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왜 읽는 걸까? 그렇게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읽는다. 아름다운 시어에 반해서, 내가 보지 못하는 사물의 풍경과 내면을 만날 수 있기에 읽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절로 터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읽어야 하는 도전 과제는 아닐까. 가끔씩 생각나는 시가 있다. 그렇다고 외울 수 있는 건 아니다. 학창시절, 그러니까 어린 왕자와 여우가 서로를 길들이는 모습에 반했던 나름 순수했던 시절을 제외하면 시를 외우려는 의지는 사라졌다. 그냥 읽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든다.

 

 그래도 당신과 함께 읽고 싶은 시집은 많다. 미안하게도, 추천할 수 있는 명확한 설명을 덧붙일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저, 이런 시를 함께 읽고 싶은 바람을 전할 뿐이다. 좋아하는 시인은 점점 늘어나고, 읽고 싶은 시집도 많고, 곁에 두고 싶은 시집도 많다. 이 가을, 향이 좋은 차 한 잔, 혹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시를 한 잔 마셔도 좋을 것이다. 이런 시는 어떨까? 안현미의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에 수록된「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의 전문이다.

 

 

 서둘러 밥을 먹고 낙산으로 산책 가는

 점심시간

 산동에 담벼락에 누군가 그려놓은 낙타가

 베란다 그늘 아래 서 있다

 그늘 아래서 꿈꾸고 있다

 시원한 꿈이겠다

 

 내가 탐하는 그늘은 고비사막에 있다

 내 더듬이는 한번 더듬은 것들을 지문처럼 새긴다

 

 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돌멩이가 외로워질 때까지

 

 나는 그게 시라고 생각한다

 

 서둘러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점심시간

 

 내가 먹은 밥은 그곳에 있다

 나는 그게 시라고 쓰고 싶다

 

 

 이토록 평범한 일상에서 시는 태어난다. 그곳에 두고 온 밥을 시라 말하는 시인 덕분에 시가 친근하게 다가온다. 눈에 닿는 풍경, 그 안에서 어떤 아늑함과 어떤 시간을 발견하는 시인의 눈을 닮고 싶다. 대단한 소재가 아닌 예사로운 일들로 나열된 하루도 시가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루를 채우는 조각들이 시가 된다면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상처와 고통은 이런 시로 태어나는 게 아닐까. 「눈물의 입구」을 통해 잠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린다. 이 시를 먼저 읽은 당신이라면 반짝이는 눈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았더라도 모른 척 그냥 지나쳐 주면 좋겠다.

 

 

 여자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혼자입니다 그러나 완벽하게 혼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바람은 불어오고

 또다른 국면에서는 미늘에 걸린 물고기들이

 죽음을 향해 튀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수동 카메라도 여자의 이름을 함께 들여다본 사람

 불가능을 사랑했던 시간과 풍랑이 잦았던 마음

 잠시 핑, 눈물이 반짝입니다

 

 수면 위로 튀어오르는 물고기의 비늘도 반짝입니다

 모든 오해는 이해의 다른 비늘입니다

 아픈 이마에선 눈물의 비린내가 납니다

 생각해보면 천국이 직장이라면 그곳이 천국이겠습니까?

 또다른 국면에서는 사랑도 직장처럼 변해갑니다

 

 사, 라, 합, 니,

 이응이 빠진 건 눈물을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첫사랑을 빌려 읽기도 합니다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 창비 / 2014년 5월

 

 

 

 그리고 이런 시를 읽는다. 윤희상의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속 「비밀」같은 시.

 

 

 그늘을 따라서

 우연히 숲으로 갔습니다

 숲에서 보았습니다

 나무와 어둠이 합쳐지는 것을

 나무는 없습니다

 더 있다가, 나와 어둠이 합쳐졌습니다

 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는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둠이 하는 말입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습니다

 모르겠습니다

 혹시, 밤하늘의 작은 별들이 보았는지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밤하늘의 작은 별과 어둠이 합쳐지는 것을

 나는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밀입니다

 

 

 아름다워서, 자꾸만 읽게 된다. 그리하여 밤이 간직한 어둠 속에서 작은 빛으로 발하는 별빛만이 알고 있을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이런 시를 읽을 수 있어, 참 좋다. 당신과 함께 읽고 싶다. 이런 시도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다. 『오래 남는 말』이란 제목처럼 오래 남아 기억되면 좋겠다.

 

 

 지금 번지고 스미는 것은 고즈넉함이다

 

 화실 바닥에 손수건이 떨어졌다 소리나지 않게

 숨을 쉰다 나는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는

 평평한 허파를 보고 있다 언뜻 보면 잎이 큰

 칠엽수 나뭇잎 같기도 하고 하다 약간 들썩이며 흔들린다

 당연히, 손으로 주우려고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것은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 자국이다

 

 낮은 의자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의 애인이 나에게 말했다

 

 혹시, 알아요?

 수채화는 젊은 사람들이 그리기 어렵다는 것을

 

 왜요?

 

 수채화는 물감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다리지 못해요

 물감이 다 마르기 전에 다시 손이 가거든요

 버릇처럼,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윤희상 / 문학동네 / 2014 년 6월

 

 

 

 

 감당할 수 없는 젊음을 무기로 믿고, 어디서든 푸른 유리 조각처럼 빛나는, 튀어나온 못처럼 상대를 경계하던 시절엔 몰랐을 것들을 알려주는 시. 시는 왜 읽는 걸까. 어쩌면 겸손을 배우기 위해, 어쩌면 상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읽는지도 모르겠다. 시를 읽는 동안 폭발할 듯 커지는 분노나 화가 사라지기 때문은 아닐까. 시를 읽는 동안 짧은 시어에 담긴 무언가를 찾고 싶어 집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찻 잔에 시를 따르는 손, 내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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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라서 그런지 자꾸 시집이 눈에 들어온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에 갖고 싶고 읽고 싶은 시집을 구매하겠다고 생각했다. 낮에 친한 블로그 이웃과 통화를 하면서도 시집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에 구매한 시집들의 제목과 몇 권의 시집에 대해 콕 찝어 말했다. 그러니까 민음사 시집이었다. 문정희의 <응>, 성동혁의 <6>이다. 한데, 우리의 대화를 지니가 들었는지 이런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시 읽기 좋은 계절, 민음사 시집 알라딘 단독 40% 할인을 진행합니다.’  가을, 시와 사랑에 빠지다

 

 소장하고 있는 민음사의 시집 중에서 좋아하는 시집은 허 연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 김행숙의 <타인의 의미>, 김지녀의 <시소의 감정>, 손미의 <양파 공동체> 정도다. 그리고 궁금했던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 이장욱의 <내 잠 속의 모래산>,  천수호의 <아주 붉은 현기증>은 이 기회에 곁에 두어도 좋을 듯하다. 부담스럽지 않은 착한 가격이니 자꾸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

 

 

 

 

 

 

 

 

 

 

 

 

 

 

 

 

 

 

 

 

 믿음사에 이어 문학과지성사도 가을 내 책장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기획한다. 조만간 창비와 문학동네도?

 

 

 

 

 

 

 

 

 

 

 

 

 그리고, 이 가을에 반복해서 읽고 있는 건 이런 시.

 

 

 살 무르고 눈물 모르던 때

 눈 감도고 당신 얼굴을 외운 적 있었지만

 한번 묶은 정이야 매듭 없을 줄 알았지만

 시든 꽃밭에 나비가 풀려나가는 것을 보니

 내 정이 식는 길이 저리할 줄 알아요

 

 그래도 마음 당신 생각을 못 이기면

 내 혼은 지읒 시옷 홑겹으로 날아가서

 한밤중 당신 홀로 잠 깰 적에

 꿈결 듯 눈 비비면 기척도 없이

 베갯머리에 살비듬 하얗게 묻어나면

 내가 다녀간 줄로 알아요, 그리 알아요

 -「눈 감으면 흰빛」전문

 

 

 비가 올 거라고 했고

 우산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다

 

 당신은 우산을 착착 접은 뒤

 사거리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널 것이다

 

 비가 올 것 같다는 말은

 어쩐지 희미해

 

 눈을 감으면

 4층에서 1층까지

 

차례로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

 

 티스푼으로 뜬 것처럼

 빗물이 파낸

 작은 홈들이 길게 이어진다

 

 반지를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약지에

 흰 띠가 남아 있다

 -「연애」전문

 

 

 눈썹 하나 뽑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금 들여다보네

 

 손바닥 오므렸다

 손바닥 펼치면

 숱 많은 꽃길이 갈라지고

 비단꽃문 열리고

 

 그 길은 길고 가늘어서

 너는 거기 서 있었네

 

 세상의 이불 덮고

 두잎이 포개는 소리

 꽃물 번지네

 

 너는 오래도록 서러웠고

 내 귀는 닫혀 있었네

 

 꽃길 열리고

 꽃문 닫히고

 비단이불 위에 너의 속눈썹

 꽃술 떨어지네

 당신이 저무네 

 -자귀나무 꽃살문 전문

 

 

 

 

 

 

싱고, 라고 불렀다 신미나 / 창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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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날이었던 지난 9일, 오후 8시를 오전 8시로 알고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검색했다. 온라인 서점에도 노벨문학상을 검색하기도 했다. 아무리 찾아도 수상자는 없었다. 나의 손은 그렇게 엉뚱한 일을 하고 있었다. 연관 기사를 검색하고 읽고, 모두 손으로부터 시작된 일이다. 읽고 싶은 도서나 관심 가는 도서에 대한 리뷰를 읽고 공감을 누르는 일도 손이 하는 일이다. 책을 구매하는 일, 훔치고 싶은 문장을 옮겨 적는 일, 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나는 손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하는 오른발을 주무르고 매만지는 일도 손이 하는 일인데, 그저 발만 안아주고 말았다. 눈이 보고 놀라는 일에 대한 표현도 눈이 보고 좌절하는 일들 끝에도 손이 있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손을 고마움을 문득 생각한 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문장도, 소설도 결국엔 손에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세계문학이 아닌 책으로 읽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는 이제 더이상 파트릭 모니다노만의 문장이 아니다. 책은 읽은 저마다의 독자에게 새로운 문장이 되었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그 문장을 썼을까. 그가 문장을 써 내려가는 동안 손은 얼마나 봤을까. 이런 맹랑한 생각을 한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명확하게 잡을 수 없는 기억과 존재, 정체성에 대한 주제를 놓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내 짐작일 뿐이다. 나는 아직 그의 다른 소설을 접하지 못했고 친절한 출판사가 제공한 글을 통해서 말이다.

 

 

 문학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잠깐 생각한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시를 읽고 마음을 다스리는 이유는 어쩌면 소설로나마 타인의 내부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까. 그것은 반대로 내가 전하지 못하는 은밀한 내부를 누군가 알아주기 바라는 그런 마음인지도 모른다.

 

 

 

 노벨문학상의 가치는 어떤 걸까. 내가 알지 못하는 나라의 작가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장, 태어나는 인물, 다시 살아나는 역사의 부조리, 모두가 알아야 하는 감춰지고 숨겨진 잘못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 다시 복원된다. 개인 혹은 나라를 다시 주목하게 만드는 힘, 그들의 손은 위대하다. 그래서 『16인의 반란자들』이란 책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문학의 힘을 믿는 사람들, 문학의 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어떤 체제와 사상에 반하여 추방되고 생명까지 위협받는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이, 글을 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요.”  주제 사라마구의 말이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라니, 그건 도대체 어떤 사명이었을까. 그들 중 누군가는 사라졌고 누군가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새로운 반란자를 만나고 싶다. 나의 보잘 것 없는 손이 그들의 고단한 손을 감싸는 일은 그들의 문학을 읽는 것이리라. 그러니 이런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눈먼 자들의 국가』를 펼친다. 제대로 읽을 자신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4월 16일, 나는 뉴스를 보면서도 걱정하지 않았다. 안산(安山)에 아는 이가 없었고 전원구조, 란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꽃같은 아이들이 꽃처럼 지고 있었다. 황정은의 손이 쓴 글처럼 어떻게 지내십니까, 누군가에게 묻는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내 경우 4월 16일 이후로 말이 부러지고 있습니다. 말을 하든 문장을 쓰든 마침내 당도하기가 어렵고 특히 술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장을 맺어본 것이 오래되었다. 그런 참에 질문을 해보라는 청탁을 받았다. 물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쓰겠다고 대답했다. 질문이든 뭐든 말하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사라져버렸고 이대로는 내내 아무것도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무력감을 어떻게든 견디고 내가 좋아하는 소설, 문장을 쓰는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이기가 있었다. (황정은 - 「가까스로, 인간」 중에서)

 

 

 다음 주면 사건이 발생한지 6개월이 된다. 내가 사는 이곳의 아이들은 다시 수학여행을 떠난다. 그저 말간 얼굴로 조금은 들뜬 마음을 드러내며 손을 흔들며 떠날 것이다. 봄, 여름, 가을이라는 계절이 지나고 있다. 깊은 바다만이 알고 있는 진실을 언제쯤 알 수 있을까. 나의 손은 당신의 손과 달라서 부끄럽게도 이제 세월호를 검색하지 않는다. 당신의 손이 만든 문장을 읽으며 다시 나의 손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한다. 그저 닿을 수 없는 온화한 마음을 보낼 수 있는 작은 댓글을 달고 공감 버튼을 누르는 보통의 손, 위대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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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떤 대상을 흠모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 대상은 굳건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언가에 대한 애정의 온도는 식지 않았다. 하지만 끓는점을 향해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지근한 온도라는 말이다. 누군가는 무엇이 되고 있다. 누군가는 무엇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열정이 끓는점을 넘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적확하게 알고 있다는 게 싫다. 괜한 투정이다. 억지스러운 마음이다.

 

 10월이 되었고 끼니처럼 불안이 몰려온다.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절망이 나를 감싼다. 하고 싶다는 마음을 핑계로 삼았다. 옅어지는 간절함을 당연하게 담았다. 어떤 움직임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걸 절감한다. 그러니 이 마음을 드러내서도 안 된다. 그러나 드러내지 않으면 다짐은 사라지고 만다. 부서질 다짐이라도 말이다. 무언가 되고 싶었던 시절의 열정이 소모되지 않았다면 다시 끓어오를 수 있을까. 거창한 도전이라는 이름이 아닌 부단한 노력만이 그것과 맞닿을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10월은 자책의 시간으로 시작된다. 누군가의 개인적인 사랑 연서인 <정확한 사랑의 실험> 뒤적이며 (알았더라면 구매 여부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집을 둘러본다. 제목이 매혹적이다. <죄책감>, <우울은 허밍>이라니. 지난 시간을 허투루 보낸 내가 읽어야 할 시가 될 것 같다. 그날을 잊지 않기로, 그날을 새겨야 하는 이유를 작가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책 <눈먼 자들의 국가>, 이언 매큐언의 신간 <이노센트>, 친구에게 선물할 김동률의 <동행>까지.

 

 

 

 

 

 

 

 

 

 

 

 

 

 

 

 

 

 겨우 오늘 아침에 여름 이불 빨래를 끝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꺼내는 이불처럼, 생각의 두께도 달라지면 좋겠다. 바람의 크기와 냄새에 맞는 적당한 이불처럼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저마다 열심을 내는 치열한 삶 속에서 정말 읽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걸까.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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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렸어요, 당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알리는 알라딘 문자는 정말 반갑다. 기다렸던 김이설 작가의 소설이다. 어제 김혜나의 『그랑 주떼』로 만난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 세 번째다. 노벨라 시리즈는 한 손에 잡히는 얇은 분량이다. 그렇다고 가벼운 시리즈는 아닌 것 같다. 김혜나의 소설의 경우 금세 읽히지만 여운이 무겁다. 어쨌거나 김이설의 『선화』는 표지 이미지와 제목이 잘 어울린다. 김이설 작가의 책이 나올 때마다 느끼지만 표지가 매력적이다. 차갑고 서늘한 느낌, 기대가 크다.

 

 김이설의 소설과 함께 궁금한 책 몇 권을 담는다. 함민복의 시집과 다른 산문집은 있는데 눈물은 왜 짠가는 없다.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호텔 로열, 황선미의 동화 어느 날 구두에게 생긴 일도 궁금하다. 동화는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라는 생각은 사라진지 오래다.  반값 판매 중인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 아직 읽지 못한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그 후』는 해설이 각각 김연수와 김경주라 끌린다.

 

 

 

 

 

 

 

 

 

 

 

 

 

 

 

 

 

 

 

 

 장서의 괴로움을 읽고 당분간 책을 구매하지 않기로 한 다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이 책은 꼭 사야 한다는 마법이 풀리지 않아서 문제다.

 

 

 *결국 몇 권의 책을 주문했다. 우울해서 주문했다. 이러다 내일은 컵을 주문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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