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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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여성작가의 단편들. 수상작과 후보작 모두 나쁘지 않았다. 소설에 대한 평가는 개인적인 취향이니까. 그러니 그 개인적인 취향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나는 수상작인 윤성희의<어느 밤>보다는 황정은의 <파묘>를 최고로 꼽는다. 가족을 설명하는 새로운 접근,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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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없없음 2019-12-12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묘가 최고라는 데에 100% 동의하는 바입니다!

자목련 2019-12-13 13:44   좋아요 0 | URL
황정은은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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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는 모호해요. 각자 나름대로 현실을 인식하고, 믿는 걸 나름대로 정의해가는 수밖에 없어요” (167쪽)

 

기이한 경험을 했을 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도 선뜻 말할 용기를 내지 못한다. 상대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않고 상상이나 착각이라고 타박을 놓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런 현상을 우리는 무어라 불러야 할까. 야마시로 아사코의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애써 슬픔을 감춘듯한 표지처럼 뭔가 비밀스러운 공포를 전해준다고 할까. 놀랍게도 그 공포는 피하고 싶은 두려움보다는 가만히 지켜보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순간 서서히 옅어진다.

8편의 이야기 모두 흥미롭다. 부부에게 동시에 나타난 혼령의 정체를 추적하는 과정이 한 편의 추리소설 같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 부모를 잃고 이모에게 학대를 당하는 소녀와 소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머리 없는 닭에 대한 애처로운 이야기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 여자 친구가 술을 마시면 잠깐 동안 미래를 볼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을 도박에 이용해 결국엔 파국에 이르는 「곤드레만드레 SF」, 모든 걸 포기하려는 순간 중고 이불 덕분에 재기에 성공한 소설가의 사연 「이불 속 우주」,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삶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경고를 날리는 섬뜩한 이야기 「아이의 얼굴」, 2011년 대지진으로 아들과 아내를 잃은 남자가 무전기를 통해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무전기」, 이혼한 남편에게 딸을 보여주러 나갔다가 남편이 딸을 데리고 도로로 뛰어들어 동반자실을 한 모습을 목격한 후 정신이 이상해진 아내의 일상을 담은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침몰하는 배에서 죽음을 맞이한 화자가 천사를 만나면서 경험하는 생과 사의 경계를 다룬 「잘 자요, 아이들아」까지 색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저마다 놀랍고 잔혹스러운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소설 속 인물의 슬픔과 상처에 다가가게 만든다. 꾸며낸 소설 속 상상의 한 장면이라 여기면서도 어느 세상에서는 현실의 한 장면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진한 여운을 남긴 몇 편을 소개하면 이렇다. 아동 폭력을 소재로 한「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에 등장하는 ‘후코”에게 머리 없는 닭 ‘교타로’는 유일한 친구였다. 자신을 미워하는 이모를 피해 몰래 교타로를 키우는 후코와 전학을 온 ‘나’와 친해지면서 닭을 함께 돌본다. 이모에게 후코가 무자비하게 살해를 당하고 ‘나’가 밤마다 교타로와 밤을 헤매는 모습을 상상하면 하나도 무섭지 않고 애처롭다.

나와 머리 없는 닭은 마치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 아래를 가고 싶은 대로 나아간다. 아득히 넓고 쓸쓸한 세상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나는 머리 없는 닭과 함께 언제까지나 밤의 어둠 속을 헤맨다. (72쪽)

 

아들과 아내를 지키지 못하고 혼자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으로 술에 빠져 사는 ‘나’ 아들의 부서진 무전기를 통해 아들과 대화를 하는 「무전기」는 더욱 애틋하다. 술에 취해서 들리는 환청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면서도 무전기를 버리지 못하고 위로를 받는 그 마음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아키와 사귀면서 자신의 상태를 털어놓고 둘은 결혼을 한다. 아키는 결혼 후에도 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자리를 피해주며 공감한다. 어쩌면 ‘나’에게 그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잘 자요, 아이들아」는 침몰하는 배에서 사고를 당하는 과정이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사건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기에 그랬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나’는 영화관에서 자신의 지난 삶이 담긴 필름을 본다. 그러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모습이다. 천사가 자신의 필름을 잘못 가져온 것이다. 진짜 삶의 필름을 찾는 과정에서 ‘나’는 배에서 사고를 당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주님이 있는 곳이 아닌 천사를 선택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영원한 이별을 한 이들을 맞이하고 천상의 세계로 이끄는 일이다. 두렵고 무섭기만 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담았다. 언젠가 우리도 소설 속 천사를 만날 수 있을까. 그때 보게 될 나의 필름은 어떤 장면을 담고 있을까.

각양각색의 인생이지만 하나같이 축복과 비애로 가득하다. 모든 필름이 별처럼 반짝여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영상이 끝날 때마다 나는 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죽은 자의 나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이들아, 잘 자요.

사람들아, 잘 자요.

잘 자요, 편안하게. (256쪽)

고유한 슬픔과 고통을 견디며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가만한 위로를 안겨준다. 있는 그대로 슬픔을 바라보는 일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위안일 수도 있다. 애써 위로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 말이다. 이 단편집에서 느껴지는 정서가 그런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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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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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집. 먼저 읽고 싶어하는 지인에게 선물하는 시집. 황인찬의 시집 <희지의 세계>를 만났을 느낌을 떠올린다. 처음엔 남다른 감성인가 싶었는데 읽다 보니 그의 저녁, 비, 그늘에 빠져들고 있었다. 제목 때문에 조금 주저하는 시집인데,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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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8 - 모르는 영역
권여선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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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좋았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 좋아서 그 설렘을 나눠주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나의 전달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여선이라는 작가의 소설에 대해 나는 조금 과한 애정을 갖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과장된 애정이라 여겨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에 비하면 그의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쓰는 일은 몹시 힘들다. 이처럼 말이 길어지는 것도 그런 과정이 일부다.

 

19회 이효석 문학상 대상 선정작인 권여선의 「모르는 영역」은 과연 탁월했다. 조심스럽지만 이전의 작품과는 미묘한 변화가 느껴졌고, 나는 그 변화가 반갑고 기뻤다. 언제나 그렇듯 권여선의 문장은 날카롭고 아름다웠지만 그 안에 뭔가 세월의 흔적 같은 게 담겼다고 할까. 그러니까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게 보였다고 할까. 아무튼 내게는 그랬다. “해는 늘 낮달만 만나고, 그러니 해 입장에서 밤에 뜨는 달은 영영 모르는 거지”란 문장이 주는 기발한 울림. 역시 권여선이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 그 멀고도 가까운 사이를 관찰자처럼 그려나간 소설이라 말하고 싶다. 그 안에는 가족, 혈육, 세대가 있었고 서로 다름이 있었다. 이혼한 전처의 죽음과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와 딸.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관계를 통해서 우리의 삶을 보았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역, 그러니까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모르는 영역’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모르는 것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노력과 동시에 그냥 그대로 바라보는 일, 두 가지의 균형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다. 소설에 등장하는 ‘낮달’이나 저수지의 ‘새’가 부여하는 의미를 자신의 삶에서 찾아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수상작과 함께 작가 자선작 「전갱이의 맛」은 역시 권여선의 단편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혼한 전 남편과 우연하게 만난 ‘나’는 그가 성대낭종 수술을 받고 한동안 회복을 위해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시간 동안에 그가 말을 하고 싶어도 말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그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 그리고 말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고 나의 말이 생겨난 배경을 듣는다. 이 소설은 말과 말을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안겨준다. 말이 필요한 시간, 말이 사라진 시간, 말이 생성되는 시간, 그런 것들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내게는 무척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나의 말은, 그가 힘주어 말했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기억되거나발견되는 거야. 내가 어떤 언어를 간절히 원했던 순간을 기억하거나, 그 간절함이 생겨나는 그 순간을 발견해서 내 말로 삼는 거지. 그러니까 내 말들은 어원을 잃는 법이 없어. 최초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그 위에 다른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말 속에 삶이 깃드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때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저 표현으로 먼저 생겨난 말도 있고, 가끔 아주 외설적인 말도 뛰어나와.” (66쪽, 「전갱이의 맛」)

 

어떤 말들은 뜻을 알 수 없는 채로 생겨난다고 그가 말했는데 정확히 그렇다. 어떤 감정이나 감각들은 나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몸으로 표현되고 기억에 각인된다. (70쪽, 「전갱이의 맛」)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김미월의 단편 「연말 특집」은 김금희의 「세실리아」가 겹쳐지지도 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지난 시절 부끄럽고 무지한 행동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불러온다. 하지만 무겁지 않게 경쾌한 리듬으로 그려냈기에 김미월도 달라진 것일까. 나만 이 변화를 늦게 알아차린 것일까. 역시나 사랑을 이야기하는 김봉곤의 「컬리지 포크」는 자전적 글쓰기의 이어짐 같았고 김희선의 「공의 기원」은 제목 그대로 축구공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탄탄한 짜임새로 그려냈으며 최은영의 「이치다에서」는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글로 타자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말하고 있었다. 김연수의 「그 밤과 마음」은 한겨울에 읽으면 더 좋은 것 같다. 시인 백석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력이 독자를 눈 내리는 깊은 겨울밤으로 이끈다.

 

권여선의 소설과 함께 나를 가장 흔든 최옥정의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는 죽음과 대한 사유이자 삶에 대한 작가의 놀라운 통찰력에 돋보이는 소설이다. 조각가인 화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종이를 이어 만든 의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정작 그 의자는 앉을 수가 없다. 기능을 상실한 의자, 어쩜 그건 화자 자신의 분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암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에서도 소설을 굳건하게 쓴 작가의 집중력에 경이를 표한다.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며 써 내려갔을 소설.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좋은 소설을 읽을 수 있어 감사하다. 소설의 안과 밖으로 다양한 삶 속으로 나를 이끄는 작가의 손을 오래도록 잡고 싶다.

 

생각보다 죽음은 조용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더 놀라운 건 죽음이 굉장히 빨리 잊힌다는 사실이다. 저 사람이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고 울부짖던 극도로 의존적이던 가족도 죽음과 함께 후다다가 자기 자리를 찾았다. 죽음은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을 금방 자유롭게 했다. 죽음은 기다리는 일이 어렵지 막상 일어나면 그냥 일상일 뿐이었다. (252쪽,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누구나 죽지만 죽을 때까지는 죽는 게 아니다. 비록 짧더라도 사는 동안은 살아야 한다. (253쪽, 「고독 공포를 줄여주는 전기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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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19 소설 보다
강화길.천희란.허희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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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강화길의 소설이 왜 좋은지, 새삼 느낀다. 이런 방식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전할 수 있다니. 두 번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이다. 아, 물론 천희란, 허희정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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