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 탐서주의자 표정훈, 그림 속 책을 탐하다
표정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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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언제나 새롭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문장을 모아 엮은 책, 명사가 추천한 책만 수록한 책, 사라진 책만 소개하는 책,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내용으로 꾸며진 책, 오롯이 리뷰로 채워진 책,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심지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내용까지. 책을 말하는 방법은 이처럼 다양하다.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책에 대한 책은 여전히 지나칠 수 없는 존재다. 드라마나 광고에 등장하는 책에 대한 궁금증도 커진다. 그러니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이란 매혹적인 제목의 책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표지의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293호 열차 C칸>이다. 화가와 제목은 정확하게 알지 못해도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그림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그림 속 저 책은 무엇일까. 한 번쯤 궁금했을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그 책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건 아니다. 그저 상상할 뿐이다. 그림 속 여자가 되어,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을지 말이다. 독자는 그렇게 저자의 상상에 자신의 상상을 더하는 책 읽기를 시작한다.

 

책에는 모두 38개의 그림이 등장하고 그에 따른 이야기가 나온다. 책이 등장하는 그림이니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작품이 많다. 물론 화가와 그림에 대한 친절한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어쩌면 이 책은 그림을 읽는 책이라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책을 천천히 넘기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그림을 먼저 읽어도 좋다. 그림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인 후 저자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내용을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고,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필요도 없이 그렇게 책장을 넘긴다. 세상에 수많은 책이 존재하니 그냥 스치는 읽는다 해도 누가 뭐라 할까. 이런 그림을 오래 바라보며 천천히 느리게 읽어보자.

 

 

독서하는 여인 - 윤덕희

 

여인의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 마음을 격동시키는 내용의 책이나 정신의 나태를 깨부수는 책, 새롭고 놀라운 지식으로 독자를 뒤흔드는 책은 아닌 듯하다. 온전한 휴식으로서의 독서, 일상의 고단함에서 잠시나마 멀어져 긴장을 풀게 해주는 독서다. 정신의 날을 벼리는 것만이 독서의 효용이나 목적이 아니다. 마음의 결을 한가로이 고르는 것 역시, 아니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기쁨일 수 있다. (61쪽)

이런 그림은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어디서 위로를 받았을까. 쉴 새 없이 일만 하던 엄마에게 독서는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와 친하게 지내신 분들이 성경을 읽는 모습에 엄마를 겹쳐보기도 한다.

 

석고상, 장미꽃, 소설 두 권이 있는 정물 - 빈센트 반 고흐

 

 

고흐가 극도로 침체될 때마다 삶을 위로해주고 힘을 준 것은 소설이었다. 이방인으로서 타국을 떠돌던 시기 고흐에게, 극히 제한된 범위의 친교에 머무르며 사실상 사회와 단절된 때가 많았던 고흐에게 책은 세상과 자신을 이어주는 다리였다.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 정서, 사회 현실을 그에게 알려준 것도 소설이었다. 소설을 통하여 동시대와 호흡했던 그가 말한다. “우리는 읽을 줄 알잖아. 그러니 읽어야지.” (162~163쪽)

고흐가 소설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건 처음 알았다. 나 역시 책과 소설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이 그림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을 볼 때도 고흐의 말이 떠오를 것 같다. 읽을 줄 아니 더욱 열심히 읽는 일어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울림, 한 권의 책으로 받은 치유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꿈 - 비토리오 마테오 코르코스

 

‘책은 만인(滿人)의 것’이라는 말이 있다. 책이 실제로 만인의 것, 모든 사람의 것이 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필요했다. 만인이 문자를 해독할 수 있어야 하고, 만인이 책을 살 수 있어야 했으며, 지배 계층의 입맛에 맞는 책만 허락되는 현실을 무너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그렇게 책이 만인의 것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다. (236~237쪽)

한 권의 책이 많은 이들의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그림의 힘이라고 할까. 그림 속 노란색 표지의 세 권이 책이 정말 궁금하다. 저자의 상상대로 에밀 졸라의 소설일 수도 있지만 나만의 목록을 만드는 일도 재미있겠다.

​책 속의 그림을 통해 우리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가, 아니 나에게 책은 무슨 의미인가 묻는다. 어느 시절에는 ‘내 인생의 책’이나 ‘필사하기 좋은 책’을 추천하기도 했다. 현재 내게 책은 일상이며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날에는 그 크기가 커지고 어떤 날에는 작아지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읽는 모습, 나의 표정은 어떨까. 가만히 상상을 해본다. 그림 속 어떤 여인과 가장 비슷할까, 그런 엉뚱한 상상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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