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살아가는 내내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예술이 궁금하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 채 바라보는 그림, 웅장함에 놀라는 건축물, 어떻게 저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감탄하며 보는 영화, 끌리는 자꾸만 생각나는 연주와 그림들. 그것들이 있기에 팍팍한 우리네 삶은 작은 여유로 느슨해질 수 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싶어서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닿을 수 없어 매력적이다.


예술가를 생각하면 고독한 이미지가 따라온다. 항상 예술 그 자체에 매몰되어 있는 듯한 형상이라고 할까. 조성준이 들려주는 33인의 예술가가 그러했다. 예술과 그들은 하나였고 하나이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세상이 한눈에 알아보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운명처럼 그들은 고난과 시련의 삶을 살았고 작품으로 인정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록 가수 데이비드 보위를 시작으로 구스타프 말러, 조지아 오키프, 안토니 가우디, 장국영, 폐기 구겐하임, 수잔 발라동, 에드워드 호퍼, 르네 마그리트,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 저자가 선택한 33인의 예술가는 잘 알려진 이들도 있었고 이름만 들었을 뿐 그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름의 예술가는 더욱 반색하며 만났다. 한 명 한 명 그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작품을 해석한다. 그러니 예술의 설명서로 읽어도 좋다.


편애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여성 예술가를 가장 먼저 읽었다. 고통으로 얼룩진 삶으로 잘 알려진 프리다 칼로, 사진으로 추측하고 증명하는 비비안 마이어의 삶, 아이를 업고 서 있는 사진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박남옥, 화려한 이미지로 각인된 천경자, 묘한 온기를 전하는 수잔 발라동, 이름은 익숙하지만 생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페기 구겐하임이다. 그리고 너무도 좋아하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모델인 조세핀.


어쩌면 비비안 마이어는 현재를 가장 사랑하는 사진가는 아니었을까. 어떤 계획도 없이 그저 사진을 찍는 일이 가장 중요했고 그것을 가장 사랑했던 것 같다. 그러니 모든 세상이 그에게는 가장 귀한 모델이었을 것이다. 예쁘고 화려한 이미지가 아닌 삶 자체를 담고 싶었던 그녀. 그래서 그녀의 사진 속에서 모든 감정이 전해짐을 느낄 수 있다. 


비비안은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놓고 이미지를 찾는 사람이 아니었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가 눈에 들어올 때마다 사진을 찍었다. ‘바로, 지금 이곳’의 이미지를 수집해야 하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셔터를 눌러댔다. 모든 풍경이 그렇듯, 비비안의 사진에는 위트, 사랑, 빈곤, 우울, 죽음의 이미지가 섞여 있다. (320쪽)


침대에 누워 그림을 그린 프리다 칼로의 생은 이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다. 멕시코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생. 작품을 소개할 때마다 그녀의 비참한 삶이 조명된다. 그건 좀 아프고 슬프다. 그런 아픔은 장국영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처럼 만우절에 생을 마감한 그.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슬픔이 천천히 쌓인다. 어디 그뿐인가. 32세에 은퇴한 글렌 굴드는 남은 생을 고독 속에서 살았다. 무엇이 그를 고독과 침묵으로 이끌었을까. 영원한 침묵 속으로 향한 그들의 마지막이 평온했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우리는 프리다의 삶과 예술에서 숭고함을 느낀다. 이 숭고함엔 진통제 없이 하루도 버틸 수 없었던 한 인간의 고통이 덧칠돼있다. 프리다의 고통은 결고 승화되지 않는다. 아픔을 그린다고 아픔이 사라지진 않는다. 프리다는 폐렴으로 사경을 헤매다 47세에 눈을 감았다. 마지막 일기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생의 끝에서 프리다가 돌아본 세상은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프리다 칼로, 134~135쪽)


예술가에게는 그들을 지지하고 후원한 이들이 존재한다. 처음 재능을 발견하고 세상에 그들을 알리는 이, 예술의 스승이 되거나 경제적 지원을 아까지 않는 이들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과의 불화로 고통을 겪는 경우도 많다. 무용수 바츨라프 니진스키는 러시아 황족의 후원을 받고 예술비평가 댜길레프가 주목한다. 니진스키를 사랑한 그는 자신의 세계에 그를 가두려 했다. 그와의 이별 후 홀로서기를 시도했으나 옛 애인의 영향력은 너무도 컸다. 거리의 화가 장미셀 바스키아도 앤디 워홀이 그의 재능을 알아봤기에 1200억 원에 낙찰된 작품이 되었다. 


예술가를 알아보는 예술가, 그들 역시 대단한다. 가장 가까운 후원자는 역시 가족이다. 에드워드 호퍼의 연인 조세핀은 화가였고 자신의 전시회에 남편의 그림을 걸 수 있도록 힘을 섰다. 결혼과 동시에 조세핀은 화가가 아닌 아내가 되었다. 조세핀은 호퍼의 매니저로 그 역할과 모델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다시 호퍼의 그림을 본다. 그림 속 여인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호퍼의 그림 속 적막함에 휩싸인 금발 여성, 다시 말해 조세핀의 텅 빈 표정을 보면 그녀가 반평생 지녔을 고독의 깊이를 막연하게 가늠하게 된다. 예술가라는 꿈을 접게 만든 사람의 꿈이 차근차근 현실이 되는 과정을 지켜본 조세핀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지 않은 자와 수업이 충돌하며 끝내 체념해야 했던 이 여성의 그림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호퍼의 하폭에 담겨 불후의 명작으로 불린다. 조세핀의 얼굴에 드리운 그림자는 여성, 아내라는 틀 안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수많은 여성의 고독이다. (에드워드 호퍼, 315쪽)


조성준의 책을 읽으면서 심상용의 『예술, 상처를 말하다』 가 생각났다. 10명의 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책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조명하며 그들의 예술 작품을 리뷰한다. 조성준의 33명과 겹치는 인물은 프리다 칼로, 장미셀 바스키아 둘 뿐이다. 세계의 유명 예술가를 선택하는 것뿐 아니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를 소개하면 더 좋았을 아쉬움이 남는다. 심상용의 책에서 만난 이성자, 권진규 같은 예술가 말이다. 


예술은 아무것도 담보하거나 약속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만 그 고유한 정신에 다가설 수 있다.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진정한 에너지는 다른 곳에서 온다는 심오한 인식에 다가감으로써 말이다. 역설인가? 차라리 신비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자발적 무려, 선택된 비능력의 인식을 통해서만, 즉 오히려 스스로를 비우고 일체의 권력 지향을 포기할 때에만 타락한 힘과 그에 대한 복종으로 무너져 온 역사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예술이 가담해야 하는 싸움이요, 떠안아야 하는 사랑이다.’ (『예술, 상처를 말하다』 중에서)


예술은 일상을 회복시키고 일상을 치유하는 힘을 지녔다. 그것이 예술가의 궁극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예술의 세계는 작고 좁다. 그 안에서 존재하는 예술가는 위대하다. 시대를 뛰어 너머 역사가 되고 그 자체로 예술이 된다. 우리 곁에 그들이 있기에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영혼을 위로하는 힘, 예술가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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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08 15: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추카~~
비비안 마이어 사진들
뉴욕 갤러리에 찍어낸 카피본

제방에 걸어 놓고 있습니다 ㅎㅎ

주말, 행복하게 보내세요. ^ㅅ^

자목련 2021-10-11 10:14   좋아요 0 | URL
비비안 마이어 사진, 정말 좋아요!
스콧 님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mini74 2021-10-08 1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술가의 일 읽고있어요. 어둠과 상처를 수집하는 비비안 마이어~~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10-11 10:15   좋아요 1 | URL
지금쯤은 다 읽으셨을 것 같아요.
예술과 가까이 하는 가을날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10-08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술은 어렵지만...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0-11 10:16   좋아요 1 | URL
맞아요, 예술은 어렵습니다. ㅎ
저도 축하드리며 좋은 시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0-0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10-11 10: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축하드려요. 남은 연휴 평온하게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1-10-08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10-11 10:17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