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병원에 다녀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 발진 때문이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고 돌아오겠지 싶었다. 그 과정은 틀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의사는 간단명료하게 진료를 마쳤다. 약을 먹지 않고 연고를 바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의 불안을 견딜 수 없었다. 병원엔 가기 싫지만 병원에 다녀오면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마음. 여전히 몸에는 발진이 많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어쩌면 병원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그런 희망 부여가 아닐까.
약을 먹어야 하니 잘 먹어야 하고 이렇게 찐빵을 먹는다. 유명한 그 지역의 찐빵이다. 알록달록 고운 색깔이다. 친구가 보낸 마음까지 더하니 더욱 곱다. 친구가 보낸 찐빵을 먹으면서 몸을 생각한다. 옷 속에 숨겨진 나의 발진들, 갈피르 잡지 못하고 흘러간다. 가려움에 대응을 하는 나의 손톱은 짧게 잘랐고 처방받는 연고도 발랐다. 하지만 바로 좋아질 리는 없다. 발진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시간이 있었듯 사라질 때까지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갈피는 못 잡는 건 내 마음도 그러하다. 옷을 들추고 확인해야 볼 수 있는 발진의 형태와 크기처럼. 마음의 옷은 너무도 두껍고 단단하여 쉬이 들춰보기도 어렵다. 어떤 날은 들춰보려다 포기하고 어떤 날은 마음과 대면하기가 두려워 포기한다. 한 겹, 한 과정만 더 나아가면 마음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갈피를 못 잡는 일은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읽으려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봄에 온 책을 이제야 꺼낸다. 겨울과 잘 어울린다고 여기면서 책장을 넘기는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이 그렇다. 막상 주문하고 보니 읽었던 단편이 보이는 김초엽의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 뒤늦게 발견한 시집으로 무척 기대가 되는 박은지의 첫 시집 『여름 상설 공연』, 아직 읽지 못한 이유리의 단편집 『브로콜리 펀치』, 제목만으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두 권의 책들로 김혜남의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프레이야 님의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까지.
12월의 책들이다. 혼자만의 13월을 만들어 몇 권을 추가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