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라서 그런지 자꾸 시집이 눈에 들어온다.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기 전에 갖고 싶고 읽고 싶은 시집을 구매하겠다고 생각했다. 낮에 친한 블로그 이웃과 통화를 하면서도 시집에 대해 언급했다. 최근에 구매한 시집들의 제목과 몇 권의 시집에 대해 콕 찝어 말했다. 그러니까 민음사 시집이었다. 문정희의 <응>, 성동혁의 <6>이다. 한데, 우리의 대화를 지니가 들었는지 이런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시 읽기 좋은 계절, 민음사 시집 알라딘 단독 40% 할인을 진행합니다.’ 가을, 시와 사랑에 빠지다
소장하고 있는 민음사의 시집 중에서 좋아하는 시집은 허 연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 김행숙의 <타인의 의미>, 김지녀의 <시소의 감정>, 손미의 <양파 공동체> 정도다. 그리고 궁금했던 황인찬의 <구관조 씻기기>, 이장욱의 <내 잠 속의 모래산>, 천수호의 <아주 붉은 현기증>은 이 기회에 곁에 두어도 좋을 듯하다. 부담스럽지 않은 착한 가격이니 자꾸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



믿음사에 이어 문학과지성사도 가을 내 책장을 위한 마지막 선물을 기획한다. 조만간 창비와 문학동네도?



그리고, 이 가을에 반복해서 읽고 있는 건 이런 시.
살 무르고 눈물 모르던 때
눈 감도고 당신 얼굴을 외운 적 있었지만
한번 묶은 정이야 매듭 없을 줄 알았지만
시든 꽃밭에 나비가 풀려나가는 것을 보니
내 정이 식는 길이 저리할 줄 알아요
그래도 마음 안팎에 당신 생각을 못 이기면
내 혼은 지읒 시옷 홑겹으로 날아가서
한밤중 당신 홀로 잠 깰 적에
꿈결엔 듯 눈 비비면 기척도 없이
베갯머리에 살비듬 하얗게 묻어나면
내가 다녀간 줄로 알아요, 그리 알아요
-「눈 감으면 흰빛」전문
비가 올 거라고 했고
우산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했다
당신은 우산을 착착 접은 뒤
사거리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널 것이다
비가 올 것 같다는 말은
어쩐지 희미해
눈을 감으면
4층에서 1층까지
차례로 전등에 불이 들어온다
티스푼으로 뜬 것처럼
빗물이 파낸
작은 홈들이 길게 이어진다
반지를 빼서 주머니에 넣는다
약지에
흰 띠가 남아 있다
-「연애」전문
눈썹 하나 뽑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손금 들여다보네
손바닥 오므렸다
손바닥 펼치면
숱 많은 꽃길이 갈라지고
비단꽃문 열리고
그 길은 길고 가늘어서
너는 거기 서 있었네
세상의 이불 덮고
두잎이 포개는 소리
꽃물 번지네
너는 오래도록 서러웠고
내 귀는 닫혀 있었네
꽃길 열리고
꽃문 닫히고
비단이불 위에 너의 속눈썹
꽃술 떨어지네
당신이 저무네
-「자귀나무 꽃살문 」전문
『싱고, 라고 불렀다 』 신미나 / 창비 / 2014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