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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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 현재의 나를 만든 모든 과정이 그러하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컨페션이 말하는 건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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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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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 평범에 감춰진 비범을 알지 못하면서 평범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남들처럼 사는 일, 보통의 일상을 말한다. 평범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지 않고 말한다. 하루하루 출근을 하는 일, 하루하루 나와 상대를 견디고 살아가는 일, 작고 소소한 것들에 기쁨을 누리고 함께 축하하고 웃을 일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얼마나 위대한가. 후지오카 요코의 소설 『어제의 오렌지』 속 료가도 그랬을 것이다. 도쿄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장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명절에 엄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고 교사인 동생 교헤이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는 삶을 말이다.


속이 아픈 일도 그냥 위경련이나 소화가 안 되는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서른셋의 나이에 위암이라는 진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왜 나냐고 따지는 게 당연하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입원과 수술과 치료를 시작한다.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료가는 동생 교헤이가 보낸 택배를 받는다. 열다섯 살 무렵에 동생과 설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당시 신었던 오렌지색 운동화였다.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어린 료가는 눈보라를 헤지며 길을 찾았고 구조되었다. 료가는 그때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위암에 걸린 료가의 일상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어진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 야다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서로를 기억하는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료가와 쌍둥이 교헤이에 대해 안부를 묻는다. 료가와 동생 교헤이는 진짜 쌍둥이는 아니지만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료가와 교헤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부모님에게 묻지 않았다. 료가의 수술과 간호를 위해 도쿄로 온 엄마는 그런 두 아들이 안쓰럽다.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 낳은 아들 교헤이보다 료가를 신경 쓰지 못한 게 아닐까 자책감이 든다. 교헤이가 시작한 야구를 함께 하라고 한 일부터 형이라는 책임을 안겨준 일, 모든 게 마음이 아프다.


소설은 이처럼 료가와 연견될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재혼한 엄마와 소원한 관계를 상처를 웃는 얼굴과 긍정적인 모습으로 감추는 야다, 자신이 부모님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교헤이, 그들은 료가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격려한다. 이상하게 료가와 대화를 하면서 비밀 아닌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료가의 항암 치료는 받으면서 고향에서 치료받기로 결정한다. 교헤이는 퇴근 후 료가를 자주 찾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고 항상 바쁘게 일하던 엄마를 떠올린다. 자신을 친 아들로 여기도 키워준 엄마.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생각한다. 열다섯 살 설산에서 조난을 겪은 후 그 마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간다는 건, 잡초를 뽑는 일하고 똑같아. 잡초가 모든 정원庭에 자라나는 것처럼 가정家庭이라는 정원에도 자라나거든. 그래서 엄마는 매일 이렇게 잡초를 뽑는 거야. 가족 모두의 마음에 언제나 깨끗한 정원이 있게끔.” (234쪽)


야다가 료가의 방문 간호사로 나타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료가는 야다에게 교헤이와의 관계를 털어놓고 야다도 고교 시절 료가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료가는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고 열다섯 살의 교헤이와 등반을 했던 산에 오른다. 열다섯의 교헤이와 료가는 산에서 내려와 부모님에게 쌍둥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고 말하기로 했다. 하지만 죽음에서 살아온 후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지금 이대로의 가족으로 충분하다는 걸 느꼈다. 현재의 료가도 마찬가지다. 힘겨운 등반길에서 료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가족들의 사랑을 생각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사람은 계속해서 삶을 걷다가 이윽고 어딘가에서 그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조금도 대수로울 것 없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346쪽)


등산로와 산을 뒤덮은 나무들과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불그스름히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현실 세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아픔과 권태감마저도 희미해져 가는 듯했다. 슬픔과 공허함조차 멀어져 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시간. 조약돌이 바다에 가라앉듯 의식이 서서히 흐려져갔다. (363쪽)


후지오카 요코의 소설 『어제의 오렌지』는 모두가 주인공인 가족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초반에는 암 투병을 하는 료가가 완치를 받지 않을까 기대했다. 료가가 치료를 받는 과정은 고통과 절망보다는 어떤 희망과 긍정이 있다. 그의 곁에는 든든한 친구와 동료 가족이 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료가는 행복했고 삶에 감사했다.


나는, 나답게 살아온 것이다. 아등바등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주위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336쪽)


어쩌다 보니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읽게 되었다.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만든 가족, 내가 만든 가족. 가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하는 소설이다. 저마다의 평범한 삶을 응원하며 가족과 함께 읽으면 좋을 소설이라는 진부한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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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5-09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달에 걸맞는 소설이네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문장이 떠올라요.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행복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게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자목련 2022-05-10 11:47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지금으로도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기억의화가 님도 그런 행복이 가득한 날들 보내세요^^
 
욕조가 놓인 방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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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순간 세상은 두 사람만 사는 공간이 된다. 그들이 어디 있든 마찬가지다. 연인들은 최초의 하늘과 땅을 가진 에덴의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이 거주하는 양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다. 연인 이외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연인은 연인 말고는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랑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기술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세계는 두 사람만 존재하는, 아주 좁은, 이제 막 태어난 세상이다. (42~43쪽)


사랑을 말하는 일은 어렵다. 그것은 삶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과 당신의 사랑이 같을 수 없고 설령 같다 해도 그 사랑의 지속 유무에 따라 사랑은 달라진다.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도 사랑의 방식은 같을 수 없고 그로 인해 철옹성 같았던 사랑은 금세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어쩌면 사랑의 약속이나 사랑의 언약 같은 건 처음부터 지켜질 수 없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대한 담론, 사랑에 대한 정의 혹은 그저 사랑일까 싶은 사랑 이야기를 생각한다. 이승우의 소설 『욕조가 놓은 방』에 대해서 말이다. 소설은 분명 사랑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등장하고 그들은 분명 서로 끌렸고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잠깐 짚어야 할 게 있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했던가, 아니다. 그저 스스로가 확신을 가졌을 뿐이다. 이국의 출장길에서 우연한 만남이 그에게 믿음을 주었다. 신비로운 마야인이 만든 피라미드에서의 만남과 충동적인 키스. 그것은 사랑의 시작이었을까?


남자에겐 아내가 있다.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이별의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H 시로의 파견, 아내는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 오히려 남자는 안도했다. 그리고 떠오른 그녀. 그녀가 H 시에 살고 있다는 건 운명일까. 이 역시 남자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렇게 어이없는 확신을 안겨주니까.


그녀는 그를 기억하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녀에겐 그는 사랑이라 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에게 빈 방을 내준다. 그녀가 그를 받아들인 건 사랑일까. 그럴 수 없다. 두 해 전 비행기 사고로 남편과 아들을 잃은 그녀에게 사랑은 사라졌다. 그녀가 원하는 건 사라지는 일. 따뜻한 물속으로 걸어가 멀리 옮겨지는 일. 방에 놓인 욕조의 물속에서 그녀가 편안을 느끼는 이유이다.


그의 욕망은 그녀를 원하고 향하지만 발현되지 못하고 사그라든다. 자신의 집으로 그를 이끈 건 그녀였지만 그녀를 떠난다. 그를 힘들게 하는 건 물소리였다. 그녀가 편안함을 느끼는 물, 욕조가 놓은 방은 그를 불편하고 힘들게 했다. 그는 그녀를 통해 아내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결혼 후에도 C 시를 찾는 아내. 처가 때문이 아니란 걸 알았다. 아픈 K를 만나러 가는 사실을 그는 묵인했다. K의 죽음을 그에게 전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그녀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마야 유적지 욱스말에서의 찰나의 순간을 그는 운명이라 믿고 싶었을까. 그것이 두 번째였고 H 시에게 만남까지 이어졌으니까. 그녀의 집에서 나온 후 다시 그녀의 집으로 향하기까지 그는 생각한다. 확실한 이유를 찾기 위해, 스스로를 납득시킬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녀의 집에 남겨진 그의 물건을 찾으러 가라는 그녀의 연락이 없었더라면 그는 움직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없었다. 덩그러니 욕조만 놓여 있었다. 그는 그녀처럼 욕조에 들어간다.


당신은 아늑했고 편안했다. 저절로 눈이 감겼다. 몸이 허물처럼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잠들었다가 다시 눈을 뜨고 일어나면 전혀 다른 삶이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당신이,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의식의 안쪽, 또는 욕망의 밑바닥에서, 거의 언제나 너무나 간절히 소망해 온 것이었다. 지금과는 다른 삶. 당신은 그녀만이 아니라 아내도 이해할 수 있을 듯싶었는데, 그러나 그것은 착각일 수도 있고, 착각이라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119쪽)


이승우의 소설 『욕조가 놓은 방』은 작가의 『사랑의 생애』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발표 순으로는 『욕조가 놓은 방』이 먼저지만 두 소설을 읽는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내게는 『사랑의 생애』를 먼저 읽은 게 다행으로 여겨진다. 『욕조가 놓은 방』은 『사랑의 생애』에 비해 아주 짧은 분량이지만 그 안에 담긴 사랑의 형체나 질감은 모호하여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마치 사랑이 그렇지 않냐는 듯.


달빛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일렁이고 있었으니까. 바다 위에서 일렁이던 달빛. 물의 속살을 탐하고 스미고 희롱하던 그 흰 달빛. 걸어오라고, 들어오라고 손짓하며 팔을 잡아당기던 그 너무 차가운 흰 달빛. 당신은 그 달빛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달빛이 우리 안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니까 우리 안으로 길이 난 거지요. (34쪽)


『사랑의 생애』가 그러했듯 사랑을 탐미하는 이승우의 문장에 사로잡힌다. 관능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묘사, 물이 주는 이미지가 그러하다. 욕조가 놓은 방으로 우리를 이끌어 물속으로 천천히 발을 내딛게 만든다. 사랑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고 그저 사랑만 믿고 나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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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그물 창비시선 451
최정례 지음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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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고/ 너는 언덕을 올라오고 있었다​(...)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지나갔다 (뒷모습의 시, 일부)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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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547
임승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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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알고 싶고 조금 더 자주 읽고 싶은 시집. 제목이 주는 끌림과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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