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쉽지 않다. 다음 만남이 예정되어 있어도 그렇다. 그래서 김광석은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노래했을까. 붙잡을 수 없는 시간과의 이별, 잠시 떨어져야 하는 한시적 이별, 영원한 이별. 그 모두가 아프고 힘들다. 이별 후 가장 힘든 건 부재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뜨거웠던 감정은 서서히 식어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별의 수순을 밝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만이 영원하기를 바랄 뿐이다.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결혼의 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니까, 모든 걸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지원과 영진도 이혼을 위한 대화를 나눌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잦은 다툼과 화해, 반복되는 일상, 상대를 바꾸려 노력하다 지치고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은 상태. 알고 있다. 곧 무서운 폭우가 내리칠 거라는걸. 그리고 폭우가 지나고 나면 개운할 거라는걸.

 

 서유미의 『홀딩, 턴』의 지원과 영진의 결혼생활은 보통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이 아니라 그냥 우리 주변의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서로 다른 습관과 사고를 지닌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가족이 되는 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 둘이 헤어지는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며 죽도록 미워하고 증오해서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식상한 말이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헤어짐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지원과 영진은 여느 부부처럼 사소한 것들로 다툰다. 작은 것들을 채워주지 않으니 더욱더 실망하게 된다. 모든 걸 다음으로 미루는 영진의 행동에 화가 나는 지원, 지원의 잔소리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영진. 떨어져서 서로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영진이 친구의 집으로 떠나고 지원은 혼자 남아 둘이 함께 한 시간을 되짚어본다.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47쪽)

 

 소설은 담담하게 영진과 지원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들려준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둘의 연애와 헤어짐의 과정까지 말이다. 지원은 이러한 상황을 친구 승아와 이나에게 전하고 둘은 너만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지원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몇 년 전 모든 걸 혼자 감당했을 승아을 생각한다. 소설에서 지원과 친구들의 대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육아로 힘든 이나, 이혼 후 번역을 하는 승아, 그리고 이혼을 앞둔 지원.

 

 인생에서 정답이 있을 수 없듯 영진과 지원의 선택이 오답은 아닐 것이다. 헤어지는 선택을 했지만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애틋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늦은 확인이라고, 누군가는 그렇다며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살듯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사는 것이다. 다만, 소설 속 그들처럼 서로의 사랑에 지쳐있거나 결혼 생활의 위기를 직감하는 이들이라면 상대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언을 건넬 것이다.

 

 사랑했던 이들이 헤어짐을 준비하며 겪는 마음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복잡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지원의 상태를 표현한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생이라는 시간은 어떤 시간을 지나든 다음 시간이 온다는 것, 그것이 기쁨이든 아픔이든 말이다.

 

 그저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세탁의 시간을 지나는 것 같았다. 코스의 어디쯤에서 물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그 과정을 지나면 다음 코스로 넘어간다. 유쾌한 기분이라고 할 순 없지만 더 나빠질 건 없다는 생각으로 몸의 힘을 뺀다. 지금은 거품이 일지만 다음 코스, 그다음 코스를 지나면 결국 세제가 씻겨 내려갈 거라는 사실에 몸을 맡긴다. 어떤 일이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필요한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세탁기의 버튼을 눌러놓고 바라보았다. (114쪽)

 

 『홀딩, 턴』은 이별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잘 그려냈다. 소설 속 영진과 지원에게 이별은 사랑의 다른 이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유미의 장편소설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김숨의 소설집『당신의 신』이 생각난다. 김숨의 소설집에 수록된 세 편의 소설 모두 이혼을 말하기 때문이다. 『홀딩, 턴』속 부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이혼은 가부장 제도를 고발하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에서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감정을 공감하지 않는 남편과 이혼을 선택하는 딸 민정의 모습은 대조적이면서 뭔가 후련하다. 그렇다면 이혼 후의 삶은 어떨까? 「읍산요금소」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결혼과 동시에 단절된 경력, 친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상황, 한국 사회에서 이혼 한 여성의 현실과 그를 향한 시선이 어떤지. 좁디좁은 요금소 안에서의 일상이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김숨은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새의 장례식」에서는 폭력의 대물림에 대해 언급한다. 이혼한 아내가 재혼한 남편과 만나게 된 남자는 과거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행한 폭력을 생각한다. 그것이 과거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라는 걸 뒤늦게 확인한다. 이별한 후에야 아내의 상처를 마주한 것이다.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일, 그것이 얼마나 폭력의 행위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듯 이별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이별하는 과정이 힘들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 필요는 없다. 이별을 결정한 순간 상처가 자라기 시작하니까. 추억도 상처로 전락하니까. 그러나 이별한 후에도 사랑이 오고 이별한 후에도 살아갈 수 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삶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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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2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별을 결정한 순간 상처가 자라기 시작˝ 이 표현 좋네요 :) 저는 좀 더 앞의 시간을 덧붙여 ˝이별을 예감한 순간부터....˝라고.

자목련 2018-05-30 16:39   좋아요 1 | URL
이별이 없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별을 감지하는 순간 삶은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아요. 사랑은 참, 어렵고 아파요.
 
기분을 만지다
김은주 지음, 에밀리 블링코 사진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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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가 오면 비에 관련된 노래를 듣는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에 관한 노래를 듣는다. 써 놓고 보니 날씨에 민감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때는 그렇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기분 내키는 대로 한다는 말이다. 무언가에 의해 흔들리는 것, 때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감정이다. 그럴 때 감정을 만지고 달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다 생각한다. 흐르는 대로, 감정이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떨까. 김은주의 『기분을 만지다』를 나는 감정을 만지다로 읽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기분, 나의 감정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시간이 담겨 있는 글과 사진.

 

 인생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업데이트, 스스로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업데이트, 가장 사랑받고 또 사랑을 주었던 순간을 업데이트해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개인의 역사 어느 지점부터 비록 최상의 순간들이 업데이트 되지 않더라도 삶의 단 한순간, 가장 찬란하거나 가장 따뜻하거나 가장 행복했다면 그 한순간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위로받을 수 있고 용기 내내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그 답은, 내가 살아온 인생 안에 있다. (「내 안에, 있다」 전문, 56쪽) 

 

 뭔가를 꼭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반드시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손 닿는 곳에 있어 펼쳤을 때 마주하는 글에 마음이 따라갈 수도 있다. 앞뒤가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니, 아무 곳이나 후루룩 넘겨도 좋고 사진만 먼저 만나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지금 나의 기분과 똑같은 글을 발견한다면 짜릿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건 저자 김은주의 글이지만 동시에 나에게로 온 나의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내가 말하지 못했던 기분을 설명하는 것 같다고 할까.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이에게는 생각의 정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떠나는 기쁨에 대한 자극을, 이별한 이에게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단호함을 안겨준다.

 

 때로 어디서 오는지 방향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휘감기게 된다. 작은 점으로 시작된 그것은 점들을 모아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어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왜 사는지 모르겠고, 나만 제대로 사는 게 아닌 것 같고, 다들 열심히 나가는데 나만 발을 떼지 못하는 것 같은 불안이 쌓이는 것이다. 무엇이 그 기분을 깨부술 수 있을까. 누군가 나도 그렇다고 말해준다면,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면 그가 나를 모르는이라 하더라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고, 그림과 사진을 보고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

 

 일상에는 곳곳에는 욕구를 잃게 만드는 작고 큰 위기가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 위기를 경험하고 이겨내 왔다. 도미노는 무너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일어선다. (「모든 욕구의 등은 동시에 꺼지고 또한 동시에 켜진다」중에서, 118쪽) 

 

 매일 즐겁고 재미날 수 없지만 즐겁고 재미난 삶을 생각한다면 하루는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태도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단순하고도 단순한 것들, 좋아하는 것들에 기댈 때도 필요하다. 『기분을 만지다』란 책도 울적한 이에게, 혹은 속상한 이에게 그런 책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몰랐던 나의 기분을 보여줄 것이다. 내가 바라던 기분을 만지게 될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질 필요는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4시의 도넛」중에서,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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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다비드 그로스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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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이야기가 있듯이 말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나와 당신은 우리가 될 수 있을까? 무엇이 나와 당신을 우리로 묶어줄 수 있을까? 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추억, 이별했지만 한때 사랑했던 감정, 말하고 싶지 않은 어떤 비밀이 나와 당신을 우리로 만든다. 우리가 되었을 때 우리는 고통의 조각이나 벗어나고 싶은 악몽과 대면할 힘을 키우기도 하는데 그것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기억에도 없는 낯선 남자 ‘도발레’와 그의 전화를 받고 쇼를 보러 간 ‘아비샤이’는 아직 완벽한 우리가 아니기에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없었다.

 

 자신의 쉰일곱 살 생일에 스탠딩 업 코미디 공연을 하는 도발레는 멋지고 잘 나가는 코미디언도 아니었고 그저 그런 성적 농담과 유머로 관객을 상대하고 있었다. 전화로 통화하면서 언뜻 함께 과외를 받았던 열네 살 소년의 모습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아비샤이는 그 자리에서 도발레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관찰자이자 기록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판사로 퇴직한 그는 개 한 마리와 사랑하는 타마라를 잃은 상실로 채워진 삶을 살고 있었기에 스탠드 업 코미디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시큰둥한 마음은 독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도발에는 무대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도구로 삼았다. 그러니까 158CM의 작은 키, 홀쭉한 몸, 안경을 쓴 외모부터 손짓 발짓, 고개를 숙이고 슬픔을 감춘 듯한 표정, 무대를 가로지르며 큰 소리를 외치기도 하면서 말이다. 적절하게 관객과 밀당을 하면서 웃음을 이끈다. 하지만 재미있는 쇼를 기대했던 인내심이 적은 몇몇 손님은 그곳을 떠나기도 했다.

 

 “나는 당신들한테 다른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는 걸 줄 거야. 더럽혀지지 않은 거. 인생 이야기. 그래, 그게 가장 훌륭한 이야기지” (99쪽)

 

 그가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뭘까. 언제 시작하는 것일까. 이런 눈치를 모를 이 없는 도발레는 아비샤이를 소개하면서 분위기를 바꾼다. 자신의 공연에 전직 판사인 아비샤이 라자르가 이 자리에 왔다고 말이다. 판사와 코미디언이라니, 둘은 무슨 사이일까. 뭔가 특별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던 게 아닐까 기대를 하고 다시 무대의 도발레에게 집중한다. 열네 살에 군사 캠프에 갔던 일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건 학창시절의 즐거운 기억이 아닌 비극의 기억, 고통의 역사였다. 군사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아비샤이는 문득 두려워진다. 조롱과 무시를 당하는 도발레를 지켜보았던 자신의 행동을 관객에게 폭로하는 게 아닌가 하고.

 

 도발레의 진짜 쇼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열네 살 소년에게 닥친 거대한 슬픔, 영문도 모르고 가방을 챙겨 늦지 않게 장례식에 도착해야 한다며 자신을 이끄는 교련 담당 하사. 장례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어린 소년에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쉰일곱의 도발레가 들려주는 그 날의 이야기는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도발레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 그런 엄마가 있어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이발사 아버지. 아들 도발레와 단둘이 있을 때에는 환하게 웃고 다정했던 엄마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였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던 어린 도발레, 자신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아 폭력을 행하던 아버지. 그것은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에 대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엄마(살아남은 자)의 트라우마에 관한 것이다. 이쯤이면 아비샤이와 독자인 나도 그 장례식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는다는 게 어떤 건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도발레에게 운전병은 개그 경연 대회가 있다면서 유머랍시고 이상한 개그를 던진다. 먼 훗날 그 운전병이 절망에 빠진 열네 살 소년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걸 도발레는 알게 된다. 유머라는 게 그렇다. “아무 일도 없잖아! 이게 유머의 위대한 점이라고. 가끔은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는 거야!” (87쪽)란 도발레 외침은 사십삼 년 전 그 운전병에서 시작된 건 아닐까. 비극의 역사를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일부를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점점 장례식장에 가까워질수록 도발레는 엄마를 불러온다. “엄마가 다시 내 귀에 대고 말했어. 모든 사람이 짧은 시간만 살다 간다는 걸 기억하고, 그 사람들이 그 시간을 유쾌하게 보낼 수 있게 해줘야 해.” (224쪽)

 

 정말 우리는 짧은 생을 살아간다. 그 짧은 생이 비극과 슬픔, 절망, 분노로 채워진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그런 고통의 삶에서 도발레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코미디를 해야만 했던 건 아닐까. 누구도 열네 살 이후 도발레의 인생이 얼마나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을지 알지 못한다. 아비샤이는 생각한다. 그때 그 군사캠프에서 도발레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라면, 그를 그렇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더라면. 너무 늦은 후회였다. 물론 도발레가 ​판사 아비샤이에게 어떤 판결이나 그 시절에 대한 사과를 원하는 건 아니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랄 뿐. 그래서 이제라도 우리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 후회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비극의 역사가 재탄생되지 않기를.

 

 나는 이 소설에 담긴 대단한 의미를 재생시킬 수 없다. 전쟁, 홀로코스트, 전범들에 대한 판결, 살아남은 자의 회복,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온전한 기록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잘 살아왔다고, 살아내느라 수고했다고, 앞으로 살아갈 짧은 생에는 슬픔을 이기는 진짜 유머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 그저 무대 위 작고 야윈 한 남자 도발레가 두 시간 정도로 압축한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기억해야 한다는 정도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우리의 역사와 겹쳐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한다. 어쩌면 곧 잊고 나의 이야기에 취해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기억해야 할 그의 말은 마음에 깊이 새겨두고 꺼내보겠다.

 

 “그냥 살아 있자는 게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지 이해할 수 있어? 그게 얼마나 전복적인 것인지?” (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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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1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올해의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인가요.
저도 책 소개는 본 것 같은데,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사람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서 공감할 수 있을 이야기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같은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 이야기로 바꾸는 건 재능 같고요.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님, 편안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18-05-21 14:39   좋아요 1 | URL
네, 2017년맨부커인터내셔널상수상작이에요.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냐, 그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소설이 아니었나 싶어요. 서니데이 님도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악스트 Axt 2018.5.6 - no.018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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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이라서, 그래서 악스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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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 이상한 의사 아르테 오리지널 6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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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든 아플 수 있다. 알면서도 아프지 않았기를 바라며 살아갈 뿐이다. 병원에 가서야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착각한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의사나 간호사에게는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병동의 환자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의사는 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환자에게는 그와 동급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그 의사이기에.  그러나 환자에게는 주치의가 한 명뿐이지만 의사에게 환자는 너무도 많다. 그들에게 모두 다정하고 친절한 의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부족한 의료기기와 의료진은 말할 것도 없다.

 

 나쓰카와 소스케의『신의 카르테』를 읽는 동안 몇 차례의 수술과 입원 생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씩씩한 환자였지만 고열로 인해 퇴원이 미뤄졌을 때는 정말 무서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환자에게 가장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일까. 소설 속 구리하라 이치토는 분명 좋은 의사였다. 좋은 의사란 뛰어난 의술을 펼치는 의사를 뜻하는 게 아니다. 구리하라의 말처럼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의사이다.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다. (105쪽)

 

 소설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소도시의 혼조병원을 배경으로 숨 가쁘게 흘러가는 병원의 일상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환자와 그들을 치료하는 구리하라를 비롯해 동료 의사와 간호사의 이야기다. 주인공 구리하라는 좀 유별난 의사처럼 보인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들먹이며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기도 하고 동료와 지인에게 자신만의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구리하라는 권위적인 의사가 아닌 보통의 이웃 같은 의사인 것이다. 시골 병원의 특성상 전공인 내과를 시작으로 응급실에서 외과의가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보내는 구리하라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새벽까지 이어진 응급실 진료가 끝나고 옛 예관을 개조한 집에서 결혼기념일도 챙기지 못하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와 달을 보고 이웃과 술을 마시며 휴식을 갖는다. 그렇다고 구리하라가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대학병원과 혼조병원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학병원 의국에서 최첨단 기술로 진료를 하고 연구를 하면 좋을 것이다. 모든 의사가 대학병원으로 간다면 혼조병원 같은 시골 병원의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소설과 현실의 의료 상황은 비슷했다. 구리하라가 혼조병원에서 돌보는 환자는 대부분 혼자 사는 고령의 환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소설 속 담낭암 환자 72세의 아즈미 할머니는 우리 주변의 그들처럼 보였다.

 

 아즈미 할머니가 원하는 마지막을 허락하고 옥상까지 함께 가서 할머니가 먹고 싶어 한 카스텔라를 준비하는 구리하라 같은 의사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구리하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표정이 없는 의사들로 가득한 병원이 아닌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구리하라.

 

 약물이나 항생제 등을 이용해 끊어지는 목숨을 연장한다는 것은 사실 오만한 일이다. 원래 수명은 인간의 지혜를 벗어난 영역이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다. 흙에 묻힌 정해진 운명을 파내어 빛을 비추고 좀 더 나은 임종을 만들어간다. 의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181쪽)

 

 소소한 유머가 넘치고 다정한 의사가 진료를 하는 병원,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만나고 싶은 바람은 너무 큰 욕심일까. 그런 그렇고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잔잔한 재미와 더불어 먹먹한 감동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착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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