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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카르테 1 - 이상한 의사 ㅣ 아르테 오리지널 6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채숙향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평점 :
누구든 아플 수 있다. 알면서도 아프지 않았기를 바라며 살아갈 뿐이다. 병원에 가서야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착각한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의사나 간호사에게는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되고 병동의 환자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의사는 신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환자에게는 그와 동급이다. 내가 모르는 나의 병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그 의사이기에. 그러나 환자에게는 주치의가 한 명뿐이지만 의사에게 환자는 너무도 많다. 그들에게 모두 다정하고 친절한 의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부족한 의료기기와 의료진은 말할 것도 없다.
나쓰카와 소스케의『신의 카르테』를 읽는 동안 몇 차례의 수술과 입원 생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제법 씩씩한 환자였지만 고열로 인해 퇴원이 미뤄졌을 때는 정말 무서웠던 기억도 따라온다. 환자에게 가장 좋은 의사는 어떤 의사일까. 소설 속 구리하라 이치토는 분명 좋은 의사였다. 좋은 의사란 뛰어난 의술을 펼치는 의사를 뜻하는 게 아니다. 구리하라의 말처럼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의사이다. 의사는 치료만 하는 게 아니다. (105쪽)
소설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소도시의 혼조병원을 배경으로 숨 가쁘게 흘러가는 병원의 일상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응급실,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환자와 그들을 치료하는 구리하라를 비롯해 동료 의사와 간호사의 이야기다. 주인공 구리하라는 좀 유별난 의사처럼 보인다. 나쓰메 소세키의 『풀베개』를 들먹이며 이상한 말투를 사용하기도 하고 동료와 지인에게 자신만의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구리하라는 권위적인 의사가 아닌 보통의 이웃 같은 의사인 것이다. 시골 병원의 특성상 전공인 내과를 시작으로 응급실에서 외과의가 되기도 한다.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보내는 구리하라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한다. 새벽까지 이어진 응급실 진료가 끝나고 옛 예관을 개조한 집에서 결혼기념일도 챙기지 못하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와 달을 보고 이웃과 술을 마시며 휴식을 갖는다. 그렇다고 구리하라가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대학병원과 혼조병원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학병원 의국에서 최첨단 기술로 진료를 하고 연구를 하면 좋을 것이다. 모든 의사가 대학병원으로 간다면 혼조병원 같은 시골 병원의 환자들은 어떻게 될까. 소설과 현실의 의료 상황은 비슷했다. 구리하라가 혼조병원에서 돌보는 환자는 대부분 혼자 사는 고령의 환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소설 속 담낭암 환자 72세의 아즈미 할머니는 우리 주변의 그들처럼 보였다.
아즈미 할머니가 원하는 마지막을 허락하고 옥상까지 함께 가서 할머니가 먹고 싶어 한 카스텔라를 준비하는 구리하라 같은 의사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구리하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표정이 없는 의사들로 가득한 병원이 아닌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구리하라.
약물이나 항생제 등을 이용해 끊어지는 목숨을 연장한다는 것은 사실 오만한 일이다. 원래 수명은 인간의 지혜를 벗어난 영역이다. 처음부터 운명은 정해져 있다. 흙에 묻힌 정해진 운명을 파내어 빛을 비추고 좀 더 나은 임종을 만들어간다. 의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181쪽)
소소한 유머가 넘치고 다정한 의사가 진료를 하는 병원,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만나고 싶은 바람은 너무 큰 욕심일까. 그런 그렇고 따뜻한 기운을 전해주는 소설이다. 잔잔한 재미와 더불어 먹먹한 감동까지 안겨준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착한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