이 변화한 이야기인 『같이 읽고 함께 산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혼자서는 할 수 없고 알 수 없었던 독서의 기쁨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책이다.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같이 읽기는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이면서, 동시에 여러 번 인생 상담을 주고받는 것이다. 책이 열어 준 입술에는 각자 살아온 삶의 무늬와 무게가 담겨 있어 마음의 두께를 더해 준다. 황무지처럼 드러난 마음은 삶에서 불어닥치는 가벼운 산들바람에도 상처 입고 피 흘리지만, 초곡이 굳게 덮인 마음은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먼지조차 날리지 않는다.’ (73쪽)

책에는 저자가 전국 곳곳의 독서 공동체 24곳을 직접 찾아가 만난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서울을 비롯하여 제주, 청주, 홍성, 강원도까지 3년 이상 함께 책을 읽은 공동체에서 만난 이들이 어떻게 모여서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일상이 변화했는지 들려준다. 독서 모임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모임이라면 더욱 그렇다. 공동체의 모임도 다양하다. 제주 이민자의 모임을 시작으로 협동조합과 마을기업으로 성장한 ‘제주 남원 북클럽’, 불혹에 만나 칠순까지 훌쩍 넘은 ‘홍동 할머니독서모임’,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에서 업무에 지쳐서 ‘아무거나 함께 읽기’로 기쁨을 찾은 도서관 사서의 ‘청주 강강술래’, ‘나를 위한 ’ 책 읽기로 다시 삶의 변화를 찾은 ‘서울 상경다락방’, 1학년 학생들이 41개의 독서 동아리를 결성한 ‘강원 홍천여고 독서동아리’, 과학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서울 과학독서아카데미’, 강남의 불금, 책으로 자신을 되찾는 일들이 모인 ‘서울 심야독서모임’, 등 각양각색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24개의 독서 공동체가 풀어놓은 삶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나의 고민이 되고 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는 고민과 상처가 고스란히 거기 있어서다. 책을 혼자서 읽었을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이나 생각을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 마주하며 생각에 생각이 더해져 다른 곳으로 확장되는 경험은 삶에도 적용된다. 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을 방법을 배울까 싶어서 나간 강좌에서 아이와 남편이 아닌 나를 발견하는 시간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아이가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가기를 바랐던 생각은 마음이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쪽으로 변화한 것이다.

독서 모임이라 해서 무조건 같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건 아니다. 친목을 시작으로 공통분모가 책일 뿐이다. 공통의 책을 읽지 않는 모임도 있다. 저마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공연을 보기도 한다. 혼자서는 계획만 세우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포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한다. 함께 책을 읽어 좋은 점을 솔직하게 들려주는 ‘부천 언니북’의 인터뷰는 비슷한 상황의 이들에게 용기와 함께 울림을 안겨준다. 주저하고 있던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나이 들면 자부심이 떨어집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신이 없어지죠. 사람들이 자시만을 무시하는 것만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부터는 감쪽같이 그런 일이 없어졌습니다. 자꾸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고 머리와 행동의 간격이 조금 좁혀졌습니다. 게다가 함께 읽으면 더 많이 읽습니다. 좋은 일만 있지요.” (48쪽)

그런가 하면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책 내용 그 이상의 대화로 발전하는 경우가 있다. 책 속에서 결국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점과 개선해야 할 인식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주인공의 일상은 우리네 현실과 닮아서 더 깊게 공감한다. 잘 몰랐던 사회적 이슈에 대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중요성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서 독서 모임을 하지 않는 보통의 독자인 나에게도 다양성이 존재하는 사회를 꿈꾸게 만든다. 독서 공동체에서 직접 경험한 것들이기에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저마다 다른 시작점으로 모였지만 결국 24개의 독거 공동체의 궁극적 목표는 더 좋은 삶을 향해 나가는 것이며 제대로 된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런 문장으로 연결된다. 나의 세계가 다른 누군가의 세계가 합쳐져서 더 넓은 세계를 만드는 일, 그 위대한 일이 책을 읽는 작은 행위로 시작한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어떤 책을 읽을지 결정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고 선택된 책을 같이 읽고 자신이 느낀 생각을 나누고 다른 이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민주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틀은 아닐까. 모임을 통해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은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나아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도모하기에 이른다. 책으로 맺은 작은 인연이 가져다주는 변화와 성장은 관계를 결속시키는 힘이다. 혼자서는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행위에 불과한 책 읽기가 함께 읽기라는 통로를 만나면 공감과 연대의 힘을 갖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공감과 연대가 바로 이 책 안에 있다.

무엇이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면 힘이 난다. 즐거운 일은 배가 되는 건 당연하고 어려운 일도 머리를 맞대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24개의 독서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모임을 이어가면서 터득한 삶의 이치도 그렇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같이 읽고, 함께 사는 일은 적확하고도 당연한 사실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독서 공동체에 참여하는 이들은 삶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들이다. ‘혼자’를 벗어나 ‘같이’를 갈망하는 마음도 이로부터 생겨난다. 또 다른 삶에 대한 갈망은 ‘좋은 삶’에 대한 갈망으로 흔히 이어진다. 같이 읽기는 인생에 우애를 불러오고, 공동의 추구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책을 같이 읽는 것은 결국 삶을 함께하는 일이다. 책으로 자신을 바꾸고, 가족을 바꾸고, 지역을 바꾸는 아름다운 혁명을 일으킨다. 좋은 삶이란, 혼자서는 도무지 이룰 수가 없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면서 타자의 인정과 수용을 통해서만 간신히 획득되기 때문이다. 독서 공동체는 ‘좋은 삶’의 연습장이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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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 ZERO 零 소설, 향
김사과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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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를 떠올리면 그의 소설 속 인물 ‘영이’가 겹쳐진다. 작가와 인물은 창작자와 피조물에 불과한데도 그렇다. 그만큼 강렬했고 김사과를 각인시키기 충분한 캐릭터였다. 그는 소설을 통해 다양한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의 추악한 본질을 담고자 노력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제목도 특이한 『0 영 ZERO 零』에서 나는 영이를 떠올렸다. 영이가 성장한 인물이 소설 속 화자인 ‘나’일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소설은 화자인 ‘나’와 남자친구 ‘성연우’가 헤어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연애 소설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연애 소설이 아니다. 인간 본연의 지독한 욕망(어쩌면 악이라 부를 수 있는)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나’가 들려주는 자신과 관계된 인물들을 통해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나’가 교묘하게 접근하여 이용한 후에 목적을 달성했다 싶으면 과감하게 버리는 모습은 마치 인간계 먹이사슬을 보는 듯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식인食人하는 종족이다. 일단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윤리와 감정에 앞서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슨 밀인고 하니, 세상은 먹고 먹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내가 너를 잡아먹지 않으면, 네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조심하고, 또 경계하라. (46쪽)

‘나’는 명문대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했고 번역가이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독립 문학잡지의 편집위원이다. 누가 봐도 부럽고 대단한 위치에 놓였다. ‘나’는 그것을 잘 일고 있었다. 자신이 자신 것들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지배할 수 있는지잘 아는 영리한 인물이다. 그래서 한눈에 제물이 될 상대를 알아봤다. 수업을 받는 박세영은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제법 글을 잘 썼고 욕망이 있었다. 재능에 대한 칭찬과 몇 번의 만남, 편집위원이라는 사실만 언급하면 그만이었다. 그것만 살짝 건드려주면 모든 게 뜻대로 될 수 있었다. 대학시절 동기였던 이민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불행을 바란다. 그것은 진실이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유일한 진실이다.(…) 좀 더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사람들은 누군가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바란다. 각별한 타인의 불행을 커튼 삼아 자신의 방에 짙게 드리워진 불행의 그림자를 가리고자 한다. (120쪽)

 

‘나’​에게 그들은 그저 도구에 불과했다.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그의 유산을 용의주도하게 아픈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이 받았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방치한 건 아니다. 주도권을 잡았을 뿐이다. 이처럼 ‘나’는 주변 인물과 환경을 살짝만 이용하면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즐거움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상대가 나를 먼저 이용하기 전에 재빠르게 내가 덮쳐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상대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게 치밀하게 그물을 던졌다. 그것은 때로 호위와 친절이었고 때로 지위와 권력이었다. 사실 ‘나’는 어디에나 있고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며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우리는 ‘나’의 행동을 비난할 수 없다. 그럴 자격이 있는 자 누구일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라는데 어쩌겠는가.

 

그러나 남자친구 성연우는 달랐다. 세상을 항한 ‘나’의 태도가 진심이 아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차렸기에 비난하고 분노했다. 어쩌면 가족인 엄마를 제외하고 자신을 알아본 유일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좋은 학벌과 부와 아름다운 허울에 감춰진 진짜 ‘나’를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소설에서 성연우와 전화로 싸우는 부분에서 ‘나’는 가장 인간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나’가 이제껏 자신이 구축해온 세계를 부수거나 빠져나갈 인물은 아니었다. 해왔던 대로 그대로 살아갈 거란 걸 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전진할 뿐이다. 설령 도착할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상태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그것이 김사과만이 만들 수 있는 소설의 세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지독한 소설의 늪에 빠져도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인생은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0. 제로. 없다. 아무것도 없다. 지금 내가 응시하는 이 텅 빈 허공처럼 완벽하게 깨끗하게 텅 비어 있다. (187쪽)

 

*책의 말미에 평론가 황예인과 김사과의 대화를 통해 소설『0 영 ZERO 零』에 대해 한 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김사과가 추구하는 인간과 소설에 대해서도 만날 수 있어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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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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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생은 이동으로 채워진다. 존재하는 순간 움직이기 시작하여 끊임없이 이동한다. 공간을 이동하고 새로운 시간과 마주하며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삶은 그렇게 확장된다. 지나온 삶을 궤적을 우리는 ‘여행’이라 부르기도 한다. 떠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곳이 아닌 그곳, 그리고 경계에서 두 곳을 바라보는 일은 아닐까. 곳곳에서 경험하고 마주하는 삶의 조각들이 바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 『방랑자들』에 담겨있다.

 

다른 곳으로의 이동이라는 목적이 여행의 시작이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일들은 누군가의 보통의 일상이다. 공항의 대기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일, 호텔에서 퇴실하면서 키를 반납하지 않는 일, 동행했던 이와 잠시 이별하는 일, 처음 본 이를 만나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 안내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곳저곳의 공간을 둘러보는 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세상의 단면을 하나하나 만나는 일이었다. 소설 속 화자인 ‘나’의 여정을 함께 하는 일은 그들을 만나는 일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타인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삶을 공유한다. 단순히 ‘나’의 여행기라 여기면 안 된다. 소설을 통해 만나는 방대한 세상은 수많은 에피소드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공항, 유적지, 호텔, 유람선, 섬, 도시, 저마다 공간이 간직한 시간의 힘이 전해진다. 떠나지 않았다면 발견할 수 없는 생생한 삶의 현장. 그러니 방랑의 순환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 귀퉁이에서 바라보는 것. 그건 세상을 그저 파편으로 본다는 뜻이다. 거기에 다른 세상은 없다. 순간들, 부스러기들, 존재를 드러내자마자 바로 조각나 버리는 일시적인 배열들뿐. 인생? 그런 건 없다. 내 눈이 보이는 것은 선, 면, 구체, 그리고 시간 속에 그것들이 변화하는 모습뿐이다.’ (280쪽)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세상이라는 유기체를 볼 수 있다는 기쁨, 방랑의 특권일 것이다. 이곳이 아닌 그곳으로 이동했을 때 볼 수 있는 세상을 우리는 꿈꾼다. 그곳에 도착해야 분명하게 드러나는 경계.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글쓰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자동차, 비행기, 배, 이동하는 수단에 따라 풍경은 다르게 보인다. 그러나 시선의 주체가 멈춰있다면 그저 풍경은 단면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진짜 풍경을 원한다면 떠나야 한다. ‘멈추는 자는 화석이 될 거야.’ (391쪽) ‘움직여, 계속 가, 떠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리니.’ (392쪽) 이동을 위한 멈춤만이 의미가 있을 뿐. 삶이 이동하지 않고 멈춘다는 건 인간의 심장이 멈춘다는 것과 같다.

 

올가 토카르추크가 추구하는 ‘방랑’(여행)이란 움직임을 통해서 체득할 수 있는 타인의 삶인지도 모른다. 이동해야만 볼 수 있는 풍경과 이야기들 말이다. 그건 물리적인 이동에 한정된 게 아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저 깊은 곳의 욕망을 꺼내 마주하고 움직임의 마지막인 죽음에 대해 사유한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간의 몸과 장기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또 하나 방랑의 세계를 구축한다. 심장이 원활하게 움직이는 것, 가장 확실한 움직임이며 여행이라는 놀라운 사실. 그러므로 방랑자에겐 자유로운 사고의 전환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때문에 이 책 자체가 소설이라는 경계를 넘어 활발하게 이동하는 ‘방랑자’인 셈이다.

 

움직이는 건 사유하는 일이다. 올가 토카르추크의 소설을 읽는 일도 그러하다. 『방랑자들』을 읽기 전 내가 몰랐던 세상(지식, 정보, 기록)과 마주하게 되었으니까. 한 곳에 고여있어 멈췄던 마음이 이동하는 순간이다. 능동적으로 나를 이끄는 힘, 그게 바로 이 책의 가치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어도 상관없다. 유연한 사고로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떠날 채비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한 권의 책으로 모든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으니 얼마나 굉장한가. 이제 진짜 방랑자가 될 시간이 임박해왔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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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했다

의자에 앉으면 밀려오는 졸음에 대해

반대편에서 이어지는 평화에 대해

 

주택가를 무심히 지나는 고양이의 눈빛처럼

의심을 둔 채 확실해지는 것들을 믿지 않았다

 

문 앞에서는 매일 가능성과 마주쳤다

걱정을 알면서 우연을 내밀고

우산을 준비하면서 모자를 준비하고

 

무언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으로 안도했지만

바람의 끝을 구름이라 부르거나

모래에서 기록을 찾는 식으로

비슷하게 시작해 조금 다른 이유로 끝나는 건

단지 비슷한 일로 남겨두었다

거짓말을 구해 아무데에나 숨길 수 있었고

고개 숙이는 혹은 고개 돌리는 내게

짐작하는 동안 내게 말했다

 

나에 대한 확신은 반복되는가 경험적인가

그리고 무력해지는 잠으로 돌아와 차츰 잊어버렸다

조금씩 다른 생각들이 쌓인 곳에서

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할 뿐이었다 (「짐작하는 날들」, 전문)

 

 

겨울에 관한 시를 읽고 싶어 시집을 둘러보다 결국엔 이런 시를 읽는다. 뭔가 주저하는 날들, 뭔가 마음에만 키우는 나의 말들이 짐작하는 말들이었구나 싶다. 짐작하는 건 헤아리는 게 아닌데 짐작하는 건 혼자 단정하는 일인데,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주에 서울 병원에 다녀오면서 다가오지 않은 날들을 짐작했다. 그 짐작이 맞을지 틀릴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시의 말미에 등장하는 문장처럼 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하는 건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물어보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혼자서 짐작하는 건 나쁜 마음을 키울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선명하고 정확한 게 좋다. 짐작하는 마음에 부정이 아닌 긍정의 힘을 실어주는 시라 생각한다. 짐작하는 건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이고 짐작하는 건 기대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짐작하는 날들의 끝에는 어떤 날들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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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는 모과가 있다. 노란 모과가 아닌 연두색에 가까운 모과가 있다. 단단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단단하진 않았을 텐데. 여리고 여렸을 어린 모과는 언제부터 단단해졌을까. 생긴 모양이 그리 예쁘지는 않다. 상처도 제법 많다. 제대로 잘 익었다고 볼 수도 없다. 만질 때마다 모과 양이 내게로 닿는다. 코를 가까이 대봐도 그렇다. 모과라는 말이 예뻐서 자꾸만 모과, 모과라고 이름을 불러본다. 모과의 계절을 생각한다. 뜨거운 모과 차를 마시는 계절. 모과를 곁에 두었지만 차를 끓어셔 마실 수는 없다. 모과를 자르기도 힘들고 나는 그런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좋아하는 동생이 보내준 생강차를 마시고 있다. 하루에 한 잔씩. 저녁 식사 후 생강차를 마신다. 물을 끓이고 컵에 생강차를 몇 스푼 담는다. 물을 부으면 알갱이들이 스르르 녹는다.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무언가가 나를 안온하게 감싸주는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뜨거움이 전해진다고 할까. 두 손 가득 컵을 쥐고 천천히 생강차를 마신다. 한 모금 마실 때에는 잘 몰랐던 맛이 점점 더 깊어짐을 느낀다. 생강차를 마시는 나이를 생각한다. 생강차를 마시는 나이가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생강차를 매일 마시는 나를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이곳에도 눈이 내렸다. 아침에도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진짜 겨울이 시작된 것 같았다. 이미 겨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부인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의 계절을 온전히 말할 수 있는 단어, 겨울과 눈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눈처럼 가만히 내려와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드는 소설을 읽고 싶다. 현대문학상 수상 소식이 반가운 백수린의 짧은 소설들이 모인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가 그런 소설일 것만 같다. 김사과의 독특한 제목의 소설 『0 영 ZERO 零』, 편혜영의 수상작도 궁금하지만 김혜진과 이주란의 단편이 더 궁금한 『호텔 창문』도 이런 날씨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황인찬의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까지.

 

 

 

 

 

 

 

 

 

 

모과 향이 방 안을 전부 채울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채운다. 모과가 익는 밤은 아니지만 모과가 있는 밤으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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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1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9-11-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커피 중독이라 자목련님의 생강차 이야기가 오히려 더 와닿아요. 그리고 저 책들 저도 읽어보고 싶은 것들과 겹쳐서 리뷰가 기다려지네요...

자목련 2019-11-21 08:48   좋아요 0 | URL
커피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계절마다 다른 차를 마시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김사과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막힘없는 문장이 매력적이에요. 이 아침 뜨거운 커피가 전하는 온기로 하루를 여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