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릴 거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눈이 내리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는 건 평화를 만지는 것만 같다. 하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눈을 지나 저마다의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에게 눈은 장애물에 불과하다. 한 시간 정도 내린 눈으로 내 눈앞에 펼쳐진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다. 바라본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저 바라보는 것.
치과진료 중이라 뜨거운 커피를 며칠째 마시지 않고 있다. 마셔도 상관없겠지만 나는 착한 환자니까. 겁이 많은 환자니까. 조금 참고 있는 중이다. 이 기회에 커피를 줄여도 좋겠지, 싶다가도 술도 아니고 커피 마시는 즐거움마저 줄일 필요가 있을까, 결론을 내린다.
올해의 마지막 주문이기를 바라며 몇 권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부터 기다렸다. 어떤 책인지도 모르고, 어떤 작가인지도 모르고 마냥 기다렸다. 장혜령의 시인의 산문집. 2017년 문학동네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시인의 첫 책은 시집이 아니라 산문집이다. 그것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랑의 감성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왠지 내 마음에 들 것 같은 책이다. 그리고 우리가 기다려온 시집, 박준과 이제니의 시집도 12월의 선물로 좋겠다.
눈은 곧 사라질 것이다. 눈이 녹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겠지.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물감을 풀어놓은 것들이 사라지고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 나를 바라보겠지. 서로를 바라보는 일, 그건 조금 황홀하다. 서로를 바라본다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