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을 만지다
김은주 지음, 에밀리 블링코 사진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비가 오면 비에 관련된 노래를 듣는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에 관한 노래를 듣는다. 써 놓고 보니 날씨에 민감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때는 그렇고 어떤 때는 그렇지 않다. 그러니까 기분 내키는 대로 한다는 말이다. 무언가에 의해 흔들리는 것, 때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감정이다. 그럴 때 감정을 만지고 달래는 건 쉽지 않다. 그러다 생각한다. 흐르는 대로, 감정이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면 어떨까. 김은주의 『기분을 만지다』를 나는 감정을 만지다로 읽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기분, 나의 감정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과 시간이 담겨 있는 글과 사진.

 

 인생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업데이트, 스스로가 가장 자랑스러웠던 순간을 업데이트, 가장 사랑받고 또 사랑을 주었던 순간을 업데이트해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개인의 역사 어느 지점부터 비록 최상의 순간들이 업데이트 되지 않더라도 삶의 단 한순간, 가장 찬란하거나 가장 따뜻하거나 가장 행복했다면 그 한순간을 붙잡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위로받을 수 있고 용기 내내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이유는, 그 답은, 내가 살아온 인생 안에 있다. (「내 안에, 있다」 전문, 56쪽) 

 

 뭔가를 꼭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뭔가를 반드시 배우기 위해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그냥 손 닿는 곳에 있어 펼쳤을 때 마주하는 글에 마음이 따라갈 수도 있다. 앞뒤가 연결되는 내용이 아니니, 아무 곳이나 후루룩 넘겨도 좋고 사진만 먼저 만나도 나쁘지 않다. 그러다 지금 나의 기분과 똑같은 글을 발견한다면 짜릿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건 저자 김은주의 글이지만 동시에 나에게로 온 나의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내가 말하지 못했던 기분을 설명하는 것 같다고 할까. 복잡한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이에게는 생각의 정리를,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떠나는 기쁨에 대한 자극을, 이별한 이에게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단호함을 안겨준다.

 

 때로 어디서 오는지 방향을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휘감기게 된다. 작은 점으로 시작된 그것은 점들을 모아 선을 만들고 면을 만들어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왜 사는지 모르겠고, 나만 제대로 사는 게 아닌 것 같고, 다들 열심히 나가는데 나만 발을 떼지 못하는 것 같은 불안이 쌓이는 것이다. 무엇이 그 기분을 깨부술 수 있을까. 누군가 나도 그렇다고 말해준다면,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면 그가 나를 모르는이라 하더라도,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우리는 책을 읽고, 그림과 사진을 보고 노래를 듣고 위로를 받는다.

 

 일상에는 곳곳에는 욕구를 잃게 만드는 작고 큰 위기가 잠재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그 위기를 경험하고 이겨내 왔다. 도미노는 무너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일어선다. (「모든 욕구의 등은 동시에 꺼지고 또한 동시에 켜진다」중에서, 118쪽) 

 

 매일 즐겁고 재미날 수 없지만 즐겁고 재미난 삶을 생각한다면 하루는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태도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아니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단순하고도 단순한 것들, 좋아하는 것들에 기댈 때도 필요하다. 『기분을 만지다』란 책도 울적한 이에게, 혹은 속상한 이에게 그런 책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몰랐던 나의 기분을 보여줄 것이다. 내가 바라던 기분을 만지게 될 것이다.

 

 세상을 다 가질 필요는 없다. 하나면 충분하다. (「4시의 도넛」중에서, 2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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