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H를 만났다.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그녀는 먼 도시에 살고 있다. 먼 도시에서 내가 있는 곳까지 나를 보러 왔다. 우리의 만남은 2016년 가을에 만난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사이 서로에게 중요한 일들이 있었다. 삶을 이동하는 일, 삶을 다시 정비하는 일이라고 하면 맞을까. 그건 회복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된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 한 바구니의 빵을 사 왔다. 밤이라 그랬는지 사람도 없었고 빵도 없었다. 늦은 밤에는 술을 마셨다. 아니, 술은 나 혼자 마셨다. H가 술과 커피에 대해 민감한 편이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 그러니까 그동안은 제대로 몰랐다. 잘 모른다는 걸 알았다는 게 좋았다. 그리고 이제 그 부분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되었으니 더 좋았다. 내가 맥주를 마시는 동안 H는 사이다를 마셨다.


우리의 시간에는 말이 넘쳤다. 말이 둥둥 떠다니고 거실 바닥과 식탁 위에 말이 나뒹구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상상이었다. 그만큼 우리의 말들은 다양했다. 하고 싶었던 말, 주저했던 말, 고민으로 뭉쳐진 말, 모든 말들이 다 그곳에 있었다. 그 말들이 다 우리의 것이었다.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게 뿌듯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기에 그랬을까. 아니, 나의 말을 모두 들어주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말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투명하고 맑은 하늘과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좋다”는 말을 자주 하며 사진을 찍는 H가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감탄은 양이 적다는 걸 발견했다. 나이가 드는 탓일까.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아픈 몸에 대해, 늙은 몸에 대해 두려움이 아닌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그런 대화는 책으로 이어졌다. H가 영화로 보고 나는 책으로 읽은 『밤에 우리 영혼은』에 대해 서로의 느낌을 말하면서 같은 작가의 『축복』도 좋았다고 추천했고 조남주의 소설집 『우리가 쓴 것』속 여성 서사와 황정은 소설에 대해 환호하면서 『백의 그림자』 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우리로 채워진 시간은 지나갔고 각자의 시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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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6-22 11:2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밤에 우리 영혼은> 이 책 정말 좋더라구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 영화도 있군요~! 친구와 책 이야기하면 정말 즐거울거 같아요^^

자목련 2021-06-23 09:22   좋아요 2 | URL
그쵸? 참 좋아요. 저도 영화는 몰랐어요. 책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하죠.
이곳 알라딘의 서재도 그렇고요^^

잠자냥 2021-06-22 14:17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자목련 님이 술 이야기 많이 하셔서(심지어 좋아하신다고 해서) 매우 놀라고 있는 중입니다. ㅎㅎ 글을 하도 정갈하게 쓰셔서 술은 입에도 안 대실 줄 알았던 1人.... ㅋ

자목련 2021-06-23 09:21   좋아요 3 | URL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ㅎ 이제는 저질 체력이라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고요.
잠자냥 님의 짬뽕과(맞나 모르겠네요) 맥주 사진을 넋놓고 바라보았지요. ㅎㅎ

coolcat329 2021-06-22 14:3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하하 어쩜! 저도 이 글 읽고 이 분이 술을 드시네? 그것도 친구는 사이다마시는데 혼술을...참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ㅋㅋㅋ
맞아요. 글이 참 차분 정갈하셔서...드셔도 다소곳이 사케를 드실거같은데 맥주를 ㅎㅎ
의외의 모습 발견했을 때 더 호감도가 상승되시는거 아시죠? 😅

자목련 2021-06-23 09:19   좋아요 3 | URL
음, 제가 한때는 술을 잘(?) 마시기도 했어요. ㅎㅎ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붕붕툐툐 2021-06-22 2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러워요~ 전 이런 친구가 없는 거 같아요. 대화하고 나면 왠지 공허한 느낌.. 이건 제 문제겠죵?^^;;

자목련 2021-06-23 09:18   좋아요 2 | URL
너무 많을 말을 하면 공허하지요, 저도 그래요. 근데 그 순간에 충실하려고요, ㅎ
H는 동생이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가 되었어요.
친구가 많지는 않고 소수의 소주한 인연을 오래 지속하고 싶어요.

하늘바람 2021-06-24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 내내 책속 한 부분 같았어요

자목련 2021-06-25 18:26   좋아요 0 | URL
ㅎ 감사해요. 하늘바람 님, 시원하고 환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