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산지니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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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남는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남겨진 이들의 삶에는 죽은 자가 있다. 어떤 이에게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머물고 어떤 이에게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오늘과 내일을 지배해버린 느닷없는 죽음, 상실을 채우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나와 상관없는 게 아니다. 그러니 저마다의 생은 슬프고 아프다. 왜 남겨져야만 하는지 따지고 물을 존재조차 없이 혼자 살아내야 하는 게 남겨진 자의 가혹한 운명일까. 조명숙의 소설을 읽다 보면 남겨진 자로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남겨진 자다. 누군가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버림받았든, 연습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든 말이다. 잔혹한 생은 상실의 아픔을 달랠 겨를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버려진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이치로와 한나절」속 화자는 함께 가출을 감행할 정도로 친했지만 자살한 친구 창수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낸다. 창수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고 주어진 생의 한계를 드러내는 할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갑자기 나타난 이국인 청년 이치로는 창수의 환영 같다. 놀랍게도 소설 속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삶은 현실 속 어디에나 존재한다.

 

 조명숙은 보통의 그것을 소설에 아주 잘 녹여낸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 노동으로 채워진 고단한 일상, 상처 입은 이들의 내면을 담담하면서도 적확하게 말이다. 그리하여 소설을 통해 현재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제는 가시와 다르지 않은 고유명사가 된 2014년 세월호 사건 10년 후의 유가족의 일상을 그린 「점심의 종류」는 사건을 잊은 수동적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10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은 슬픔을 걷어갈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만 잊고 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지급된 보상금이면 충분하다 수군거렸다. 그러나 딸을 잃은 영애에게 삶은 2014년 4월 16일의 반복이었다. 그 어떤 것에도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없었지만 딸을 기억하기 위해 살아내야만 했다.

 

 ‘냄새, 소리, 움직임…. 한때 이 공간을 채우고 있던 냄새와 소리와 움직임을.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점심의 종류」, 56쪽)

 

 그러니 결코 당신의 아픔을 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불확실한 죽음에 대한 애도를 끝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로와 조언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말을 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당신을 위한 게 아니라 지켜보는 나를 위한 것이다. 「나비의 저녁」 속 서정이 친구 오윤이 선택한 사랑에 대해 축복할 수 없었던 것도 그랬다. 현실이 아닌 꿈과 이상을 좇아 사는 오윤의 남편으로 인해 자신이 구축한 안정이 흔들리는 게 싫었다.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무시할 수 없었던 차에 멀리 이사를 간 오윤이 내심 반가웠다. 종이공장의 기계에 빨려 들어가 남편이 기이하게 죽고 구례의 시골로 떠난 오윤이 종이를 만든다는 연락을 했을 때 서정의 마음은 선뜻 그곳으로 향하지 않았다.

 

 ‘종일 초지망(抄紙網)으로 한 장 한 장 종이를 뜨면서 내 마음 켜켜이 놓인 그 사람을 생각했지. 마음의 켜에서뿐만 아니라 몸의 켜에서도 아직 생생하게 그 사람이 느껴져.’ (「나비의 저녁」, 150쪽)

 

 조명숙의 소설에는 평탄한 삶이 존재하지 않는다. 곧고 길게 이어진 길이 아니라 일부러 구불구불한 길만 골라서 걷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게 삶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기에 평생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조금씩 도둑」,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혼을 선택하며 의미 없는 삶을 지속하는 「사월」, 막내딸의 암 소식을 인정할 수 없어 달리는 아버지「러닝 맨」에 이어 작가 지망생의 시선으로 주변을 관찰하는 「하하네이션」에서 독보적으로 전달된다. 고아원에서 자란 작가 지망생 유는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규칙적인 생활과 체력을 관리하고 아르바이트를 세 개나 한다. 등단 후를 대비해 옷매무새도 철저하게 신경 쓰고 오피스텔의 규약도 잘 지킨다. 그러나 유는 타인의 절망과 슬픔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인간의 깊은 심연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진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것 모르고 있었다.

 

 ‘사물과 사람과 시간의 갈피 속에서 독특한 느낌을 찾아낸다는 게 쉽지 않지만, 그만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겠어?’ (「하하네이션」, 204쪽)

 

 남겨진 자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삶은 소설보다 더 치열하고 더 기막히다. 그래서 완전한 행복체를 꿈꾸기보다 몸과 마음에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를 바란다. 비탄, 좌절, 죽음으로 비워진 자리를 채우기 위해 살아내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과정을 소설로 쓰고 누군가는 소설을 읽는다. 조금 더 가까이 당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조금 더 깊이 당신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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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12-3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읽노라니 눈물이 핑~~~도네요
늘 조곤조곤 님의 글은 슬며시 깊게 다가옵니다^^

새해 인사 미리 드리러 왔다가 많은 생각을 품고 갑니다
모쪼록 오늘이 지나면 내일부터는 복만 받으시옵소서!!
건강하시길 바라며 올해보다는 좀더 나은 내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2016-01-15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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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냇물이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다고 믿으며 흘러가듯 우리의 생도 끝을 모르는 어딘가를 향해 나간다. 누군가는 빠르게 속도를 내고 누군가는 천천히 늦은 걸음으로 살아간다. 그 안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는다. 그들에게서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소설이 아닐까 싶은 장면을 목격하기도 한다. 이장욱의 소설이 그랬다.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구나 싶다가도 어딘가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어떤 소설 속 인물은 너무도 기묘할 정도로 놀랍고 어떤 인물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해서 놀랐다.

 

 이장욱이 그린 인물들은 다른 듯했지만 같았다. 소설 속 인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겹쳐졌고 하나의 단편이 끝나고 다른 단편에서 다시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본인 답지 않은 일본인 하루오와의 만남을 그린 「절반 이상의 하루오」와 언제나 그곳에 있었지만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다가 죽은 후 부재를 통해 존재를 증명하는 「우리 모두의 정귀보」는 하루오가 정귀보처럼 여겨겼다. 강렬한 인상을 준 것도 아닌데 순간순간 떠올리게 되는 인물 말이다. 어쩌면 하루오와 정귀보는 우리와 가장 친숙한 누군가와 닮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내 삶의 모든 페이지에서 여전히 그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페이지를 넘기면 그 자리에서 숫자가 차례차례 바뀌듯이 말예요. 물론 어느 페이지는 찢어진 채 버려져 있겠지요……’ (「우리 모두의 정귀보」, 154쪽)

 

 그들이 우리가 스치고 지난 사람 중 하나였다면 물에 대한 이미지를 시작으로 평범했던 욕실이 어느 순간 무서운 공포로 돌변하는 경험을 들려주는 「어느 날 욕실에서」속 인물과 집주인인 작가가 여행 중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낯선 집에서 방이 움직이는 환상을 보는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의  주인공은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사람 같았다. 두 단편의 인물들은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랄까.

 

 일주일에 세 번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파출부로 일하는 집주인의 물건으로 성향을 짐작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와 안다고 믿었던 사람과 삶이 언제라도 우리를 배신할 수 있는 걸 한 남자의 죽음을 통해 확인하는 「칠레의 세계」는 산다는 게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묻고 싶어지는 소설이다. 한 치 앞도 모르면서 미래를 계획하는 어처구니없는 인생이라니. 곳곳에 웅덩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피할 수 없이 건너야 닿을 수 있는 게 우리의 삶이라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계를 견딜 수 있는 건 하루오나 정귀보 같은 인물이 우리 곁에 존재해서다.

 

 ‘마약성 진통제와 오케이캐시백의 아름다운 조화 속에 인생이 있는지도 모르니까. 죽어가면서도 습관처럼 오케이캐시백 포인트를 적립하는 게 빌어먹을 인생이라는 것이니까.’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47쪽)

 

 ‘우연이라는 향기로운 공기로 가득한 세계가 곧 낙원 아니겠나? 그런데 어쩌겠는가. 그 낙원의 공기 안에, 치명적인 의지의 고리, 무서운 인과의 사슬이 숨겨져 있다면 말일세. 이불 속의 바늘처럼. 향기로운 포도주 속의 독극물처럼.’ (「칠레의 세계」,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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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 지금 가까워질 수 있다면 인생을 얻을 수 있다
러셀 로버츠 지음, 이현주 옮김, 애덤 스미스 원작 / 세계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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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털처럼 많은 것 같았던 한 해가 기울고 있다. 이제 50여 일이 지나면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 다시 또 계획을 세우고 작년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소망할 것이다. 이전에 우리는 습관처럼 지난 계절을 돌아보고 어떻게 살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제대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목표했던 것들을 이루려 노력했는지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땠는지, 나아가 혼자만이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마음을 기울였는지 생각이 많아지는 날들이다.  때문에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이라는 제목만으로도 흔들리게 된다. 과연 나를 만드는 건 무엇일까, 나는 나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는 마음을 가졌던가.

 

 이 책은 놀랍게도 경제학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쓴 『도덕 감정론』에 대한 책이다. 저자 러셀 로버츠가 들려주는 『도덕 감정론』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부, 행복, 관계를 주제로 우리 삶이 완벽해질 수 있는 애덤 스미스의 조언을 경제학자인 러셀 로버츠가 현대인을 위해 해석해서 알려준다. 250년 전에 나온 책이 현재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며 행복한 삶을 꿈꾸기 때문이다.

 

 하나의 선택에 따라 이익이 달라지고 관계가 흔들린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스미스는 공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를 위한 삶에서 공정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얼핏 양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양심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공정한 관찰자는 양심 그 너머에 있는 것이다.

 

 ‘공정한 관찰자는 우리에게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내가 남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친절할 수 있다. 공정한 관찰자는 지나친 이기심을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은 훌륭하고 고상한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우리 안의 목소리다.’ (47쪽)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하는 하나의 지침이라는 걸 인정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하고 나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어렵고도 어렵다. 책에는 이처럼 선택의 어려움에 대한 사례를 통해 행복에 대해 묻는다. 좋아하는 음악과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선택하는 워런 버핏의 아들 이야기는 흥미롭다. 피터 버핏은 음악을 선택했고 결론적으로는 음악으로 성공했다.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공정함에 이어 신중함을 강조한다. 신중하다는 건 심사숙고한다는 말이다. 뭐든지 빨리 답을 내려는 현대인에게 스미스의 조언은 깊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신중함은 상대를 진실과 진심으로 대하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관계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태도를 우리는 놓치고 살아가는 것이다.

 

 ‘스미스에 따르면, 신중한 사람은 진실되고 정직하다. 본인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해도 나서서 말하지 않는다. 논의 중에 언제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좋은 친구지만 사람들을 대할 때 과장된 행동은 삼간다. 그에게 우정이란, 신중하게 잘 고른 몇몇 친구에게 충실한 믿음을 주는 것이다.’ (200쪽)

 

 우리가 많은 부의 축적을 원하는 것도, 명예로운 삶을 꿈꾸는 것도, SNS를 통해 자신을 보여주는 것도 궁극적으로 행복해지고 싶어서다. 과거와 달리 경제적으로 윤택한 세상이지만 빛과 그림자가 있듯 이면에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이 가득하다. 함께 행복해야 하는 세상을 우리는 만들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러셀 로버츠가 제시한 대로 스스로가 나쁜 행동을 저지하고 착한 행동을 하면 된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점에는 내가 있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이 그러하듯이.

 

 ‘인간은 정말로 결점이 많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모를 뿐더러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른다. 우리가 고의로 하는 많은 행동들 중엔 나쁜 것들 투성이다. 우리는 잔인하고, 약자를 이용하고, 무지한 사람을 속여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다행히 그와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방법은 매우 쉽다. 그저 나쁜 행동을 저지하고 착한 행동을 장려하기만 하면 된다.’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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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 상 - 조선의 왕 이야기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박문국 지음 / 소라주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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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조선 건국을 밀도 있게 그려낸 <정도전>과 <역사저널 그날>을 열심히 시청하던 나도 그랬다. 거기다 현재 방영 중인 <육룡이 나르샤>를 재미있게 보면서 예전과 다르게 관심이 많아졌다.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정몽주가 꿈꾸던 나라는 달랐지만 그 끝에는 조선이 있었다. 어떤 시대든 좋은 정치가와 뛰어난 외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이 아닌 국가를 생각하고 야욕이 아닌 진정한 정치가 말이다. 거기다 제대로 된 역사 기록과 공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생각한다. 여기 그런 것들을 만족시켜줄 흥미로운 책이 있다.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이라는 부제가 붙은 『조선의 왕 이야기 - 상』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한국사가 아닌 왕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들려준다. 학창시절 태정태세...로 외우기만 했던 왕에 대해 말한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세종, 단종, 세조, 연산군 등 몇 명의 왕이 아닌 조선 왕조 전체를 조명한다. 왕위 계승의 정치적 배경뿐 아니라 시대적 문화, 백성들의 실생활, 왕의 사생활 등 다채롭다.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로 내려오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조선의 왕 이야기 - 상』에서는 1대 태조 이성계를 시작으로 14대 선조 이연까지 만날 수 있다.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왕들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사소한 일화도 무척 흥미롭다. 무사로만 기억되는 태종 이방원이 고려 때 과거에 급제했다는 사실은 새로웠고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20대부터 당뇨병을 앓았다는 세종은 자기 관리를 못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물론 세종의 출산 휴가 장려 정책은 놀라웠다. 출산한 관노의 휴가를 10일에서 100일로 늘려줬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세종이 먼저 시행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한 나라를 다스리고 책임져야 하는 왕권을 둘러싸고 왕위 계승에 대해 세력을 나눠 암투를 벌이는 모습은 씁쓸하기도 하다. 든든한 방패막 없이 12세 어린 나이에 왕이 된 단종과 명종을 생각하면 안쓰러울 정도다. 명종이 왕위에 오르자 아들을 지키기 위한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이어지고 윤씨 집안은 막대한 힘을 행사한다. 그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신하와 어머니에게 휘둘리지 않을 아이는 없다. 그러니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도 전에 어머니와 대립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희생양이 된 단종, 애석한 죽음의 애도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문정왕후를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여걸로만 보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 자신이 사치를 일삼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아래 인물들로 가면 이야기가 다르지요. 문정왕후의 패착은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만을 중용하고 반대 의견을 전혀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겠습니다.’ (명종 이환, 255쪽)

 

 조선 왕조에 관심이 많은 이들과 반대로 무관심한 이들에게 이 한 권의 책은 재미와 더불어 역사 지식을 안겨준다. 나와는 상관없는 먼 옛날이야기로 여겼던 왕들의 이야기가 현재까지 다양한 시선으로 재조명되는 건 그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더 현명한 지도자, 더 나은 세상, 좀 더 윤택한 살림살이를 바라는 우리의 지속적이고 간절한 바람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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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포 스타일 - 제3회 스토리킹 수상작 비룡소 스토리킹 시리즈
김지영 지음, 강경수 그림 / 비룡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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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책. 제1회부터 즐거움을 안겨준 스토리킹 수상작이다. 100명의 어린이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은 동화. 아이들은 선택은 언제나 정확하다. 제3회 스토리킹 수상작 『쥐포 스타일』(비룡소. 2015)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제목의 탄생 이야기까지 정말 독특하다. 동화는 구인내와 친구들이 펼치는 활약기를 네 편의 에피소드로 담았다.

 

 「돌연변이 말굽자석」은 구인내가 주인공이다. 잘하는 것도 없고 친구도 없는 탐정이 꿈인 초등학교 4학년 구인내는 학교가 재미없다. 여름방학을 며칠 앞두고 번개가 치던 수업시간에 말굽자석이 재미없는 모범생 나영재의 엉덩이에 달라붙는 사건이 벌어진다. 선생님과 아이들은 엉뚱한 구인내의 장난이라고 혼을 낸다. 말굽자석은 나영재에서 아역배우 봉소리로, 먹방 대장 장대범으로 옮겨간다. 탐정을 꿈꾸는 구인내는 세 명의 모두 방귀를 뀐 공통점을 발견하고 누구라도 방귀를 끼면 말굽자석이 붙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방귀를 모아서 돌연변이 말굽자석을 떼어버린다. 그 뒤로 구인내, 나영재, 봉소리, 장대범은 ‘가스 포’의 줄임말 쥐포(G4)로 불린다. 세상에나 이렇게 기발한 별명이라니.

 

 ‘자석은 서로 다른 극끼리 잡아당긴다고 했지? 번개가 치던 날, 우리는 서로 다른 극을 가진 자석이 된 게 아닐까? N극, S극, A극, B극, Z극……. 우리는 다양한 극이 되어, 지금 서로를 마치게 잡아당기도 있다.’ (65쪽)

 

 친구가 된 쥐포는 어디든 함께 한다. 방학에 영재 집에 놀러 갔다가 온통 책밖에 없는 모습에 놀라고 만다. 많은 책을 읽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영재 엄마는 좀 심했다.「책 무덤」은 모든 게 책으로 통하는 엄마 때문에 밤새 책을 읽다 사라진 영재를 찾는 이야기다. 책보다 소중한 건 엄마와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라는 걸 알려준다. 「빛나는 거지」는 아역 배우라는 이유로 여자애들에게 은근 왕따를 당하는 소리가 출연하는 드라마 촬영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주인공 아역 배우의 장난에 위기에 처한 소리를 구하는 친구들. 마지막으로 방귀 냄새로 음식을 알아맞추는 콘테스트에 나가 대범이가 우승을 차지하는 「방귀 정복자」까지『쥐포 스타일』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따뜻한 웃음을 안겨준다.

 

 『쥐포 스타일』는 기발하고 독특하다. 모범적이고 착하고 학습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전에 등장하지 않았던 방귀, 구린내, 엉덩이 같은 단어를 자연스럽게 녹아낸다. 구인내, 나영재, 봉소리, 장대범를 이어준 것도 방귀다. 방귀가 없었더라면 네 명은 친구는커녕 왕따가 되었을 것이다. 자석처럼 잡아당겨 하나가 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모습을 통해 소중한 우정을 보여준다. 이번에도 아이들의 선택은 옳았다.

 

 동화는 교훈적인 내용이 있어야 할까? 아니다, 『쥐포 스타일』처럼 누구라도 재미있게 읽으면 충분하다. 읽는 내내 유쾌한 시간이었다. 많이 웃게 만든 동화,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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