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마지막 주문으로 구매한 책은 이렇다. 그러니까 정녕 마지막이다.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크리스마스라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이다 결국, 그냥 사고 싶어서, 읽고 싶어서, 궁금해서 산 책이다. 아무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오랜만인 것 같다. 주문한 책이 하루키의 소설을 직접 보니 묵직하다. 한 손에 꽉 들어찬 소설의 내용도 묵직할 것 같다. 어제부터 읽고 있는데 기시감이라고 할까. 우선 든 느낌은 그렇다. 끝까지 읽어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마냥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지만 그의 고유성에 대해서는 조금 알 것 같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사춘기적 느낌, 풋풋하고 미완의 것들, 상징적 이미지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이 곧 하루키를 대하는 나의 태도니까. 누군가 거대한 새로운 세계를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의 독서는 그렇다. 독서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나를 위한 선물 목록에 하루키의 소설만 있는 건 아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사게 된 엘리자베스 하드윅의 소설 『잠 못 드는 밤』은 왠지 올해의 마지막 소설로 좋을 것 같다. 분량도 많지 않으니까 적당하지 않을까. 아, 올해가 가기 전에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을 읽기로 했는데. 올해의 마지막에 내가 어떤 책을 읽게 될지, 아무것도 읽지 않을지 마지막이 되어야 알 수 있겠다. 이 소설은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란 노래가 생각나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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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권은 로베르트 발저의 에세이 『연필로 쓴 작은 글씨』다. 양장본으로 책 만듦새도 고급스럽고 예쁘다. '희미해져가는 사람, 발저의 마지막 나날'이란 부제까지. 이런 책은 그냥 지날 칠 수 없지 않은가. 마지막은 언제나 아련함을 불러오고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그러니 2023년의 마지막 주문으로 완벽하지 않은가.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다 먹지도 못하는 케이크 대신, 미리 산 책들. 나를 위한 선물로 충분하다.
주말부터 내린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곳곳에 보이는 빙판이 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조심조심 걷는 마음으로 이 연말을 보내고 싶다. 올해 연락을 전하지 못한 이들에게 짧은 안부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건강하게 지내라는 연말 인사를 보내고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 가까운 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보낼 수 있기를. 하루키의 소설 속 '너'처럼 아무 연락 없이 사라지지 말고. (아직 다 읽지 못해서 너의 재등장 여부를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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