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을 채우는 건 무엇일까. 수많은 감정들은 아닐까. 부정하고 싶겠지만 고통, 절망, 허무 같은 게 더 사랑이나 기쁨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이 발생하고 그것에 휘말리는 걸 보면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소설이니까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도 그러하다. 점점 더 소설과 현실의 교집합의 범위가 넓어지는 걸 느낀다.


단편문학의 대가, 안톤 체호프의 『자고 싶다』를 통해서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어떤 절망과 욕망을 마주하는 순간 삶에 대한 의문이 더욱 커진다. 아주 짧은 이야기부터 중편소설에 이르기까지 안톤 체호프의 소설은 삶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까. 평범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통찰, 인간의 고독과 쓸쓸함을 소설 곳곳에서 만난다.


표제작 「자고 싶다」는 너무도 가혹한 소설이다. 정당이라는 포장으로 위장한 폭력의 세계라고 할까. 열세 살의 소년 바르카는 주인집 아기를 돌본다. 보채는 아기를 달래느라 바르카는 잠을 잘 수가 없다. 아니, 절대 잠들면 안 된다. 안주인의 화난 목소리가 가득하다. 가난해서 제때 병원에 가지 못해 죽음에 이른 아빠,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온 바르카. 아기 때문에 잠들지 못하는 바르카의 일상은 혼미한 상태다.


램프 불빛이 깜박인다. 초록빛 원과 그림자가 흔들거리며 반쯤 감겨 움직이지 않는 바르카의 두 눈 속을 채운다. 반쯤 잠들어버린 머릿속에서 흐릿한 풍경이 펼쳐진다. (「자고 싶다」, 44쪽)


누가 바르카의 잠을 빼앗는가. 그 실체를 파악한 바르카는 본능적으로 행동하는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소년의 세상을 향한 분노가 내게로 스며든다. 바르카를 위로하고 안아줄 어른이 어디에도 없는 현실은 이 시대에도 똑같다는 게 아프고 안타깝다. 어디 그뿐인가. 슬픔과 절망에 대해 털어놓을 이가 없는 마부 요나의 이야기 「우수」도 다르지 않다. 아들이 죽은 슬픔을 애도는커녕 아무도 관심이 없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오직 안톤 체호프만이 안다. 심지어 그 절절함을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세상에 뿌려진 요나의 슬픔. 가만히 요나의 등을 쓸어주고 싶다. 사라지지 않는 불평등과 계급의 사회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가난하고 아프다. 그들의 영혼을 구원할 이는 어디에 존재할까. 사랑으로 안아주고 위로할 이는 어디에 있는가.


슬픔은 너무 깊어 그 끝을 알 수 없다. 요나의 가슴이 터져 폭포수처럼 슬픔이 흘러나오면 온 세상을 다 잠기게 할 수도 있으련만 그런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지금 슬픔은 아주 작은 공간 안에 갇혀 있어 밝은 낮에 불까지 비춰가며 찾는다 해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수」, 31쪽)


그렇다면 가난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에게는 어떤 괴로움이 있을까.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정신병 환자 이반 드미트리치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6호 병동」와 자신에 세운 원칙을 고수하며 그 틀안에서 살아가는 희랍어 선생 벨리코프의 생애를 「상자 속 사나이」를 통해 만날 수 있다.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정의와 고결함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타협을 할 수 없는 삶은 얼마나 고독할까.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6호 병동의 환자가 되는 결과에 무기력해질 뿐이다.


다르다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헛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두 사람. 그중 수학교사인 부르킨이 동료 교사 벨리코프가 생각하는 희랍어 선생 벨리코프는 분명 그 시대의 이웃들과 다르다. 심한 결벽증과 불안으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사람들은 그를 기피한다. 이야기를 들은 수의사 이반 이바니치의 말처럼 우리의 삶 역시 벨리코프의 그것과 뭐가 다른가.


“우리가 좁고 답답한 도시에 살면서 쓸모없는 서류를 작성하고 카드놀이를 하는 것, 이 역시 상자 속 삶이 아닐까요? 할 일 없는 사람들, 걸핏하면 시비를 거는 사람들, 멍청하고 게으른 여자들 틈에서 온갖 시시한 소리를 하고 들으면서 평생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상자 속 삶 아닐까요?“ (「상자 속의 사나이」, 209쪽)


상자 속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꿈꾸는 것, 모두의 바람은 아닐는지. 안톤 체호프의 대표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서 그 간절한 바람을 느낀다. 중년의 구로프 앞에 나타난 여인 안나. 둘의 로맨스는 부적절하다. 그러나 구로프에겐 삶의 존재 여부를 생각할 만큼 절실하다. 그를 살게 하는 존재는 안나인 것이다. 여태껏 살아온 인생을 저버리고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이 인생, 아직 이렇게 따스하고 아름답지만, 머지않아 그가 그렇듯 퇴색하고 시들게 될 이 인생에 그는 연민을 느꼈다. 도대체 이 여자는 왜 이토록 자신을 사랑하는 것일까? 전에 만난 여자들은 있는 그대로의 그가 아닌, 상상 속에서 만들어내 평생 애타게 찾아 헤맸던 바로 그 모습을 사랑했다. 그리고 실수를 깨달은 후에도 여전히 사랑했다. 그와 함께 있어 행복했던 사람은 그중 단 한 명도 없었다. 만났다가 사귀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그 역시 단 한 번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뭐라 이름을 붙이든 사랑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머리가 세기 시작한 지금에야 그는 난생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237쪽)


우리 삶이 99%의 절망과 1%의 사랑으로 채워진다면 너무도 비통하다. 하지만 1%의 사랑 때문에 나머지를 견딜 수 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무한 인생에 활력을 더하는 일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안톤 체호프는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실 책장에는 다른 번역가의 안톤 체호프의 단편집이 있다. 골라읽은 단편이 있지만 제대로 완독을 하지는 못했다. 같은 내용의 소설이 번역가의 시선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걸 발견하는 일도 즐거운 것 같다. 고전과 세계문학에 대한 갈망을 쌓아두기보다 읽고 체감해야 하는데 게으름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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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06 15: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추카~
체호프는 💕

자목련 2021-08-09 17:3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체호는 사랑이에요.
스콧 님도 축하드려요^^

mini74 2021-08-06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좋은 글 항상 감사해요. 당선도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21-08-09 17:33   좋아요 1 | URL
저도 축하드려요. 미술에 관한 리뷰와 글 더욱 기대할게요^^

그레이스 2021-08-06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자목련 2021-08-09 17:3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감사해요. 저도 축하의 마음을 보내요^^

초딩 2021-08-06 1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련님~ 이달의 당선 페이퍼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8-09 17:32   좋아요 1 | URL
초딩 님도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1-08-06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8-09 17:3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시원한 시간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