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 눈
구경미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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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에도 분명, 지리한 장마가 올 것이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릴지, 얼마나 더울지, 얼마나 많은 밤을 열대야와 싸워야 할 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여름이니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받아들이기 편할지 모르겠다. 한 번쯤 새하얀 눈이 가득한 여름을 상상한다면 더위가 사라지지 않을까. 상상만으로도 차가운 눈이 내리는 듯하다. 주목받는 젊은 여성 작가 7인이 (구경미, 김유진, 김이은, 김현영, 박주영, 서유미, 조해진) 눈을 테마로 쓴 소설집 『사랑해, 눈』을 읽는 것도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고 즐겁게 지내는 방법은 아닐까. 
 
 새해 첫 출근길, 폭설로 인해 사회로부터 고립될까 두려운 한 남자의 심리를 잘 표현한 담은 서유미의 <스노우맨>과 병색이 짙은 아버지가 눈이 보고 싶다며 자식들을 대동해 눈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구경미의 <첩첩>은 평범한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이다. 눈 때문에 여행을 떠나 가족과 함께 추억을 만든 이들에게 눈은 소중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반면 눈 덮인 세상에도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 눈은 거대한 세상과 같은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뚫고 나가야 할 삶 말이다.   

 ‘팔을 움직이면서 흘린 땀 때문에 셔츠가, 허리까지 쌓인 눈 때문에 구두와 바지, 속옷이 다 젖었다. 남자의 삽은 점점 느려졌고 눈이 쌓인 길은 끝이 없어 보였다. 삽을 쥐었던 손바닥엔 어느새 물집이 잡혔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파고 온 길이 삐뚤빼뚤 꼬리처럼 이어져 있었다. 앞아 아니라 옆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지저분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삽으로 퍼낸 눈 뭉치들이 원래의 자리로 굴러떨어졌다.’  p.25 - 스노우 맨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떠나 30년 만에 유골 상자로 만나는 엄마와 눈처럼 녹아 없어질 걸 알면서 시작된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조해진의 <하카타轉多 역에는 눈이 내리고>은 쌓였다 하더라도 금세 녹아 사라지는 눈을 떠올렸다. 소복하게 쌓인 아름다움이 금세 걱정으로 변하는 눈처럼 아픈 딸을 혼자 키우는 직장 선배를 향해 시작된 사랑이 지속될 수 있는 시간은 눈이 녹기 전까지 짧았다. 엄마의 인생과 딸의 사랑은 나약하고 슬픈 눈 같았다. 

 제목에 담긴 것들을 소설에서 만날 수 있는 김이은의 <첫눈과 소원과 백일몽 사이에 숨겨진 잔인한 변증법>과 박주영의 <소설 小說 小雪>은 신선한 재미가 가득했다. 첫눈에 담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김현영의 <눈의 물>은 몽환적이며, 무료하듯 반복되는 일상을 섬세하고 잔잔하게 묘사한 김유진의 <눈 위의 발자국>은 한 폭의 부드러운 풍경화을 보는 듯하다. 

 눈은 대기 중의 수증기가 높은 곳에서 찬 공기를 만나 식어서 엉기어 땅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인 비와 다르게 대기 중의 수중기가 찬 기운을 만난 얼어서 땅 위로 떨어지는 얼음의 결정체다.  얼어야만 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해서 사람들에게 사계절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비보다 더 특별한 존재가 되는 건 아닐까. 많은 이가 첫 눈을 기다리지만 첫 비를 기다리는 이는 없으니 말이다.  눈이라는 테마는 같았지만 각 단편들은 작가의 개성을 보여주듯 다양했다. 일곱가지 눈 이야기는 모두 흥미로웠다.  

 어떤 소설은 마치 동화 『눈의 여왕』에 초대된 느낌이었고, 어떤 소설은 이게 눈인가 싶을 정도로 진눈깨비 같았고, 어떤 소설은 눈이 내려 쌓여가는 과정을 담은 듯 느껴졌다. 눈이 가진 아름다움, 눈이 가진 폭력성, 눈이 가진 여러 성질과 느낌들을 잘 살려낸 소설들이다. 

 ‘올해의 첫눈이 오늘, 내렸으니까. 몇 년째 애인인지 이제는 헤아리기도 어렵지만 어쨌든 오늘 너의 그녀는 오늘 너의 사랑. 그러니 첫눈은 당연히 그녀의 것이지. 그녀와 너의 것이지. 7년 전의 그 봄날. 봄이었는데, 화사한 봄날이어야 마땅한데, 때아닌 폭설이 쏟아졌어. 지금까지도 거기 갇혀 잇는 내게 첫눈이란, 그래, 네 말대로야. 물에 물 타기, 눈 위에 눈. 그래봤자  눈. 겨우, 고작, 눈.’ p.182 - 눈의 물 

 누군가는 벌써부터 첫눈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봉숭아 물을 곱게 들인 손톱을 깍지 못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눈이 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할 것이다. 결국은 ‘물에 물 타기, 눈 위에 눈. 그래봤자  눈. 겨우, 고작, 눈’ 인데 말이다.  나 역시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처럼 한 여름에 내리는 사랑스런 눈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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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대화들 - 젊은 작가 12인과 문학을 논하다, 2011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불가능한 대화들 1
염승숙 외 지음 / 산지니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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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소설이나 시는 내용보다 작가의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해서, 한 권의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혹은 끝마무리를 지을 때 작가의 말이 없으면 정말 서운하다.  예전에는 작가의 말이나 해설은 잘 읽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절대 길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작가의 말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건빵 속의 숨겨진 별 사탕 같고, 도너츠의 블루베리잼 같다고 할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불가능한 대화들』이다. 
 
 의미심장한 제목의 이 책은 대담집이다. 염승숙, 김이설, 김재영, 정한아, 김숨, 김사과, 김언, 안현미, 최금진, 김이듬, 박진성, 이영광 젊은 작가 12명은 평론가의 날카롭고 불편한 질문에 아주 성실하게 답하고 있다. 자신들의 소설에 대해 말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은 자신이 쓴 소설에 대해 흉금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에 이 책은 남다른 의미를 지녔다. 

 소설 속에 녹아 든 문학적 상징이나, 의미를 나 같은 독자는 잘 모른다. 그저 내 나름대로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문학에 대해 소설이나 시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질문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 이미 읽은 소설의 단편과 문 장을 떠올린다. 아, 이 부분에서 작가는 이런 마음을 가졌었고 숨겨진 의도는 이랬구나 한다.  다시 그 소설을 펼쳐보게 한다. 특히 정한아가 그랬다. 그의 소설에서는 몽글몽글 뜨거운 따뜻함이 피어났는데, 그런 소설을 쓰는 그는 정작 슬픔을 안고 있었고  슬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정한아의 산문 <날아라 뛰어라, 그게 네 이름>에 이런 부분이다. 

 ‘저는 한 때 방 안에 갇혀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기를 뭐하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절망의 의지도 남지 않은 무기력의 상태에서, 하루하루, 시간이, 생이, 저를 스쳐 지나갔지요. 저는 지금도 그때의 제가 내뱉었던 얕은 호흡과 방 안의 고요를 기억합니다. 매일 밤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죽음에 대한 망상과, 새벽빛이 떠오를 때마다 간지럽게, 부끄럽게, 그래도 살고 싶다는 마음. 그 시절이 지나가고 난 자리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소설만 남아 있었습니다.’ p.89

 김사과는 진실을 믿지 않으며 김이듬의 글은 놀라웠다. 김이듬의 글을 처음 만났다. 그는 솔직했으나 내게는 파격적이었다. 그가 쓴 시와 소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궁금해진다. 김사과와 김이듬은 어떻게 보면 아주 닮은 듯 보여진다. 김숨의 산문은 그의 이름처럼 깊은 숨을 들이키고 내 쉬게 한다. 마치 아주 짧은 단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하루 - 상상은 어디에서 오는가>의 시작부터 그렇다. 

 ‘오후 두 시. 그것은 내 출근시간이다. 프란츠 카프카.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을 했다지. 그는 오후 두 시에 퇴근해 한숨 낮잠을 자고 일어나 독서를 하고 새벽까지 글을 썼다지. 나는 자유로를 달려 오후 두 시에 닿는다. 오후 두 시는 무가당 크래커를 닮았다. 오후 두 시를 입 속에 넣고 낙타처럼 우물거리다 보면 목에 멘다. 침과 뒤섞여 혀와 입천장에 달라붙는 그것을 뱉을 수 도, 그렇다고 꿀꺽 삼킬 수도 없다.’ p. 32 

 오후 두 시가 되면 때때로 김숨이 생각날 것이다. 아니, 내게 오후 두 시는 무엇과 닮은 시간일까. 작가들이 쓰고자 하는 소설과 시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에 작가들이 지녀야 할 위무는 무엇인가. 작가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듣는 시간은 의미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나눈 대담이라면 이처럼 상세하게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에 하고자 하는 사람이거나 특별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작가가 있다면 그들과 조금은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작가들의 산문 때문이다. 그 시간은 아주 즐거웠다. 산문에서 작가의 솔직한 면을 볼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작가를 닮아 있었다. 무엇을 추구하는 삶인지 조금 알게 되었고, 앞으로 그들이 써낼 소설과 시를 읽을 수 있다는 데 감사했다. 어떤 글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의 삶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작가의 속내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그들의 대화를 읽다 보니 소설 보다는 시가 더 궁금해졌다. 언어 안에서 자유 자재로 노는 그들, 언어가 가진 그늘과 무늬, 그 모든 것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 특히 안현미와 최금진의 시집이 궁금해졌다. 그런데 세상에나, 내 책장에는 최금진의 그 시집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의 시집을 꺼내어 천천히 읽어야 겠다.
 

*읽은 지 많은 날들이 지났는데, 늦게 나마 겨우 이렇게 느낌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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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신부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45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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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특별한 상황을 공유하는 순간, 긴밀한 관계가 된다. 그 이전에 어떤 사이였냐는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하면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여자들의 관계란 특히 그러하다. 화장실을 같이 가는 사이가 되고 중요일 일을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여자들에게 공감대 형성은 아주 중요하다 할 수 있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도둑 신부』는 그런 여자들의 이야기다. 공통의 적을 둔 세 여자의 삶을 만날 수 있다. 아니, 그 적에 대한 이야기라 해야 맞을까.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표지의 여인이 예사롭지 않다. 아마도 세 여자의 적이 된 여인을 묘사한 것일까. 읽기도 전에 이런 느낌을 지닌 어떤 여자일까 궁금하다. 토니, 로즈, 캐리스는 대학 동창이다. 그러나 함께 대학을 다녔을 때는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들의 삶에 지니아가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다. 소설은 그들이 각각 들려주는 지니아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에서 역사와 전쟁을 연구하며 가르치는 토니는 대학 때 지니아와 처음 만났다. 토니는 기숙사에서 생활했고 특별하게 친한 친구가 없었다. 유일한 친구 웨스트를 통해 만났다.  둘은 가까워졌고 토니는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가족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돈과 웨스트의 물건을 팔아 사라진 후에야 이용 당했다는 걸 안다. 오래동안 사랑한 웨스트와 결혼하고 안정을 찾는다.  몇 년 뒤 지니아가 그들을 찾아오고 웨스트는 그녀를 선택한다. 지니아는 그를 버리고 떠나 버린다. 항상 이런 식이다. 자신이 필요한 건 반드시 얻고 그 이후엔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

 로즈와 캐리스에게도 차례로 지니아는 접근하다. 캐리스에게 웨스트가 폭행을 했고 자신이 암이라 말한다. 그녀의 집에서 머물기를 부탁한다. 캐리스는 불법체류자인 빌리와 살았다. 빌리와 지니아는 서로를 적대시했기에 둘 사이를 의심할 수 없었다. 정성으로 보살폈던 둘이 떠날 꺼라는 걸 알지 못했다. 모든 사실을 확인하고도 믿지 못한다. 지니아의 등장으로 로즈의 가정은 무너진다. 바람을 피워도 로스에게 돌아왔던 남편이 지니아를 따라 떠난 것이다. 지니아에 버림을 받고 돌아와서도 지니아를 잊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토니와 로스와 캐리스는 지니아란 공통분모로 인해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지니아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함께 모이고 일상을 나눈다. 지니아를 잊었다 싶은 순간,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장례식장에 그들이 참석하기를 바라는 유언장과 함께 말이다. 하여, 지니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세 여자는 여전하게 지니아를 느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여자의 예감은 정확하다 했던가. 세상에나, 지니아가 돌아온 것이다. 

 패닉에 빠진 세 여자. 끔찍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무엇 때문에 그녀들은 지니아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는가 생각한다. 전쟁둥이였던 그들은 모두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토니에겐 엄마가 로스에겐 아빠의 부재가 있었고 캐리스는 외할머니와 이모에게 자랐으며 이모부에겐 추행까지 당했다. 그들은 모두 다른 자아를 만들어 그 시간을 이겨낸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좋은 환경이 아니었는데도 지니아는 언제나 당당했다. 남자의 사랑에 얽매이지 않았고 자신을 위해 살았다. 따지고 보면 그녀들에게 지니아를 내칠 기회는 언제든지 있었던 것이다. 도저히 용서하거나 이해할 수 없지만 한 편으로는 그녀의 삶이 부러웠던 거다. 한 번 그녀처럼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 자리잡고 있던 것이다. 

 ‘아무튼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무나 되고 싶지는 않다. 가끔은 단 하루만이라도, 단 한 시간만이라도, 어쩔 수 없다면 단 5분 만이라도 지니아가 되어 보고 싶다.’ 2권 P.188~189 

 그들은 돌아온 지니아를 미행하고 같은 호텔에서 각각 만난다. 얼마 후 그녀는 호텔방에서 추락하고 만다. 정말 자살했을까. 죽음으로도 그녀의 진짜 모습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녀의 삶 중 일부는 사실이었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미궁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지니아는 죽었지만 세 여자의 삶에 함께 한다.     

 각기 다른 삶을 꿈꾸며 사는 세 여자 이야기인 동시에 한 여자의 이야기. 그네들의 삶, 어느 한 부분은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모습이라 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기회주의자이며 악녀 캐릭터가 분명한데 마력을 뿜어낸다. 점점 더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거다. 그녀가 어떤 여자인지, 책을 놓을 수 없다. 섬뜩한 매력을 지닌 지니아에게 빠져든다. 아주 흡족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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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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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했을 때 행복하다. 아름다운 문장이란 꾸밈이 가득한 문장이 아닌 본 대로 묘사하고 느낀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얼마나 세세히 진실되게 쓰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를 읽었을 때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 어디서든 서슴없이 권여선의 문장을 이야기한다. 그런 글 쓰기를 갈망한다. 언어가 가진 놀라움에 탄성을 자아낼 책을 또 만났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을 읽으면서 진정한 글쓰기가 어떤 것인가 생각한다. 이토록 고운 글이 있단 말인가.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우선 이 책을 대해 말하기 전에 조선시대 뛰어난 문장가인 ‘이옥’과 ‘김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둘은 성균관 유생시절의 친구로 조선 정조의 ‘문체 반정’에 휘말린 인물이다. 책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그들의 우정과 진정한 글쓰기에 대해 말한다.   

 소설은 현감 김려 앞에 이옥의 아들이 찾아오는 일화로 시작한다. 그는 김려에게 아버지의 글을 남기고 나간다.  잊었다 믿었던 지난 시절을 떠올린다. 젊은 날 함께 글을 쓰고 논하던 벗과 어느 순간 거리를 두게 된 사건을 회상한다. 임금은 이옥의 글을 싫어했고 급기야 군역에 처한다. 그를 보고 김려는 두려움에 조금씩 멀리한다. 이옥과 함께 어울렸으므로 김려 역시 귀향을 떠나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간다. 

 시간이 흘러 이옥이 먼저 죽고 김려는 조정에 줄을 대어 시골 현감 자리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하여 이옥의 아들은 반가울 리가 없다. 그가 쓴 글을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 시절, 귀향길을 함께 떠올려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혹독했을 그의 생과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현실에 안주하기 위해 자신은 숨겨야 했던 글을 이옥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옥의 글은 살아 숨쉬고 있었으니 변화였고 혁명이라 할 수 있었다.  이옥의 글을 읽는 동안 그의 환영과 가슴에 묻어두고 나누지 못했던 말과 글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다. 

 소와 송아지를 몰고 오는 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은 안고 오는 자, 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청어를 엮어서 늘어뜨려 가져오는 자, (……)오른손으로 엿과 떡을 움켜쥐고 먹는 아이를 업고 오는 자, 병 주둥이를 묶어서 허리에 차고 오는 자, 물건을 짚으로 묶어서 가져오는 자, 버드나무 광주리를 짊어지고 오는 자, 소쿠리를 이고 오는 자, 표주박에 두부를 담아사 오는 자, 주발에 술이나 국을 담아서 조심스럽게 오는 자가 있다. p.  41~42  

 이옥이 쓴 글의 일부다. 문장을 읽음과 동시에 분주한 시장의 모습과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바로 눈 앞에 마주한 듯하다. 시장을 묘사할 때 나는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옥과 김려의 글은 분명 달랐다. 누구의 글이 더 멋지다 말할 수 없다. 

 연못에 붉게 핀 연꽃 천만 송이/연희 생각에 더욱 사랑스럽구나./마음도 같고  생각도 같고 사랑 또한 같았으니/한 줄기에 나란히 난 연꽃을 어찌 부러워했으랴./평생을 살면 즐거운 이가 원망스러운 이가 되고/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이 되는 건지./하늘 끝과 땅 끝이 산하에 막혀서/죽도록 부질없이 이별가만 불러 대네./전생의 죄과로 이생에서 이렇게 고생하는지/연희야, 연희야. 너를 어찌하랴. p. 157~158 

 김려의 글이다. 부령에서 정을 통한 기생에 대한 마음이다. 이옥의 환영과 마주하면서 그는 자신의 생에서 도려내고 싶었던 부령에서의 시간과 그곳에서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가 느껴지는 글이다. 책은 문체 반정보다는 그들에게 글이란 무엇이며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에 대해 말한다. 이옥과 김려의 글을 통해 자기 자신이 온전하게 녹아든 글쓰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생각한다. 참된 글, 좋은 글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글로 표현해야 했던 그들의 삶, 글은 곧 그들 자신이었던 것이다. 절로 탄성이 나오는 멋진 글을 쓸 수 있는 이옥의 생이야말로 진정 멋진 삶이 아니었을까. 

 아침에도 멋지고 저녁에도 역시 멋지다. 날이 맑아도 멋지고 날이 흐려도 멋지다. 산도 멋지고 물도 멋지다. 단풍도 멋지고 바위도 멋지다. 멀리 조망하여도 멋지고  가까이 다가가 보아도 멋지다. 부처도 멋지고 스님도 멋지다. 비록 좋은 안주는 없어도 탁주라도 멋지다. 절대가인이 없더라도 초동의 노래만으로도 멋지다.(……) 어디를 가든 멋지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진 것이 이렇게도 많아라! 이 선생은 말한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 보지도 않았을 게야.” p.197~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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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져라, 비둘기
김도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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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언은 ‘불안’, ‘권태’, ‘우울’이란 단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해 준 작가다. 『불안의 황홀』이라는 산문집은 말할 것도 없이  소설집 『랑의 사태』에선 (위협받는 포로처럼 우울해요. 눈에 에워싸인 당신의 복사뼈처럼 우울해요. 한쪽 발을 잃은 마네킹처럼 우울해요. p.118)처럼 황홀한 우울을 전염시킨다. 그는 우울과 권태란 단어가 가진 고귀한 진심을 들려준 것이다. 그러니 신작 『꺼져라, 비둘기』를 읽으면 살짝 당황한 건 당연하다. 그러나 당황함은 이내 기분 좋은 유쾌함으로 바뀌었다.  

 『꺼져라, 비둘기』란 제목에서 알 수 있는 소설에서 비둘기는 정말 꺼져버려 마땅한 존재다. 선악의 기원과 구조에 대한 사적 견해라는 부제를 통해 비둘기는 선보다는 악에 가깝다고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은 작은 읍 토담리란 동네에서 비둘기로 인해 변화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전반과 후반으로 나눠 두 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전반의 화자는 이산으로 고교 씨름 선수였는데 시합 중 사고로 씨름을 그만두고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도와준다. 그는 사고 후 ‘서번트 증후군’을 앓게 된다. 후반의 화자는 시인 영만으로 그는 이산에게 멘토 같은 존재이다.

 이산의 부모님은 토담집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토담집은 비둘기 해장국집으로 바뀐다. 토담리는 평범한 동네로 평화로운 곳이었다. 비둘기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많은 비둘기가 등장하고 근처에 타이어 공장이 생기면서 외부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예전의 모습은 사라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선과 악의 두 부류로 나눠진다. 비둘기로 인해 이익을 보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다.  비둘기가 많아지면서 어디서나 비둘기 똥이 가득하다. 낮게 날아다니며 노약자를 위협하고 노점상인이 늘어 놓은 물건에 똥을 싼다. 하여 노인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노점상은 사라졌다. 대신 목욕탕과 세탁소는 장사가 잘 되는 것이다.  여기에 오토바이 가게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오토바이 천국이 되어 버렸다. 짐작했듯 오토바이 주인 역시 악의 집단에 속한다.

 ‘비둘기 추방을 위한 주민들의 모임’을 이끄는 한의사 고붕 내외와 시인인 그의 아들 영만과 세탁소, 목욕탕, 오토바이 가게를 제외한 꽃집이나 자전거 가제 주인은 선의 집단이다. 그렇다면 이산의 가족은 어떠할까? 이산과 친척 누나 실래는 약자이며  선이고, 경제권을 쥐고 이익만을 추구하며 아버지를 농락하는 새엄마와 실래를 괴롭히는 그의 아들 만세는 악이다.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격을 지닌 전직 씨름선수인 이산의 아버지는 모호한 상태라 할 수 있다. 

 등장인물은 그 자체로 소설의 중심이며 소설의 전부라 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과 사고나 선과 악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은 악에 비해 대부분 늙고 약자이다.  작은 무리의 선은 악을 이겨낸다. 대표적으로 불량한 만세로부터 실래를 보호하는 영만이 그러하다.   

 특이한 점은 전반과 후반이 끝나며 등장하는 소설가이다. 소설가와 등장인물은 대화를 통해 자신의 역할이나 소설의 흐름에 대해 말한다. 『꺼져라, 비둘기』는 사건의 구성이나 발단 그 자체보다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생각이 중요하게 다가온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입장은 모두 다르다. 이런 소설을 쓰게 된  소설가의 진심을 듣는 시간이라고 하면 적절할까. 
  
 ‘소설 속에서는 시도 들어갈 수 있고 사진이나 악보도 들어갈 수 있는 거죠. 하지만 소설은 사진이나 그림이 들어간 시마저도 빨아들일 수 있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소설이 빨아들이는 것들 중에는 유의미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무의미한 것도 있다는 거예요.’ p. 135

 소설 속에서 선은 악을 이긴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악을 이기는 게 선이며 결국엔 정의가 승리하는 세상이 올 꺼라 우리는 믿고 싶은 건 아닐까. 선과 악은 어떻게 존재하기 시작했으며 선은 정말 악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지녔는가 묻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아니,  소설이 우리 사회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독자가 그 답을 해주길 기다리는 건 아닐까.  그가 말의 운명에 대해 쓴 글에서 말 대신 선과 악을 넣어 읽어 보았다. 선과 악은 사람의 마음에 의해 결정되는 거라 생각한다.  정의에 대한 부분도 그렇다.

 ‘어떤 말이든, 그것의 운명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의 태도나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태도 사이의 긴장에서 결정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p. 47  

 ‘정의는, 말하자면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이다. 악이 그런 것처럼 선도 지식의 종류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눈이 먼저 가서 상대의 눈과 높이를 맞추는 것이다. 그 높이는 측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순간 그냥 딱 들어맞는 것이다.’ p.248 
 
 선과 악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놓고 보면 심오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지극히 맑고 순수하며 아름다운 소설이다. 바로 영만의 역할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나란히 길을 걸을 것이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며 별을 함께 바라볼 것임,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함께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만의 길을 만들 것이다.  이 길의 초입에, 삶이 외롭고 고통스럽지만 그 삶을 비겁으로 내몰지 않는 바르고 착한 이들을 초대하기 위한 불을 켜둘 것이다.’ p. 196  

 소설에 흐르는 아름다운 글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사랑에 대한 시)읽는 건 정말 황홀하다. 작가 김도언은 시인을 통해 그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내게로 전해진 기분 좋은 즐거움을 많은 이가 느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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