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별은 언제나 아프다. 잠깐의 이별이든 영원한 이별이든 그렇다. 원하지 않은 그것이라면 어떤 후유증을 남기기도 한다. 사랑하던 연인과의 이별 그 자체보다는 왜 헤어져야 하는지 원인을 알지 못할 때, 당혹스럽다. 해서 이별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이는 헤어진 연인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어떤 이는 오랫동안 지난 시간 속에 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이별을 새롭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사랑이 끝났음을 인정하고 그 터널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이 있다. 소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속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별은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연은 언제나 뒤로 온다.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 감각을 일시에 집어 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p. 56~57

 

 주인공 사강과 지훈은 모두 이별했다. 승무원인 사강은 조종사인 유부남 정수에게 이별을 통보했고, 기업 교육 강사인 지훈은 동창인 오랜 연인 현정에게 통보를 받았다. 둘은 우연하게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에 참석한다. 아침 일곱시에 실연당한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버리지 못한 사랑의 징표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다. 실연이라는 감정을 견디는 이가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것이다. 한데, 과연 그럴까? 흔하디 흔한 사랑이라는 감정도 내게로 오면 혼자만의 그것이 되듯, 이별 역시 그러하다. 모든 감정이 그렇듯 함께 나눌 수 없고 함께 견딜 수 없다.

  

 책은 사강과 지훈의 이별 과정을 들려주며 이별 후에 시작되는 사랑에 대해 묻는다. 아니, 사강과 정수가 벗어날 수 없었던 맨 처음 상처와 이별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강과 정수에게는 언제나 어떤 이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살아 온 사강에게는 아버지의 부재가 그러했고, 같은 날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 해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유언으로 부탁한 아픈 형이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강은 정수와 반드시 이별을 해야 했고, 정수와 현정에게 이별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백영옥은 내내 담담하게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과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조금은 객관적인 시선으로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소설 속 미도라는 인물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듯하다. 미도는 연인과 이별했지만 어떤 감정 소모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삶은 이별의 연속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에 다니 미도가 현정의 의뢰를 받고 실연당한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커플을 맺을 수 있다는 기막힌 발상을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랬다.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이란 모임은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날 때마다, 들리지 않는 것들이 들릴 때마다 사람은 도리 없이 어른이 된다. 시간이 흘러 들리지 않는 것의 바깥과 안을 모두 보게 되는 것. 사강은 이제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로 했다.’ p. 413

 

 ‘‘고마워’로 시작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힘들다. 상대보다 힘들어지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은 이별이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로 새겨질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의 지훈에게 그것은 운동장을 빠르게 뛰는 현정의 뒷모습으로 기억될 것이었다. 미안해’로 끝나는 사랑보다 고마워’로 끝나는 사랑 쪽이 언제나 더 눈물겹다.’ p.  417

 

 사강과 지훈은 이제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별한 후에 다가오는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 것이며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스스로가 낸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고, 누군가의 아픔도 제대로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은 이별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별이라는 소재를 아름답게 담은 소설이다. 이별의 아픔을 통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시간 동안 나눠야 할 인사는 이별이 아닌 만남의 인사라는 걸 잊지 말라고. 그래서 더 아프지만 이별의 그늘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소설일 것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리시스 2012-07-17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강이 나와요?(주인공 이름이군요!) (뜬금없지만) 저는 그 감독 좋아해요.. 이사강.. 장편영화는 없지만요! 참 예쁜데 그래서 배우했어도 될 것 같은데 감독이 돼서 근데 장면영화가 없어서 10년이 지나가는데 아직도 배용준 전여친으로 알려졌어요. 그 감독이 사강을 좋아해서 사강이 됐다던가 여튼 그랬었거든요. 정작 지난 달엔가 읽은 <슬픔이여 안녕>은 별로 감흥이 없었어요.

표지가 참 예뻐서 그때 혹했지만.. 뭔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포스였거든요. 제목이 참 예쁜데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 소설이에요? 저는 현대작가들의 특출남을 잘 모르겠어요. 막상 읽어보면 코드에 맞지도 않거든요. 아..그러니까 여기서 현대작가는 1970년대생 이상.. 2000년도 이후에 등단한..

자목련 2012-07-17 23:59   좋아요 0 | URL
주인공 이름이 사강이라, 사강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요. 알아요, 그 이사강. 분위기가 좋아요.

작가의 나이(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작가들)는 점점 어려지고, 그래서 때로 선택하기 어려워요. 저와 같은 세대를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 혹은 그 이전의 작가들의 삶이 좋아요. 그럼에도 전 지조없이 신간을 먼저 읽고 있어요. ㅎㅎ

2012-07-18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9 0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19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특이해서 좋아요. 그리고 인용하신 구절들이 좋아서 재밌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나눠야 할 인사는 이별의 인사가 아니라 만남의 인사란 말도 좋습니다.^^

자목련 2012-07-20 09:35   좋아요 0 | URL
정말 특이하죠? 소설은 담담해요.
때문에 작가에 대해 칙릿소설을 쓰는 작가란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조금은 옅어졌어요. ㅎㅎ
 
마당을 나온 암탉 (반양장) - 아동용 사계절 아동문고 40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힘든 환경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힘을 얻는 건 꿈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건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의 모습이거나 차곡차곡 불어나는 적금통장 갯수 이거나 언젠가 꼭 이루고 싶은 소망 리스트가 될 것이다.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과정이야 말로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그 꿈 때문에 좌절하기도 한다. 내게 너무도 소중한 꿈이 누군가가 비웃음을 받거나 실현 불가능한 일로 치부될 때 말이다. 그러기에 더 간절하게 꿈을 소망하는 건 아닐까. 

 

 단 한 번도 알을 품어 병아리의 탄생을 보지 못한 암탉에게도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 엄마가 되는 것이다. 양계장 철망에서 알만 낳다 죽을 수 없었다. 매일 철망에서 바라보는 아카시아 잎사귀처럼 귀한 존재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잎싹’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어쩌면 그게 시작이었는지 모른다. 암탉이 아니라, 잎싹이란 특별한 이름을 가졌으니 앞으로 스스로를 더 사랑할 것이다. 

 

 더이상 알을 낳지 않아 쓸모 없는 닭이라 여겨 철망 밖으로 나온 잎싹은 새로운 세상과 마주한다. 족제비란 무서운 상대가 있었지만 뭐든지 헤쳐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호락호락 잎싹을 받아주지 않았다. 마당 식구들은 모두 잎싹을 거부했다.  친구가 되어준 청둥오리마저 사랑에 빠져 잎싹은 매일 족제비와 사투를 벌이며 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잎싹은 버려진 알을 발견하고 품으며 엄마가 될 준비를 한다. 여전하게 족제비는 잎싹을 노리고 이상한 건 청둥오리가 필사적으로 잎싹을 보호하는 거였다. 병아리가 태어나고 청둥오리가 죽고서야 자신을 보호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잎싹의 아기는 병아리가 아닌 오리였던 것이다. 

 

 상관없었다. 잎싹은 아가의 엄마이니 뭐든지 할 수 있었다. 청둥오리가 그랬던 것처럼. 족제비를 커가는 아가는 잎싹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어 족제비로 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아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다. 그런 아가에게 잎싹은  ‘초록머리’라는 고운 이름을 붙여준다. 물가의 오리들과 어울릴 수 없는 초록머리는 마당 오리들과 함께 살고 싶어한다.  

 

 잎싹은 절대 그곳에서 살 수 없음을 알지만 초록머리를 말리지 못한다. 자식이 원하는 건 뭐든 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인 것이다. 양계장 주인은 잘 자란 초록머리를 묶어 두고 이를 본 잎싹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  틈을 봐서 있는 힘껏 부리로 양계장 주인을 쪼아대고 초록머리는 도망친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는 순간, 위대한 모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잎싹은 초록머리가 청둥오리 무리와 함께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품에서 자식을 떼어 놓는 그 마음은 얼마나 아플까. 자신의 날개를 펼쳐 날아가는 초록머리를 보는 게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족제비는 여전히 잎싹과 초록머리를 노리고 있었다. 새끼를 먹여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우연하게 족제비의 새끼를 발견한 잎싹은 족제비도 엄마였다는 걸 알게된다. 그 새끼들을 위해 엄마라는 이유로 족제비에게 잡혀 죽음을 맞이한다. 결코 두려운 죽음이 아닌 엄마의 희생이었다.

 

 잎싹도 나그네 청둥오리도 족제비도 모두 부모였던 것이다.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라서 그럴까. 자식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고 희생하는 부모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양계장의 철망 속에서 그저 주는 먹이 먹고 알을 낳는 삶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던 일들이다. 용기를 갖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도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바랐던 소망을 이뤄 낸 잎싹의 삶이 정말 멋지다. 모든 시련에 주저하지 않고 당당하게 헤쳐 나간 잎싹. 그랬기에 초록머리도 자신의 꿈을 찾아 비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시작하게 도와준 잎사귀, 정말 위대하다. 

 

 “잎사귀는 꽃의 어머니야. 숨쉬고, 비바람을 견디고, 햇빛을 간직했다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키워 내지. 아마 잎사귀가 아니면 나무는 못 살 거야. 잎사귀는 정말 훌륭하지. 7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 - 여성 작가들의 아주 은밀한 섹스 판타지
구경미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맞는 사람과 나누는 수다는 즐겁다. 뒷감당을 걱정하지 않고 때로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도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내밀한 사이여야만 할 수 있는 주제일 경우 은밀한 감정까지 교류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 그 주제가 은밀한 섹스라면 수다가 시작되기 전부터 떨릴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작가 여섯 명(구경미, 김이설, 김이은, 은미희, 이평재, 한유주)이 들려주는 수다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를 읽기 전부터 설레였다.

 

 김이설의 <세트 플레이>는 주인공(성철) 고등학생의 탈선을 과감하게 보여준다. 채팅으로 만남을 유도해 아줌마와 관계를 갖고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하는 이야기다. 갈취한 돈으로 피시방 게임비를 내고 좋아하는 여자애와 노래방에 가는 게 전부였다. 단순하게 돈이 필요했고 섹스는 어렵지도 않았다. 술에 찌든 아빠에게 맞아 반신불수가 된 형, 부업 상자를 끼고 사는 엄마, 아무도 성철에게 관심이 없었다. 성철은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뉴스에 나올 법한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평재의 <크로이처 소나타>는 남녀 사랑과 욕망에 음악을 더한 이야기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났을 때 서로를 탐구하고 다가가며 사랑을 나누는 과정을 베토벤의 소나타 ‘크로이처’의 연주와 함께 들려준다. 섹스와 음악은 묘한 어울림이 있다. 때로 강렬하게 때로 부드럽게 음악이 흐르듯 사랑의 강약에 대해 말하는 듯하다. 때문에 이 단편은 사랑보다는 베토벤의 음악이 더 강하게 남는다.

 

 김이은의 <어쩔까나>는 격정적인 사랑을 말한다. 양반댁 주인 아가씨와 노비의 사랑으로 조선시대의 사랑 이야기다. 사랑 때문에 전부를 버릴 수 있고, 사랑 때문에 죽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사랑이 언제나 은밀하고 달콤한 건 아니라고 말하는 소설도 있다. 한유주의 <제목 따위는 생각나지 않아>에서 사랑은 권태로운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한 때는 절절하게 사랑했을 사이지만 남은 건 드러나지 않은 증오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외면하는 것이다. 구경미의 <팔월의 눈>에서 주인공에게 사랑은 사치였고 제목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스스로 상처를 만들기도 한다. 은미희의 <통증>에서 주인공의 사랑이 그러했다. 연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그 자체가 상처이자 통증을 안긴다. 부질없는 일이지만 끊임없이 남자의 연인을 미워하고 질투한다. 남는 건 지독한 통증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사랑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사랑을 들라면 연민일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연민이었고 자기애였다. 열정적인 사랑이야 그 뜨거움이 가시면 시들해지지만 연민은 질기고도 끈질겼다. 상대가 어떤 자세를 취하든, 그 연민은 새록새록 자가발전하면, 스스로를 부추겨 세우고, 더 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그렇게 그렇게 상대에게 흐르곤 했다. 그 희생적 사랑도 자기만족이 없으면 하지 못하는 법. 타인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느끼고 행복해하는 점에서 모든 사랑의 본질은 자기애였다. 사랑은 불가항력적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행복해지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던가. 처음부터 상처받고 아픔을 생각하며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없다. p. 218~219

 

 여섯 작가가 들려주는 사랑 혹은 섹스는 은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팠고 쓸쓸했다. 어쩌면 은밀한 그것이 아닌 잊고 있던 어떤 지난 날이나 감정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그것은 달콤한 사랑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그것은 날카로운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지속되는 통증인지도 모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7-02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04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외 지음 / 레디셋고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기묘하거나 슬픈 일은 어디서든 일어난다. 다만 알려지지 않을 뿐이고 그 주체가 내가 아닐 뿐이다.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기에 그저 함께 놀라고 아파하며 살아 간다. 그렇기 때문에 기이한 삶이 아닌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이다. 그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다. 여덟 조각의 삶이라 할 수 있는 여신과의 산책에서도 기이한 일은 벌어지고 여전하게 고통과 우울이 흐르고 삶과 죽음은 이어진다.

 

 기이한 일부터 말하자면 이지민의 <여신과의 산책>이 그렇다. 소설의 주인공 여신에게 일어난 일로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들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니까 여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모두 부모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는 말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반복된 경험은 여신에게는 고통의 기억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간절하게 여신의 우연한 힘을 원하니 참 아이러니 하지 않은가. 아이러니 한 것, 그게 삶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삶 속엔 죽음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말하는 한유주 <나무 사이 그녀 눈동자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네>감각적이고 매혹적이다. 주인공은 암에 걸린 소설가다. 치료가 아닌 스스로 죽음을 실천하기 위해 이국의 나라에 도착한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에서 어쩌면 삶의 마지막 풍경일지 모르는 그곳을 묘사한다.

 

 폭이 좁은 2층 베란다에 젖은 빨래들이 널려 있다. 나는 잠시 빨랫감들이 마르기를 기다린다. 빨랫감들이 흔들린다. 나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5분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므로 2층 베란다에 축 늘어져 있는 누군가의 빨랫감들은 나의 5분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그러나 그 5분 동안 빨래들은 전혀 마르지 않는다. 젖은 빨랫감들이 여전히 무겁게 늘어져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살의를 느낀다.’  p. 51

 

 소설은 마치 죽음을 마중하러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삶에 대한 부정할 수 없는 애착을 느낀다. 고요하고 담담한 글을 통해 드러내지 않은 고통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죽음을 동반한 삶을 써 내려간 문장은 때로 슬프고 때로 아름답다. 죽음을 염두하며 사는 삶은 없겠지만 한유주의 소설은 언제일지 모르는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이제 가장 현실적인 삶을 들려다 본 소설이다. 김이설의 <화석>과 박솔뫼의 <차가운 혀>는 전쟁같은 우리네 하루하루를 현실감이 있게 보여준다.  <화석>은 유부녀인 주인공이 첫사랑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20대의 뜨거운 사랑이 아닌 불륜의 관계를 통해 정확한 현실을 인지하게 한다.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버거운지, 우리 시대에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도니 일상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죽은 후 화석으로 남아서라도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해결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인정하는 허무한 삶 말이다.

 

 ‘나는 다시 파견 업체를 통해 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모카빵을 가위로 자르거나, 반찬 코너 시식대에서 주부들을 불러 모았다. 매일 다리가 퉁퉁 부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남편의 술자리는 줄어들지 않았지만 선배 사무실에서는 첫 월급을 받았다. 여름휴가 계획도 세웠다. 아이가 바라던 대로 바다에 가기로 했다. 아이에게 생애 첫 바다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게 참 기뻤다. p. 110

 

 <화석>이 30~40 대의 모습을 다뤘다면 박솔뫼는 <차가운 혀>를 통해 청춘의 시간을 말한다. 경쟁이 가득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변화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세상과 우울과 권태로 마주하는 화자의 하루는 쓸쓸하기만 하다.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나와 여자 친구와 사장의 관계를 통해 소통과 단절을 말한다. 나에게 시간을 활용하라고 말하는 사장은 어쩜 기성 세대를 대표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달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외침 같다.

 

 ‘여전히 나는 모든 게 같다고 생각해. 시간은 천천히 흐르지만 하는 일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시간이 빠르다고 해. 그리고 그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한다. 언젠가부터 시간은 천천히 흘렀다. 나는 내 시작이 그랬던 것 같다. 시간이 빨리 흐른 적이 없었다. 늘 하루가 길기만 하다. 태어날 때부터 지루하고 이미 늙은 사람 같다. p. 325

 

 나머지 사랑과 이별로 아파하는 박주영의 <칼처럼 꽃처럼>, 인간의 의식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재치있게 그린 박상의 <매혹적인 쌍까풀이 생긴 식물인간>, 혼혈 여자친구와 방위병이 서로의 자아를 찾아가는 해이수의 <뒷모습에 아프다>, 가사의 미래에 닥친 대 한파로 동면하는 인간을 다룬  권하은의 <그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까지 다양한 삶이다.

 

 어떤 삶은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고, 어떤 삶은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닮아 섬뜩했고, 어떤 삶은 한 번쯤 일어날 법한 일이라 놀라웠다. 조각 조각 이어진 삶 속 우연과 필연을 가만히 떠올린다. 때로 날카로운 통증처럼 때로 달콤한 사탕처럼 마주하게 될 우연과 필연이 계속 될 거란 사실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하는 대로 욕망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불현듯 발견한 자신의 욕망에 화들짝 놀라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 욕망으로 인해 또 다른 욕망의 싹을 키우는지도 모른다.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는  숨겨두거나 몰랐던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도 괜찮다고 말하다. 아니, 때로는 욕망하라고 말하기도 하고 욕망하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건 나와 당신, 우리 모두의 살아 있는 이야기이며, 살아 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는 그의 말처럼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나부터도 번듯한 직장, 단란한 가정, 사회에서 인정받는 지식으로 살고 있는 그가 드러내지 못한 욕망이 얼마나 있겠냐며 딴지를 걸고 싶으니까. 먹고 입고 사는 일만도 힘든 세상인데 욕망을 들여다 보고 있을 이가 몇 명이나 될까. 물론 욕망이라는 게 무책임한 일탈이나 악의 실천이나 사회 규범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욕망은 참을 수 있으면 참아야 한다고 교육 받아 온 우리가 아니던가. 사춘기 시절 무한하게 확장되는 호기심도 어른이 되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었고, 집 장만을 위한 저축이 아니라 폼 나는 외제 자동차나 보석 같은 사치품을 위해 돈을 모은다고 하면 정신 나간 이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아이들에게도 조그만 참으면 괜찮다고 말하고, 나중에 라는 말로 달래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한다.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제시한다. 대중적인 영화나 책을 통해 설명하기도 한다. 세간의 모든 시선이 주목했던 신정아 사건, 존경받은 목회자의 동성애자 고백을 한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욕망을 말하고, 자신이 내면을 인정하는 게 욕망이라 말한다. 가장 쉽고 가깝게 자신의 욕망을 들려줌으로 공감을 얻는다. 자신의 집안 환경과 가족 이야기를 통해 타인의 시선에 비춰진 인정과 욕망이 아니라, 나 스스로 갈망하는 삶에 대해 인정받고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자신의 가족사나 부모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건 바로 누구의 아들로 교수로, 종교인으로 정해진 길을 걷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는 여전히 과하게 술을 마시거나 언론을 통해 올리는 글에 격한 감정이나 사회에 반하는 글을 올리지도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이 시작인 것이다. 소년 시절의 욕망이 어른이 되어 카메라를 사는 일로 이어지는 일처럼 어느 순간에 오랜 시간 참아온 욕망과 숨겨둔 갈망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그 욕망의 종류와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욕망이라는 녀석은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기를 꿈꾸고 갖지 못한 무언가 소유하기를 바란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인다. 나 역시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으니까. 입고 싶은 옷이나 하고 싶은 머리 모양을 주저하는 건 시선 때문이다. 내 나이를 생각하고, 과연 해도 될까 하며 주저하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와 같은 세대의 누군가가 내가 하지 못하는 행동이나 옷차림을 할 때 부러워하는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는지 생각한다. 저자도 그랬다. 연애 상담을 하는 제자들이 딸의 경우엔 어떻게 할 거냐 물었을 때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욕망에 대해 어떤 용기가 생긴 것이다. 무조건 욕망을 참는 대신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게 훨씬 행복하고 현명한 삶이라는 걸 확신하게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내면에 꿈틀거리는 욕망을 잘 다독이며,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고, 깊은 내면을 이웃과 나누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 주변에는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혼자서도 행복할 줄 아는 개인, 사냥꾼의 고아기 속에서 남을 지켜주려는 따뜻한 이웃,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동지 들이죠. 그런 개인들과 아주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이 험한 정글 속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합니다.’ p. 301

 

 어쩌면 그가 말하는 욕망해도 괜찮다는 말의 숨은 의미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삶의 변화를 위한 작은 용기, 욕망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누군가 내민 손을 잡을 수 있는 용기,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들이 결국엔 나를 살게 하고 당신을 살게 할 거라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2-06-22 17: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3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23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가 잘 된 리뷰입니다. 우리 사회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으니까 이 책의 메시지는 새길만 하군요. 저부터 말입니다.

자목련 2012-06-23 08:08   좋아요 0 | URL
다양한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책이에요. 중년층에게는 묘한 향수와 추억을 불러오기도 하고,청춘이라 불리는 세대에게는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젠 아침부터 더워지려 해요. 여름이니까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하구요. 시원한 하루 시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