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밤 늦게 오랜 친구 H가 전화를 했다. 그녀는 항상 바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자주 듣지 못한다. 때문에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다. 인사를 나누기도 전에 나는 H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았다. 통화하는 내내 울면서 말을 이어갔다. H에게 갑작스런 일이 일어났고, 그것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와중에 H는 이상하게도 내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니 목소리를 들어서 됐다고, 그 말을 반복했을 뿐이다. H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나는 어떤 질문도 어떤 위로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신의 기억 속에 새겨진 어떤 모습으로 서로를 기억할 뿐이다. H가 다시 전화를 걸어올 때까지 많은 날들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거다. 어떤 일들은 이야기로 꺼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강력한 슬픔을 지닌다. 슬픔이란 온전하게 그것을 헹구어 낼 수 있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건조한 눈을 크게 뜨고 있어도 가슴에는 눈물이 자라기 때문이다.

 

 H의 전화를 기다리는 날들, 나의 일상은 다르지 않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거실에서 춤출 때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감이 탑을 쌓을 때 세탁기를 돌린다. 출판사의 사재기 소식을 다룬 기사를 읽고, 좋아하는 작가의 블로그에 올라온 짧은 글을 읽고, 몇 권의 책을 고른다. 아주 많이 기다렸던 책들이다. 정미경의 단편집 <프랑스식 세탁소>, 김숨의 장편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 이사라 시인의 시집 <훗날 훗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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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3 18: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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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7 16: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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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3 2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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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6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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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8 2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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