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평점 :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으면 된다. 우리가 쉽게 놓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비밀이든 소소한 일상이든 마찬가지다. 나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건 마음을 연다는 것이고, 마음을 연다는 건 때로 전부를 들려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한데 말이다. 손보미의 소설『디어 랄프 로렌』의 주인공 종수는 그 중요한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미국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종수는 지도교수에게 다른 진로를 찾아보라고 권유한다. 지도교수에 의해 학교에서 쫓겨난 종수의 일상은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미국에서 보낸 구 년의 시간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기숙사에서 짐을 챙기다 우연히 서랍에서 수영이 보낸 청첩장을 발견한다. 유학을 오기 전 고교시절 머리부터 발끝까지 랄프 로렌을 완성하고 싶었던 수영은 랄프 로렌에게 시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종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등생이고 부유했던 종수에게 랄프 로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지만 그것을 사기 위해 수영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수영이 한글로 쓴 편지를 영역하는 게 종수의 일이었다. 종수가 랄프 로렌의 생에 끌리게 된 과거 수영에게 상처를 준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종수에게는 그냥 집중할 무언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믿고 나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랄프 로렌의 삶의 궤적에 다가간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랄프 로렌의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를 알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구두닦이 가출 소년이었던 랄프 로렌을 거두어 준 권투선수 조셉 플랭클의 흔적을 찾아 조셉 플랭클의 이웃이었던 백네 살 레이첼 잭슨 할머니에 이어 레이첼 잭슨을 간병하는 입주 간호사 섀넌 헤이스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랄프 로렌과 그를 아들처럼 여긴 조셉 프랭클은 세상을 떠났고 그를 기억하는 이는 모두 늙고 병들었다. 그러니까 결국 종수의 여정은 랄프 로렌의 인생이 아닌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아 온 이들의 과거와 현재와 조우하는 것이었다. 신기한 건 나 역시도 그들의 생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시간,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시대를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지 그들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성실하고 우직한 시계 수리공이었던 조셉 프랭클과 그가 데려온 소년을 잭슨 여사가 기억하고 있었다는 건 그의 삶을 지켜봤고 그의 삶에 지속적으로 부드러운 노크를 했다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잭슨 여사의 말을 녹음기에 녹음하고 집으로 돌아와 종수가 그것들을 다시 듣고 정리하는 일은 무척 거룩하게 다가온다. 한 사람의 생이 거기 다 담겼으니까. 수영이 랄프 로렌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그랬다. 종수는 수영이 날씨 같은 소소한 것들과 중요하지 않은 일상을 편지에 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이 수영의 삶의 중요한 일부라는 걸 종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매일 밤 햄버거 가게에서 함께 랄프 로렌에게 편지를 쓰는 시간을 좋아하면서도 랄프 로렌 코드를 주겠다고 수영에게 말한 것이다. 힘들게 아르바이트를 그만하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에게 혼나지 말라는 배려였을 것이다. 종수는 자신과 다르게 흐르는 수영의 시간을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종수가 수영의 시간에 노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잭슨 여사를 통해 종수는 랄프 로렌이 아닌 조셉 프랭클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권투선수인 줄 알았던 그가 스위스의 시계학교에 다녔고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혼자 미국으로 건너왔다는 사실이었다. 그 과정은 전쟁과 유대인이라는 아픈 역사가 있고 종수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것을 비밀로 간직하며 평생을 살아온 조셉 프랭클이 마음 아팠다. 간병인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섀년에 대해서도 그랬다. 종수와 데이트를 하면서도 자신의 과거와 결혼생활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자신을 작가 지망생이라고 거짓말을 한 종수는 그 마음을 알았기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하나의 방법이었을 테니까. 고교시절 종수가 미처 몰랐던 방법 말이다. 아니, 대학원에 다니며 지도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같은 기숙사에 살았던 시절에도 종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는 것의 숭고함에 대해서 종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웠다.
“그 친구는 내가 학교에 안 나간 후부터 내 집 문을 두드렸어요. 노크 말이에요. 누군가 내 집 문을 노크해줬죠. 섀넌, 나는 그걸 계속 비웃었지만. 이제는 비웃는 걸 그만해야 할까 봐요. 섀넌, 이 세상의 누군가는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거예요. 그냥 잘 들으려고 노력만 하면 돼요. 그냥 당신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돼요.”
종수는 1년의 시간 동안 랄프 로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도 끝내 그가 시계를 만들지 않은 이유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만약 알았다 하더라도 과거나 지금이나 수영에게는 전하지 못할 것이다. 수영과 종수 사이의 문은 닫혔으니까. 종수가 그 문을 두드릴 용기를 가지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종수가 랄프 로렌에 대해 탐색하는 시간은 타인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애정을 잃지 않아야 하고 시선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에. 그렇다면 지도교수는 종수에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인생은 길다’는 말과 학교를 그만두라는 조언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지도교수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길지도 모른다. 긴 인생 가운데 고교시절 수영과 보낸 여름, 랄프 로렌에 대한 기록을 찾았던 1년은 아주 짧다. 하지만 그 시간에 담긴 의미의 잴 수 없다. 종수에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날들인지 알 수 없다. 오직 종수만이 측량하고 기록할 수 있으니까. 그 시간은 결코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지우고 싶은 고통과 상처의 시간일지라도 사라지 않는다. 우리가 하루하루 보내는 시간도 그렇지 않을까. 그 시간을 노크하고 들어와 같이 머무는 이도 말이다.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를 만나고 알아간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성장이라 한다. 내가 모르는 당신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는 동안 우리는 사랑하며 성장한다. 그것은 위대하며 아름다운 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