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 사상가 아버지와 문학가 딸이 나눈 10년의 편지 글항아리 인문에세이 3
류짜이푸.류젠메이 지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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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말이 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무엇을 닮느냐에 따라 반응은 달라진다. 좋지 않은 습관이나 행동을 닮는다면 반가워 할 부모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부모의 대를 이어 같은 분야에 종사한다면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 거울을 보듯 닮은 부녀가 있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걸어가는 중국의 사상가인 아버지 류짜이푸와 문학가인 딸 류젠메이가 그들이다.

 

 책은 1989년부터 1999년까지 10년 동안 부녀가 인생과 학문에 대해 팩스로 나눈 편지를 엮은 책이다. 제1부 사랑하라, 제2부 생각하라, 제3부 표류하라 세 부분으로 나누어 물음표로 가득한 삶에 대해 토론한다. 언제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부녀사이인데 왜 그들은 편지를 써야 했을까?  아버지 류짜이푸가 천안문 사건으로 두 딸을 중국에 남겨두고 아내와 함께 미국행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타국에 있는 아버지와 중국에 남은 큰 딸 류젠메이는 그때부터 편지로 소통한다. 두 사람의 편지는 류젠메이가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유학을 오고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문학을 공부하는 딸의 고민, 아이를 낳고 어머니가 된 후 겪는 놀라운 감동과 우울,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아버지이기 이전에 인생의 선배이자 사상가에게 묻고 딸이기 이전에 문학가에게 답하는 것이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는 편지글이라 다정하고 친근하지만 내용은 쉽다고는 말할 수 없다.사상가와 문학가라는 직업이 말해주듯 편지로 나눈 내용은 다양한다.  철학과 사상, 고전, 문학, 인생에 대해 서로에게 묻고 답한다.

 

 편지에는 특히 타국에서 바라보는 고국에 대한 객관적인 시선이나 중국 문학에 대한 내용이 많다. 아버지와 딸이 미국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 다르지만 중국에 대한 애정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외롭고 고독한 이방인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있어 아버지는 딸에게 이런 글을 전한다.

 

 ‘평상심은 자연스러운 마음이야. 중국을 떠나온 이후에 근본적으로 나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평상심이란다. 중국에 있었을 때에는 나 역시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아주 활기차게 살았지. 하지만 중국을 떠난 뒤로는 단숨에 끝도 없는 적막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단다. 그런데도 내가 마음의 평정을 빨리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애당초 나 자신을 결코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야.’ p. 77

 

 ‘생명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단다. 이 말의 의미는 한 사람의 즐거움과 행복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직위와 직함이 무엇인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생명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란다.’ p. 173

 

 제목처럼 삶이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 차 무거울 때,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던 이라면 이 책을 통해 삶에 대해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빛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무엇에 중점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준다. 부와 명예만을 바라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자아라는 지옥은 어디에나 존재하지. 그것은 네가 어딜 가든 너를 따라다니는 지옥이란다. 허영의 추구, 끝없는 욕망, 타인에 대한 배척과 질투의 사념, 분발하기를 멈춘 나태, 먼지 같은 성취가 빚어낸 교만 등이 모두 자아의 지옥이란다. 어쨌든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욕망(사념)이 허망하게 느껴지지. 그리고 인간이 최후에는 피할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 세상의 눈부신 허영이 죄다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단다. 난 네가 청춘일 때, 자아의 지옥에 대해 깨닫기를 정말 바란단다.’ p. 98

 

 이처럼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가르침을 주니, 인문학과 철학 강의를 듣는 기분이다. 하여 스승 같은 책이 아닐까 한다. 날짜대로 싣지는 않았지만 어느 부분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딸에게, 딸이 아버지에게 보내는 안부이며, 인생에 대한 질문과 답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문학, 철학, 문학을 공부하고 있거나 중국 문학에 관심있는 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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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0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힛. 태그가 눈에 들어옵니닷. 아버지이기 이전에, 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묻고 답하고 또 반대로 하기도 하는 이런 행위가 보기 좋아요. 가족 관계로 얽혀 서로에게 가족의 지위를 바라는 그런 류는 고향의 푸근함을 주기도 하지만 벗어나고픈 갑갑함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니까요. 참 부러운 부녀지간입니다.

옮겨주신 '평정심'부분과 '자아라는 지옥' 부분은 두고두고 읽으며 곱씹고 싶은 부분이네요.

자목련 2012-06-08 09:45   좋아요 0 | URL
제게는 어려웠지만 책은 아주 좋았어요. 중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 많이 알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텐데.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많은 부분에서 밑줄 긋고 싶은 책이었어요. 1999년까지만 이어지지만 아마도 부녀사이의 교류는 끊임없이 계속되지 않을까 싶어요.
 
열두 겹의 자정 문학동네 시인선 19
김경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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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짧은 시가 소설보다 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하나의 단어가, 하나의 구절이 가슴에 싹을 틔우고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강한 여운을 남긴다. 어떤 끌림에 잡은 한 권의 시집에서 투명한 밤, 홀로 잠들지 못하는 한 사람을 본다. 아니, 시라는 형식의 소설을 읽는다.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싶은 정도로 간절하지만 잠들지 못한다. 해서 그 시각, 밤이 들려주는 소리를, 밤이 기억하는 누군가를 담아낸 것이다.  그 밤을 알 것 같아서 누군가는 안타까울 것이고, 어디선가 그 밤을 견디고 을 누군가는 아플 것이다.

 

<북 치는 여자>

 

 너를 볼 수 없는 밤을 새고

 너를 볼 수 없는 밤이 온다

 오늘은 어둠도 돌아올 수 없는 밤

 너의 길고 푸른 속눈썹으로 만든 붓,

 그 붓으로 나는 쓴다

 

 북, 치, 는, 여, 자,

 나의 기관차, 너의 검게 탄 팔뚝 대신

 이제 빈 병 같은 봄이 온다

 벼락을 가르고 용의 피냄새 풍기는 북소리

 그 대신 낮잠만 온다

 북 치는 여자

 

 한밤의 옥상

 타들어가는 담뱃불로 너는 북가죽을 뚫었다

 우산을 쓸지 노랠 부를지 망설이는 나에게

 해 질 때마다 북을 쳐달라는 나에게

 북을 건넸다

 

 오늘은 어둠조차 돌아올 수 없는 밤

 네가 마지막으로 두드렸을 북한강 물 위에

 백지 같은

 달의 유골함 같은 너의 북 위에

 

 나는 쓴다

 너를 두드린다  (p. 14~15)

 

<그믐>

 

 나를 꽝! 닫고 나가는 너의 소리에

 잠을 깬다

 깨어날수록 난 어두워진다

 기우뚱댄다

 

 거미줄 흔들리는 소리

 눈을 감고 삼킨다

 

 오래 머물렀던 너의 이름에서

 개펄 냄새가 난다

 그것은 온통 버둥거린 자국을

 부러져 박힌 비늘과 지느러미들

 

 나를 꽝! 닫고 나가는 소리에

 내게 묻혀 던 악몽의 알들이 깨어난다

 깨어날수록 난 잠든다

 컴컴해진다

 

 닫힌 내 안에

 꽉 막힌 목구멍에

 이제 그곳에 빛나는 건

 부서진 나를 짚고 다니던 부서진 너의 하얀 지팡이

 내 안에 악몽의 깃털들만 날리는 열두 개의 자정뿐  (p. 46~47)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고 떠난 이는 말하겠지만 남은 이는 여전히 사랑이 남았으니 그 밤은 얼마나 외로울까. 아니, 사랑이 아니라도 그렇다. 모든 관계가 끊어진 자리는 늘 시리다. 한 때 친밀했던 사이, 한 때 슬픔을 나눴던 사이가 깨어지는 건 사소한 오해로 시작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너를 쓰고 너를 두드리는 내 곁에 존재하는 건 달빛도 사라진 열두 개, 열세 개, 열네 개로 이어지는 자정뿐인 것이다.

 

 <붕대>

 

 발이 푹푹 빠지는 밤,

 더이상 서로를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만난다

 가슴에서 오래된 붕대 냄새가 나

 네가 머물렀던 상처엔 내가 없었지

 서로 보지 못하는 흔적들

 창문을 닫아도

 바람의 방향은 바뀌지 않는다

 

 발이 푹푹 빠지는 밤,

 서로 대답하지 않을 때

 우리는 만난다

 대합 껍질 속에 넣어둔

 내 혀의 무늬는 어떻게 변했을까

 너덜너덜해진 침묵을 기워대는 것도

 이제 그만

 침묵조차 불을 끄고

 방을 나간다

 텅 빈 어항을 껴안고 홀로 서 는 밤

 

 바닥의 붕대 위로 절뚝거린 발자국

 서로를 끝없이 기다리며 우리는 헤어진다

 다시는 밤이 오지 않는다

 이제 그만  (p. 34~35)

 

 닮은 듯 다른 상처를 서로가 껴 앉는 밤은 없다. 아무렇지 않게 방을 나가는,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한 여자와 한 남자를 그려본다. 갈기 갈기 찢긴 마음이 보이는 듯하다. 이토록 잔인한 고통으로 쓰여진 시를 남긴 그 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 밤의 깊이를 잴 수 을까. 아니 어떤 기기로도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고통으로 채워진 밤의 상처를 싸맬 붕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김경후의 시에는 수많은 밤이 등장한다. 그 밤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간절함을 이런 시에서 본다.

 

<잘 듣는 약>

 

 이번 약은 잘 들을 겁니다

 의사 말을 듣고

 믿고 싶은 그 말을 믿고 나는 묻는다

 얼마나 잘 듣지 않았나

 이불 속에 드러누운 나의 마음은

 컴컴한 창밖 얼어붙은 얼굴을 들이미는 나의 고함조차

 

 내가 어도 나는 빈 방

 없어도 나는 나의 빈 방

 

 누구를 기다리는가

 골목 구석에 쑤셔박은 내 밤들

 털 빠진 등허리를 말고 자던 내가 버린 고양이들

 듣지 않았지 나는

 

 내가 지내온 빈 밤의 소리들

 내가 지워버린 빈 밤의 소리들

 

 듣지 않고 딛고 가야 할 소리만을 믿었던 나는

 나는 텅텅 빈 소리

 그것들을 잘 다지고 잘 부수지만 잘 듣지는 않은 병

 

 앞으로도 나는 듣지 않을

 빈 방의 나의 소리들

 이 약은 잘 듣고 겠지 (p. 62~63)

 

 <안개 악몽>

 

 저 너머 뱀 비늘 냄새 (안개, 안개인가) 지금까지 내게 그

런 게 너였니, 나를 물어뜯은 까마귀 (아니, 아니야) 그래.

내가 물어뜯은 까마귀 (그건 더 아니야) 그래, 그 기억의 어

금니 자국도, 안개나 되어버려 (그러지 마) 아니, 너는, 갈

기갈기 찢긴, 비명들의 은유일 뿐 (왜 나한테) 아니, 너는,

 무쇠 장화에 외올 베옷 입은 안개, 네겐 그래도 돼 (안 돼

안 돼) 썩은 계단을 뛰어올라가, 나의 안개, 올라가라니까

(그러지마, 아니야) 네게만 그럴 거야, 올가미와 창살이

는, 나의 안개 (안 돼) 네겐, 그래도 돼, 핏물 젖은 나의 안

개 (안개, 안개) (p. 97)

 

 약으로 치유할 수 는 밤이길 바라지만 밤은 낮처럼 환하고 고요하다. 밤을 방해하는 소리들로 잠들지 못한다. 밤조차 잠들지 못하도록 울부짖는 소리들로 잠들었던 밤은 악몽으로 채워진다. 겹겹이 쌓인 밤들이 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노래한다. 밤마다 누군가의 흔적들을 새기고 지운다. 시는 밤처럼 어둡고 검다. 김경후의 시집을 읽고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건 내 의지다.

 

  <환절기>

 

 1

 첫 빗방울을 맞기 직전의 땡볕돌 냄새가 나는 시, 불타는

역청탄 같은 노래,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 올해

내가 유일하게 칭찬받은 사람은 술집 여주인, 손님, 많이 마

셨는데 안 취한 거 같네,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지만 이것

도 아닌, 뜨겁지 못한 그게 시가 되는, 취하지도 못하는 시

 

 2

 머리에 대못이 박힌 채 껍질이 벗겨지는 뱀장어 눈알, 그

빛과 감촉처럼 사랑하기를, 발광하며 감전되기를, 질주하

는 죽음의 타이어 자국이 영혼에 새겨져도, 이빨로 타이어

를 물어뜯어서라도, 저주할 만큼 사랑하기를, 그게 아니더

라도 그러기 바라기를

 

 오래된 건지 버려진 건지 모를 옷과 가방들, 사실은 그게

아니라, 세탁기에 해어진 너의 명함과 동전지갑, 그건 더욱

더 아닌, 너의 밤색 머리카락과 새치까지, 그러지 않아도 되

는데 그게 아니어도 이미 그런, 나는, 비어 는 수족관의

오래된 물때만 손가락으로 비비고

 

 3

 빗물에 검어지는 돌들, 나는 돌보다 검어질 수 을까, 아

니 그게 아니라, 오늘의 암흑이 내일의 암흑보다 깊기를, 지

금은 그게 아니라 얼른 뛰어서 집에 가야지, 그게 아니어도,

밤새도록 내가 토해낸 밤들은 언제나 나보다 크고 밝다, 시

인의 종이, 검은 글자들을 지우면 함께 지워지는 검은 달빛,

아니 검은 구름들 (p. 52~53)

 

 이런 시도 다. 벼락 속 내리치는 빗발 /그렇게 /오랫동안 /우산이 필요한 영혼은 이제 내게 없다  (p. 23 <장마> 전문) 다음 생애 /어도 /없어도 /지금 다 지워져도 //나는 /너의 문자 /너의 모국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p. 77 <문자> 전문)

 

 시인은 너의 부재는 나의 부재이며 너는 나라고 말한다. 빈 밤, 투명한 밤을 홀로 깨어 만든 모든 노래는 너를 위한 노래였던 것이다. 처절하게 울부짖는 목소리 대신 밤을 꿰매어 만든 시라서 읽는 동안 당신은 어떤 애절한 노래를 들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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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2-06-05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정도 읽다가 도저히 못 참고 주문을 클릭합니다. 자목련님, 어쩜 이렇게 멋진 시와 그리고 어쩜 이렇게 시에 걸맞는 해석을 해놓으셨는지요.
김경후..예전에 읽은 허수경의 빨간표지 시집 만큼 강렬한 시네요. 이분, 반하겠는데요.

자목련 2012-06-06 09:46   좋아요 0 | URL
어떤 밤을 떠올리게 하는 시가 많아서, 아프기도 했던 시집이었어요.
시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어떤 강렬함과 그 어떤 떨림이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해요.
달사르님은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합니다.^^
 
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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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란 말은 언제나 애달프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그저 듣기만 해도 가슴이 저린다. 영원히 내 편이라 믿었던 존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인정해야 했던 게 엄마의 죽음이다. 영원한 건 없지만 단 하나를 선택하라면 서슴없이 엄마를 선택할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러할 것이다. 『잘 가요 엄마』는 그런 어머니에 대한 기록이며, 사모곡이다.

 

 소설은 주인공 ‘나’ 에게 새벽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시작한다. 병은 노모의 죽음은 예견되었던 것이다. 소식을 전하는 이부 동생도 애통함 보다는 그저 담담하다. 두 명의 남편을 두었지만 단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던 여자, 마음 속 가득찬 응어리를 누구에게도 풀어 놓지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여자,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여 자식을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다.

 

 작가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어머니를 담아낸다. 일제강점기, 남편에게 버림 받고 홀로 자신을 키우는 가난한 어머니가 얼마나 고된 삶을 살았을지 알면서도 어머니에게 따뜻한 한 마디를 건네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싫어하고 미워했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날품팔이를 하고 일만 하는데도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월사금을 내지도 못했다. 그러니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방학 때마다 찾아가는 외삼촌댁에서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곳엔 자신의 마음을 읽어주는 애숙이 누나가 있었다. 그러나 외삼촌의 중매로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서 동생이 태어나고 나는 더 겉돌았다.

 

 새아버지가 있었지만 여전히 일을 하는 건 어머니 몫이었다. 심지어 외삼촌 가족의 생계까지 어머니가 책임지고 있었다. 아무리 동생이라 해도 왜 어머니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앞둔 애숙이 누나를 야반도주 시키는 어머니가 이상했다.  어머니는 내가 잘못을 해도 호되게 꾸짖지 않고 언제나 죄인처럼 굴었다. 그런 어머니가 보기 싫어 집을 나온 후 연락을 끊고 지냈던 것이다. 어머니를 모시는 동생이 있었기에 경제적인 도움만으로 자식의 도리가 충분하다고 자위했던 것이다. 동생이 기억하여 들려주는 어머니의 인생은 오직 큰 아들만 향해 있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삶 어디에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온 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던 것이다. 한 평생 큰 아들을 그리워하면서도 그립다, 보고 싶다, 말 한 마디를 내뱉지 않았던 것이다. 그 숱한 회한의 시간과 화해할 수 있는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일흔이 넘은 나이를 살면서 어머니를 안쓰럽게 여기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던 적이 없었다. 때문에 소설은 애절하고 눈물겹다. 내 어머니, 내 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져서, 서러운 세월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한 여자의 기구한 운명이 서러워서 아프고 아프다.

 

 ‘무언가 그 깊이나 의미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 주검의 얼굴에 묻어 있었다. 어머니의 표정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면서 죽음이 비참한 종말이 아니라는 듯 편안해 보였다. 그 표정은 지금까지의 삶이 오직 생존만 하는 하찮은 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으로 보였다. 우리가 보통 삶이라고 부르는 것과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장벽도 없다는 것을 증거해 보이려는 듯했다.’ p. 58

 

 문득, 내가 기억하는 주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야윈 육체가 떠오른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온통 가시밭길로 이어졌던 삶을 벗어난 죽음은 평온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어느 누구도 어머니의 삶을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작가의 말처럼 말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살았다. 사람들로부터 유린당하고 희생당하면서도 그런 질곡과는 무관심한 채로 일생을 보냈다. 오히려 그 참혹한 공포심을 끌어안고 흡사 아무런 구애도 없었던 것처럼 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혹은 남의 것이든 진솔하게 끌어안고 살았다. 드디어 어머니는 자신을 찾아온 죽음조차도 아무런 불평이나 두려움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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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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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절로 알게 되는 무언가가 있다. 감출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누군가를 사랑할 때 오는 감정이다. 반면,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도 있다. 그건 역시 사랑이며, 결혼이다. 한 때 사랑하면 반드시 결혼해야 하고, 그럼 저절로 행복해 진다는 생각을 신념처럼 여겼었다. 사랑, 결혼, 행복을 하나로 보았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겨우 사랑, 결혼, 행복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는데 버지니아 울프는 『출항』을 쓸 10대에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원하고, 결혼을 꿈꾸고 행복한 삶을 욕망하는 것까지 말이다.

 

 소설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고모들의 손에 자란 스물 넷의 주인공 레이첼과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레이첼이 그녀의 가족과 지인이 동반한 여행지에서 소설가 지망생인 테렌스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하지만 열병에 죽는 과정을 다뤘다.

 

 버지니아 울프는 레이첼를 둘러싼 다양한 등장 인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사고가 어떻게 다른지, 세대 간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어머니의 부재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오직 피아노만이 전부였던 그녀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민 건 외숙모 헬렌이다. 스물 넷이란 나이에 사랑에 대해 욕망에 대해 무지했던, 아니 경험하지 못한 채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만 살고 있는 조카에게 더 넓은 세상과 더 많은 사람과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녀는 산타 마리나의 빌라에서 지내면서 근처 호텔에 머문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노년의 삶을 즐기고 있었고, 어떤 이는 자유로운 연애와 혁명을 꿈꾸고 있었고, 어떤 이는 수재였고, 어떤 이는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어떤 이는 사업가였다. 레이첼은 그들과 교류를 맺으며 자신이 떠나온 영국의 다른 삶을 알게 된다. 그런 조카를 보면서 헬렌은 레이첼이 누군가를 만나 변화하기를 바랐다. 아니, 젊은 남자와 연애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수재인 세인트와 소설가 지망생인 테렌스가 레이첼에게 다가왔고 그녀는 테렌스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마침내 그를 사랑하기에 이른다. 둘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곧 약혼을 하고 결혼을 약속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레이첼이 열병으로 죽고 테렌스를 절망한다. 레이첼의 내면이 성장하고 서로를 채워주며 삶을 이어갈 동반자를 만났으므로 행복한 결말이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레이첼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출항’의 뜻 그대로 기존의 곳을 떠나 자신의 내면을 찾아 나서는 행위를 더 떠나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것일까. 

  

 ‘그녀는 자기들이 다퉜던 것들을, 특히나 바로 그날 오후 헬렌에 관해 얼마나 싸웠는지를 상기했으며, 그들이 같은 집에 살고 함께 기차를 타며 서로 너무나 달라서 화를 내게 될 30년, 40년, 50년 동안 얼마나 자주 다투게 될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피상적이며, 눈과 입과 턱 아래서 진행되고 있는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삶은 그녀와 관련 없었으며 다른 모든 것과도 관련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시, 비록 그녀가 결혼해서 30년, 40년, 50년을 그와 함께 살며, 그와 싸우고, 그와 아주 가깝게 있다고 할지라도, 그녀는 그에게서 독립적이었다. 그녀는 그 밖의 모든 것에서도 독립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인트 존이 말한 것처럼, 그녀가 이것을 이해하게 만든 것은 사랑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런 독립심, 이런 고요함, 이런 확실성을 그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결코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이것 역시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 밖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소설은 어렵고 아름답다. 인물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나열하고 배경을 자세히 묘사해 지루했지만 흡입력이 강하다. 그건 버지니아 울프의 섬세함 때문이다. 레이첼의 미묘한 심경을 묘사할 때 언제나 거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여준다. 더불어 소설가 지망생인 테렌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시의 구절들은 소설을 돋보이는 역할을 한다.  

 

 철학적인 연애소설이며, 자아를 찾아 나선 성장소설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다양한 인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삶에 대해, 욕망과 결혼에 대해 말한다. 레이철에 통해 한 여성의 자아가 어떻게 확립되는지 보여준다. 아니, 미완의 생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헬렌의 말처럼 말이다. 생은 때때로 당혹스럽고, 때때로 놀라운 일들을 마주하고, 때때로 감탄하며, 때때로 절망하고 절망하면서 계속 살아 나가니 말이다.

 

 “결국, 비록 내가 레이첼을 꾸짖기는 하지만, 나 자신이 훨씬 현명하지는 않아. 물론, 나는 더 나이가 들었고, 거의 인생의 절반은 살았지만, 너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어. 그것은 당혹스런 일이지. ―때로는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아마도 위대한 것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을 발견할거야. ―아, 그래, 너는 확실히 그것이 흥미롭다는 것을 발견할거야. ―그리고 그렇게 계속 살아 나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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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내 손편지의 수신인이었던 너는 나쁜 소년이었다
내가 원하는 천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11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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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읽은 시와 아침에 읽은 시는 분명 같았다. 시를 읽는 눈과 마음이 달랐을 뿐이다. 차례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차분하게 읽는 대신 눈에 닿는 순서대로 시를 읽다가, 다시 차례대로 읽는다. 그러니 시라는 건 읽는다고 읽는 게 아니고 안다고 아는 게 아니며 이해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님이 분명하다.

 

 <나의 마다가스카르 1>

 ―세월 하나 지나갔다

 

  별자리가 천천히 회전을 하는 동안

  우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동안

 

  마다가스카르 항구에선

  이해하지 못했던 노래가 가슴을 치고

  사랑 하나, 서서히 별똥으로 떨어진다

 

  나는 투항했던가

  감당 안 되는 빗물이 길을 막아버린 오늘

  나는 마다가스카르에 투항했는가

 

  젖은 그물에 엉켜 죽어가는 펠리컨을 보며

  비틀스의 해산을 떠올렸다

 

  항구에서의 세월

  나의 마다가스카르에선 세월과 친해질 수 없다

 

  오늘 또

  뼈만 남은 노인이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들짐승처럼 소리 없이 등 뒤를 지나갔다

 

  마다가스카르의 어느 날

  세월 같은 게 하나 지나갔다

 

 허연의 시를 읽으면서 허물어지는 감정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는 내 나이가 괜히 고마웠다. 어린 왕자 속 바오밥나무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던 마다가스카르에서 한 세월을 본다. 몸이 부서질 듯 매달렸던 그 무언가가 지나간 세월 말이다. ‘세월 같은 게 하나 지나갔다’ 란 구절은 최승자의 이런 시를 찾게 만든다.

 

 <한 세월이 있었다>

 

 한 세월이 있었다 / 한 사막이 있었다 //그 사막 한가운데서 나 혼자였었다 / 하늘 위로 바람이 불어가고 / 나는 배고팠고 슬펐다 // 어디선가 한 강물이 흘러갔고 (그러나 바다는 넘치지 않았고) // 어디선가 한 하늘이 흘러갔고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았고) // 한 세월이 있었다 // 한 사막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시는 하염없이 나를 무너지게 만든다. 어떤 대단한 생이 아닌 그저 밥을 먹고 사는 일이, 살아내는 일이 버거워서 분노하면서도 끼니마다 뜨거운 밥을 차리는 슬픈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먹어야 사는 저주는 생의 어느 순간에서든 균일하다’ 라니, 이 군더더기 없이 생을 정리하는 표현에 목이 메인다.

 

 <역류성 식도염>

 

  어떤 처량함이 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밥 알

 갱이들이 한 알 한 알 조개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자꾸 집중하다 보면 손이 움직이고, 입이 열리고, 밥

 알갱이들이 어두컴컴한 통로로 쏟아져 들어가는 일이

 마치 석탄을 파내서 트럭에 싣는 일 같기도 하고, 불

 구덩이 위에 뿌리는 일 같기도 하다. 이 동작을 반복

 하다 울컥하는 순간이 있다. 밥을 퍼 넣는 손이 포클

 레인처럼 보이는 너무나 슬픈 순간이 있다. 손에 피

 가 돌지 않는 그런 순간이 있다.

 

  나의 식도는 자주 막힌다. 막힌 통로에 적당한 시

 간 차를 두고 뭔가를 털어 넣어야 하는 건 아주 오래

 된 저주다. 먹어야 사는 저주는 생의 어느 순간에서

 든 균일하다. 이빨 하나 남지 않은 입을 오물거리며

 감당하기 힘든 크기의 수저를 빨고 있는 노인네를 볼

 때마다 나는 그 입가의 조개껍질 같은 주름을 저주했

 다. 먹다가 생긴 주름.

 

 <천국은 없다>

 

  사랑은 하필 지긋지긋한 날들 중에 찾아온다. 사랑

 을 믿는 자들. 합성섬유가 그 어떤 가죽보다 인간적

 이라는 걸 모르는 자들. 방을 바꾸면 고뇌도 바뀔 줄

 알지만 택도 없는 소리다. 천국은 없다.

 

  사랑이 한때의 재능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은 인

 간에게 아주 빨리 온다. 신념은 식고 탑은 무너진다.

 무너지는 건 언제나 상상력을 넘어선다. 먼지 휘날리

 는 종말의 날은 생각보다 아주 짧다. 다행히 지칠 시

 간은 없다.

 

  탑의 기억이 사라질 즈음

  세상엔 새로운 날이 올 것이다.

  지긋지긋한 어떤 날이.

 

  <편지>

 

  적어놓은 건

  반드시 벌로 돌아온다

 

  밤새 쓴 편지를

  감히 다시 볼 수 있는 자는 많지 않다.

  세상에 모든 편지에는 죄가 많아

  인간은 밤새 적은 편지에

  초라해진다

 

  편지를 받는 모두는 십자가에 매달린다

 

  적어놓은 것이니

  세상에 남는 법

  적은 자들은 늘 외롭고

  벌을 받는다

  적어놓은 죄, 기록한 죄

  편지는 오늘도 십자가에 내걸린다.

 

  적은 자의 하루는 슬프고

  내걸린 편지는 세상의 어느

  호리병 속으로 들어가

  영원히 남겨진다

  편지를 쓴 죄

  그리움 같은 것을 적은 죄

 

 먹고 사는 일의 버거운 가운데도 우리는 사랑을 갈구한다. 그렇다. 하필 지긋지긋한 날들 중에 사랑이 찾아오고 그리움과 연민이 쌓여가고 무언가를 꿈꾸게 만든다. 아니, 사랑이라는 게 지긋지긋한 날을 변화시킨다고 어리석은 믿음을 키운다. 사랑이 있던 날도, 사랑이 사라진 날도 그저 지긋지긋한 어떤 날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같은 일들을 반복하고 반복한다.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쓰는 일, 다시 읽을 수 있는 용기조차 사라져 버린 날들, 그럼에도 벌을 받을 각오로 기록을 멈추지 않는 밤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쩌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지긋지긋한 날들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방법이 아니겠는가.

 

  <내가 원하는 천사>

 

  천사를 본 사람들은

  먼저

  실망부터 해야 한다.

 

  천사는 바보다.

  구름보다 무겁고,

  내 집게손가락의 굳은살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천사는 바보이고

  천사는 있다.

 

  천사가 있다고 믿는

  나는

  천사가 비천사적인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사를 떠올린다.

 

  본드 같은 걸로 붙여놓았을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 천사.

  허우적거리다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

 

  진흙에 범벅되는 하얀 인조 깃털

  그 난처한 아름다움.

 

  아니면

  야간 비행 실수로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

  불시착한 천사

 

  가까스로 매달린 채

  엉덩이를 내보이며

  날개를 추스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니면

  비둘기 똥 가득한

  중세의 첨탑 위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측은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 망연자실.

 

  내가 원하는 천사다.

 

 사랑뿐 아니라, 우리의 생은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에게 빚이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시를 통해 그 빚을 갚고 싶은 건 아닐까. 이렇게 귀여운(주관적인 느낌이다)시를 써준 그가 고맙다. 누구나 고귀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떠오를 천사를 그만의 언어로 현실감 있게 등장시켰으니 말이다. 잡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다고 믿은 천사를 우리는 쉽게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우리의 가까운 곳에 천사는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시 우리는 이미 천사와 밥을 먹고, 천사와 수다를 떨고, 천사와 친구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만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 울적하면서도 유쾌한 이 시가 좋다. 시인의 의도는 다를지라도 나는 좋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란 시집에서 언제나 나를 붙잡았던 시는 <살은 굳었고 나는 상스럽다> 였다. 이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에서 나를 울먹이게 하는 시는 바로, 이 시다. 덧칠하면서 사는 나이를 나는 알 것 같다. 칠해진 색들 위에 다시 무언가를 칠하지만 원하는 색을 만들 수 없다는 어떤 좌절감, 어떤 절망감을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덧칠을 한다. 덧칠을 하는 하루를 지내고 늘어나는 두께만큼 욕망은 줄어들고, 지긋지긋한 어떤 날들 중의 하루 뿐인 오늘도 서글프게 흘러간다.

 

 <덧칠>

 

  덧칠하면서 사는 나이다. 낡은 목선에 켜켜이 붙어

 있는 페인트의 두께에서 어떤 절지동물 사체들이

 혀 있는 굴곡이 보인다. 기생하면서 살아온 것들, 고

 래와 목선을 구분하지 못했던 것들, 그 위에 덧칠된

 울퉁불퉁한 굴곡들. 뜨거운 게 치밀어 올라온다. 난

 오늘 덧칠을 시작했다.

 

  목선에 들러붙은 지독한 것들에게. 온몸이 가려워

 지는 그들의 생존 방식에 대해 짠물에도 살아남은 그

 들의 묵묵한 인내에 경배한다. 하나하나의 이름은 모

 른다. 하지만 진화에서 빗겨 나간 과묵함이 눈물을

 핑 돌게 하는 풍경임은 분명하다. 나는 얼마나 작은

 가. 숨죽이며 발목을 잡는 건 자책이다. 짠물에 씻겨

 나가지 않은 사체의 세월이 나의 노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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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11: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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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1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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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2-05-2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집을 사면 모든 시가 다 좋지 않잖아요? 이 시집도 자목련님이 올려주신 시가 좋아서 사고 싶다 하다가 이게 다일 거야 이러고 말아요. 시집 잘 안 사거든요. 생각해보니까 시를 읽지 않아서 내가 말이 많구나..( '') 이런 생각이 들어요. orz

자목련 2012-05-25 12:44   좋아요 0 | URL
음, 이런 비교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가수의 테입(그러니가 시디가 아닌)을 사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요.
모든 노래가 좋지는 않지만 그를 좋아하니까 아무렇지도 않았거든요.
시도 그런 것 같아요. 모든 시를 다 좋아하지도 않고 많은 시인들을 알지도 못하지만 말이에요.

비가 보고 싶은 날이에요. 더워지고 있으니, 바다고 보고 싶고.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는데도 바다를 보는 일은 어려워요. 아이리시스님의 바다는 어떤가요? 잘 지내나요? (좀 이상한 질문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