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문지 스펙트럼
오에 겐자부로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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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이건, 이제 힘껏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버림받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75쪽)

 

 생을 지배하는 건 무엇일까. 의지일까, 환경일까. 한때 유명했던 광고 카피처럼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답할 수 있는 의지를 생각한다. 함께 밥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사냥을 하고 눈 지치기를 하며 천진난만하게 서로를 바라보던 애틋했던 시선을 뒤로하고 혼자서만 그들을 떠나 추방당하는 ‘나’의 환영이 지워지지 않는다. 혼자가 아니라서 외부 마을과 단절된 채 갇혀 있었지만 무서움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믿었는데 막상 떠났던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자 믿음은 와르르 무너지고 소년들은 다시 아이가 돼버렸다.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이야기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를 외면하고 소년들의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직, 어린아이였으니.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그런 10대의 소년들이었다. 춥고 배고픈 그들이 주먹밥과 뜨거운 국을 거부하고 죽음이라는 공포를 상대할 수 힘이 없었으니까.

 

 그럼 아이들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놓인 것일까. 소설의 시작은 이랬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세상은 여전히 살인의 시대였다. 이제 겨우 어린아이 티를 벗은 십 대의 소년들, 많아야 열일곱이나 열여덟이 될 법한 아이들이 가족의 품을 떠난 감화원 생들은 어디론가 이동한다. 대부분 별것 아닌 호기심으로 저지른 잘못이 전부였다. 일행에서 탈출한 아이들이 돌아오고 교관의 지도하에 걷는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소설의 표현처럼 그들은 지루한 ‘여행’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여행의 끝에 마주한 건 산골의 외진 마을이었다. 교관으로부터 아이들을 인계받은 촌장은 바로 노동을 지시한다. 온갖 동물의 사체를 땅에 묻는 일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동물의 사체. 불안한 기운이 아이들을 둘러싼다. 소년들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 거리를 두며 경계한다. 눈치가 빠른 소년들은 마을에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촌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살겠다고 도망친다.

 마음엔 소년들만 남았다. 어른들의 행태에 분노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다. 하지만 마을을 벗어날 수 없게 건너편에서 소년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총까지 들고 말이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떠난 마을을 뒤지고 먹을거리를 찾아 나선다. 그러다 흙광에서 죽은 엄마를 곁에 두고 버려진 여자애를 발견한다. 동물의 시체를 파묻었던 것처럼 여자애의 엄마를 묻고 끼니 때마다 챙긴다. 어른들이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며 보호한다. 때로 의견이 맞지 않아 생기는 충돌은 곧 사라진다. 뭐랄까, 끈끈한 연대라고 할까. 스스럼없이 막역한 사이, 형제 아닌 형제가 되고 동료가 된다. 조선인 소년 리, 도망친 군인, 모두 약자였다. 이곳에 갇혀있다는 사실과 전염병의 공포에서 잠시 벗어나 십 대 소년의 모습을 회복한다. 머리를 맞대고 사냥을 궁리하고 눈이 내린 아침에는 한바탕 눈싸움을 하고 눈 지치기를 한다. 사냥한 꿩을 요리하고 그들만의 축제를 즐긴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그냥 이렇게 아이들이 신나게 지내기를 나도 모르게 바라고 있었으니.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감화원을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결말을 기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중에 두고두고 과장된 무용담을 들려주기를 바랐다. 

 

 소설에서 아이들을 보호하고 약자를 지켜줘야 하는 어른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폭언으로 위협하고 자신들이 가진 힘으로 협박했다. 어떤 이는 시대가 그런 시대였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며 책임을 피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그런 비겁하고 비열한 어른은 소설 속 허구의 인물만은 아니다. 오에 겐자부로가 소설을 발표한 1958년은 60년이 지난 현재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나친 비약이 아니라 더욱 답답하다. 진실이 아닌 거짓을 회유하는 촌장에게 맞서는 당당한 ‘나’의 모습은 정의의 열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득 궁금해진다. 소년 ‘나’는 어떻게 성장했을까.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멈추지 말고 그대로 달려나가기를. 십 대의 시절 눈 내리는 모습을 보며 열광했던 소년을 간직한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

 

 거기에 완전히 새로운, 청정한 새벽이 있었다. 눈이 내려 쌓여 땅을 뒤덮고 나무들은 둥그스럼한 짐승의 어깨처럼 봉긋 부풀어, 무한한 밝음으로 햇빛에 반짝거렸다. 눈! 나는 뜨거운 탄식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눈, 나는 태어나서 지금껏 이토록 풍성하고 호사스러운 눈을 본 적이 없다. 작은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있었다. (…) 그리고 힘이 넘치는 것처럼 한쪽 무릎을 세운 채 추위에 입술을 깨물고 촉촉이 젖은 눈으로 문밖의 눈을 보았다. 나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143쪽)

 

 이처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묘사는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전쟁과 전염병이라는 우울한 분위기를 전환시킨다고 할까. 그것은 마치 환경을 넘어선 소년의 의지를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 철학적이고 사회 비판적이라 어려워하는 독자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줄 소설이다. 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니 오에 겐자부로 소설의 입문서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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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9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30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11-3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나온 오에 겐자부로의 책이네요. 1958년에 출간된 작품이면 초기에 가까운 시기에 쓰여진 책이라고 보아도 될까요.
일본은 1960년대만 해도 경제적인 발전은 되었지만, 그래도 종전 후 10여년 정도 되는 시기라서 이 시기의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 같은 것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 책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좋은 리뷰 읽고 책 소개도 한 번 더 보고 갑니다.

자목련님 오늘은 11월 마지막 날입니다. 11월에는 좋은 일들 많이 있으셨나요.
11월의 남은 행운은 오늘 안에 꼭 쓰시고,
내일부터는 더 좋은 일들 많이 찾아오는 12월의 첫날 시작하시면 좋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18-12-03 11:25   좋아요 1 | URL
네, 문지에서 이전에 출간했던 책인데 이번에 문지 스펙트럼으로 개정판이 나왔어요.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서니데이 님, 12월 건강하고 맑게 시작하세요^^
 

 

 지난 주말 이곳에는 비가 내렸다. 첫눈은 아직 오지 않았다. 작년 글을 검색하니 19일에 첫눈이 내렸다고 썼다. 첫눈을 기록하는 일, 감상적이라기보다는 그냥 일상의 끄적임이다. 수도권에는 첫눈이 아주 많이 온 것 같다. 그날은 사촌 오빠의 결혼식이 있었고 눈 소식은 멀리서 온 친척들에게서 전해 들었다. 그 뒤에야 서울을 비롯하여 곳곳에 아주 많은 첫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접했다.

 

 첫눈은 내리는 것인데 나는 왜 오지 않았다고 쓰고 있는가. 첫눈이 내게로 오는 것일까. 편지처럼, 당신의 안부처럼 내게로 오는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곳곳에 내린 첫눈은 다 사라졌고 날씨는 봄을 기다리는 것처럼 포근하기까지 했다. 어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길, 오늘 잠깐 외출을 했을 때에도 그런 생각을 잠깐 했다. 거기다 우리 아파트 주변에는 가을 벚꽃이 피기도 했다. 매년 늦가을에 피는 벚꽃은 볼 때마다 놀란다.

 

 냉장고에는 벌써 김치가 가득하다. 올해는 총각무가 풍년인 듯하다. 총각 무김치를 주신 분들이 많다. 맛있는 김치가 익어가는 날들이다. 덕분에 냉장고 정리를 했다. 정리 아닌 정리다. 오랜 시간 냉장고에서 잠자던 아이들을 처리한 것이다. 미안하게도 먹지 않고 상한 음식들. 사실 책과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 마음은 언제나 복잡하고 너저분한 생각들로 가득하다. 간단하고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들이 모아지니 다른 책들은 뒤로 미뤄진다. 이런 핑계를 대는 마음이라니. 한 손에 잡고 읽기 편한 시리즈, 요즘 출판계는 다이어트 중인가 보다. 부피를 줄이고 가격을 내리고. 아무튼 이런 시리즈, 나쁘지 않다. 어디서나 펼쳐 읽을 수 있고 가방에 넣어도 부담이 적다. 첫눈은 아직 오지 않았고 작은 책들은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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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8-11-27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새는 두꺼운 책보다는 한 손안에 잡히는 분량의 책을 찾게 되더라고요. 작은 책들 이렇게 보니 아담하지 참 예쁘네요.

자목련 2018-11-28 11:31   좋아요 0 | URL
네,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도 적고 말씀처럼 아담해서 참 예뻐요. 그래서 더 모으지 않을까 싶은 단점 아닌 단점도 있고요^^
 
파일명 서정시 창비시선 426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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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가 머무는 일상, 시가 흐르는 일상은 언제나 멀리 있다. 좋아한다는 고백만 허공에 퍼질 뿐이다. 오랜만에 마주한 나희덕 시인의 시집을 마주하니 친구의 목소리가 함께 떠오른다. 그녀는 어느 시절에 시를 공부했고 언젠가 내가 선물한 나희덕 시집에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답을 건네주었다. 겨울비가 그친 조금은 쓸쓸한 날들, 삶의 비탄이 가득한 나희덕의 시를 읽는다.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과 죽음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삶은 아닐까. 시로 기록된 약하면서도 강한 우리네 생을 읽는 일은 깊은 숨을 여러 번 내뱉게 만들었다. 지워지지 않는 기록, 사라지지 않는 모습, 기억해야 하는 장면, 고통스럽지만 지속하고 싶은 순간. 살다 보면 겪게 되는 일상들이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 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여 있는가  - 「난파된 교실」​일부

 그래도 문은 열어두어야 한다

 입은 열어두어야 한다

 아이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바다 저 깊은 곳의 소리가 들릴 때까지

 말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문턱 저편의 말」​일부

 그날의 바다를 나는 텔레비전으로 보고 있었다. 거짓 뉴스를 믿었고 기뻐하며 안도했다. 그러나 곧 진실에 절망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한 분노가 커졌고 어디론가 떠나는 아이들을 붙잡고 싶어졌다. 시는 보여준다. 그 이후 성장하지 못한 채 흐르는 시간을,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날들을. 보호받지 못한 삶, 허울뿐인 제도를 생각한다.

 

 나는 알지 못한다

 그 밥을 먹는 동안에도 또다른 지진이 있었는지

 부서진 흙이 밥 위에 떨어져내렸는지

 그릇들은 다시 쟁강거리고

 책장에서 남은 책들이 쏟아져내렸는지

 벽시계가 곤두박질치며 시곗바늘이 멈추어버렸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흔들리는 나날 밖에서 희미한 파동을 느낄 뿐 - 「우리는 흙 묻는 밥을 먹었다」​일부

 

 언젠가 들은 폐허 문학을 생각한다. 삶이 파괴된 공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진 일들, 그것을 기록하는 일, 읽는 이를 그곳으로 모이게 하는 힘. 문학의 기능과 역할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시와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정신을 차리고 주의를 살피는 힘을 키운다. 그러니 이 시집은 개개인의 슬픔을 넘어 참담한 사회적 고통을 위로함과 동시에 아름답고 숭고한 저항의 기록이다.

 

 나는 나희덕의 고요하고 차분한 이미지를 기대했다.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건 사라질 듯 붙잡을 수 없는 감정을 포착한 것들이었다. 가만히 다가와 기댈 수 있는 등을 내미는 연인처럼 다정하고 든든한 그런 느낌. 하지만 『파일명 서정시』​에는 투쟁, 자유, 연대를 향한 몸짓이 전해졌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살아남은 자의 의무를 시라는 표석에 새긴다. 세상을 향하여 능동적인 몸짓으로 삶을 노래하며 함께 부르자 손을 내민다.

 빛의 옥상에서

 서른세개의 날개를 돌려라

 

오다 가다 내리다 흐르다 멈추다 녹다 얼다 타오

르다 꺼지다 보다 듣다 생각하다 말하다 삼키다 뱉다 잡다

놓다 울다 웃다 주다 받다 묻다 답하다 밀다 당기다 열다

닫다 떠오르다 가라앉다 부르다 사라지다 넘다

 

 서른세개의 동사를 사이에서

 하나의 파도가 밀려가도 또 하나의 파도가 밀려올 것이니

 세상은 우리의 손끝에서 ​​부서지고 다시 태어날 것이니

 

 기다리지 말고 서른세개의 노를 저어 찾아라

 세계의 손끝에서 마악 태어난 당신을   - 『서른세개의 동사들 사이에서』​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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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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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면 된다.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밀이든 소소한 일상이든 마찬가지다. 나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건 마음을 연다는 것이고, 마음을 연다는 건 때로 전부를 들려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데 말이다. 손보미의 소설『디어 랄프 로렌의 주인공 종수는 그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미국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종수는 지도교수에게 다른 진로를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지도교수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난 종수의 일상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미국에서 보낸 구 년의 시간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기숙사에서 짐을 챙기다 우연히 서랍에서 수영이 보낸 청첩장을 발견한다. 유학을 오기 전 고교시절 머리부터 발끝까지 랄프 로렌을 완성하고 싶었던 수영은 랄프 로렌에게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종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등생이고 부유했던 종수에게 랄프 로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그것을 사기 위해 수영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수영이 한글로 쓴 편지를 영역하는 게 종수의 일이었다. 종수가 랄프 로렌의 생에 끌리게 된 과거 수영에게 상처를 준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종수에게는 그냥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믿고 나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랄프 로렌의 삶의 궤적에 다가간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랄프 로렌의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를 알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구두닦이 가출 소년이었던 랄프 로렌을 거두어 준 권투선수 조셉 플랭클의 흔적을 찾아 조셉 플랭클의 이웃이었던 백네 살 레이첼 잭슨 할머니에 이어 레이첼 잭슨을 간병하는 입주 간호사 섀넌 헤이스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랄프 로렌과 그를 아들처럼 여긴 조셉 프랭클은 세상을 떠났고 그를 기억하는 이는 모두 늙고 병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종수의 여정은 랄프 로렌의 인생이 아닌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 온 이들의 과거와 현재와 조우하는 것이었다. 신기한 건 나 역시도 그들의 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시간,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시대를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지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우직한 시계 수리공이었던 조셉 프랭클과 그가 데려온 소년을 잭슨 여사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건 그의 삶을 지켜봤고 그의 삶에 지속적으로 부드러운 노크를 했다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잭슨 여사의 말을 녹음기에 녹음하고 집으로 돌아와 종수가 그것들을 다시 듣고 정리하는 일은 무척 거룩하게 다가온다. 한 사람의 생이 거기 다 담겼으니까. 수영이 랄프 로렌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그랬다. 종수는 수영이 날씨 같은 소소한 것들과 중요하지 않은 일상을 편지에 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이 수영의 삶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종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밤 햄버거 가게에서 함께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좋아하면서도 랄프 로렌 코드를 주겠다고 수영에게 말한 것이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그만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혼나지 말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종수는 자신과 다르게 흐르는 수영의 시간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종수가 수영의 시간에 노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잭슨 여사를 통해 종수는 랄프 로렌이 아닌 조셉 프랭클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권투선수인 줄 알았던 그가 스위스의 시계학교에 다녔고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과정은 전쟁과 유대인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고 종수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것을 비밀로 간직하며 평생을 살아온 조셉 프랭클이 마음 아팠다. 간병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섀년에 대해서도 그랬다. 종수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자신의 과거와 결혼생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자신을 작가 지망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종수는 그 마음을 알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테니까. 고교시절 종수가 미처 몰랐던 방법 말이다. 아니, 대학원에 다니며 지도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같은 기숙사에 살았던 시절에도 종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는 것의 숭고함에 대해서 종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웠다.


 “그 친구는 내가 학교에 안 나간 후부터 내 집 문을 두드렸어요. 노크 말이에요. 누군가 내 집 문을 노크해줬죠. 섀넌, 나는 그걸 계속 비웃었지만. 이제는 비웃는 걸 그만해야 할까 봐요. 섀넌, 이 세상의 누군가는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거예요. 그냥 잘 들으려고 노력만 하면 돼요. 그냥 당신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돼요.”

 

 종수는 1년의 시간 동안 랄프 로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끝내 그가 시계를 만들지 않은 이유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만약 알았다 하더라도 과거나 지금이나 수영에게는 전하지 못할 것이다. 수영과 종수 사이의 문은 닫혔으니까. 종수가 그 문을 두드릴 용기를 가지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종수가 랄프 로렌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은 타인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애정을 잃지 않아야 하고 시선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에. 그렇다면 지도교수는 종수에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인생은 길다’는 말과 학교를 그만두라는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지도교수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길지도 모른다. 긴 인생 가운데 고교시절 수영과 보낸 여름, 랄프 로렌에 대한 기록을 찾았던 1년은 아주 짧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의미의 잴 수 없다. 종수에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날들인지 알 수 없다. 오직 종수만이 측량하고 기록할 수 있으니까. 그 시간은 결코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지우고 싶은 고통과 상처의 시간일지라도 사라지 않는다. 우리가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도 그렇지 않을까. 그 시간을 노크하고 들어와 같이 머무는 이도 말이다.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성장이라 한다. 내가 모르는 당신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는 동안 우리는 사랑하며 성장한다. 그것은 위대하며 아름다운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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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예약된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확인하며 의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러했고 AS를 위해 방문한 기사가 주방 베란다로 향하는 창틀을 수리하는 과정이 그러했다. 일정 부분은 짐작했던 것과 같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다음 진료 예약을 하면서 의사와 나눈 대화는 진취적이지 않았고, 기사의 수리 과정은 힘겨워 보였다. 전화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사는 혼자서 진행할 수 있는 범위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막상 창을 떼어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도움을 줄 수 없이 바라보는 나는 조금 불안했다. 창에 붙인 시트지, 바로 옆에 놓인 냉장고는 기사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레일을 교체하고 간단한 설명을 하고 수리는 끝났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 안다고 단언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니까.

 

 봄에 만났던 친구를 만났다. 그 사이 우리는 조금 더 늙었고 그 늙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20대의 단호했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지금의 그녀가 참 힘들구나 생각했다. 관계에 지쳐있는 모습, 친구들과 지인에게 그녀가 내어주는 공간과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줄어듦은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한국시리즈는 끝났고 ​본방사수를 기다리는 드라마는 없지만 기다리는 글은 있었다. 한 번씩 신간을 검색하는 작가, 한귀은이다. 적당히 쓸쓸하고 고요한 밤을 함께 보내기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밤을 걷는 문장들』, 이토록 적절한 제목이라니. 내가 아끼는 한강의 단편집 『내 여자의 열매』와 『노랑무늬영원』개정판이 나왔다. 표현과 문장을 다듬었다고 하니 더 단단하고 차분할 것 같다. 나희덕의 시집『파일명 서정시』까지, 시를 읽는 밤이 이어져도 나쁘지 않겠다.

 

 잔잔하게 눈이 내리는 밤을 상상한다. 접혔던 밤이 펼쳐지는 순간, 고요해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조심스러운 그런 밤. 잠든 밤을 깨우지 않고 혼자 가만히 지켜보는 그런 밤. 밤이 꿈을 꾸는 상상하는 밤. 잠들지 못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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