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는 모과가 있다. 노란 모과가 아닌 연두색에 가까운 모과가 있다. 단단하다. 처음부터 이렇게 단단하진 않았을 텐데. 여리고 여렸을 어린 모과는 언제부터 단단해졌을까. 생긴 모양이 그리 예쁘지는 않다. 상처도 제법 많다. 제대로 잘 익었다고 볼 수도 없다. 만질 때마다 모과 양이 내게로 닿는다. 코를 가까이 대봐도 그렇다. 모과라는 말이 예뻐서 자꾸만 모과, 모과라고 이름을 불러본다. 모과의 계절을 생각한다. 뜨거운 모과 차를 마시는 계절. 모과를 곁에 두었지만 차를 끓어셔 마실 수는 없다. 모과를 자르기도 힘들고 나는 그런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좋아하는 동생이 보내준 생강차를 마시고 있다. 하루에 한 잔씩. 저녁 식사 후 생강차를 마신다. 물을 끓이고 컵에 생강차를 몇 스푼 담는다. 물을 부으면 알갱이들이 스르르 녹는다. 그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노라면 무언가가 나를 안온하게 감싸주는 것 같다. 그 짧은 순간 뜨거움이 전해진다고 할까. 두 손 가득 컵을 쥐고 천천히 생강차를 마신다. 한 모금 마실 때에는 잘 몰랐던 맛이 점점 더 깊어짐을 느낀다. 생강차를 마시는 나이를 생각한다. 생강차를 마시는 나이가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생강차를 매일 마시는 나를 예전에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는 이곳에도 눈이 내렸다. 아침에도 일어나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진짜 겨울이 시작된 것 같았다. 이미 겨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부인하고 싶은 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나의 계절을 온전히 말할 수 있는 단어, 겨울과 눈은 그렇게 하나가 된다.

 

눈처럼 가만히 내려와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드는 소설을 읽고 싶다. 현대문학상 수상 소식이 반가운 백수린의 짧은 소설들이 모인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가 그런 소설일 것만 같다. 김사과의 독특한 제목의 소설 『0 영 ZERO 零』, 편혜영의 수상작도 궁금하지만 김혜진과 이주란의 단편이 더 궁금한 『호텔 창문』도 이런 날씨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황인찬의 시집 『사랑을 위한 되풀이』까지.

 

 

 

 

 

 

 

 

 

 

모과 향이 방 안을 전부 채울 수는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나를 채운다. 모과가 익는 밤은 아니지만 모과가 있는 밤으로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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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1 0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9-11-20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커피 중독이라 자목련님의 생강차 이야기가 오히려 더 와닿아요. 그리고 저 책들 저도 읽어보고 싶은 것들과 겹쳐서 리뷰가 기다려지네요...

자목련 2019-11-21 08:48   좋아요 0 | URL
커피는 여전히 사랑하지만 계절마다 다른 차를 마시고 있는 저를 발견해요. 김사과의 소설을 읽고 있는데 막힘없는 문장이 매력적이에요. 이 아침 뜨거운 커피가 전하는 온기로 하루를 여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