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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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아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기아는 인간이 종식시킬 수 있다.’ (15쪽, 2016년판 서문 중에서)

 

 끼니 때마다 음식물 쓰레기가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러다 음식물 쓰레기 종량제가 시행되면서 달라졌다. 되도록이면 남기지 않고 먹으려 애쓴다. 그게 전부였다. 기아란 말은 일상과 먼 단어였다. 부끄럽지만 방송을 통해 유명인의 봉사활동을 보거나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도 가슴이 아팠지만 기아의 원인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았다. 나름의 방식으로 후원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국제구호단체가 할 일이라고 여겼다.

 

 어떤 일이든 원인을 알면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할 수 없는가? 아니, 무엇이 거대한 장벽이 되어 가로막고 있는가? 전쟁, 가뭄, 홍수 같은 어쩔 수 없는 원인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게 충격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5초에 한 명꼴로 기아로 인해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음식물 쓰레기는 넘쳐나고 있다니. 장 지글러는 자신이 직접 본 사실을 토대로 기아의 실태와 그 이면에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강대국의 정책과 자본주의의 실태를 설명한다.

 

 어 죽는 아이들은 아프리카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가장 많은 곡물을 수출하여 절대빈곤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브라질과 동남아시아에서 많은 아이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농촌 지역 사람들이 말이다. 그 많은 곡물은 누구의 식탁에 올라가는가. 열심히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왜 난민으로 떠돌아야 하는지, 왜 군사력과 어떤 체계에 희생당해야 하는지.

 

 이 책을 통해 세상의 정치와 경제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강대국이 어떻게 권력을 쟁취하고 다국적기업이 어떻게 수익을 확장하고 있는지 말이다. 거대 농장과 목장을 위해 땅과 밀림을 사들이는 북미의 미니코 사, 스위스의 테라노바 사 같은 기업과 미국의 컨티넨털 크레인이나 프랑스의 루이 드레퓌스처럼 거물급 곡물사에 의해 거래된 세계 수확 옥수수의 4분의 1은 사람이 아닌 소의 사료가 된다는 사실. 거기다 식량을 무기로 활용하는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는데 경악했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세네갈이 여전히 수출만을 위한 땅콩 농사만 짓고 자국 식량은 외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현상은 안타까웠다. 충분히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수입해야 할 시스템으로 전락한 것이다. 모두가 거대 자본의 유입과 자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강대국의 횡포라 할 수 있다.

 

 구호단체와 국제기구가 지원을 계속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세계 식량계획 WFP(World Food Programme)의 예산은 줄어든다. 원조보다는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자주관리 정책을 채택하고 도로건설과 수도사업, 보건 의료사업을 펼쳐 공공서비스를 실시했고 인두세를 폐지하며 올바른 정치를 펼쳐지만 프랑스의 꼭두각시였던 정권의 반감을 샀고 결국 살해당한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 상카라의 이야기는 거대한 울림을 준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184쪽)

 

 극심한 양극화는 계속 유지되고 오늘날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위대한 개혁가 상카라가 될 수 없고 장 지글러처럼 세계 곳곳을 다니는 활동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기아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것과 투쟁해야 한다. 제대로 알아야만 바꿀 수 있다. 작은 힘이지만 모아야 하고 변화와 개혁의 의지를 지녀야 한다. 더 많은 이들이 장 지글러의 책을 읽고 몰랐던 사실을 모른 척 외면했던 실상을 확인하길 바란다. 모든 인간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걸 잊지 않기를 바란다. 공존해야 한다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사실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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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는 책들
최원호 지음 / 북노마드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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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아는 방법은 그 책을 먼저 읽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세상에 책은 많고 그것을 전부 읽을 수 없으니 때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다.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특정 작가나 책을 향한 편견이 사라지기도 하고 다른 생각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문학에 편중된 책읽기를 하는 내게 최원호의 『혼자가 되는 책들』은 예술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다. 온라인 서점 MD여서 특별히 책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키웠을 것이다. 책이 출판되고 출판사의 소개글로 처음 만나는 책을 MD가 어떻게 읽고 소개하느냐에 따라 책은 이전의 책과 다른 책이 된다. 일반 독자보다 한발 앞서 책과 소통하는 그가 선택한 책이라는 점에서 남다르게 다가온다.

 

 남다르다는 게 쉽고 친절하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예술서는 어렵고 그것을 자신만의 분명한 색으로 들려주는 최원호의 글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검색에 이어 메모를 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최원호 혼자만 알고 싶었을 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혼자가 되는 책들』에서 언급한 책은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책이 되기도 할 것이다. 내게 음악의 기쁨이 그러하듯이. 지인이 언급한 책이라 제목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내용을 어떤 형식으로 다뤘는지 몰랐다. 그러나 책을 덮고 가장 읽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음악 이론과 음악가에 대한 지루하고 재미없는 내용이 아닐까 짐작했던 내게 얼마나 신선하고 즐겁게 음악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일반 청취자’를 대상으로 만든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은 보다 풍부한 인용과 유머를 사용해서 가능한 한 접근성을 높인다. (61쪽, 『음악의 기쁨』에 대한 글 중에서)

 

 라디오 프로그램 대본으로 편안하게 독자에게 접근하는 예술서라면 누구라도 곁에 둘 수 있는 친구처럼 친근한 책이 될 것이다. 몰랐던 책에 대해 알고 싶다는 건 거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결국엔 변화를 가져오는 글을 쓰게 만든 대단한 존재가 바로 책이라는 것이다. 예술서에 대한 최원호의 애정이 불러온 결과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읽고 싶게 만드는 힘을 지닌 최원호가 부럽다. 지금 그는 무슨 책을 읽고 무슨 음악을 듣고 있을까. 일상 속에 예술이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예술서라면 그것의 진면목을 알려주는 건 『혼자가 되는 책들』가 아닐까 싶다. 드라마 밀회로 유명한 예술가로 알고 있었지만 이런 문장으로 요약되는 삶의 주인공 리흐테르가 나는 더 궁금하고 조금 더 알고 싶어지니까.

 

 가공할 만한 기억력으로 인해 지나온 삶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모두 바라보면서 삶의 뒤편으로 물러서야만 하는 사람. 그때 삶이란 별들처럼 영영 그 자리에서 빛나는 기억들일까 아니면 어둠을 향해 뒷걸음질 치는 발걸음일까. (174쪽, 『리흐테르』에 대한 글 중에서)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할지 몰라서 ​혹은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아예 예술은 멀고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최원호가 권하는 책들은 아주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가 먼저 읽은 음악, 먼저 만난 그림, 먼저 만난 사진을 통해 그와 함께 예술에 다가갈 것이다. 더불어 음악, 미술, 영화, 사진 중 어느 분야에 더 끌리는지 알게 된다. 읽고 싶은 제목을 먼저 읽어도 괜찮다. 어느 부분에서 시작하든 문은 열리니까. 이처럼 한 권의 책은 예술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예술뿐 아니라 삶에 대한 시선도 달라진다. 몰랐던 것을 아는 기쁨,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타인의 삶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

 

 독자는 그저 사진 속 사람의 형태를, 그들의 얼굴과 몸을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사진 안에 찍힌 사람들은 감상자의 감정적 소비를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피사체들은 감상자의 마음에 빚을 지지 않고 동등한 인간으로서 사진 위에 존재한다. 이 사진들을 소용되지 않고 그저 존재한다. (192쪽, 『침묵의 뿌리』에 대한 글 중에서)

 

 내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책 속의 예술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 책들은 혼자가 될 것이다. 나 역시 혼자가 된다. 책과 함께하는 시간도 즐겁지만 혼자 책을 곱씹는 시간도 충만하다. 예술에 대한 감각이 성장하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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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수꽃다리의 연한 자줏빛 꽃봉오리는 우리 아파트에도 봄이 왔다는 신호다. 이사를 오고 3년이 지나서야 겨우 꽃의 이름을 외웠다. 같은 아파트지만 동마다 봄이 다르게 찾아온다. 피는 꽃도 다르다. 제일 먼저 매화가 피고 벚꽃과 목련도 뒤를 따른다. 그렇게 천천히 봄이 오는 동안 4월이 되었다. 도처에 봄이라는 걸 알리는 건 예배를 드리며 오가는 길에서 만나는 자동차들이다. 근처에 바다가 있으니 주말에는 자동차가 급격히 늘어난다. 도로 옆 밭에는 제법 자란 보리가 싱그럽고 하지 감자를 심은 작고 아담한 비닐하우스가 즐비하다. 자동차 차 문을 열면 흙냄새가 맛있게 달려온다.

 

 내가 좋아하는 4월이다. 4월은 잔인한 슬픔을 간직한 달이지만 좋아한다. 4월에 기다렸던 소설이 나왔다. 작년 가을부터 내가 기다린 소설집이다. 김이설의 두 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은 여전히 잔혹하고 참담하다. 표제는 첫 번째 소설에 수록된 단편의 제목이다.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의 4월을 견디는 건 소설이나 현실이라 같을 듯하다. 편혜영의 장편소설 『홀』도 비슷한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소설 『선의 법칙』과는 다른 기대감이랄까.

 

 4월에는 이런 책도 읽을 것이다. 한귀은의 문장과 그녀가 선택한 문장을 만나는 시간 『여자의 문장』​, 기억의 끝이 어디인가 스스로 묻고 또 묻는 파트릭 모디아노의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쉽게 읽을 수 없는 예술서에 대한 이야기 『혼자가 되는 책들』 ,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세월호, 그날의 기록』.

 

 

 

 

 

 

 

 

 

 

 

 

 

 

 

 

 

 

 

 4월이 되니 낮에는 제법 덥기도 하다. 곧 소매가 짧은 옷을 입을지도 모르겠다. 거리마다 꽃눈이 내릴 4월, 꽃이 지면 눈부신 초록이 가득할 4월, 특별히 변화와 희망의 씨앗을 잉태하는 4월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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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6-04-0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이 수수꽃다리라고 딸아이가 그래서 정말? 어제 그랬어요. 오늘은 정말 꽃들이 만개하고 하늘은 맑고... 너무 예쁜 봄날이었어요.

자목련 2016-04-05 18:02   좋아요 0 | URL
따님과 제가 통했나 봐요, ㅎ
눈 닿은 곳마다 꽃이 가득해요. 봄, 봄, 봄이구나 싶어요!
 

 

 창을 열지 않는 봄날이다. 미세먼지와 근처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한낮에는 창을 모두 열고 봄바람을 맞고 싶은 날들이다. 어떤 장소든 창이란 창은 다 열고 싶은 마음이다. 굵은 봄비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꽃향기를 품은 비 냄새는 달콤할 것만 같다. 기다리는 비 대신 시인이 들려주는 비를 읽는다.

 

 

        봄비

 

 3월에 내리는 봄비는

 노름빚투성이 새신랑이

 잠시 옷 갈아 입으러오는

 발소리 같고

 

 3월에 내리는 밤비는

 서투른 새댁이 치마끈 풀어

 만삭의 물항아리로 부풀어 오르는

 숨죽인 물소리 같고

 

 새벽이면 남몰래

 처마 밑으로 흘러가는

 산수유, 꽃눈에 얹힌

 노란 눈물 같기도 하고 ( 박승민 시집,『지붕의 등뼈』)

 

 

 최근에 시집을 몇 권 구매했고 곁에 두었다. 제대로 읽지 않았지만 그래도 거기 시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어쩌다 보니 시인이 쓴 산문도 읽었다. 남자 시인이 들려주는 책상에 대한 이야기. 시인의 책상은 글에 대한 욕망을 불러온다.

 

 시를 쓰기 위해 앉은 책상에 무엇이 놓여 있을까. 영감을 주는 어떤 물건이나 인물의 사진이 놓여 있는 건 아닐까. 시가 잉태되는 공간, 시와 시인이 하나가 되는 공간, 오롯이 그들의 은밀한 공간을 엿보는 짜릿함은 무엇일까. 아마도 시인을 흠모하는 나의 격한 마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문장에서 나는 숨소리도 숨겨야만 할 것 같으니까.

 

 ‘잠이 고여 있는 밤이다. 누군가를 잃어버릴 것 같은 밤이다. 상실감은 상실 이전에도 가능한, 불완전한 사건이다. 당신은 모순을 사랑한다. 모순이 당신을 뒤흔드는 만큼. 누구나 태어나본 적도 없으므로 죽어지지 않는 책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무언가를 쓰는 공간을 갖고 있고, 당신에게 그 공간은 늙을 기회도 갖지 못한 나무의 몸으로 지은 책상이다. 책상은 온전히 책들을 받쳐 앉고 있으나, 시인에게 책상이란 자신을 받쳐 안은 또 다른 종이에 다름 아니다.’ (149쪽, 이이체의 글)

 

 

 책상이라는 사물이 시인에게는 시가 아니라 종이와 같은 것이었다. 책상에 대한 집착 혹은 애착이 시가 되고 문학이 되고 삶으로 확장된 것이다. 책상에 앉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잡념이 늘어나는 나와 달리 시인은 상념이 시로 피어난다. 시인에게 책상은 저마다 다른 추억을 불러왔고 다른 의미였다. 나만의 책상을 갖고자 했던 열망이 있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존재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있었다. 그들은 규격화된 책상과 함께 책상이라는 이미지를 말하고자 했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책상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다른 이름, 다른 모양으로 말이다.

 

 ‘책상은 나무를 호명한다. 나무는 바람을, 바람은 공중을, 공중은 새를 다시 호명할 것이다. 새는 깃털을, 깃털은 가벼움을, 가벼움은 운동하는 발을, 운동하는 발은 강물을, 책상이 떠다닌다. 내 손이 닿았던 책상들이 떠다닌다. 침묵들이 떠다닌다.’ (105쪽, 박진성의 글

 

 나무를 호명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을 호명하는 시인의 책상과 내 책상은 확연히 다르다. 나에게 책상이란 무엇일까. 나의 책상에서 글이라 할 수 있는 게 나오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 욕망을 키우는 게 잘못인지도 모른다. 책들과 연필, 볼펜, 가위, 메모지가 너저분하게 자리한 내 책상는  책들과 시집 몇 권도 놓여 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시를 품은 고영민의 『구구』란 시집도 함께.

 

 

  명랑

 

 나는 내가 좋습니다 당신도

 당신이 좋습니까

 

 낮에 당신은 당신에게 뭐라 말합니까

 밤에 당신은 당신에게

 뭐라 말합니까

 

 오늘 당신에게 내 생각이 잠깐

 다녀갔습니까

 오늘 나에게 당신 생각이

 잠깐 다녀갔습니까

 

 자기 꼬리를 물려고 빙글빙글 도는

 강아지처럼

 어둔 하늘 아래 천천히 시드는

 방앗잎들처럼

 

 가볍게 오고 싶지 않습니다 가볍게

 가고 싶지 않습니다

 

 정말입니다

 나는 내가 좋습니다 당신도

 당신이 좋습니까 (30쪽)

 

 

 이런 고백을 받고 싶다. 아니, 당신에게 이 시를 빌려 고백하고 싶다. 봄에만 만날 수 있는 꽃들이 피어나면 사람들은 꽃마주을 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깊은 밤 이런 시를 외고 읊을 수도 있겠다.  종잇장처럼 가벼웠을 몸, 마지막 봄일까 두려운 마음을 숨긴 채 어머니에게 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밤을 환하게 비추었을 터. 애절하고 아프다.

 

 

         밤 벚꽃

 

 꽃이 활짝 피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며칠을 더 지체했습니다

 

 당신을 업고

 천변에 나옵니다

 오늘밤 저 꽃들도 누군가의 등에

 얌전히 업혀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한 나무가 흘러내리는 꽃을

 몇 번이고

 추슬러올립니다

 

 무거운데

 이젠 나 좀 내려다오, 아범아

 내려다오

 

 피어 있을 때보다

 떨어질 때 더 아름다운 꽃이 있습니다

 

 당신을 업고 나무에 올라

 풀쩍, 뛰어내렸습니다 (65쪽)

 

 

  사랑

 

 늦은 저녁, 텅 빈 학교 운동장에 나가

 철봉에 매달려본다

 

 너는 나를

 있는 힘껏 당겨본 적이 있는가

 끌려오지 않는 너를 잡고

 스스로의 힘으로

 끌려가본 적이 있는가

 

 당기면 당길수록 너는 가만히 있고

 오늘도 힘이 부쳐

 내가 너에게 

 부들부들 떨면서 가는 길

 

 허공 중 디딜 계단도 없이

 너에게 매달려 목을 걸고

 핏발 선 너의 너머 힘들게 한번

 넘겨다본 적이 있는가 (82쪽)

 

 

 좋은 시가 많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다. 『구구』란 제목만 보고는 어떤 시가 있을까 궁금했다. 처음 만나는 시집에 대한 편견 혹은 경계(?)하고 해야 할까. 펼쳤더니 다정했고 친근했다. 익숙한 일상이 거기 있었고 그리움이 있었고 함께 읽고 싶은 시가 있었다. 3월이 지나면 곧 잔인한 4월이 온다. 잔인한 슬픔이 있다. 시를 읽는 시간, 슬픔이 조금은 약해지면 좋겠다. 그럴 수 없는 슬픔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 바람을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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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3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자목련 2016-03-31 18:1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도 맛있는 저녁 드시고 향기로운 시간으로 채우세요^^*
 

 

 

 

 

 

 어떤 바닥은

 허공의 깊은 혓바닥에 매달려 있을 때

 아름답다

 

 마음 속, 아무, 안 된다, 수, 중심을, 일이다

 바닥에, 색이나, 그, 없으므로, 빤히, 끝없이

 깊은, 덧칠도, 구멍에, 세심한, 쳐다보고, 반사되는

 칠을, 하지, 한번, 주의가, 있을, 거울처럼

 아무도, 대 못질은, 세상, 바닥은, 언제나, 캄캄한

 건너오지, 더더욱, 누구도, 이미, 배후를, 블랙홀처럼

 말라, 하면, 빠져나올, 허공의, 경계할, 우리는

 

 어떤 풍경은

 바닥이라는 넓은 그늘에 꽂혀 있을 때

 가장 위험하다 (「바닥을 위한 각서」, 전문)

 

 

 

 

 우연하게 펼친 시집에서 만난 짧은 시가 강렬한 빛처럼 눈을 찌른다. 바닥을 친다는 슬픔, 아무것도 없다는 두려움, 모든 걸 내려놓았다는 서투룬 위무. 깊숙이 패인 바닥의 골짜기를 채울 그것은 의지일 것이다. 미세먼지로 뿌연 봄이다. 그 안에서 노랗고 빨간 봄을 보는 건 그런 봄을 가슴에 품은 사람이다. 예쁜 봄, 환한 봄, 고마운 봄. 천지가 다 그런 봄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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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3-25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들이 저는 그저 거울의 회색빛 흡반사면 ㅡ(이걸 뭐라 불렀는지 잊음)혹은 동공 ㅡ으로 읽어요....
막막하긴 같음...

자목련 2016-03-28 11:58   좋아요 1 | URL
막막해도, 이 봄이 환했으면 좋겠어요. 다가올 4월에는 더더욱...

[그장소] 2016-03-28 12:02   좋아요 0 | URL
잊지 않고 계신분 ㅡ들이 더 많아야 할텐데 ㅡ단지 기억만 하고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을까봐 ㅡ스며시 초조해집니다..
마음 건강하게 먹어야 하겠습니다..뭐든 지지 않으려면...자신과도...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