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탐하다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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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언제나 새롭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문장을 모아 엮은 책, 명사가 추천한 책만 수록한 책, 사라진 책만 소개하는 책,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내용으로 꾸며진 책, 오롯이 리뷰로 채워진 책,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심지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내용까지. 책을 말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책에 대한 책은 여전히 지나칠 수 없는 존재다. 드라마나 광고에 등장하는 책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그러니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이란 매혹적인 제목의 책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표지의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293호 열차 C칸>이다. 화가와 제목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그림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림 속 저 책은 무엇일까. 한 번쯤 궁금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그 책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건 아니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그림 속 여자가 되어,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을지 말이다. 독자는 그렇게 저자의 상상에 자신의 상상을 더하는 책 읽기를 시작한다.

 

책에는 모두 38개의 그림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이야기가 나온다. 책이 등장하는 그림이니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작품이 많다. 물론 화가와 그림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그림을 읽는 책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책을 천천히 넘기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을 먼저 읽어도 좋다. 그림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인 후 저자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책장을 넘긴다. 세상에 수많은 책이 존재하니 그냥 스치는 읽는다 해도 누가 뭐라 할까. 이런 그림을 오래 바라보며 천천히 느리게 읽어보자.

 

 

독서하는 여인 - 윤덕희

 

여인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마음을 격동시키는 내용의 책이나 정신의 나태를 깨부수는 책, 새롭고 놀라운 지식으로 독자를 뒤흔드는 책은 아닌 듯하다. 온전한 휴식으로서의 독서,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나마 멀어져 긴장을 풀게 해주는 독서다. 정신의 날을 벼리는 것만이 독서의 효용이나 목적이 아니다. 마음의 결을 한가로이 고르는 것 역시, 아니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기쁨일 수 있다. (61쪽)

이런 그림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디서 위로를 받았을까. 쉴 새 없이 일만 하던 엄마에게 독서는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와 친하게 지내신 분들이 성경을 읽는 모습에 엄마를 겹쳐보기도 한다.

 

석고상, 장미꽃, 소설 두 권이 있는 정물 - 빈센트 반 고흐

 

 

고흐가 극도로 침체될 때마다 삶을 위로해주고 힘을 준 것은 소설이었다. 이방인으로서 타국을 떠돌던 시기 고흐에게, 극히 제한된 범위의 친교에 머무르며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 때가 많았던 고흐에게 책은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 사회 현실을 그에게 알려준 것도 소설이었다. 소설을 통하여 동시대와 호흡했던 그가 말한다. “우리는 읽을 줄 알잖아. 그러니 읽어야지.” (162~163쪽)

고흐가 소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나 역시 책과 소설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이 그림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을 볼 때도 고흐의 말이 떠오를 것 같다. 읽을 줄 아니 더욱 열심히 읽는 일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울림, 한 권의 책으로 받은 치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꿈 -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책은 만인(滿人)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책이 실제로 만인의 것, 모든 사람의 것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만인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고, 만인이 책을 살 수 있어야 했으며, 지배 계층의 입맛에 맞는 책만 허락되는 현실을 무너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그렇게 책이 만인의 것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236~237쪽)

한 권의 책이 많은 이들의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그림의 힘이라고 할까. 그림 속 노란색 표지의 세 권이 책이 정말 궁금하다. 저자의 상상대로 에밀 졸라의 소설일 수도 있지만 나만의 목록을 만드는 일도 재미있겠다.

​책 속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가, 아니 나에게 책은 무슨 의미인가 묻는다. 어느 시절에는 ‘내 인생의 책’이나 ‘필사하기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현재 내게 책은 일상이며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날에는 그 크기가 커지고 어떤 날에는 작아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읽는 모습, 나의 표정은 어떨까. 가만히 상상을 해본다. 그림 속 어떤 여인과 가장 비슷할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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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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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을 매혹한다. 자꾸만 바라보고 생각하고 갖고 싶게 한다. 누군가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나만의 것으로 말이다.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는 아름다움, 오직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황홀함, 그 자체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마음은 때로 범죄로 이어진다. 커크 월리스 존슨의 『깃털 도둑』은 그런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깃털 도둑에 대한 실화다. 송어 낚시에 미끼로 사용하는 플라이 타잉을 위해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새의 깃털을 박물관에서 훔친 이야기라니.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박물관의 전시물을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한 남자는 에드윈 리스트로 미래가 유망한 19세 플루티스트였다. 그는 영국 왕립음악원에 재학 중이던 2009년 영국 트링 자연사 박물관의 유리창을 깨고 299점의 새 가죽을 훔쳤다. 박물관에서는 도난 사실도 몰랐다. 모든 것의 시작은 진짜 깃털로 플라이 타잉을 만들기 위해서다. 미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란 에드윈과 동생은 어린 시절 우연하게 접한 플라이 타잉에 재능을 보였고 본격적으로 수업을 받고 그 세계로 진입했다. 그곳에서 19세기 유행했던 깃털 모자나 희귀한 새의 깃털이 판매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심히 돈을 모았지만 원하는 것을 살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 플루트를 배우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박물관에서 새를 훔칠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책을 읽으면서 그의 과감한 행동에 경악했고 화가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깃털을 고가에 판매하여 플루트를 사고 생활비를 사용하면서도 어떤 죄의식도 없었다. 아마도 세상에 그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박물관에서 깃털을 훔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한 달이 지나고 박물관은 그 사실을 알았고 수사는 진행되었다. 500여 일 후 범인인 에드윈은 모든 사실을 자백했지만 아스퍼거 증후군 진단을 빌미로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받는다.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에드윈이 활동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그 사건과 에드윈에 관련된 건 모두 금기어가 되었다. 에드윈은 일상으로 돌아와 왕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플루트 연주자로 살아간다.

 

송어 낚시를 하다 우연하게 이 소식을 들은 저자가 관심을 갖고 새의 행방에 대해 추적하지 않았다면 그저 기이한 사건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박물관으로 돌아온 건 이름표가 붙은 온전한 상태의 102마리였다. 에드윈의 방에서 이름표가 제거된 72마리, 19마리는 거래를 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보내온 것을 제외하면 299마리 중 106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선다. 박물관에서 새의 귀중한 표본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 일의 과학적 가치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물론 에드윈은 인터뷰를 거절했고 커뮤니티 운영자 및 회원들도 말을 아꼈다. 삭제된 게시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집요한 저자의 노력 덕에 새를 포장하고 배송하고 입금을 처리하는 조력자 롱을 찾아낸다. 그 뒤로 에드윈과 만날 수 있었지만 새의 행방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말뿐이다. 롱에 대해 언급해도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저자는 노르웨이까지 가서 롱을 만나고 남겨진 새(온전하다고 할 수 없는)는 박물관으로 돌아온다.

 

책은 깃털 도둑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자연사박물관이 지어진 계기를 들려주고 그 안에 전시된 귀중한 깃털의 아름다움을 설명한다. 그리고 기이한 도난 사건에 독자를 집중시킨다. 과연 범인이 잡힐 것인가, 그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책을 읽을 때까지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소설이 아님에도 추리소설처럼 몰입도가 대단하다. 이 한 권의 책에 담긴 건 단순하게 깃털을 훔쳤다는 흥미로운 사건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온다. 자연의 귀한 것이 새의 깃털뿐일까? 아름다운 것들을 향한 일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들에게 공존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무분별한 인간의 욕심으로 환경은 파괴되고 자연의 균형을 깨진다. 그 자연에 우리가 함께 있다는 걸 놓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절도 소식을 전해 들을수록, 박물관을 둘러싼 이 이야기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는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나 리처드 프림 박사, 스펜서, 아일랜드인 형사, 독일 체펠린 비행선의 폭격으로부터 새들을 지키고자 했던 큐레이터들, 새 가죽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키워주고자 노력했던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수 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계속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또 다른 한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 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나,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44~345쪽)

 

인간의 탐욕에 대한 고발서라고 해도 좋을 책이다. 인간의 추악한 집착과 욕망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아침마다 들려오는 새소리가 더욱 고맙고 반가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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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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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이 조금 오르면 업무량은 그대로인데도 인원을 대폭 줄였다. 또 무급 휴게 시간을 계속 늘려 최저임금이 올라도 시급 노동자는 더 받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시급 노동의 현장이며, 은퇴 후 일터에 뛰어든 단기 비정규직 고령자들의 세상이다. 수십만에 달하는 노인들이 믿기지 않는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령 노동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없다. 정부, 입법자 그 누구도 노령 노동자의 이런 현실을 잘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8쪽)

일흔을 앞둔 고모는 여전히 일을 하신다.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일이다. 일흔이 넘은 작은아버지도 일을 하신다. 개인택시를 하시는데 요즘엔 정말 힘드신 것 같다. 그럼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계신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지니 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나 다름없다. 한정된 일자리에 구직자가 몰려드는 것도 당연하다. 노인 일자리를 다룬 다큐에서 등장한 노인분은 연령 제한이 가장 속상하다고 하며 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셨다. 그러나 그런 방송에서도 정작 노인들의 노동 현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가장 은퇴 후 가장 대표적인 일자리로 알려진 경비원의 노동 일지인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나는 너무도 놀랐다. 내가 생각한 경비원의 업무가 너무도 많고 포괄적이며 그들의 근무환경이 너무도 열악해서였다.

임계장이라는 말에 저자의 이름이나 직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말이다. 임시란 단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말로 책에서 저자가 경험한 직종의 경비가 그러했다. 경비원은 언제든 해고될 수 있었다. 다른 누군가로 바로 대체할 수 있는 업무라 여길 수 있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부터도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대부분 아파트에서 어떤 불편함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이가 경비 아저씨일 것이다. 출퇴근 시 주차 문제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택배를 부탁할 때, 층간 소음으로 인한 민원을 제기하는 일도 그렇다. 물론 저자가 근무한 도시의 아파트와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38년 동안 공기업에서 근무한 퇴직자로 60세에 경비원 일을 시작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일터에서는 노인 취급을 하는 게 실상이다. 2016년 6월 1일부터 버스터미널의 버스 배차와 운행을 담당하고 탁송 소화물을 싣는 일부터 아파트 경비와 건물 경비, 고속버스터미널의 경비까지 그의 일지를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에서 배차를 위해 누군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그들이 하루 종일 앉아서 쉴 잠깐의 시간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받는 건 고사하고 필요한 비품도 지급되지 않았다.

가장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부분은 아파트 경비 업무에 관한 것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관리사무소장의 횡포와 입주민의 갑질이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모든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와 관리사무소장에게 해당된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먼지로 가득한 지하실에서 식사를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와 입주민이 몰래 버린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 눈이 오면 눈이 그칠 때까지 쓸고 또 쓸고 꽃도 쓰레기로 비치는 일상이 충격적이었다. 업무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입주민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그러했다. 자신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무조건 어떤 일이든 다 해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 그들의 생각을 확인하듯 아파트 경비원을 10년 넘게 한 선배가 하는 말은 차마 읽을 수가 없다. ​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쉬고 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류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쪽)

저자의 경우 책임이 강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가장의 무게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아들의 학비를 위해 아파트 격일 근무를 하면서 근처 건물 경비일까지 했으니.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재활용품과 폐기물을 정리하면서 얻은 피부병과 건물 관리를 하면서 사고를 당했지만 바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 치료를 미뤄졌고 정신력으로 모든 걸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고용주들의 입장은 언제나 단호했다. 적은 임금을 주고 많은 업무를 지시하는 것. 최소한의 근무환경이나 복지는 거론할 수 없었다. 그럴 거면 그만두라는 말이 경비원에게 가장 무서운 말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경비원을 감시하고 동료가 동료를 고발하도록 유도했다. 일터는 안전해야 한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일터에만 국한된 것이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돌아볼 뿐 법적으로는 어떠한 규제도 없다. 경비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가 없다. 아파트 관리법을 개정할 수 있는 사람들(정치권의 구의원, 국회의원)에게는 아파트 주민의 수가 중요하지 소수의 경비원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경비원의 고충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몇몇 아파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나만 모르는 경비 아저씨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리수거 제대로 하기, 폐기물 스티커 부착해서 버리기, 음식물 쓰레기 잘 버리기, 고마움을 담아 인사하기,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이들, 법을 만드는 이들, 용역업체, 관리사무소 직원들, 갑질을 하는 주민, 임시직과 계약직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감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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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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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가족과 이별한다. 저마다 시기만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이별을 준비하면서 살지 않는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하게 이별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산다. 존재 이전에 이별했다면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어떻게 스며들어 우리는 지배할까. 그건 그들을 기억하는 이의 애정과 노력에 의해서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젊은 시절을 들려주는 고모의 노력 같은 것들. 니나 라쿠르의 『우린 괜찮아』속 마린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다.

마린에겐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엄마를 닮았다는 걸 알 확인시켜준다. 모든 걸 준비해 주는 할아버지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할아버지의 공간과 마린의 공간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살고 있다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마린의 아기 때 사진이 없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린의 곁에는 친구 메이블이 있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다정하고 친절하게 마린을 대했다. 둘은 사랑하는 연인이자 영혼을 나누는 사이였다. 문학에 대한 마린의 열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였다. 어느 밤 바닷가에서 할아버지 몰래 위스키를 마시고 서로를 탐하는 순간 밀려드는 황홀한 감각이 증거였다. 그런 메이블의 연락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혼자가 된 건 마린의 선택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메이블에게 마린은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후회하고 있다는 걸 메이블은 알고 있을까.

 

창밖엔 달, 나무들의 윤곽, 캠퍼스의 건물들, 산책로를 수놓는 불빛들이 펼쳐져 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나의 집이고, 메이블이 떠난 뒤에도 이곳이 나의 집일 것이다. 나는 그 풍경의 고요함을, 그 날카로운 진실을 음미한다. 눈이 따갑고 목이 멘다. 이 외로움을 무디게 할 무언가가 있었으면. 외롭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한 단어였으면, 외롭다는 말은 훨씬 덜 아름답게 들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외로움을 감당해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중에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불시에 덮치지 않도록, 온몸이 마비되어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16쪽)

소설은 기숙사에 홀로 남은 마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남은 마린은 갈 곳이 없다. 추운 겨울을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 그리고 메이블이 온다. 메이블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을까. 마린은 기쁘면서도 두렵다. 텅 빈 기숙사에서 마린은 메이블을 맞을 준비를 한다. 잘 지냈다는 인상을 주도록 책상과 벽을 정리하다 그만둔다. 메이블은 다 알 수 있으니까. 둘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소설은 마린과 메이블이 기숙사에서 함께 보내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긋났던 메이블과 마린의 감정들, 바닷가에서 서로를 확인했던 그 마음에 대해서도. 그리고 마린이 세계를 흔든 거대한 사건인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마린이 먹을 음식을 챙기고 빨래를 정리하고 학교생활의 상담을 해주던 할아버지, 마린의 편에서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주던 분이었다. 버디란 이름의 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는 근사한 분이셨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아니었다. 마린이 미래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마린의 일상은 습관처럼 평온했으니까. 새벽에 메이블을 만나러 나가던 일이며 할아버지가 혼자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일. 마린에게 할아버지는 유일한 울타리고 가족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실종 후 할아버지가 누구와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딸, 마린의 엄마였다. 할아버지는 딸의 유령과 살고 있었다. 마린에게 보여주고 돌려줘야 할 엄마를 독차지한 것이다.

정상적이었던 일상이 무너졌다. 마린은 감당할 수 없어서 도망쳤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메이블의 문자와 전화를 외면하고 대학 기숙사에서도 괜찮은 척 지냈다. 잘 지낸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메이블을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가자는 메이블의 말에 응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메이블과 함께 지난 모든 순간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언젠가는 괜찮아질 수 있다고 느꼈다. 할아버지를 잃은 무거운 상실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도 순진해서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일 거라고 믿었다. 우리 자신에 관한 사실의 조각들을 맞추기만 하면 그럴듯한 하나의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거울 속에 보이는 우리 모습 같은, 우리의 거실 같은, 그리고 우리를 키워준 사람들 같은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대신. (157쪽)

어둡고 침울한 쪽으로 기울 수 있는 내용을 마린의 시선으로 묘사하며 균형을 맞춘다. 마린과 메이블의 맑고 투명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십 대 소녀만이 볼 수 있고 느끼며 알 게 되는 세계라고 할까.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로맨스 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마린처럼 우리도 이별과 상실, 그 안에서 성장하며 다른 세계를 공유하게 된다. 그리하여 단단해진 우정과 사랑을 마주하며 괜찮다고 말하며 웃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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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 빈에서 만난 황금빛 키스의 화가 클래식 클라우드 3
전원경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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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근대의 틀을 벗어나 현대로 가기 위해 몸부림칠 때, 클림트는 고전보다 더 먼 과거, 더 먼 세계로 역영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맥질했을 것이다. 그의 영감의 원천은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이 아니라 이집트의 상형문자, 미케네와 아시리아 문명의 문양, 라벤나의 모자이크에서 나왔다. 다른 화가들이 햇빛의 인상이나 형태의 주관적 모습을 고민하고 있을 때 클림트는 오직 장식에 집착하고 있었다. (280쪽)

첫눈에 반한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아마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에 대한 느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 있는 그림 말이다. 묘하게 끌리는 그림, 클림트의 그림이 그러하다. 자꾸만 시선이 머무는 그림,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사로잡았을까? 클림트가 그런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독특한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간직한 화가, 그를 만나러 빈으로 떠난 전원경을 따라 그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나는 클림트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사생활이 복잡했다는 것 정도만 들었을 뿐이다. 이 역시 소문 비슷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의 가족, 그의 연인, 그가 사랑한 것들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클림트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은 흥미로웠고 이 한 권의 책으로 그에게 가까이 다가선 것 같아 즐거웠다. 클림트의 그림을 떠올리면 황금빛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게 금 세공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이라니. 어쩌면 그를 둘러싼 가족과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데 화려한 색감과 클림트의 그림이 운명처럼 느껴졌다. 더욱 놀라웠던 건 빈 장식공예학교 학생 신분인 어린 나이에 예술가 컴퍼니를 창립했다는 것이다. 두려움이라곤 없었던 클림트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런 도전과 혁신적인 클림트를 생각하면 19세기 말, 과거를 지향하는 듯했던 도시 빈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을 찾았을 것 같은데 아니었다. 클림트에게 빈은 그 자체로 그의 삶을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이 전부였다.

이 책의 시작도 그러하다. 빈이라는 도시와 가족. 빈의 클림트 빌라, 부르크 극장, 빈 미술사 박물관, 빈 분리파 회관 제체시온, 이탈리아 라벤나, 아터 호스의 클림트 센터로 이어져 클림트의 삶과 그의 그림을 보여준다. 예술가 컴퍼니가 의뢰받은 천장화로 인해 빈에서 입지를 굳혔고 새로운 개혁의 의지는 빈 대학 천장화의 스케치에서 대한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클림트의 확고한 의지는 스물세 명의 예술가들과 ‘빈 분리파’를 결성하여 활동으로 이어진다.

내게 중요한 점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그림을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내 그림을 좋아하는가 하는 문제다. - (《비너 모르겐차이퉁》, 1901년 3월 22일 - 94쪽)

책에서 본 클림트는 큰 키의 우람한 외모를 가졌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연약한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남동생의 죽음을 경험하면서도 심리적으로 불안했고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힘들어했다. 그가 가족이자 연인이었던 에밀리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찾은 이름도 에밀리였으니까. 정신적 지주였던 에밀리에게 자신의 모든 걸 남겼다는 게 이해가 된다.

책을 통해 클림트의 그림에 대한 해설을 드는 건 기대 이상의 즐거움이었다. 겨우 책을 통해서만 접해지만 길이 34미터에 달하는 <베토벤 프리즈>는 정말 아름다웠고 놀라웠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의 경이로움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클림트 그 이름 자체가 유니크한 세계라는 걸 실감한다. 아름다운 초상화가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기묘하면서도 점점 더 황홀해지는 작품. 모델을 앞에 두고 그림을 그리면서 클림트가 빠져든 건 무엇일까, 궁금할 뿐이다.

에밀리와 여름을 보낸 아트 호수에 대한 부분도 무척 좋았다. 클림트의 풍경화는 정말 매력적이다. 좀 더 많은 풍경화가 수록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책이라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클림트가 살아온 삶에 대한 이해와 그가 지향한 그림의 세계가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 여전히 우리를 미혹하는 클림트의 그림, 그 안에서 그가 영원히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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