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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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퀴어는 많아요. 동성애자가 전체 인구의 2~5% 정도라고 하는데 따지고 보면 굉장히 많은 숫자거든요. 한국에만 100만 명에서 250만 명쯤 되니까요. 그들은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고, 당연히 사회의 일부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앗, 방금 지나친 그 사람! 동성애자일 수 있습니다.” (200쪽)

나와 다른 삶을 이해하는 일은 때로 간단하다. 그렇구나,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타인이 아닌 가족, 지인, 친구라면 좀 다르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제3자의 시선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관계의 폭이 좁아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식으로 변한다. 김규진의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를 읽으면서 나도 그랬다. 아, 이들의 사랑은 존중받아야 하고 축복해야 한다.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격려할 수 있을 것이다. 뉴스에 나온 장면을 봤다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과연 무엇이 대단한가?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뿐인데.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편견 아닌 편견의 틀에 그녀의 삶을 가두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정체성이 보통의 그것과 다르다고 해서 두려워해야 할까. 여기서, 보통의 그것은 누가 정하는가.

그렇다. 그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의 문화, 관습에 따라 살아가는 게 기준일까. 다양성을 중요시한다고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가겠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레즈비언 커플에 대해 잘 모른다. 소설에서만 만났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의 삶에 대해 조금 알 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김규진의 에세이는 내가 만나지 못하고 몰랐던 다른 삶을 들려준다.


제목을 통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대한민국에서 법적인 결혼은 이성에 한해 가능하다. 김규진과 그녀의 와이프는 혼인신고를 하러 구청에 갔지만 접수는 반려됐다. 담당 공무원도 처음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고 민원인은 마냥 기다려야겠다. 예상했던 결과를 듣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솔직하고 발랄한 유머로 일상을 공개하고 있지만 부모님이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은 정말 속상했을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응원했지만 결혼식을 하는 일에는 반대한 저자의 아버지의 태도에 조금 놀랐다. 과거 부모들도 동성동본으로 힘들었다는 말을 하면서 응원했던 아버지였기에. 처음에 관계가 나빴던 엄마는 자신의 카드로 혼수를 준비하라고 할 정도가 되었지만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거기다 딸이 공개적으로 뉴스에 나와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 아버지는 절연을 선택하고.

“사실 나는 너희 엄마랑 동성동본 결혼을 했어.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내 본관을 다르게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기를 하냐? 동성 결혼도 30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닐 거야.” (104쪽)

저자는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의 축하를 받는 한국의 가장 기본적인 결혼식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준비를 했다.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을 하고 자료를 찾다가 직접 블로그를 열기로 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는 일, 누군가에겐 절실하게 필요한 정보라 여긴 것이다. 결혼에 대한 자세한 준비과정은 그녀와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가 된다. 어디 그뿐인가. 레즈비언으로 살아오면서 커밍아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는 아직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이들에게 진정한 팁이다.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으면서 그냥 전하라는 말, 공감한다. 친구가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 않은가. 놀랄 수도 있지만 켜켜이 쌓인 우정이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온전히 이해하는 건 어렵더라도 말이다.

어쩌다 보니 시끄럽게 일을 벌이게 되었다. 실명과 사진을 걸고 레즈비언의 삶과 결혼에 대한 얘기를 블로그에 연재하고, 회사에서 신혼여행 휴가를 받은 일 가지고 요란 벅적대게 인터뷰를 해 포털사이트 메인에 올리고, 공중파 뉴스에 출연하여 동성혼 법제화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명감이나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활동들을 이어간 동력은 대의보다는 나 개인의 편의였다.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175쪽)

“그냥 내가 좀 편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란 말이 오래 남는다. 책으로 만난 김규진은 귀여웠고 솔직했고 멋졌다. 그러니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당당한 사람이었다. 우리의 친구, 동료, 혹은 아는 사람,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나 친구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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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1-12 0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엄청 멋있다고 생각하고 동경하는데, 내 남자는 안 피웠음 좋겠는 이중적 마음..ㅠㅠ 멀리 있는 사람을 수용하기고 응원하기란 정말 쉬운 거 같아요~

자목련 2021-01-12 11:25   좋아요 1 | URL
저도 그런 걸요.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조금이나마 그 간격을 줄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여전히 추운 날이에요. 붕붕툐툐 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