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유한하다. 그래서 소중하고 아름답다. 모두가 다 알지만 모두 다 자주 잊고 사는 진실이다. 주어진 일상이 영원할 거라 막연한 믿음으로 우리는 살아가기도 한다. 지나온 어제처럼 당연하게 오늘을 맞이하고 살아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발생해서야 일상에 대해서 돌아본다. 가령 내 부주의가 아닌 상대의 잘못에 의한 자동차 접촉사고가 난다든지, 가벼운 통증을 무시하다 사라지지 않아 찾은 병원에서 소견서를 받거나 느닷없는 집주인의 전화에 보통의 일상은 너무나도 쉽게 와르르 무너진다. 그 순간 평범했던 일상에서 일탈한다. 아니 이때부터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만 내게로 다가올 때 우리는 절망한다. 절망의 순간은 어떻게든 지워나가고 다음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일상을 되찾을 수 있다. 때때로 그건 너무 고통스럽고 비루하다. 그럴 때 우리는 일상이 아닌 일탈을 시도한다. 한 방을 꿈꾸며 한 번도 구매하지 않았던 로또복권을 사기도 하고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로 도피한다. 게임 속 캐릭터가 되거나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거나 소설 속으로 빠져든다. 내 일상이 아닌 그들의 일상에 잠시 마음을 기대는 것이다. 소설 속 삶이 현실의 일상과 더 가까워 분노와 화를 참지 못하기도 하면서. 일상의 표정은 다양하다. 모두가 꿈꾸는 평온한 일상, 걱정과 근심으로 채워진 불안의 일상, 거대한 슬픔을 겪고 감사하는 일상에 대해 생각한다
     
 김이설의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2016)를 다시 꺼냈다. 이 안에는 일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인 것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는 말하겠지. 나는 그런 일상을 살지 않는다고. 뉴스에서나 접할 수 있는 무섭고도 잔혹한 일상이 소설 속에 가득하니까.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는 그런 사회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그들에게 힘을 내라는 말은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렇게 살지 말고 다른 일상을 살아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대를 이어 행해지는 가정폭력을 다룬 미끼, 품격과 권위의 삶을 사는 겉모습과 다르게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진짜 모습이 역겨운 부고, 친절하게 독촉하는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할 수 없는 일은 세상에 없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흉몽. 그들은 모두 우리의 모습이었다. 어떤 모습은 너무 닮아서 소름이 돋기도 한다. 우리는 그저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뿐이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우리의 일상은 어느 순간 비일상의 궤도에 진입해 있다. 부당한 일에 대해 부당하고 말하는 게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 파업의 대가로 돌아온 건 손해배상 청구와 남편의 자살을 다룬아름다운 것들을 읽다 보면 그런 일상이라면 누구라도 포기를 택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 안다. 나의 일상을 대신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슬픔을 대신 덜어줄 수 없다. 대신 앓을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도 없듯이, 온전히 자기 혼자 버텨내야 했다.’ (89)란 말을 나와 당신이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린다는걸. 그 뻔한 말이 우리가 유일하게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마는 것이다.
     
 일상을 산다는 건 일상을 유지하는 일이다. 일상을 유지한다는 건 일상을 지킨다는 것이다. 일상을 지키는 건 견고한 성을 쌓고 지키는 일처럼 어렵다. 그저 살아가는 일을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내 일상을 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혼자만의 삶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혼밥, 혼술, 혼자서 모든 걸 해내는 삶이 확장되지만 그들도 결국 누군가의 가족이고 작은 사회의 일원이다. 때문에 나의 일상을 지키는 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저마다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최정화의 소설집 모든 것을 제자리에(2018) 속 인물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난 과거는 잊고 현실에 충실하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하지만 한번 불안이 찾아오면 일상은 불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제 겨우 지난 사건을 잠재우고 새로운 책을 펴냈지만 여전히 3년 전 인터뷰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불안한 남자 인터뷰, 친구가 자기 애인을 모델로 그렸다는 그림 속 푸른 코드를 입은 남자가 자신의 남편일 거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여자 푸른 코트를 입은 남자, 친하게 지냈던 회사 동료에게 사기를 당했지만 그럴 리 없다고 믿으며 새벽마다 창문 밖에서 떠들어대는 아이들 무리가 제발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남자 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다. 일상의 반복성은 망상을 키운다. 그리고 망상은 불안을 키운다. 일상은 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테고 불안은 일상의 그림자가 되어 뫼비우스 띠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동료나 이웃에게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변명을 늘어놓기도 한다.

 

 ‘왜 어떤 일들은 구름이 모양을 바꾸는 것처럼 서서히 일어나지 않고 단 한순간에 완전히 빛깔을 바꾸어버리는 것일까. 따뜻한 기운을 품은 은은한 복숭앗빛 하늘이 왜 저토록 사나운 핏빛으로 변해버렸을까. 좀전까지 잘 어울리던 한 쌍의 커플이 왜 이리 급작스럽게, 마주치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 끔찍한 악연으로 방향을 바꾸는 걸까. 왜 그런 일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갑자기 일어나는 걸까. 왜 어떤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고 내뱉은 한마디가 다른 어떤 사람을 다시 벗어나지 못할 수렁으로 몰고 가는 걸까.’ (111)

 

 때로는 그 불안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잘 알고 있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다니는 회사가 문을 닫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 불안해서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리느라 맡은 업무를 제대로 해낼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IMF를 경험한 세대는 그런 사태가 발생할까 불안하다. 꼰대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자꾸만 후배와 아이들을 상대로 그 시절을 복기한다. 그뿐이 아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병력이 유전되어 나도 똑같이 아플까 봐 겁이 난다. 불안이라는 건 이렇게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어 잠식한다. 안다는 것이 더 무섭다. 불안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우리 일상을 맴돌며 지켜본다. 어느 시절에는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기를 바랐지만 이제는 그런 이벤트가 아닌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바란다. 새해에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거대한 다짐을 하고 연말에는 후회를 하는 보통의 일상 말이다. 적당한 비가 내리고 적당한 눈이 내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일상은 어찌할 수가 없다. 짧은 이별의 눈 맞춤도 허락하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기도 하고 고통의 시간을 견디다 끝내 친구나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하니까. 우리 일상에 희로애락의 조각들이 다 들어있다는 걸 알면서도 죽음으로 인한 경험은 피하고만 싶다. 상실의 자리는 어떠한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애도의 끝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점차 받아들인다. 때문에 친구처럼 지냈던 전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패멀라 D. 블레어와 사고로 오빠를 잃은 브룩 노엘이 함께 쓴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란 책과 함께 일상을 지켜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책을 읽는 일은 힘들다. 왜냐하면 누군가를 잃은 상실의 시간을 견디고 그 슬픔을 온몸으로 껴안은 일상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죽음을 경험하고 애도와 함께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넘치도록 차오르는 눈물과 슬픔으로 어떻게 일상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다. 그들에게 구체적이며 실질적으로 건네는 조언이야말로 거룩하고 숭고하기에 아름다운 일상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애도를 표현하며 살아가는 일,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지나 회복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가장 눈부신 일상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고통의 시간을 살고 있을 때 우리는 혼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러보면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상황에 있는 이들이 있다. 책을 통해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곤 한다. 문득 문학이야말로 유일하게자신만의 일상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일상 속에 놓여 있음을 깨달았다. 문학은 애도의 일상을 산다. 작가는 죽고, 그 작가가 남긴 문학을 읽은 독자도 계속해서 바뀌고 사라진다. 문학은 그렇게 자신을 이 세상에 남긴 이를, 그리고 읽고 스쳐 지나간 이들을 애도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동시에 문학은 자신을 새로 읽고 스쳐 지나갈 이들을 기다리는 작별의 일상을 마다하지 않는다.  


 ‘길고 느린 과정이에요. 때때로 두 걸음 앞으로 나가갈 때마다 세 걸음 뒤로 물러나요. 하지만 다른 때에는 후퇴 없이 앞으로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계속해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고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제가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한 걸음씩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303)
     
 창밖으로 눈 내린 풍경이 보인다. 아름다워서 황홀할 지경이다. 어느 순간 사라질 것이다. 우리 생이 그러한 것처럼. 생은 그러한 일상이 모인 풍경이다. 사라질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면 일상은 무의미하다.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일상을 던져버리고 싶은 순간과 마주하거나 내일이 오는 게 두렵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불안한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 살아있음을 우리는 때로는 비일상으로써 획득하고, 불안으로써 체감하며, 죽음으로써 견딘다는 것을. 결국 일상이란 살아가는 일이다. 단순하면서도 위대한 여정,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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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릴 거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건 평화를 만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눈을 지나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에게 눈은 장애물에 불과하다. 한 시간 정도 내린 눈으로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다. 바라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것.

 

 

 

 

 치과진료 중이라 뜨거운 커피를 며칠째 마시지 않고 있다. 마셔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착한 환자니까. 겁이 많은 환자니까. 조금 참고 있는 중이다. 이 기회에 커피를 줄여도 좋겠지, 싶다가도 술도 아니고 커피 마시는 즐거움마저 줄일 필요가 있을까, 결론을 내린다.

 

 올해의 마지막 주문이기를 바라며 몇 권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기다렸다. 어떤 책인지도 모르고, 어떤 작가인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렸다. 장혜령의 시인의 산문집. 2017년 문학동네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책은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이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랑의 감성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왠지 내 마음에 들 것 같은 책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려온 시집, 박준과 이제니의 시집도 12월의 선물로 좋겠다.

 

 눈은 곧 사라질 것이다. 눈이 녹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겠지.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물감을 풀어놓은 것들이 사라지고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 나를 바라보겠지. 서로를 바라보는 일, 그건 조금 황홀하다. 서로를 바라본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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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1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경이 너무 멋집니다 치과는 아니고 댁에서 찍은 풍경인가요? 춥기는 하지만 설경은 참 기분을 묘하게 만들어주는듯 합니다 치아는 온도에 민감하다고 하대요 잘 하셨습니다 전 못 참을텐데...건강유의하십시오!

자목련 2018-12-14 12:42   좋아요 1 | URL
네, 치과는 아니고 거실에서 바라본 풍경입니다. 계절마다 다르게 보이는 이 풍경이 참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설경은 저를 다른 곳으로 이끄는 듯 묘합니다. 치아에 대한 걱정 감사합니다. 포근한 오후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12-14 12:47   좋아요 0 | URL
종종 거실에서 본 풍경사진을 올려주시는 것도 저희에겐 좋은 뷰가 될 듯 합니다 ^^

여름숲 2018-12-1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정다정 소복소복한 문체시군요. 다정히 잘 읽었습니다. 눈...눈때문에 전 오늘 출근 못했지요. 남의 동네 큰길가에 차를 두고 왔다가 오후에 찾아왔어요. 바라보는 눈은 참 좋은데 말이죠^^

자목련 2018-12-14 12:41   좋아요 1 | URL
다정히 읽어주시고 다정한 댓글을 주셔서 감사해요. 눈 때문에 힘든 하루를 보내셨군요. 맞아요, 바라보는 눈은 참 좋죠. 하림 님, 향기로운 오후 보내세요^^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아니, 대부분 다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예약된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확인하며 의사가 들려준 이야기가 그러했고 AS를 위해 방문한 기사가 주방 베란다로 향하는 창틀을 수리하는 과정이 그러했다. 일정 부분은 짐작했던 것과 같았지만 다른 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다음 진료 예약을 하면서 의사와 나눈 대화는 진취적이지 않았고, 기사의 수리 과정은 힘겨워 보였다. 전화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기사는 혼자서 진행할 수 있는 범위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막상 창을 떼어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도움을 줄 수 없이 바라보는 나는 조금 불안했다. 창에 붙인 시트지, 바로 옆에 놓인 냉장고는 기사가 생각했던 게 아니었을 것이다. 레일을 교체하고 간단한 설명을 하고 수리는 끝났다.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생각했다. 상대의 감정에 대해서 안다고 단언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안다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니까.

 

 봄에 만났던 친구를 만났다. 그 사이 우리는 조금 더 늙었고 그 늙음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20대의 단호했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 시절을 기억하는 나는 지금의 그녀가 참 힘들구나 생각했다. 관계에 지쳐있는 모습, 친구들과 지인에게 그녀가 내어주는 공간과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 줄어듦은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친절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팽팽하게 이어지던 한국시리즈는 끝났고 ​본방사수를 기다리는 드라마는 없지만 기다리는 글은 있었다. 한 번씩 신간을 검색하는 작가, 한귀은이다. 적당히 쓸쓸하고 고요한 밤을 함께 보내기 좋은 책이 아닐까 싶다. 『밤을 걷는 문장들』, 이토록 적절한 제목이라니. 내가 아끼는 한강의 단편집 『내 여자의 열매』와 『노랑무늬영원』개정판이 나왔다. 표현과 문장을 다듬었다고 하니 더 단단하고 차분할 것 같다. 나희덕의 시집『파일명 서정시』까지, 시를 읽는 밤이 이어져도 나쁘지 않겠다.

 

 잔잔하게 눈이 내리는 밤을 상상한다. 접혔던 밤이 펼쳐지는 순간, 고요해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조심스러운 그런 밤. 잠든 밤을 깨우지 않고 혼자 가만히 지켜보는 그런 밤. 밤이 꿈을 꾸는 상상하는 밤. 잠들지 못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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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언니는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결정하고 수술이 끝날 때까지 가족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수술이 다 끝난 후에야 연락을 했다. 그것도 퇴원을 바로 앞두고 말이다. 퇴원 후 집에 왔을 때에도 암이란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큰언니가 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화학요법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큰언니가 치료를 받는 동안 곁에서 식사를 책임지고 간병 아닌 간병을 했다. 항상 큰언니의 돌봄을 받아왔던 내가 큰언니의 보호자가 된 것이다. 큰언니의 유품은 온전히 정리가 되지 않았다. 정리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故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를 읽는 일은 어렵고도 힘든 일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 있는 분량인데도 그랬다. 메모 하나하나를 따라 읽는다는 건 김진영의 마지막을 향해 나가는 것이라는 걸 알기에. 그가 베란다에서 듣는 피아노 소리, 바라보는 바깥의 풍경, 소란스러운 삶의 움직임, 가만히 벤치에 앉아 마음을 다스렸을 시간, 내리는 비를 보면서 든 생각. 그 모든 것이 요란하지 않았고 단정했고 명확했다. 살 만큼 살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살 만큼이란 시간은 얼마를 의미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내게 죽음은 저 멀리 있는 불확실한 명제가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고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생의 유한함을 인정하는데 조금 평안해졌기 때문이다. 언제 내게 도래할지 모르는 그 마지막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은 바람인 것이다.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234개의 짧은 글은 삶의 순간에 충실한 태도였고 의지였다. 분명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을 텐데, 그 어떤 징후도 찾을 수 없고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슬픔이 몰려왔다. 큰언니가 남긴 글도 그랬다. 두려운 감정은 없었고 담담하게 마지막 정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전했고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따르려 노력했다. 어쩌면 나는 김진영의 글을 읽으면서 여전히 그리운 큰언니를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년이란 시간은 길 수도 있고 짧은 수도 있다. 애도의 시간의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세게, 조금 약하게 그 강도를 오르내릴 뿐이다. 문득 한 문장, 혹은 두 문장, 그리고 조금 더 길어진 글을 쓰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증이 커졌다. 그러다 이내 사라졌다. 나는 알 수 없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알 수 없고 그것을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글에 담긴 감정을 헤아리려 애쓰지 않았다. 편안했을 거라 단단했을 거라 짐작한다.

 

 비 오는 날 세상은 깊은 사색에 젖는다. 그럴 때 나는 세상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지도 안다. (75. 92쪽)

 

 나는 나를 꼭 안아준다. 괜찮아, 괜찮아…… (122. 145쪽)

 

 어떤 시간은 아주 천천히 오고 어떤 시간은 너무 빨리 온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이어지는 의사와의 면담, 가족과 지인들의 연락. 그 모든 것이 특정한 시간에 다 도착했을 것이다. 김진영은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잡은 것 같다. 그런 평정심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치료를 하는 과정에서도 칼럼을 연재하고 책을 읽고 철학자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롤랑 바르트, 마르셀 프루스트, 니체, 그들을 언급하며 사유하는 시간을 잊지 않았다. 읽다 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가끔씩 펼쳐보는『애도 일기』와 나는 조금 더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아침의 피아노』도 그러할 것이다.

 

 모든 것이 꿈같다. 그런데 현실이다. 현실이란 깨지 않는 꿈인 걸까. 그 사이에 지금 나는 있다. (24. 34쪽)

 때와 시간은 네가 알 바 아니다. 무엇이 기다리는지, 무엇이 다가오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은 열려 있다. 그 열림 앞에서 네가 할 일은 단 하나, 사랑하는 일이다. (105. 125쪽)


 내가 사랑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여전히 나는 사랑하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이 더 많이 …… 이것만이 사실이다. (203. 243쪽)

 

 삶은 유한하고 불안하다. 하지만 그것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해 깊은 사유의 시간도 필요하지만 그것에 매몰될 필요는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묻는다. 생의 마지막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에 감사하고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김진영의 말처럼 그것은 사랑일 것이다. 큰언니의 마지막, 우리도 그러했다. 수많은 말들이 떠다녔지만 선택된 말은 사랑이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사랑에 포위됐다. 사랑한다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진부하고 평범한 말, 우리가 만든 거룩하고 고귀한 말. 아픔이 있고 위로가 필요한 곳에 사랑을 전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조용한 손길에 담긴 사랑.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말고 잡고 있어야 하는 사랑.

 

 우리에겐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생, 사랑했으니 후회 없는 생을 살라고 그는 말하는 듯하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는 일은 너무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사랑을 기억하고 살아간다면 조금씩 회복될 것이다. 김진영의 바람처럼 이 책은 그 사랑을 기억하고 어루만지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분명한 일이다. 삶을 사랑하는 일, 다양한 형태로 다가오는 사랑, 그 모든 걸 껴앉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애도의 시작이며 끝은 아닐까. 마음이 고요하고 평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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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3 0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05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의 손이 닿거나 우리의 몸을 감싸거나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의 감촉이다. 부드러운 결은 안식을 주고 세월의 결은 경외감을 유발하며, 섬세한 결은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복잡한 결은 우리의 시선을 다르게 만들어준다. (『한 글자 사전』, 「결」) 

 

 바람의 결이 달라졌다. 가을의 중심에서 겨울의 방문을 받은 듯하다. 아니, 이제는 우리에게 가을이라는 계절은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추위를 걱정하고 대비하는 시간이 오고 있다. 어제는 동생과 통화를 하면서 아직 내리지 않은 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첫눈도 빨리 오고 올해는 눈이 많이 내릴 거라고. 많이 추워지고 있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겨울의 쓸쓸함이 저기 보이는 것만 같다.

 

 무릎에는 커다란 꽃이 피었다. 지난 주일 예배를 위해 집을 나서다가 넘어졌는데 그 순간에는 창피함에 얼른 일어나서 아픈 줄도 모르다가 집에 와서 보니 넘어진 부위가 제법 부었다. 멍의 색깔은 다채롭다. 통증은 길지 않아 다행이다. 보랏빛이 돌다가 푸르죽죽해졌다. 신기한 일이다. 우리 몸은 이렇게 신비하구나. 내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을까.

 

 말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도 있다. 말이 아닌 눈빛, 메모, 공간을 채우는 어떤 것들. ‘아침의 피아노’란 제목에 클릭한 책이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를 옮긴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은 그의 유고집이라고 한다. 겨울처럼 외롭고 적막할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를 수도 있겠다. 큰언니의 마지막 기록을 생각하면 말이다. 애도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우리 곁을 떠나는 이들,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건네지도 못하고 작별한다.

 

 따뜻한 손을 맞잡고 싶은 아침이다. 손바닥으로 손등을 문지른다. 손등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전해진다. 온기가 전해지는 뜨거운 커피, 뜨거운 손, 뜨거운 마음.  조금 뜨겁다 싶을 정도의 커피를 마시며 시작하는 하루. 상처입지 않을 정도로 뜨겁고 뜨거운 하루여도 괜찮겠다. 적정한 온도를 조율할 줄 아는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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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8-10-11 0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침의 피아노) 읽고 싶었어요. 넘어지셨군요... 저는 뜬금없이 오른쪽 무릎이 아파와서 걱정입니다. 벌써 아프다니... 계속 무시해서 그런가도 싶고. 몸이란 참 신비로워서 역행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자목련 2018-10-12 15:38   좋아요 0 | URL
아픈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지만 때때로 당황하고 서글퍼지기도 해요, ㅎ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는 특별하게 다가올 것 같아요.

뒷북소녀 2018-10-11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어쨌든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 아침의 피아노요.^^

자목련 2018-10-12 15:37   좋아요 0 | URL
어쩌면 읽기 힘들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읽겠지만.
맑고 투명한 가을의 하늘을 만끽하며 즐겁게 보내길 바라^^

희선 2018-10-13 0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랑 바르트 책 《애도 일기》는 만났는데, 그걸 한국말로 옮긴 사람이 김진영이었군요 그걸 써뒀지만 잊어버린 듯합니다 그 분 잘 몰랐지만 저 책 소개는 봤어요 아파도 무언가를 쓸 수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 늘 뭔가를 쓰는 사람은 그때도 쓸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해도 세상을 떠났다 하면 어쩐지 쓸쓸하네요 얼마전에는 일본 성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알았어요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우연히 목소리 들었는데, 세상을 떠나고 두달이 넘은 뒤에 알았습니다 그걸 알고 그런 일이 했네요


희선

자목련 2018-10-15 21:17   좋아요 1 | URL
네, 누군가 떠난 후에 우리는 그 소식을 접하게 되니까요. 김진영이 옮김 <애도 일기>로 무척 많은 위로를 받았는데 이제는 그가 남긴 글을 읽고 애도의 시간을 갖게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