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날’이 있다는 걸 6년 전에는 몰랐었다. 그러니까 내가 책에 다시 애정을 갖고서야 세계 책의 날이, 4월 23일이라는 걸 안 것이다.  책의 생일인 오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사과를 한 입 덥석 물고 싶게 만드는 표지로 밀란 쿤데라의 『농담』이다.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책의 날 도착한 신간 알림 문자는제3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나왔다는 것이다. 올해의 수상 작가중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 더 좋다. 게다가 대상을 거머쥔 작가, 손보미는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니, 정말 반가운 문자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빠른 시일 내 내 손길이 닿을 것 같은 책은 마흔 일곱에 등단한 작가 전민식의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세계 문학상 수상작이다.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책은 이은규의 첫 시집 『다정한 호칭』으로 제목처럼 다정하고 포근할 것만 같다.

 

 

 

 

 

 

 

 

 

 

 

 

 

 

 

 

 

 

 

 

 

 

 책의 날이 아니더라도 책을 읽고, 책을 기다리는 일상은 즐겁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는 일도 그렇다. 그래도 책의 생일인 오늘, 책을 이야기하는 일은 한층 더 즐거운 일이다. 당신 곁엔 어떤 책이 있나요? 당신이 기다리는 책은 어떤 책인지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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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다리는 책
    from 존재증명, 부재증명 2012-04-24 09:31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이 한 가득인데, 또 책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다. '필요'라는 의미는 얼마나 간사한지. 에, 시리즈를 몽땅 장바구니로. 꽃 사진 찍어서, 이 꽃이 무어냐 물어볼때마다 친절하게 답해주시는 선생님에게 죄송하여, 이제사;; 꽃도감을. 내친김에 이런 책들을 우루루 주문했다. 요즘 들어 꽃키우기, 식물키우기에 재미를 붙인데다가, 다른 의미로의 '필요'도 있어서. 예전, 엄마가 화초나 난을 키우시면서,
 
 
 

 

 4월이 되었고 선거도 끝났다. 어딘서가 꽃이 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등처럼 환한 목련의 꽃잎이 떨어지고 있다고 누군가 내게 전했다. 나는 아직 꽃을 보지 못했다. 아파트 단지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던 작년과 비교하면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길 가에 핀 꽃을 마주할 날이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베란다에 작은 화분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만 주면 잘 자라는 난을 비롯해 올 초 우리집에 들어온 작은 녀석들이 제법 잘 자라고 있어 기쁘다.

 

 아, 선물받은 난에 꽃이 있긴 하다. 노란(아니 선명한 노랑이 아닌 맑은 노랑) 꽃잎이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 꽃이 있다. 고운 자주빛의 히아신스의 꽃도 사라진지 오래다. 내년까지 잘 살아줘서 그 빛을 다시 보여주면 좋겠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이 봄을 노래하는 어떤 꽃도 보지 못했다. 악수하자고 손을 내미는 개나리, 수줍은 분홍 진달래, 고고한 목련을 보고 싶다.

 

 꽃 대신 책을 만나야 할 봄일까. 맨부커상 수상작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퓰리처 상 수상작인 <깡패단의 방문>, 극명한 고독을 만날 수 있을 듯한 <소수의 고독>, 성장소설로 알고 있는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인 <와일드 펀치>, 김제동의 결혼 비용으로 쓸 꺼라는 <김제동이 어깨동무를 합니다>를 곁에 두었다.

 

 

 

 

 

 

 

 

 

 

 

 

 

 

 

 

 

 

 

 

 

 

 

 

 

 

 

 

 

 

 

 

 아직 곁에 두지는 못했지만, 읽고 싶은 시집도 많다. 장석주의 <오랫동안>, 하재연의 <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임현정의 <꼭 같이 사는 것처럼> 그리고 곧 나올 2008년 등단한 시인 이은규의 첫 시집 <다정한 호칭>이다.

 

 

 

 

 

 

 

 

 

 

 

 

 

 

 

 

 

 

 

 

 

 

 

 

  어디선가 꽃은 지고 봄날은 이렇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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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4-23 14: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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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사소한 우연의 만남은 운명적인 만남이 되기도 한다. 확대해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생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말이다. 해서 우리는 종종 만약에 라는 말을 사용하다. 만약에 그 순간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그 공간에 가지 않았더라면 삶은 분명 달라졌을 꺼라 말한다.

 

 그러다 다시 생각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시각, 그 순간에 마주한 사람이라면 그건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그 모든 것은 만약에라는 삶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닐까. 그러니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고, 나와 닿은 이들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고 말이다. 이상하게도 김연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언제나 작은 위로를 받은 듯 충만해진다. 그러니까 이 말은 김연수의 소설은 누군가도 나처럼 슬프고 누군가도 나처럼 아팠고 그 시간을 지나왔으니 너도 괜찮아질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따뜻함이 있다는 거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고아가 된 열네 살 정훈이 들려주는 이야기 <원더보이>는 특히 더 그랬다. 트럭으로 과일 장사를 하는 아빠와 단 둘이 살던 정훈은 1984년 겨울 교통사고를 당한다.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빠는 죽고 정훈만 살아남은 것이다. 공교롭게 그 사건은 남파 간첩이 연류 되어 있어 죽은 아빠는 마지막 순간에 애국자가 되고 정훈은 세상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다. 고아가 된 정훈은 나라의 보호를 받게 되고 그 뒤로 정훈은 원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이의 마음을 읽게 된다. 정훈의 능력을 알게 된 국가는 이를 이용하려 한다.

 

 1980년대, 사회는 불안했고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는 젊은 청춘이 많았던 시절이다.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해 정훈은 그들의 마음을 읽어내야 했다. 아니, 국가가 원하는 대로 읽어야 했다는 게 맞다.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신비로운 일이었지만 누군가의 두려운 마음을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을 읽는 일은 사춘기 소년 정훈에게는 너무도 버거운 일이었다. 아빠를 잃은 슬픔을 견디기도 힘든 아이에게 국가라는 보호자는 참으로 가혹했다. 그러던 중 정훈은 돌아가신 엄마가 살아 있다는 기쁘고 놀라운 사실을 알았고 아빠의 유품인 망원경과 수첩을 통해 어딘가 존재할 엄마를 찾아 나선다.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세상의 모든 게 다르게 보였을 정훈은 자신의 병실을 지키다 제대한 선재를 찾아가고 그를 통해 강토를 만난다. 슬픔은 슬픔을 알아본다고 했을까. 아니, 사실은 강토를 고문을 당하던 누군가의 마음에서 보았던 것이다. 약혼자를 잃은 강토는 정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정훈은 죽은 아빠가 단지 보이지 않을 뿐 저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 그러니 언젠가는 분명 아빠와 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연수는 정훈이라는 아이의 슬픔을 통해 1980년대의 슬픔을 보여준다. 더불어 개인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사회에 대해 말한다. 그 누구도 위로하지 않는 정훈의 아픔을 안아주는 어른은 어디에도 없는 현실은, 그 시절을 지나온 이라면 모두 기억할 것이다. 그 시대의 어른은 어떠했나. 강압적이었고 비겁했다. 오직 당사자만이 그 모든 것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무책임하게 내뱉는 세상이, 끔찍하다. 물론 우리는 안다.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가령 그것은 서울대공원에 놀러 간다거나, 밥을 짓는다거나, 밤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거나, 나무의 연두빛 잎들이 누렇게 변해 떨어지는 일이거나,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일이거나, 누군가와 이별을 해야 할 때도 있고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셀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통해 우리 생이 간직한 무궁한 비밀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막연한 일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한결같이 그 일상들을 아름답고 경건하게 지켜보고 말한다.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게 바로 인생의 본뜻이었다. 아이가 자라나 어른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사이 아무리 단단한 것이라도, 제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모두 부서지거나 녹아내리거나 혹은 산산이 흩어진다. <단편, 뉴욕 백화점 중에서>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돼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편, 세계의 끝 여자친구 중에서>

 

 그러니까 정훈은 열네 살이었던 1984년을 지나가게 될 것이고 어른이 될 것이다. 아빠가 죽던 그 순간 보았던 빛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고, 희선 역시 약혼자의 죽음으로 인해 희선이 아닌 강토의 삶을 살았던 시절을 간직할 것이다. 나는 소설 속 정훈처럼 열네 살의 소년도 아니고 누군가의 마음을 읽기는 커녕 내 마음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그러나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정훈과 강토가 서로에게 바람이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우주에서 부는 바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바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봉우리를 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람 말이다.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오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너는 어떤 바람을 잡아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원더보이 p. 300>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좋은 시절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 슬픔, 아픔, 고통, 절망이라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게 삶이라는 걸 말이다. 그 위험한 돌, 하나 하나 건너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훈의 삶이 그러했듯 우리는 분명 어떤 바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찰나의 순간에 우주의 빛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느 순간 저절로 어떤 비밀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당신과 마주한 지금 일 수도 있고, 아직 닿지 않은 누군가를 만날 때일 수도 있다. 그렇게 눈부신 날들이 바로 생이다. 그러니 나의 우주와 당신의 우주가 품은 비밀이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는 일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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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이라서 앞의 두 문단만 읽었어요. 좋아요. 뭔가 우연과 운명에 대헤 새로 생각하게 되네요. 글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인용구도 좋아요... 모든 날들이 가버리지만 아주 가버리지는 않는다,라니요.. 김연수답네요. 위로도 되구요...^^*

자목련 2012-04-05 09:40   좋아요 0 | URL
김연수답다, 정말 이 책과 잘 어울리는 말이네요. 즐겁게 읽으세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도스또예프스끼의 삶과 예술을 찾아서
이병훈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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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상대가 가족이라 해도 그렇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해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때문에 누군가를 안다고 말하는 일에는 특별히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문학 작품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역시 심각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사람의 생을 이해하려면 얼마나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는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도스또예프스끼 이해하기 위한 노력한 책이 있다. 아니, 도스또예프스끼를 사랑한 저자의 연애 편지 같은 것이라 해도 좋겠다.

 

 책은 도스또예프스끼의 흔적을 따라 그의 삶과 수많은 작품들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누구나 한 번쯤 책 장을 펼쳐봤을, 그러나 끝까지 읽지 못했을 대표작 죄와 벌, 백치, 노름꾼,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외에도 도스또예프스끼가 만든 잡지와 그의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의 만날 수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유년 시절과 길고 힘겨웠 감옥에서의 시간, 그가 사랑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 모든 것이 소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머물렀던 집이며 공간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하여 독자로 하여금 좀 더 도스또예프스끼에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작가로서가 아닌 인간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 알 수 있어, 이 책을 읽으면서 그의 소설을 함께 읽는다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물론 도스또예프스끼에게 영향을 미친 고골 뿌쉬낀 작품을 펼쳐도 좋겠다. 그가 살아온 19세기 러시아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사회를 향한 작가들의 외침, 세상을 바꾸고 싶고 구원하고 싶었던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삶이란 어디를 가나 있는 거니까. 삶은 우리들 자신 속에 있는 것이지 우리들 바깥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야. p. 101

 

 어쩌면 당장 죽음을 맞이하게 될 지 모르는 순간에 그가 형에게 쓴 편지의 한 구절이 가슴에 깊게 박힌다.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삶을 우리는 언제나 미련하게 바깥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힘겨운 이 시대를 사는 모두에게 거대한 울림을 주는 말이 아닐까.

 

 간질로 인해 몸과 영혼이 고통스러웠던힘 시간, 그가 좀 더 건강했다면 어땠을까. 도박에 빠져 진 빚을 갚기 위해 수정은 커녕 마감에 시달려 써내려 간 소설이 아니라, 오직 소설에만 매달려 있었다면 과연 어떤 소설을 썼을까. 러시아를 떠나 타국에서의 가난한 생활과 한 몸처럼 의지했던 형 미하일과 사랑하는 아이의 죽음까지, 끊임없이 계속되는 시련이 있었기에 그토록 위대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건 아닐까. 도스또예프스끼의 파란만장한 삶이야말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작가로서 시대를 외면하려 하지 않았다. 그의 굳은 의지를 이런 글에서 마주한다.

 

 ‘예술은 항상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이며,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 존재해 본 적이 없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방식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p. 148

 

 저자는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했고, 더 많이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도스또예프스끼에게 어떤 연민을 느끼고 그의 고독을 이해하고 싶을 것이다.

 

 문득 도스또예프스끼가 말하고 싶었던 구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과연 진정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만, 읽지 못한 그의 소설 한 구절이 내내 나를 붙잡는다.

 

 “이것이 당신들에게 부과된 지상의 시련이오. 그러니 위안을 구하려 하지 마시오. 그저 눈물을 흘릴 때마다 당신 아들이 하느님의 천사가 되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고, 당신의 모습과 눈물을 보고 기쁘게 생각하며 그것을 하느님께 알리고 있다고 항상 생각 하시오. 당신은 어머니로서 앞으로도 이 큰 비애를 겪어야 하겠지만 나중에 그것이 고요한 기쁨으로 변하게 될 것이고, 당신의 괴로운 눈물은 사람을 죄악에서 구하는 연민과 정화의 눈물이 될 것이오. 자, 그럼 당신 아들의 안식을 위해 기도를 드리겠소. 아이의 이름이 뭐라고 했지요? p.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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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1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지막 구절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조시마 장로가 한 말 같군요. 맞을까요?ㅎㅎ / "자기 자신 속에 있는 삶을 우리는 언제나 미련하게 바깥에서 찾으려 했던 것이다. " - 이 말 와닿습니다. 저에게도 필요한 말-.^^

자목련 2012-03-31 08: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는 그 소설을 읽지 못했어요..
내 안에 있는 삶,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말인 것 같아요..
 
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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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큰 감동을 안겨주는 책이라 해도 어떤 시기에 읽느냐 따라 그 강도는 다르다. 언젠가 한 번은 읽지 않았던가 하는 착각마저 불러온 책,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내게 그랬다. 아마도 내가 학창시절에, 청춘이라 불리는 시절에 읽었더라면 이 책에 대해 그저 노인과 물고기의 사투라고만 말했을지도 모른다. 망망대해에서 이틀 동안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 노인을 통해 헤밍웨이의 진심은 커녕, 지루해하며 대충 대충 몇 장을 빨리 넘겼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어느 정도 우리 생에 무한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에 만났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노인과 바다』는 웬만한 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투 끝에 잡은 물고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상어의 공격을 받아 결국에 남은 건 대가리와 뼈 뿐이었다는 이야기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건 제목 그대로 노인과 바다뿐이다. 노인을 이해하고 따르는 소년이 잠깐 등장하지만 소설의 중심엔 노인이 있다.

 

 84일 동안 바다에 나갔지만 물고기를 잡지 못한 산티아고, 그는 이제 더 이상 잘 나가는 어부가 아니다. 자신을 응원할 가족도 동료도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그가 반드시 물고기를 잡아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산티아고는 바다로 나갈 준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한다. 그에게 바다는 삶의 전부이었고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소설에서 산티아고는 혼자다. 금방이라도 그를 삼킬 채비를 한 바다에서 그는 물고기를 기다린다. 많은 시간 혼자 보내며 터득한 그만의 방법이었을까. 먹을 것을 찾아 바다를 나는 새에게 말을 건넨다.  적막하고 고요한 시간, 그는 좋아하는 야구와 꿈에 본 아프리카를 떠올리며 아침마다 자신을 찾아주는 소년을 생각한다.

 

 마침내 미끼를 문 물고기, 그 힘이 대단하다. 그와 물고기의 힘겨운 사투가 시작된 것이다. 얼마나 긴 시간이 될지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물고기가 반가웠던 건 아닐까. 거대한 힘을 가진 물고기와 대결하는 일을, 알 수 없기에 나는 한 손과 등의 힘으로 낚싯줄을 버티고 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다만, 그에게 물고기가 갖는 의미를 알고 묻고 그 대답을 듣고 싶을 뿐이다.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p. 69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라니, 이런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날들을 더 살아야 할까. 죽을지도 모르면서 물고기와 대화를 나누며 혼잣말을 하는 밤, 배고픔에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조차 없는 순간에도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끈을 끊어버리면 간단하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줄에 쓸려 상처가 난 손과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상어 떼와 싸우느라 녹초가 된 그에게서 나는 문득, 엄마를 본다. 그리고 생을 생각한다. 나도 곧 노인이 될 것이다. 엄마처럼 언젠가는 죽게 될 것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온 엄마처럼 남은 날들을 채워갈 수 있을까. 산티아고 노인처럼 빛나는 두 눈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바다가 존재하는 한 그는 아마도 매일매일 바다에 나갈 것이다. 물고기를 잡든 잡지 못하든 말이다.

 

 노인의 모든 것이 늙거나 낡아 있었다. 하지만 두 눈만은 그렇지 않았다. 바다와 똑같은 빛깔의 파란 두 눈은 여전히 생기와 불굴의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p. 10

 

 이 책이 주는 감동은 한평생 고기를 잡아오며 살아온 그의 삶에서 묻어 나오는 감사는 아닐까. 투덜대기만 하는 삶, 뭔가 요행을 바라며 허황된 꿈을 꾸는 이들에게 하루 하루의 충만함을 왜 모르냐고 묻는 듯 하다. 대가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아무런 장치 없이 그저 노인의 단순한 행동과 말만으로도 이토록 강한 울림을 주다니.  

 

 ‘매일매일이 새로운 날인걸. 운이 있다면야 물론 더 좋겠지.’ p. 33

 

 똑같은 하루라고 생각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때는 얼마나 많았던가. 어제와 같은 오늘처럼 보여도 결코 똑같은 하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 건 불과 몇 년 전이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걸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생각한다. 산티아고의 말처럼 운이 있다면야 좋겠지만, 운이 좋지 않다고 낙담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다시 새로운 날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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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0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스가 남다른 책이에요. 이 책의 존재를 까먹고 있었는데 덕분에 독서 예비목록에 넣었습니다~. 고딩때는 줄거리만 듣고 대체 그런 허무한 소설은 왜 썼나 싶었었지요~ㅎㅎ

자목련 2012-03-07 20:23   좋아요 0 | URL
정말 대가의 포스란 이런 것이구나 했어요. 고교 시절에 읽었다면, 이 감동을 알지 못했겠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