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고미숙의 글쓰기 특강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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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 우연하게 고미숙 작가가 출연한 방송을 잠깐 시청했다. 익히 그의 명성을 알았지만 소탈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대화를 통해 참 멋진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그를 그렇게 만든 힘은 읽기와 쓰기였다는 걸 책을 통해 확인했다. 책이 주는 위안과 용기, 그리고 힘을 알기에 책을 놓을 수 없다. 어찌할 수 없을 때 나는 책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으로 도피한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현명한 일이었다. 물론 그가 읽고 공부한 고전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책 역시 통쾌하다. 바로 앞에서 그의 얼굴을 마주하고 강의를 듣는 것처럼 시원시원하다.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더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전한다고 할까.


우습게도 책을 읽으면서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계속 고민했다. 그러니까 집중해서 읽은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리뷰를 쓰려면 최소 세 번 이상 읽어야 한다는데 그건 현재 내 상황으로는 어렵다. 핑계라고 할 수 없다. 어쨌거나 나는 이 책이 괜찮다는 것에 대해 쓰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는 거다. 좋은 책을 읽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일도 즐거움인데 말이다. 그러니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건 더 중요하다는 걸 또 배운다.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책만 생각한다. 역시나 편협하고 짧은 소견이다. 읽기를 말하기 위해 작가는 인간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과 책 사이에 무엇이 존재할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책은 그런 의미로부터 시작한다. 인간의 역사, 인간에게 산다는 것은 안다는 것이고 그 시작은 읽기에 있다는 말이다.


책은 삶의 토대이자 존재의 조건이다. 책과의 만남이 있고 그 위에는 인생이라는 길이 시작된다. (60쪽)


금지되었다는 것은 그 안에 역사적 진실이 있다는 증거라 여겨서다. 그들의 청춘을 빛나게 해준 것들은 다름 아닌 책이었다. 이념과 정파에 따라 혁명의 전략전술은 다 달랐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지향했던 구호는 단 하나. 누구나! 무엇이든! 다 읽을 수 있는 세상! 그리하여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되는 세상! (79쪽)


읽고 있다. 특히 지금 이곳에 있는 이라면 모두 무언가를 읽고 있는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읽은 게 맞는가? 이 질문에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눈치챘겠지만 나는 머뭇거리고 있다. 역사 속 위대한 위인, 행동하는 양심은 모두 책을 읽었고 책에서 그 의지를 발견했다. 보통의 시민인 나는 위대한 사람도 행동가도 꿈꾸지 않는다. 그래도 책의 가치를 안다고 여겼는데 읽기에 과연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발견하려 읽고 있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임을 아는 것. 그렇게 나아가다 보면 내가 곧 세계가 되고 별이 되고 우주가 된다. 그 자체가 이미 힐링이다. 세상과 경쟁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내 존재의 광대무변한 토대이자 배경으로 여기게 된다. 그 유동성 속에서 자존감이 충만해진다. 그것을 누리고 싶다면? 무엇이든 ‘읽을 수 있는’ 신체가 되는 것, 모든 책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86쪽)


가장 일차적인 근간이 되는 것은 읽기다. 읽는 행위가 없는 학습은 없다. 책이 없는 배움은 없다. 묵독이든 낭독이든 낭송이든 일단은 읽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사람을 읽고 계절을 읽고 사물을 읽는다. 오직 ‘읽기’에서만이 가능하다. (102쪽)


단순한 읽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주변을 읽고 세상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열심히 읽은 자여, 그럼 다음엔 무얼 해야 하나. 맞다. 써야 한다. 쓰는 건 정말 어렵다. 지금도 중언부언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가 직접 강의하는 내용을 담은 실전 편을 통해 진짜 쓰기를 경험할 수 있다. 1800자의 칼럼, 읽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게 너무도 어려운 리뷰, 막연하게도 쉽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쓸 게 없는 에세이, 떠난 사유와 생생한 현장의 기록인 여행기에 대한 글쓰기 강의와 예시문이 실려있어 도움이 된다.


쓴다는 건 정리하는 일이다. 정리를 하는 건 모든 과정을 학습했을 때 가능하다. 한 권의 책이 내 안으로 와서 나만의 의식과 겹쳐서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야 한다.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 읽은 즐거움과 기쁨이 쓰기로 완결되었을 때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게 그 만족감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길. 이 책을 적어도 세 번 이상 읽고 쓴 글이 아니기에.


읽기는 타자의 언어와 접속하는 것이라면 쓰기는 그 접속에서 창조적 변용이 일어나는 과정이다. 접속과 변용은 연결이면서 또 도약이다. 남이 걷는 길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내가 걷는 단 한 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이 읽는다고 절로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야구를 아무리 많이 본다 한들 선수들처럼 치고 던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쓰기는 다른 활동과 능력이 요구된다. 하여, 더 고도의 수렴과 집중이 필요하다. 읽기는 약간의 산만함을 허용하지만 쓰기는 그런 방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잠시 정신 줄 놓는 순간, 바로 엔트로피 법칙에 말려든다. 낱말들이 사방으로 마구 흩어져 문장 하나 단락 하나 구성하기도 벅차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말들을 다시 연결하여 문장을, 단락을, 그리고 책을 만들려면 얼마나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지! (11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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