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10만부 기념 특별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모두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러나 정작 내가 어떤 차별을 하고 살았는지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내가 차별받았다고 느끼며 살 뿐이다. 내가 경험한 불쾌감과 불편함이 가장 크다. 아마도 가장 최초의 기억은 어린 시절 집이었을 것이다. 남자형제와의 차별. 이어지는 기억은 학교에서 남학생과의 차별.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차별. 그때는 그게 차별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아무도 차별에 대해 차별하면 안 된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고 그대로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도 모른 채 누군가를 차별하는 의식과 행동.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고 변화해야 한다고 느낀다.


책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내가 멀리서 보이는 대고 믿고자 했던 것들을 가까이에서 그 실제를 알려준다고 할까. 흔히 차별은 인권차별, 장애인, 성별 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그러하다. 이주민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에 대해서는 그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고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문화권에서 왔으니 다른 점이 있을 거라 여겼다. 책에서 등장하는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말이 당사자는 절대 한국인이 될 수 없다는 전제를 두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내가 쉽게 내뱉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고민한 적 없다.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인식이 달라졌다는 걸 차별이 없다고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과거에는 여성 간부가 없었는데 지금은 있지 않냐, 과거에는 투표권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지 않냐는 식이다. 정말 우리 삶에 차별이 가득했다.


시대와 삶의 방식이 변화하는데 우리의 사고는 그에 따르지 못한다면 퇴보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저자가 차별에 접근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발생하는 차별에 대해 언급한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이름표 색깔을 달리하는 식의 차별이나 학교에서 우열반 편성은 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지 지금껏 그래왔으니까.


성적이 다르니 다르게 대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는 오해가 있다. ‘다른 것은 다르게’ 라는 명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대하면 불평등이 생긴다는 의미로는 타당하다. 청각장애인에게 영어 듣기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불평등한 것처럼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평가 기준으로 순위를 갈라 우월함과 열등함을 구분하여 한편에는 존중과 지원을, 다른 편에는 무시와 박탈을 주어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보상이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승자가 모든 기회와 존경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모멸과 배제를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114~115쪽)


차별이 우리의 일상을 이렇게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는 너무도 부끄러웠다. 길 위의 청소년, 동성 연인으로 보이는 이들, 노숙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담긴 불쾌감이 차별이면서 감시였던 것이다. 만약 길 위의 청소년이 조카나 내 아이였다면, 동성 연인이 내 친구라면 나는 어떠했을까. 위치가 달라지니 나의 시선도 달라진다.


거리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어야 하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허용된 공간이 아니다. 거리에는 사람과 행동을 규율하는 규칙과 감시체계가 있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접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데 동참한다. 입장할 자격이 없는 공공의 공간에 침범한 사람, 거리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을 추방하거나 교화시킨다. 이런 시선의 익명성과 편재성 때문에, ‘낯선 존재’인 소수자들이 느끼는 일상의 시선 혹은 ‘감시’의 압박은 삶을 만성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139쪽)


이처럼 차별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관습이나 관념, 사회적 약속이란 이름으로 우리 곁에 가득했다. 때로는 농담이라는 말로, 때로는 남들도 다 그러는데 왜 그러냐고 당당해하면서 차별에 가담하면서 살고 있었다. 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온 날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당장 평등한 사회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노력해야 한다. 우선 내 주위를 살펴보는 일도 필요하다. 그리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니까.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우리들은 서로에게 차별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고 경청함으로써 은폐되거나 익숙해져서 보이지 않는 불평등을 감지하고 싸울 수 있다. 우리가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옮기는 것이다. (189쪽)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 공존의 조건으로서 평등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정된 ‘옳은’ 삶을 규정하지 않는 이 해체의 시대가 버겁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는 인류가 지속적으로 갈구하는 자유를 획득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왕족이나 귀족이라는 소수가 누리던 자유를 민중이라는 다수가, 그리고 다음 단계로 사회 바깥에 놓여 있던 모두가 향유하게 될 때까지 세상은 아직 더 변해야 한다. (204쪽)


그동안 스스로 선량한 시민으로 차별하지 않았다고 믿고 살았던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던 우리에게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니 더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일상에서 차별이나 차별받았던 경험을 공유한다면 조금씩 성장하는 사회로 변화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좋은 책을 넘어 옳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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