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괜찮아
니나 라쿠르 지음, 이진 옮김 / 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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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가족과 이별한다. 저마다 시기만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이별을 준비하면서 살지 않는다. 적절한 시간에 적절하게 이별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산다. 존재 이전에 이별했다면 운명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어떻게 스며들어 우리는 지배할까. 그건 그들을 기억하는 이의 애정과 노력에 의해서다. 내가 모르는 엄마의 젊은 시절을 들려주는 고모의 노력 같은 것들. 니나 라쿠르의 『우린 괜찮아』속 마린에게도 그런 이야기가 필요했다.

마린에겐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사람들의 시선이 엄마를 닮았다는 걸 알 확인시켜준다. 모든 걸 준비해 주는 할아버지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할아버지의 공간과 마린의 공간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살고 있다는 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마린의 아기 때 사진이 없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린의 곁에는 친구 메이블이 있었고 그녀의 부모님은 다정하고 친절하게 마린을 대했다. 둘은 사랑하는 연인이자 영혼을 나누는 사이였다. 문학에 대한 마린의 열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존재였다. 어느 밤 바닷가에서 할아버지 몰래 위스키를 마시고 서로를 탐하는 순간 밀려드는 황홀한 감각이 증거였다. 그런 메이블의 연락을 외면하고 철저하게 혼자가 된 건 마린의 선택이었다. 그토록 사랑하는 메이블에게 마린은 왜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후회하고 있다는 걸 메이블은 알고 있을까.

 

창밖엔 달, 나무들의 윤곽, 캠퍼스의 건물들, 산책로를 수놓는 불빛들이 펼쳐져 있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나의 집이고, 메이블이 떠난 뒤에도 이곳이 나의 집일 것이다. 나는 그 풍경의 고요함을, 그 날카로운 진실을 음미한다. 눈이 따갑고 목이 멘다. 이 외로움을 무디게 할 무언가가 있었으면. 외롭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한 단어였으면, 외롭다는 말은 훨씬 덜 아름답게 들려야 한다. 그러나 지금 외로움을 감당해 두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중에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불시에 덮치지 않도록, 온몸이 마비되어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16쪽)

소설은 기숙사에 홀로 남은 마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남은 마린은 갈 곳이 없다. 추운 겨울을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 그리고 메이블이 온다. 메이블과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을까. 마린은 기쁘면서도 두렵다. 텅 빈 기숙사에서 마린은 메이블을 맞을 준비를 한다. 잘 지냈다는 인상을 주도록 책상과 벽을 정리하다 그만둔다. 메이블은 다 알 수 있으니까. 둘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소설은 마린과 메이블이 기숙사에서 함께 보내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긋났던 메이블과 마린의 감정들, 바닷가에서 서로를 확인했던 그 마음에 대해서도. 그리고 마린이 세계를 흔든 거대한 사건인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드러난다.

 

마린이 먹을 음식을 챙기고 빨래를 정리하고 학교생활의 상담을 해주던 할아버지, 마린의 편에서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주던 분이었다. 버디란 이름의 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는 근사한 분이셨다. 할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 될 건 아니었다. 마린이 미래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마린의 일상은 습관처럼 평온했으니까. 새벽에 메이블을 만나러 나가던 일이며 할아버지가 혼자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일. 마린에게 할아버지는 유일한 울타리고 가족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아니었다. 할아버지의 실종 후 할아버지가 누구와 살아왔는지 알게 된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딸, 마린의 엄마였다. 할아버지는 딸의 유령과 살고 있었다. 마린에게 보여주고 돌려줘야 할 엄마를 독차지한 것이다.

정상적이었던 일상이 무너졌다. 마린은 감당할 수 없어서 도망쳤다. 철저하게 혼자가 되기로 한 것이다. 메이블의 문자와 전화를 외면하고 대학 기숙사에서도 괜찮은 척 지냈다. 잘 지낸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메이블을 마주한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집으로 같이 가자는 메이블의 말에 응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메이블과 함께 지난 모든 순간을 떠올리고 추억하며 언젠가는 괜찮아질 수 있다고 느꼈다. 할아버지를 잃은 무거운 상실감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너무도 순진해서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대로일 거라고 믿었다. 우리 자신에 관한 사실의 조각들을 맞추기만 하면 그럴듯한 하나의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거울 속에 보이는 우리 모습 같은, 우리의 거실 같은, 그리고 우리를 키워준 사람들 같은 형상이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 대신. (157쪽)

어둡고 침울한 쪽으로 기울 수 있는 내용을 마린의 시선으로 묘사하며 균형을 맞춘다. 마린과 메이블의 맑고 투명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십 대 소녀만이 볼 수 있고 느끼며 알 게 되는 세계라고 할까.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로맨스 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마린처럼 우리도 이별과 상실, 그 안에서 성장하며 다른 세계를 공유하게 된다. 그리하여 단단해진 우정과 사랑을 마주하며 괜찮다고 말하며 웃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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