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쉽지 않다. 다음 만남이 예정되어 있어도 그렇다. 그래서 김광석은 ‘우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라고 노래했을까. 붙잡을 수 없는 시간과의 이별, 잠시 떨어져야 하는 한시적 이별, 영원한 이별. 그 모두가 아프고 힘들다. 이별 후 가장 힘든 건 부재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뜨거웠던 감정은 서서히 식어간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별의 수순을 밝는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만이 영원하기를 바랄 뿐이다. 연애의 끝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결혼의 끝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니까, 모든 걸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을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지원과 영진도 이혼을 위한 대화를 나눌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잦은 다툼과 화해, 반복되는 일상, 상대를 바꾸려 노력하다 지치고 더 이상 화를 내지도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은 상태. 알고 있다. 곧 무서운 폭우가 내리칠 거라는걸. 그리고 폭우가 지나고 나면 개운할 거라는걸.

 

 서유미의 『홀딩, 턴』의 지원과 영진의 결혼생활은 보통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소설이 아니라 그냥 우리 주변의 이야기처럼 여겨졌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서로 다른 습관과 사고를 지닌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함께 가족이 되는 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 둘이 헤어지는 건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며 죽도록 미워하고 증오해서가 아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식상한 말이지만 더 행복해지기 위해 헤어짐을 선택하는지도 모른다.

 

 스윙댄스 동호회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한 지원과 영진은 여느 부부처럼 사소한 것들로 다툰다. 작은 것들을 채워주지 않으니 더욱더 실망하게 된다. 모든 걸 다음으로 미루는 영진의 행동에 화가 나는 지원, 지원의 잔소리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영진. 떨어져서 서로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한다. 영진이 친구의 집으로 떠나고 지원은 혼자 남아 둘이 함께 한 시간을 되짚어본다.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47쪽)

 

 소설은 담담하게 영진과 지원의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들려준다. 첫눈에 반한 사랑은 아니었지만 천천히 서로에게 스며들었던 둘의 연애와 헤어짐의 과정까지 말이다. 지원은 이러한 상황을 친구 승아와 이나에게 전하고 둘은 너만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지원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몇 년 전 모든 걸 혼자 감당했을 승아을 생각한다. 소설에서 지원과 친구들의 대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육아로 힘든 이나, 이혼 후 번역을 하는 승아, 그리고 이혼을 앞둔 지원.

 

 인생에서 정답이 있을 수 없듯 영진과 지원의 선택이 오답은 아닐 것이다. 헤어지는 선택을 했지만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애틋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늦은 확인이라고, 누군가는 그렇다며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살듯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사는 것이다. 다만, 소설 속 그들처럼 서로의 사랑에 지쳐있거나 결혼 생활의 위기를 직감하는 이들이라면 상대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조언을 건넬 것이다.

 

 사랑했던 이들이 헤어짐을 준비하며 겪는 마음을 아주 섬세하게 표현한 소설이다. 복잡하면서도 혼란스러운 지원의 상태를 표현한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생이라는 시간은 어떤 시간을 지나든 다음 시간이 온다는 것, 그것이 기쁨이든 아픔이든 말이다.

 

 그저 인생의 어떤 순간에는 세탁의 시간을 지나는 것 같았다. 코스의 어디쯤에서 물이 차기를 기다렸다가 그 과정을 지나면 다음 코스로 넘어간다. 유쾌한 기분이라고 할 순 없지만 더 나빠질 건 없다는 생각으로 몸의 힘을 뺀다. 지금은 거품이 일지만 다음 코스, 그다음 코스를 지나면 결국 세제가 씻겨 내려갈 거라는 사실에 몸을 맡긴다. 어떤 일이든 시간의 흐름과 함께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필요한 때가 있다. 그래서 가끔은 세탁기의 버튼을 눌러놓고 바라보았다. (114쪽)

 

 『홀딩, 턴』은 이별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감정을 구체적으로 잘 그려냈다. 소설 속 영진과 지원에게 이별은 사랑의 다른 이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유미의 장편소설을 읽노라면 자연스레 김숨의 소설집『당신의 신』이 생각난다. 김숨의 소설집에 수록된 세 편의 소설 모두 이혼을 말하기 때문이다. 『홀딩, 턴』속 부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의 이혼은 가부장 제도를 고발하는 시선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에서 아버지의 폭력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감정을 공감하지 않는 남편과 이혼을 선택하는 딸 민정의 모습은 대조적이면서 뭔가 후련하다. 그렇다면 이혼 후의 삶은 어떨까? 「읍산요금소」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결혼과 동시에 단절된 경력, 친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을 상황, 한국 사회에서 이혼 한 여성의 현실과 그를 향한 시선이 어떤지. 좁디좁은 요금소 안에서의 일상이 그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 김숨은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새의 장례식」에서는 폭력의 대물림에 대해 언급한다. 이혼한 아내가 재혼한 남편과 만나게 된 남자는 과거 자신도 모르게 아내에게 행한 폭력을 생각한다. 그것이 과거 자신의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라는 걸 뒤늦게 확인한다. 이별한 후에야 아내의 상처를 마주한 것이다. 상대를 사랑하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일, 그것이 얼마나 폭력의 행위라는 걸 모르는 이들이 많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르듯 이별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이별하는 과정이 힘들겠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줄 필요는 없다. 이별을 결정한 순간 상처가 자라기 시작하니까. 추억도 상처로 전락하니까. 그러나 이별한 후에도 사랑이 오고 이별한 후에도 살아갈 수 있다.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삶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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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25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별을 결정한 순간 상처가 자라기 시작˝ 이 표현 좋네요 :) 저는 좀 더 앞의 시간을 덧붙여 ˝이별을 예감한 순간부터....˝라고.

자목련 2018-05-30 16:39   좋아요 1 | URL
이별이 없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별을 감지하는 순간 삶은 조금씩 무너지는 것 같아요. 사랑은 참, 어렵고 아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