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10만부 기념 특별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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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모두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러나 정작 내가 어떤 차별을 하고 살았는지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내가 차별받았다고 느끼며 살 뿐이다. 내가 경험한 불쾌감과 불편함이 가장 크다. 아마도 가장 최초의 기억은 어린 시절 집이었을 것이다. 남자형제와의 차별. 이어지는 기억은 학교에서 남학생과의 차별.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차별. 그때는 그게 차별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아무도 차별에 대해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고 그대로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도 모른 채 누군가를 차별하는 의식과 행동.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고 변화해야 한다고 느낀다.


책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내가 멀리서 보이는 대고 믿고자 했던 것들을 가까이에서 그 실제를 알려준다고 할까. 흔히 차별은 인권차별, 장애인, 성별 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이주민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그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문화권에서 왔으니 다른 점이 있을 거라 여겼다. 책에서 등장하는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말이 당사자는 절대 한국인이 될 수 없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쉽게 내뱉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고민한 적 없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인식이 달라졌다는 걸 차별이 없다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여성 간부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지 않냐, 과거에는 투표권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지 않냐는 식이다. 정말 우리 삶에 차별이 가득했다.


시대와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데 우리의 사고는 그에 따르지 못한다면 퇴보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저자가 차별에 접근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발생하는 차별에 대해 언급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이름표 색깔을 달리하는 식의 차별이나 학교에서 우열반 편성은 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지 지금껏 그래왔으니까.


성적이 다르니 다르게 대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는 오해가 있다. ‘다른 것은 다르게’ 라는 명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대하면 불평등이 생긴다는 의미로는 타당하다. 청각장애인에게 영어 듣기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불평등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평가 기준으로 순위를 갈라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분하여 한편에는 존중과 지원을, 다른 편에는 무시와 박탈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보상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승자가 모든 기회와 존경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모멸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114~115쪽)


차별이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는 너무도 부끄러웠다. 길 위의 청소년, 동성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 노숙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담긴 불쾌감이 차별이면서 감시였던 것이다. 만약 길 위의 청소년이 조카나 내 아이였다면, 동성 연인이 내 친구라면 나는 어떠했을까. 위치가 달라지니 나의 시선도 달라진다.


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사람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계가 있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데 동참한다. 입장할 자격이 없는 공공의 공간에 침범한 사람, 거리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교화시킨다. 이런 시선의 익명성과 편재성 때문에, ‘낯선 존재’인 소수자들이 느끼는 일상의 시선 혹은 ‘감시’의 압박은 삶을 만성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139쪽)


이처럼 차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관습이나 관념, 사회적 약속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가득했다. 때로는 농담이라는 말로, 때로는 남들도 다 그러는데 왜 그러냐고 당당해하면서 차별에 가담하면서 살고 있었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당장 평등한 사회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노력해야 한다. 우선 내 주위를 살펴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189쪽)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공존의 조건으로서 평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아직 더 변해야 한다. (204쪽)


그동안 스스로 선량한 시민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믿고 살았던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던 우리에게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차별이나 차별받았던 경험을 공유한다면 조금씩 성장하는 사회로 변화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좋은 책을 넘어 옳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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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에게
김이설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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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웃고, 같이 울고, 같이 아파했던 우리의 시간을 떠올린다. 이제는 같이 늙어갈 소중한 친구들의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리고 내 이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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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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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우연하게 고미숙 작가가 출연한 방송을 잠깐 시청했다. 익히 그의 명성을 알았지만 소탈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대화를 통해 참 멋진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를 그렇게 만든 힘은 읽기와 쓰기였다는 걸 책을 통해 확인했다. 책이 주는 위안과 용기, 그리고 힘을 알기에 책을 놓을 수 없다. 어찌할 수 없을 때 나는 책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으로 도피한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현명한 일이었다. 물론 그가 읽고 공부한 고전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책 역시 통쾌하다. 바로 앞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시원시원하다.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더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전한다고 할까.


우습게도 책을 읽으면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계속 고민했다. 그러니까 집중해서 읽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리뷰를 쓰려면 최소 세 번 이상 읽어야 한다는데 그건 현재 내 상황으로는 어렵다. 핑계라고 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이 괜찮다는 것에 대해 쓰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는 거다. 좋은 책을 읽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일도 즐거움인데 말이다. 그러니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건 더 중요하다는 걸 또 배운다.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책만 생각한다. 역시나 편협하고 짧은 소견이다. 읽기를 말하기 위해 작가는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과 책 사이에 무엇이 존재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은 그런 의미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 인간에게 산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그 시작은 읽기에 있다는 말이다.


책은 삶의 토대이자 존재의 조건이다. 책과의 만남이 있고 그 위에는 인생이라는 길이 시작된다. (60쪽)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 안에 역사적 진실이 있다는 증거라 여겨서다. 그들의 청춘을 빛나게 해준 것들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이념과 정파에 따라 혁명의 전략전술은 다 달랐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지향했던 구호는 단 하나. 누구나! 무엇이든! 다 읽을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 (79쪽)


읽고 있다. 특히 지금 이곳에 있는 이라면 모두 무언가를 읽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읽은 게 맞는가? 이 질문에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머뭇거리고 있다. 역사 속 위대한 위인, 행동하는 양심은 모두 책을 읽었고 책에서 그 의지를 발견했다. 보통의 시민인 나는 위대한 사람도 행동가도 꿈꾸지 않는다. 그래도 책의 가치를 안다고 여겼는데 읽기에 과연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발견하려 읽고 있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임을 아는 것.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내가 곧 세계가 되고 별이 되고 우주가 된다. 그 자체가 이미 힐링이다. 세상과 경쟁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존재의 광대무변한 토대이자 배경으로 여기게 된다. 그 유동성 속에서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그것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는’ 신체가 되는 것,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86쪽)


가장 일차적인 근간이 되는 것은 읽기다. 읽는 행위가 없는 학습은 없다. 책이 없는 배움은 없다. 묵독이든 낭독이든 낭송이든 일단은 읽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사람을 읽고 계절을 읽고 사물을 읽는다. 오직 ‘읽기’에서만이 가능하다. (102쪽)


단순한 읽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주변을 읽고 세상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열심히 읽은 자여, 그럼 다음엔 무얼 해야 하나. 맞다. 써야 한다. 쓰는 건 정말 어렵다. 지금도 중언부언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가 직접 강의하는 내용을 담은 실전 편을 통해 진짜 쓰기를 경험할 수 있다. 1800자의 칼럼,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게 너무도 어려운 리뷰, 막연하게도 쉽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쓸 게 없는 에세이, 떠난 사유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인 여행기에 대한 글쓰기 강의와 예시문이 실려있어 도움이 된다.


쓴다는 건 정리하는 일이다. 정리를 하는 건 모든 과정을 학습했을 때 가능하다. 한 권의 책이 내 안으로 와서 나만의 의식과 겹쳐서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야 한다.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 읽은 즐거움과 기쁨이 쓰기로 완결되었을 때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게 그 만족감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길. 이 책을 적어도 세 번 이상 읽고 쓴 글이 아니기에.


읽기는 타자의 언어와 접속하는 것이라면 쓰기는 그 접속에서 창조적 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접속과 변용은 연결이면서 또 도약이다. 남이 걷는 길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내가 걷는 단 한 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이 읽는다고 절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야구를 아무리 많이 본다 한들 선수들처럼 치고 던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쓰기는 다른 활동과 능력이 요구된다. 하여, 더 고도의 수렴과 집중이 필요하다. 읽기는 약간의 산만함을 허용하지만 쓰기는 그런 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잠시 정신 줄 놓는 순간, 바로 엔트로피 법칙에 말려든다. 낱말들이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문장 하나 단락 하나 구성하기도 벅차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말들을 다시 연결하여 문장을, 단락을, 그리고 책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지!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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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되풀이 창비시선 437
황인찬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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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몰라서 더욱 매력적인 세계가 있다. 바로 시의 세계가 그러하다. 닿을 수 없기에 나만의 그릇에 담기라도 하고 싶은 욕망에 항상 시집을 찾는 것 같다. 어쩌면 황인찬의 시집을 읽는 일도 그런 나만의 방식은 아닐까 싶다. 황인찬의 시를 읽노라면 단조의 음악이 흐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일부러 기쁨은 감추고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게 습관이 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그건 황인찬의 시의 형식일지도 모른다. 황인찬의 고유한 무엇이라고 할까.

혼자만의 독백, 혹은 방백, 아니 고백처럼 들리는 시들을 읽으면서 자꾸만 뭐라 대답을 하고 싶어지는 거다. 시 속 너는 내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시인의 목소리에 뭔가 물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이라고 하면 맞을까. 이런 시를 읽노라면 아련한 기억 속 아담한 학교와 작은 운동장이 떠오른다. 그 시절 나와 편지를 나눴던 친구는 어디서 잘 살고 있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 같은 게 쌓인다. 정작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 못하고 괜한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쏟아놓았던 나의 편지는 사라지고 없겠지만 우리의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 믿고 싶다.


너는 장화

나는 화분

꽃바구니를 생각했는데

물병만 깨졌지

지난겨울 우리가

학교 뒤편에 묻어둔 비밀은

이제 썩어 없어졌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자

그럼 되잖아

마치 다음이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구나

네가 분수, 말하자

한낮이 어두워지고

이제 우리에게 할 말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는 여름 나는 불안

나는 망각 너는 모과

교문 너머에서

다음이 오고 있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전문)

이런 시를 읽으면서는 그 새의 어떤 빛깔이었냐고 묻고 싶다. 새의 슬픔까지 온전하게 묻어두었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생명이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의 두려움과 슬픔을 말이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그래, 죽음은 멈춤이지. 호흡이 멈추고 손끝의 작은 움직임도 멈추고 머리를 채운 어떤 생각들과 가슴에 담김 모든 감정이 멈추는 일. 누군가는 멈췄다가 다시 움직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다행일까. 그러니 이런 황인찬의 시를 읽는 일도 다행인 것이다.


며칠 전에는 새를 묻고 왔다

굳어가는 새를 보며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너는 정원을 청소하는 중이었고

죽어버린 새를

손에 쥐고 있는 내게

너는 뭘 하느냐 물었지

새가 멈췄어,

너무 놀라서 얼결에 그렇게 답해버렸다

그후로 무엇인가

자꾸 멈춰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야,

그것은 잠자리에 들기 전 네가 했던 말이고

맞아, 그냥 다 생각이야,

이건 나의 생각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정원의 나무에는 새들이 많았다

날아가고 또 날아가도

새들이 다시 가지에 앉고,

또 어떤 새는 떨어지고, 그냥 그랬다 (「낮 동안의 일」, 전문)

천천히 시집을 읽으면서 여름과 여름 사이를 생각했다. 잔인한 여름과 성장하는 여름, 열매를 맺기 위해 바람과 뜨거움을 삼켜야 하는 어떤 나무들을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자두가 등장하는 시를 오래 읽었고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또 어떤 성장을 할까,” 란 시의 제목이 「재생력」이라서 나는 울컥했다. 황인찬의 시가 내게 전하고 싶은 말이 마치 그것 같아서 말이다.


다 함께 모여서 방학숙제를 했지

무슨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그것은 여름 내내 여러 마음이 엇갈리고, 지구의 위기까

진 아니어도 마을의 위기쯤은 되는 사건을 해결한 뒤의 일

아이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는

이 장면은

불안하고 섬세한 영혼의 아이들이 모험을 마치고 일상을

회복하였으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모험을 통해 작은 성장

을 거듭해나갈 것임을 암시하는

그런 여름의 대단원이다

물론 중간에 다투기 시작한 아이들 탓에 결국 숙제는 끝

내지 못할 테지만

뭐 어때, 숙제는 언제나 남아 있는 거잖아(웃음)

사건 이후에도 삶은 이어지고

마을은 돌아가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거야

여름 내내 모험에 도움을 주었던,

온갖 사물에 깃든 신령들에게 마음속으로 안녕을 고했지

지금의 일상을 소중히 하자

다시는 이런 날이 오지 않을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결국 애들은 싸우기 시작하고,

한참을 씩씩대다 서로를 바라보다

다 함께 웃는 것으로

이 장면은 끝난다

그리고 기나긴 스태프롤

검은 화면을 지나면

다시 첫 장면이다

앞으로 벌어질 마음 아픈 일들을

알지 못하는 방학 직전 어느날의 교실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야

여름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또 어떤 성장을 할까,

그것을 궁금해하며

카메라는 천천히

여름의 푸른 하늘을 향해 움직인다 (「재생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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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끈질긴 서퍼 - 40대 회사원 킵 고잉 다이어리
김현지 지음 / 여름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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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마주하는 얼굴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는 어떤 얼굴, 피곤하거나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 일부러 웃어 보이거나 화가 난 표정을 짓는 얼굴. 바로 나의 얼굴이다. 양치질을 할 때, 세수를 할 때 나를 본다. 가끔 거울 속 나에게 말을 건네기도 한다. 그 공간에 혼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삶이라는 규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하루하루. 누군가는 과감히 그 틀을 던져버리고 다른 항로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우울감이 몰려온다. 그러나 곧 나는 나를 찾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때로 지치고 슬프고 우울하니까.

그런 감정들이 높아지는 벽으로 나를 가둘 때 나는 책을 읽었다. 그 벽들을 부수기 위해, 아니면 다른 재료로 벽을 쌓기 위해 나는 책을 읽고 뭔가를 썼다. 그게 일기든, 중얼거림이든, 리뷰든,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쓴다는 게 중요했다. 어떤 목표나 결과를 얻기 위한 적도 있었고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몰려드는 잡념에도 단단해지려고 한다. 나는 그러려고 한다. 이런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쓰고 있는 건 김현지의 『가장 끈질긴 서퍼』를 읽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제목만 보고 정유미, 최우식의 <여름방학>을 생각했다. 파도를 타는 서퍼, 다음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서퍼. 서퍼를 배우는 과정인가, 생각한다. 보기 좋게 어긋났다. 40대 직장인의 일기였다. 하루 일과의 기록이었다가, 여행의 이야기였다가, 일과 나 사이의 거리를 재는 글이었다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고백이자, 연서 같은 그런 글들이었다.


어떤 글은 더욱 몰입했고 어떤 글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구나 싶었고 어떤 글은 가만히 반복해서 읽었다. 글이란 이래서 좋다. 글과 대화할 수 있고, 혼자 독백할 수도 있다. 계절의 흐름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처음 미술 학원에 간 봄이 지나고 다시 다음 해 미술 학원에 간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어느 날 소중하게 다가온다. 일상이란 그런 것이다. 좋아하는 책을 만나는 부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찌릿함이 몰려온다. 어느 여름이 생각나기도 했고, 그 여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M이 떠올라서다. 우리는 감자, 책,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여름마다 앤드루 포터의 소설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을 읽는다. 좋은 소설은 왜 여름에 읽어야 할까. 읽을 때마다 운다. 그리고 원하던 것을 대부분 미끄러뜨리는 일을, 노인이 되기 위해 달릴 뿐인 생을 사랑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권태 아니면 비극인 날들 와중에 어떤 문장들은 시간을 견딘다. 물처럼 고인 여름의 빛, 나의 작은 블랙홀, 사랑했던 나라로 떠나는 짧은 여행. (95쪽)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고 특별히 부러울 만한 일상이 아니다. 딸이 있는 상사가 자신과 딸이 나누는 대화를 들려주고 그걸 가만히 듣는 이,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벽지를 바라는 부부의 대화를 통해 서툴고 다정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소설을 쓰는 친구의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식물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다녀온 여행지를 떠올리는 그런 글이다.

고통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서로의 고통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의 세계는 넓어진다는 것을, 결국 고통만큼 성장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단지 시간과, 견딜 수 있는 작은방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괜찮아, 시간은 결국 당신의 편이고, 우리는 서로의 곁에 있을 거니까. (197쪽)

그냥 버티고 있다. 요즘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미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뿐 아니라 사는 게 버티는 거 아닐까. 버틴 걸로 이미 미루게 되는 일들이 있다. 지속하는 것은 때로 그 자체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다. (288쪽)

삶이란 여전히 알 수 없다. 내가 체험하지 않을 것들은 모르는 세계가 된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다른 삶을 이해하려 하는 시간이 온다. 그게 참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 힘든 일이 생기고 겨우 해결하면 야속하게도 다른 일이 터진다. 한숨을 쉬며 시간을 견디는 일, 질끈 눈을 감고 잊어버리는 순간들, 그 모든 게 나를 이루고 나를 감싸는 다정한 손길인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들이 뭉클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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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1-1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도 되고 위로가 되는 글이네요..^^

자목련 2020-11-10 09:38   좋아요 0 | URL
^^*
11월의 남은 날들이 따뜻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