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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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함께 글을 쓰는 즐거움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글짓기 특별수업을 받았을 때였다. 일상 산문에 대한 수업으로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선생님이 주제를 정해주시면 글을 쓰고 평을 들었다. 김민섭, 정지우, 오은, 남궁민, 김혼비, 이은정, 문보영, 일곱 작가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쓴 연작 에세이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으면서 작가들도 재미있게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물론 마감 때문에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주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로 고양이, 결혼, 방, 작가, 커피, 비, 친구로 다양하다.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좋아하는 주제, 궁금한 주제를 먼저 읽고 작가를 그렇게 선택해도 무방하다. 


시작은 고양이다. 고양이를 기르는 이들이 늘어나고 길냥이를 돌보는 이들도 많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도 있으니까. 직접 고양이를 키우지 않더라도 고양이와 관련된 사연 하나쯤은 간직하기 마련이다. 운전하면서 발견한 고양이를 구하지 못한 후회, 친구에게 전부인 고양이를 잃어버려 찾지 못할까 조바심을 냈던 마음을 만나면서 오빠네 고양이 ‘비실이’가 생각났다. 다음에 만나면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야겠다는 다짐까지. 


한 꼭지를 읽고 나니 작가의 분위기가 보인다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사실이 더 정확하겠다. 모두 작가이니 작가에 대해 특별한 말을 들려줄 거라 기대했지만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건 김민섭의 이런 글이다. 쓰는 사람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일은 대단한 게 아닐 것이다.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을 기록하는 일, 나를 쓰는 일의 가치에 대해 언급해 줘서 괜히 고맙다.


나는 모두가 쓰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바란다. 당신의 일상은 이미 몸에 깊게 새겨져 있다. 누군가는 별것 아니라고, 누가 읽어주겠냐고 그것을 옮겨 적지 않지만, 그건 이 세계에서 당신만이 길어올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무엇이다. 나는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당신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작가 - 50쪽, 김민섭)


아, 쓰다 보니 또 김민섭의 글이다. 친구에 대한 글에서 나는 언제나 나를 응원하는 친구가 떠올랐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친구, 10년 후가 기대된다는 친구,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친구. 저자는 작가로 자신이 책을 낼 때마다 이야기하기가 꺼려진다고 한다. 누구나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니까. 논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한 친구는 논문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읽어줬고 오타를 발견해 줬다고. 정성을 다해 읽지 않으면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이다. 나도 김민섭이 말한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그의 어색한 다가옴을 우리는 두 팔을 벌려 환영해야 한다. 축하한다, 어디에서 그걸 살 수 있니, 어디로 가면 그걸 볼 수 있니,라는 말에 더해, 나는 너를 읽었어, 너를 보았어, 나는 이 부분이 좋았어, 다음에도 꼭 너를 나에게 보여 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친구를 많이 두고 싶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친구’가 되고 싶다. 누구라도 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보일 수 있고 나는 그것을 그의 자존감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 언젠가는 정말로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진 친구가 되고 싶다. (언젠가, 친구 - 88~89쪽, 김민섭)


학창 시절에 단짝처럼 붙어 다녔지만 졸업과 동시에 연락이 끊긴 친구들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는 이은정 작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에게 잘 살라고 안부를 전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나 역시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친구에게 그런 마음을 전하다. 


비와 커피를 좋아하기에 이 주제는 더 가깝게 다가온다. 공평하게 내리는 비지만 그 비를 맞고 힘들어하는 이들의 삶에 대해 언급하며 나중에라도 비를 좋아할 수 없을 거라는 김민섭 작가, 비 오는 날 두 번의 교통사고로 당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은 작가, 커피를 좋아하는 언니를 언니가 떠난 후에야 커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은정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먹던 큰언니가 생각나 먹먹해졌다.


어쩌면 아침마다 식사 대신 커피를 마시며 출근하는 사람들은 하루의 무게를 들이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이겨내려고, 오늘까지는 버텨 보려고, 최대한 제정신으로 일터에 나가기 위해 쓰디쓴 각성제가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커피 한 잔의 무게는 살아 내야 하는 하루치의 무게인 걸까. 언니가 떠난 뒤에야 이따위 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면, 언니가 살아있을 때 느꼈더라면 언니에게 모닝커피를 한 번쯤 건넸을지도 모르는데 늘 그렇듯 깨달음은 늦고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커피 - 314쪽, 이은정)


기억 속 삶의 한 장면이 달려든다.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던 비 오는 날의 풍경,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스무 살 동생에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던 큰언니.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마셨던 오늘 아침의 커피 한 잔. 잊었던 기억, 잊었던 사람, 지나친 일상을 끄집어 낸 책이다. 일상의 순간, 보통의 날들을 더 많이 기록해야 한다. 책에서 발견한 따뜻하고 다정한 문장을 기록하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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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개정판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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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가족 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한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생각. 너무 가까이 있어서 잘 볼 수 없는 것들, 너무 멀리 있어서 정확하게 볼 수 없었던 것들. 그런 것들이 쌓이면 우리는 실재하지 않는 것들이 실재한다고 느낄 수 있다. 강화길의 「음복(飮福)」에서 우리가 놓친 건 무엇일까. 적절한 거리는 아니었을까. 그건 배려, 존중, 예의로 표현할 수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목 그대로 제사를 지내는 풍경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대화. 그 풍경은 익숙한 어느 시절의 모습이었다. 평범하다고 여겼던 가족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일상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 암묵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인 시간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오빠나 남동생의 삶이 먼저였다. 강화길은 직접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소설에 흐르는 그 무겁고도 서늘한 분위기. 처음엔 느끼지 못했던 그런 마음이 점차 선명하게 보인다. 그게 내가 여자라서, 나에게도 그런 고모가 있었기에, 어렴풋이 떠오르는 어린 시절 오빠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 때문은 아닐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보살핌과 정성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나를 마주하는 건 장류진의 연수의 이런 문장에서다. 운전 연수를 받는 과정을 상세히 들려주는 소설이다. 화자 ‘주연’은 일상의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가입한 맘카페를 통해 도로연수를 해줄 강사를 만났다.


엄마의 삼십 평생, 사십 평생에 가장 기쁜 순간들은 나로 인해 만들어졌다. 내가 반에서 일등을 하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가고, 장학금을 받고,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마다,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기쁜 순간이 차례로 갱신되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겨우 이런 일이, 결국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끝에서 결정되어버리는 일이, 일생의 가장 기쁜 순간씩이나 되는 그런 삶은 결코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217쪽)


소설에서 ‘주연’은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주체적인 삶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존재한다. 화자가 맘카페의 올라온 게시글과 댓글에 공감하지 못하면서도 그곳에서 도움을 받는 것처럼. 신상에 대해 묻고 조언을 하는 강사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점점 그녀가 연수 방식이 정말 유용하며 강사가 전해준 자신감이 엄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장류진 식의 연대를 보여준 소설이라고 할까.


처음에 말했던 가족 간의 거리를 인정하는 일은 장희원의 소설 「우리[畜舍]의 환대」 속 재현과 아내에게도 필요하다. 호주에 있는 아들 영재를 삼 년 만에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 그러나 그들이 마주한 건 당혹스러움이었다. 영재가 함께 살고 있는 공간과 사람들. 문신을 한 여자애, 흑은 노인과 한 가족처럼 지내는 일상을 선뜻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아들이 지향하는 삶과 재현의 그것은 너무도 달랐다. 소설 속 구절처럼 영재의 삶이 이쪽이라면 재현의 삶은 건너편이었다. 이곳과 그곳의 경계는 분명했다.


마당엔 가로등도 하나 없었다. 건너편에서 집집마다 노란 불빛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이 저런 곳 중 한곳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너무나도 저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간절히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꼴이 우스웠다.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그래, 난 분명히 용기를 냈어. 그는 들릴 듯 말 듯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畜舍]의 환대」, 259쪽)


소설을 읽은 일은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나와 똑같은 마음을 만나 반갑고 전혀 알 수 없는 마음을 만나면 주춤한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건 현실의 누군가의 삶이 그 안에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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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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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퀴어는 많아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의 2~5% 정도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굉장히 많은 숫자거든요. 한국에만 100만 명에서 250만 명쯤 되니까요. 그들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당연히 사회의 일부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앗, 방금 지나친 그 사람! 동성애자일 수 있습니다.” (200쪽)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는 일은 때로 간단하다. 그렇구나,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타인이 아닌 가족, 지인, 친구라면 좀 다르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제3자의 시선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계의 폭이 좁아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변한다. 김규진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읽으면서 나도 그랬다. 아, 이들의 사랑은 존중받아야 하고 축복해야 한다.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에 나온 장면을 봤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이 대단한가?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뿐인데.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편견 아닌 편견의 틀에 그녀의 삶을 가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정체성이 보통의 그것과 다르다고 해서 두려워해야 할까. 여기서, 보통의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그렇다. 그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문화,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게 기준일까. 다양성을 중요시한다고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가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레즈비언 커플에 대해 잘 모른다. 소설에서만 만났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해 조금 알 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김규진의 에세이는 내가 만나지 못하고 몰랐던 다른 삶을 들려준다.


제목을 통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대한민국에서 법적인 결혼은 이성에 한해 가능하다. 김규진과 그녀의 와이프는 혼인신고를 하러 구청에 갔지만 접수는 반려됐다. 담당 공무원도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민원인은 마냥 기다려야겠다. 예상했던 결과를 듣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솔직하고 발랄한 유머로 일상을 공개하고 있지만 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은 정말 속상했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응원했지만 결혼식을 하는 일에는 반대한 저자의 아버지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 과거 부모들도 동성동본으로 힘들었다는 말을 하면서 응원했던 아버지였기에. 처음에 관계가 나빴던 엄마는 자신의 카드로 혼수를 준비하라고 할 정도가 되었지만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거기다 딸이 공개적으로 뉴스에 나와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아버지는 절연을 선택하고.

“사실 나는 너희 엄마랑 동성동본 결혼을 했어.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내 본관을 다르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기를 하냐? 동성 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104쪽)

저자는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한국의 가장 기본적인 결혼식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준비를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하고 자료를 찾다가 직접 블로그를 열기로 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는 일, 누군가에겐 절실하게 필요한 정보라 여긴 것이다. 결혼에 대한 자세한 준비과정은 그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면서 커밍아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는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 진정한 팁이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으면서 그냥 전하라는 말, 공감한다. 친구가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은가. 놀랄 수도 있지만 켜켜이 쌓인 우정이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렵더라도 말이다.

어쩌다 보니 시끄럽게 일을 벌이게 되었다. 실명과 사진을 걸고 레즈비언의 삶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고,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를 받은 일 가지고 요란 벅적대게 인터뷰를 해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리고, 공중파 뉴스에 출연하여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명감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활동들을 이어간 동력은 대의보다는 나 개인의 편의였다.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175쪽)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란 말이 오래 남는다. 책으로 만난 김규진은 귀여웠고 솔직했고 멋졌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친구, 동료, 혹은 아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나 친구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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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12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엄청 멋있다고 생각하고 동경하는데, 내 남자는 안 피웠음 좋겠는 이중적 마음..ㅠㅠ 멀리 있는 사람을 수용하기고 응원하기란 정말 쉬운 거 같아요~

자목련 2021-01-12 11:2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걸요.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그 간격을 줄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추운 날이에요. 붕붕툐툐 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 - 2007~2020 특별판 나비클럽 소설선
황세연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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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언제나 매력적인 장르다. 드라마 <낮과 밤>의 초반에 빠져들었던 이유도 같다. 범인은 누구일까, 동기는 무엇일까. 남기고 간 흔적에서 증거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추리를 하면서 범인을 유추하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다. 한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미안하게도 한국추리문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송시우, 도진기 정도만 생각난다. 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추리작가협회에서 1985년에 제정되고 35년간 지속되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한국추리문학상 황금펜상 수상작품집』(2007~2020 특별판)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다.

올해의 수상작인 황세연 작가의 <흉가>를 시작으로 모두 12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모두 저마다의 매력으로 독자를 유인한다. <흉가>는 제목 그대로 오랜 시간 방치된 집으로 이사하는 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아내는 전에 살던 사람들에 대해 유독 궁금해한다. 집을 계약하고 수리를 위해 찾은 집은 더욱 흉물스럽다. 마당의 수국만이 유일하게 괜찮게 보인다. 이사 후 남편은 악몽을 꾸고 아내는 감정 기복이 심해진다. 동네 사람들에게 전해 들은 이 집의 사연은 더욱 놀랍다. 부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부부에게 관심을 갖는 노인과 아내를 아는 척 하는 사람도 나타난다. 아내는 자신이 언니와 착 가한 거라 말한다. 점점 아내가 수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에게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곳곳에 숨겨진 복선과 암시를 통해 나름 추리를 하면서도 혼돈에 빠지게 만든다. 잘 짜인 구성에 놀랐다.


황세연 작가는 2011년에 이미 수상한 경력이 있었다. <스탠리 밀그램의 법칙>은 중학생의 우발적 범행으로 딸을 잃은 아빠가 복수를 결심하며 실행에 옮기기 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룬다. 중학생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가족 관계를 조사한다. 재혼 가정으로 아내가 죽자 아들을 방치한 남자. 그 남자에게도 사연이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과관계의 끝이 어딘 인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아쉬운 점은 결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제목으로 예상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유철 작가의 <국선 변호사 - 그해 여름>은 가장 기본적인 추리소설의 형태를 지닌다. 애인을 죽였다고 자백한 젊은 경찰의 변호를 맡은 주인공은 진범이 따로 있음을 직감한다. 경찰과 검사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뒷바라지하고 결혼을 결심한 연인을 죽였다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경찰의 가족을 이야기를 듣고, 범행 장소를 찾아가 살펴보고 용의자를 지정하고 검거하는 과정이 뭔가 후련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소설처럼 변호사를 잘 만나서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박하익의 <무는 남자>는 잘 알려진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의 시작이다. 바바리맨의 변종으로 여학생의 팔목을 깨무는 남자를 찾아가는 여고생의 발랄하고도 신선한 탐정 이야기. 실체는 거대한 사학재단 비리라고 할까. 송시우의 <아이의 뼈>는 20년 전에 딸을 잃은 노파의 사연이다. 범인이 잡혔고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노파에게는 아니었다. 범인과 거래를 하는 노파. 그 거래는 무엇일까. 자식을 잃은 부모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 생각하게 된다.

사람의 복수심이라는 게 그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20년이 넘은 시간 동안 흉기처럼 날카로운 복수심을 가슴 속에 품고 살 수 있는 걸까. ( <각인>, 198쪽)

자식을 죽인 범인을 향한 분노와 증오는 결국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홍성호의 <각인>이 그렇다. 할머니를 폭행하고 손녀를 납치한 범인에 대한 단서는 찾을 수 없다. 수사를 맡은 형사는 CCTV를 통해 원한에 의한 범행임을 직감한다. 범인의 흔적을 찾으려고 다방면으로 수사를 한 결과 오랜 시간 범행을 계획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 인연까지 알게 된다.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고 그 충격으로 아내까지 떠나고 혼자 남은 삶. 모든 걸 묻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가해 가족의 행복한 모습에 분노한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그에게 남은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진정한 사죄와 용서, 죄의식에 대해 생각한다. 왕따와 학교폭력의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며 살아가는 피해자를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

언급하지 않은 다른 소설도 정말 재밌다. 공민철 작가의 <낯선 아들>과 <유일한 범인>은 모두 노인의 삶을 다룬다. 고독하고 혼자 남은 삶에 대해 돌아본다. 사회 안전망에서 제외되고 외롭고 쓸쓸한 시간을 보내는 노년.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미래라는 가능성을 생각하면 무섭고도 아찔하다.

우리 사회 곳곳의 민낯과 사회문제와 부조리,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경찰과 검찰, 다양한 시선으로 현재를 보여준다고 할까. 범인을 찾아가는 재미와 더불어 사건의 실체를 통해 마주하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과 욕망을 보여준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한국형 추리문학을 기대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선택해도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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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반양장) -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89
이희영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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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고 말한다. 하늘이 맺어준 관계. 그래서 절대로 끊을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옛말이 돼버렸다. 존속살인이 벌어지는 세상, 형제와 부모와 단절하고 독립적인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대가 되었다. 부모의 시각과 자식의 시각은 온전히 다를 수 있다.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은 분신과 다름없다. 자식은 부모의 관심으로 가장한 간섭을 이해할 수 없다. 어린 시절 나 역시 그러했다. 다른 어른이 내 부모였다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긴 적도 있었으니. 부모님의 생각을 잘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점차 어려워진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 자식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일까.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희영의 소설 『페인트』는 묻는다. 부모와 가족이 무엇이냐고. 소설의 제목인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를 뜻한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 미래에는 정말 이런 시대가 올까. 인공지능이 부모를 대시하는 시대가 오는 건 아닐까. 순간적으로 나는 두렵고 무서워졌다.


소설은 미래의 가상 시대, 국가가 설립한 NC 센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부모가 버린 아이들을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다. 관리와 보호는 어떻게 다를까. 지금의 보육원이나 입양기관과 같은 역할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NC의 아이들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곳에서 살 수 있으며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면 센터를 떠나야 한다. NC 센터에서의 아이들을 입양하는 부모는 국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때로 생존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특별한 건 현재 부모가 아이들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는 시스템이다. 부모를 선택하는 과정도 까다롭다. 누구나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부모 후보로 지정된 이들을 시뮬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 그 후에 직접 만날지 결정한다. 아이들은 부모 후보를 거부할 수 있다. 잠깐의 만남으로 대화를 나누고 세 번째 만남으로 이어진다. 아이들의 선택과 NC 직원이 함께 결정한다.


주인공 ‘제누 301’은 아직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아이를 입양한 부모가 정부로부터 다양한 혜택을 받는 걸 안다. 그래서 그걸 노리는 부모들이 많다. 제누 301도 페인트를 많이 했지만 자신과 맞는 부모를 찾지 못했다. 센터에는 이미 부모를 선택해서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아이도 있다. 페인트에는 너무 좋았는데 막상 살아보디 다른 모습이었거나 갑자기 생긴 부모와 사는 생활을 적응하지 못해 돌아온 아이들이다.


제누가 페인트를 하는 부모 후보는 관리자의 기준으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부가 아니다. 그런데 제누는 그들에게 끌린다. 솔직하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제누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이제 성인에 가까운 제누를 입양하는 일은 그들에게도 모험일 것이다. 부모로서 연습을 하거나 공부한 적도 없으니까. 그런 모습이 제누는 마음에 들었다. 제누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불안정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부모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걸 인정하고 깨닫는 이는 얼마 없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 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112쪽)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누군가를 책임지는 삶이 두려운 일이 되었다. 생명의 소중함과 돌봄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건 아닐 것이다. 다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걸 소설을 말한다. 부모를 선택한다는 기발하고 특이한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사회적 기반이 얼마나 중요하지 생각하게 만든다. 입양이라는 제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최근 이슈가 된 사건을 떠올릴 수 있다. 어른의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혈연관계를 떠나 다양한 관계로 맺어진 가족이 늘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과정을 지나야 완전한 가족으로 서로에게 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모르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노력해야 한다. 제누가 기대하는 부모와의 관계처럼.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그만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거야말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몰랐다. (146쪽)


점점 말이 사라지는 사춘기, 갈등을 겪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서로에게 어떤 부모인지, 어떤 자녀인지 조금 돌아보며 서로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으로 이어진다면 뜻깊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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