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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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이 조금 오르면 업무량은 그대로인데도 인원을 대폭 줄였다. 또 무급 휴게 시간을 계속 늘려 최저임금이 올라도 시급 노동자는 더 받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시급 노동의 현장이며, 은퇴 후 일터에 뛰어든 단기 비정규직 고령자들의 세상이다. 수십만에 달하는 노인들이 믿기지 않는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령 노동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은 전혀 없다. 정부, 입법자 그 누구도 노령 노동자의 이런 현실을 잘 알지 못하며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다. (8쪽)

일흔을 앞둔 고모는 여전히 일을 하신다.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일은 아니지만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 일이다. 일흔이 넘은 작은아버지도 일을 하신다. 개인택시를 하시는데 요즘엔 정말 힘드신 것 같다. 그럼에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계신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평생직장이란 말이 사라지니 퇴직 후 일자리를 구하는 노인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나 다름없다. 한정된 일자리에 구직자가 몰려드는 것도 당연하다. 노인 일자리를 다룬 다큐에서 등장한 노인분은 연령 제한이 가장 속상하다고 하며 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내셨다. 그러나 그런 방송에서도 정작 노인들의 노동 현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다. 그래서 가장 은퇴 후 가장 대표적인 일자리로 알려진 경비원의 노동 일지인 『임계장 이야기』를 읽고 나는 너무도 놀랐다. 내가 생각한 경비원의 업무가 너무도 많고 포괄적이며 그들의 근무환경이 너무도 열악해서였다.

임계장이라는 말에 저자의 이름이나 직책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대부분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줄인 말이다. 임시란 단어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말로 책에서 저자가 경험한 직종의 경비가 그러했다. 경비원은 언제든 해고될 수 있었다. 다른 누군가로 바로 대체할 수 있는 업무라 여길 수 있지만 그건 아니었다. 나부터도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대부분 아파트에서 어떤 불편함이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찾는 이가 경비 아저씨일 것이다. 출퇴근 시 주차 문제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택배를 부탁할 때, 층간 소음으로 인한 민원을 제기하는 일도 그렇다. 물론 저자가 근무한 도시의 아파트와는 상황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38년 동안 공기업에서 근무한 퇴직자로 60세에 경비원 일을 시작했다. 인생은 60부터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일터에서는 노인 취급을 하는 게 실상이다. 2016년 6월 1일부터 버스터미널의 버스 배차와 운행을 담당하고 탁송 소화물을 싣는 일부터 아파트 경비와 건물 경비, 고속버스터미널의 경비까지 그의 일지를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에서 배차를 위해 누군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고 그들이 하루 종일 앉아서 쉴 잠깐의 시간도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받는 건 고사하고 필요한 비품도 지급되지 않았다.

가장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부분은 아파트 경비 업무에 관한 것이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으로서 관리사무소장의 횡포와 입주민의 갑질이 너무도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모든 아파트의 입주민 대표와 관리사무소장에게 해당된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먼지로 가득한 지하실에서 식사를 해야 하고 음식물 쓰레기와 입주민이 몰래 버린 폐기물을 처리하는 일, 눈이 오면 눈이 그칠 때까지 쓸고 또 쓸고 꽃도 쓰레기로 비치는 일상이 충격적이었다. 업무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입주민이 그들을 대하는 태도도 그러했다. 자신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무조건 어떤 일이든 다 해줄 수 있는 대상이라는 생각. 그들의 생각을 확인하듯 아파트 경비원을 10년 넘게 한 선배가 하는 말은 차마 읽을 수가 없다. ​

“자네는 경비원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네.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런 폐기물 더미에서 숨을 쉬고 살 수 있겠는가? 사람이라면 어떻게 석류 가루가 날리는 지하실에서 밥을 먹을 수 있겠는가? 자네가 사람으로 대접받을 생각으로 이 아파트에 왔다면 내일이라도 떠나게. 아파트 경비원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경비원은 할 수가 없어.” (122쪽)

저자의 경우 책임이 강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라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가장의 무게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아들의 학비를 위해 아파트 격일 근무를 하면서 근처 건물 경비일까지 했으니. 그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재활용품과 폐기물을 정리하면서 얻은 피부병과 건물 관리를 하면서 사고를 당했지만 바로 병원에 갈 수 없었다. 그러니 당연 치료를 미뤄졌고 정신력으로 모든 걸 버틸 수 있다고 믿었다.

고용주들의 입장은 언제나 단호했다. 적은 임금을 주고 많은 업무를 지시하는 것. 최소한의 근무환경이나 복지는 거론할 수 없었다. 그럴 거면 그만두라는 말이 경비원에게 가장 무서운 말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실시간으로 경비원을 감시하고 동료가 동료를 고발하도록 유도했다. 일터는 안전해야 한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 일터에만 국한된 것이라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벌어질 때마다 돌아볼 뿐 법적으로는 어떠한 규제도 없다. 경비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이가 없다. 아파트 관리법을 개정할 수 있는 사람들(정치권의 구의원, 국회의원)에게는 아파트 주민의 수가 중요하지 소수의 경비원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경비원의 고충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몇몇 아파트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도 나만 모르는 경비 아저씨의 고통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리수거 제대로 하기, 폐기물 스티커 부착해서 버리기, 음식물 쓰레기 잘 버리기, 고마움을 담아 인사하기,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이들, 법을 만드는 이들, 용역업체, 관리사무소 직원들, 갑질을 하는 주민, 임시직과 계약직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감출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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