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재장전 - 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알랭 바디우 외 지음, 이현우 외 옮김 / 마티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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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 1917년 당시에는 크렘린 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리무중인가? 이 책의 저자들이 레닌의 손가락을 열심히 보는 동안 혹시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 지금/여기 발 아래는 아니었던가?

 

일정한 현장성을 상실하면서도(이를테면 그것이 복고적 취향이라거나 아니면 레닌의 혁명적 일대기에 대한 회고라는 식의 비판을 어느정도 수용하면서) 레닌이 지금 중요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한 바퀴 돌아 다시 1917년이 되는 것인가? 이 책의 필자들을 일렬로 세워 보면 거대한 산맥들을 마주대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 산맥의 면면을 살펴 보면 이런저런 '절박함'이 먼저 묻어난다. 산맥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막대한 권위는 아닌 것이고, 오히려 레닌의 정체성에 신들린 듯한 모습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레닌을 불러 오는 주술은 매우 강력해 보인다. 레닌의 정당성은 이렇게 불러 오는 자들이 얼마나 '이론적 열정'을 투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레닌'이라는 저 이름, 아니 이제 이름이 아니라 '혁명의 구호'이자 '명령'이 된 명사는 신자유주의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공교롭게도 유령이 되어 버린 좌파들의 둔해진 대뇌에 강력한 아드레날린을 주입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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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비교 발췌]

Lenin Reloaded-Toward a Politics of Truth

Duke Univ Pr, 2007

《레닌 재장전-진리의 정치를 향하여》

알랭 바디우 외 지음, 이현우, 이재원 외 옮김, 마티, 2010

옮긴이의 글 - 그렇다면 우리는 이 책과 더불어 무엇을 할 것인가? - 이재원

[16]결국 우리는 언제든 옳게 정세를 읽을 수 있는 주체라기보다는 그저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인 정세 속에서 ‘결단’과 ‘선택’을 감행하고, 스스로 선택한 것과 선택하지 않은 모든 결과에 ‘응답’한다는 의미에서 ‘책임’을 떠안는 주체일 수밖에 없다.

[17]그렇다면 레닌이 말한 ‘구체적 상황에 대한 구체적 분석’으로서의 진리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흔히 논리학에서 말하는 인식(진술)과 사실(사물)의 일치로서의 진리가 아니라 주어진 사태나 상황, 즉 정세의 ‘본질’에 대한 진술로서의 진리이다. 예컨대 제2인터네셔널의 붕괴를 가져온 1914년의 상황에서 자국 노동자들의 전쟁 참전을 지지한 이른바 ‘사회애국주의자들’의 상황판단도 모두 정세의 일면을 포착했다는 의미에서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다(우선은 조국을, 동지를, 가족을 지켜야 한다 등등). 그러므로 세계전쟁의 물꼬를 혁명을 위한 내전으로 돌려야 한다는 당시의 레닌의 테제는 거짓과 반대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진리가 아니라 ‘개개의 사실을 넘어서는 어떤 것’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진리였다. 레닌의 진리가 그때그때 달라지는 상대적 진리가 아니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개개의 사실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주어진 정세의 전체 판도를 반영하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는 의미에서 레닌의 진리는 차라리 보편적 진리라고도 불림직하다.

그런데 이 말은 곧 주어진 정세를 구성하는 여러 사건들 속에서 그런 보편성을 식별할 수 있는 어떤 기준이 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당파성’이다.

서문 - 레닌을 반복하기 - 세바스티앙 뷔쟁, 스타티스 쿠벨라스키, 슬라보예 지젝

[22/2]포스트 모던의 정치 사유는 정확히(precisely) 마르크스주의에 반대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탈-마르크스주의(post-Marxist)이다. 레닌에 대한 참조는 이러한 두 개의 함정(pitfalls)을 피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개입(intervention)을 구분하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마르크스와 관련해 레닌의 외부성(Lenin's externality with regard to Marx)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레닌은 초기 주동자들(the initiated)로 이루어진 마르크스 내부 서클의 회원이 아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만난 적도 없다. 게다가 “유럽문명”의 동쪽 끝에 위치한 땅에서 왔다. 이렇게 해서 이 외부성은 레닌에 반대하는 표준적인 서양의 인종주의적 논의의 한 부분이 된다. ... 레닌은 마르크스의 위치를 격렬하게(violently) 전치시켜(displace) 놓았다. 다시 말해, 원래의 문맥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떼어내 다른 역사적 순간에 이식함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실질적으로 보편화한 것이다.

두 번째로, 오직 이러한 격렬한 전치(violent displacement)를 통해서만 원래의 이론은, 정치적 개입의 잠재력을 완전히 발휘하면서, 작동할 수 있다. ... [23/3]레닌은 포스트모던 상대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인 오늘날, 여느 때보다 더 실효성이 있는 진리와 편을 드는 태도인 당파성partisanship이 서로 배척하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서로의 조건이라는 데에 내기를 걸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보편적 진리란 오직 철저하게 당파적인 입장을 통해서만 표명될 수 있다. 진리는 정의상 한쪽 편이다. 물론 이는 충동하는 다수의 이해관계 속에서 중도를 찾는 타협이라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해서 나아간다.

우리에게 “레닌”은 낡은 독단적 확실성을 향한 향수어린 이름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되살리려는 레닌은 생성 중인 레닌Lenin-in-becoming, 그의 근본적인 경험이 파국적인 새 성좌 속으로 던져지고 그 속에서 오래된 참조점들이 아무런 쓸모없는 것으로 판명나버려 할 수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재발명해야 했던 레닌이다. 묘비석을 찾거나 그림을 바라보는 것처럼, 레닌으로 단순히 돌아가는 것은 충분치 않다는 말이다. 우리는 레닌을 반복repeat하고 재장전reload해야만 한다. 즉 우리는 오늘날의 성좌에서 똑같은 추동력을 되살려내야 한다. ... 이 귀환은 ... “레닌의” 제스처를 현재의 지구적 조건 속에서 반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24]

PART ONE 레닌을 복구하기

1. 하나는 스스로를 둘로 나눈다 - 알랭 바디우

[28/8]카우츠키는 프롤레타리이트 독재(the 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일반의 문제 뿐 아니라 민주주의 일반의 문제에까지 개입하고 싶어 했다. 러시아에 국한된 전술적인 결정이라는 근거를 내세워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배신의 본질이었다. 원칙을 어기기 위해 전술적 상황 운운하는 것. 원칙의 문제로 정의되는 정치 개념을 개량주의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부차적인 모순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배신의 본질이다.

[29/8]결국 이론은 문제의 국면을 사유 속에 통합하는 것이다.(So theory is precisely what integrates in thought the moment of a question.) 민주주의라는 문제의 국면은 부자들과 착취자들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과 같은 전술적이고 지엽적인 결정이나 혁명의 특수성과 관련된 결정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 국면은 일반적인 승리를 쟁취한 혁명들의 국면에, 착취자들을 실제로 무너뜨린 국면에 있다. ... 이론가는 결정된 국면의 내부(the inside of the determined moment)에서부터 민주주의의 문제에 접근한다. 반면 배신자는 국면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순전히 자신의 정치적 분노를 위해 특정한 에피소드를 기회로 이용한다.

[30/9]이 세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어떻든 간에 이 세기는 약속이 아니라 실현의 세기(not a century of promise, but of accomplishment)라는 것이다. 그것은 선언과 미래의 세기가 아니라 행동과 실행의 세기이고 절대적인 현재(absolute present)의 세기이다. 이 세기는 수많은 시도와 실패의 밀레니엄 이후, 승리의 세기로 살아오고 있다. 20세기의 주역들은 헛됨, 숭고한 시도, 이데올로기에의 예속 등에 대한 숭배는 이전 세기 즉 19세기의 불행한 낭만주의의 것이라고 치부했다. 20세기는 말한다. 패배는 끝났다. 이제는 승리의 시대다! 이 승리감에 찬 주체성은 모든 명백한 패배에서 살아남는다. 왜냐하면 그 주체성은 경험적이라기보다는 구성적이기 때문이다. 승리는 패배까지도 조직해 내는 초월적인 동인이다.(Victory is the transcendental motive that organizes even the defeat.).

[33/11]만일 하나를 향한 욕망으로, 주관적인 공식으로 여겨지는 종합의 준칙(둘은 하나로 통합된다)이 우파적이라면, 중국 혁명가들의 눈에 비친 이런 견해는 전적으로 미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준칙의 주체는 최종에 이를 때까지 둘을 극복해 나가지 못한다. 그것은 완전하게 승리하는 계급투쟁이 무엇인지를 끝내 알지 못한다. 이 입장을 따를 때, 욕망을 산출하는 하나는 사유할 수조차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이는 말하자면 종합을 빌미로 고전적인 하나(즉, 일자)를 요청하도록 만들게 된다. 그래서 변증법에 대한 이런 해석은 복고주의적이다. 오늘날 보수주의자가 되지 않고 혁명적인 행동가가 된다는 것은 의무적으로 분열을 욕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새로움의 문제는 그 즉시 상황의 특이성 속에서 분열을 창조하는 문제가 된다.(Not to be a conservative, to be a revolutionary activist nowadays, means obligatorily to desire division. The question of the new immediately becomes the question of the creative division in the singularity of the situation.)

[36/13]그렇다면 때때로 극단적으로 치달았던 폭력은 어떠한가? ... 정치가 만일 부자들, 권력과 권력가들, 학문과 학자들, 자본과 그 하수인들에게 사회를 종속시키고자 하는 영원한 질서를 근본적으로 전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는 이런 정치가 자애로우면서 진보적이고 평화적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 총체적 해방total emancipation이라는 주제는 현재 속에, 절대적 현재의 열광 속에서 실행으로 옮겨지면서 언제나 선과 악 너머에 위치하게 된다.[37] 왜냐하면 행동의 와중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일한 선은 기존 질서가 자신의 영속성을 명명하는 데서 나온 귀중한 명칭인 일자the one일 뿐이기 때문이다.(The theme of total emancipation, when put into practice in the present, in the enthusiasm of the absolute present, is always situated beyond good and evil, because in the middle of the action the only good that is known is the one that bears the precious name whereby the established order names its own persistence.) 그래서 극단적 폭력은 극단적 열광이 가진 상대적인 상관물이고, 정말로 시급한 것은, 니체식으로 말해보자면, 모든 가치들의 가치전환이다. 실재를 향한 레닌주의적 열정은 사유를 향한 열정이기도 하며, 어떤 도덕도 알지 못한다.(The Leninist passion for the real, which is also a passion for thought, knows [14]no marality)

[38/14]정치적인 것은,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실재와 관련해서 자신의 원칙을 세우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어떤 필요도 가지지 않는다. ... 확실히 실재를 향한 열정은 항상 가상semblance의 증식을 동반한다.(Certainly the passion for the real always accompanied by a proliferation of semblance) 혁명가에게 세계는 기만과 타락으로 가득 찬 구세계이다. 그는 베일 아래 가려진 실재를 폭로하면서 끊임없이 다시 정화작업을 시도한다.

[39/15]이 세기가 그려온 또 다른 방식, 즉 테러의 발작적인 매력에 굴하지 않고 실재를 향한 열정을 유지하고자 하는 방식을 나는 공제의 방식the subtractive way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공제의 방식은 진짜 지점을 현실의 파괴가 아니라 최소한의 차이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기가 드러낸 또 다른 방식은 아주 작은 차이, 즉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소멸항vanishing term을 간파하기 위해 외견상의 통일성으로부터 이 항을 뽑아냄으로써 현실을 정화하는 것이지 현실의 표면 속에서 그것을 절멸시키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벌어진 일은 그것이 벌어진 장소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모든 충격the affect이 위치한 곳은 바로 이 “거의” 의 안, 내재적인 예외 안이다.(it means to exhibit as the real point not the destruction of reality but a minimal difference. The other way set forth by the century is to purify reality, and not to annihilate it in its surface, by subtracting it from its apparent unity in order to detect the tiny difference, the vanishing term that is constitutive for it. What takes place "hardly" where all the affect is, in this immanent exception.이 세기에 의해 제기되는 다른 방식은 작은 차이, 즉 그것을 구성하는 소멸항을 파악하기 위해 외견상의 통일성으로부터 그것을 빼냄으로써 현실을 정화하는 것이며, 그것을 표면에서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40/16]새로운 인간은 모든 범주화와 특성화에 저항한다. 특히 가족과 사적 소유, 민족-국가에 저항한다. ... 마르크스 역시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편적 특이성universal singularity은 범주화에 저항하며, 어떤 특성들도 지니지 않고, 특히 가장 중요한 점으로는 개별적인 민족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41]

[42/17]이 세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테마들 주위로 이끌리고 있다. 불가능한 주체적 혁신과 안락함 그리고 반복(impossible subjective innovation, comfort and repetition).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강박관념(obsession)이다. 이 세기는 안전에 대한 강박관념 속에서 끝나고 있으며, 실제로는 보다 더 비참한 다음과 같은 하나의 준칙 아래서 종결되고 있다. 즉 당신이 숨쉬고 있는 이곳은 사실상 그렇게 나쁘지 않다. … 더 최악인 것들이 존재해 왔으며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강박관념은 프로이트와 레닌이 모두 이해했던 것처럼 히스테리의 파괴, 행동주의, 타협하지 않는 군국주의라는 기표 아래 탄생한 이 세기와 완벽하게 대립적으로 진행된다.(And this obsession goes completely against the century that, as both Freud and Lenin understood it, had been born under the sign of devastating hysteria, of its activism, and its intransigent militarism. 그리고 이러한 강박관념은 프로이트와 레닌이 모두 이해했던 것처럼, 파괴적인 히스테리와 그러한 행위양식 또한 그것의 완고한 군국주의[적 경향이]라는 기표 아래에서 탄생했던 그 세기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2. 21세기의 레닌주의? 레닌, 베버 그리고 책임의 정치 - 알렉스 캘리니코스

[48/21]1919년 1월에 이루어진 「직업으로서의 정치」 강연은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사심 없고 공평한 학자적 논평이 결코 아니었다. 1918년 11월에 독일 혁명이 일어났고, 베를린 좌파 봉기 실패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비명횡사한 것을 상기해 보라. 페리 앤더슨의 지적처럼 위에 인용한 글에는 혁명에 반대하는 국가주의적 수사가 차고 넘친다. 베버는 신념의 윤리를 채택한 대표적 사례로 혁명적 좌파를 든다. ... 결국 그들은 이 세계와 실질적 성공을 포기해 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무결한 원리(신념)를 실현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모든 정치에 있어 고유한 폭력에 의존하고, 결국 “모든 폭력에 숨어 있는 악마적 힘”과 싸워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취해진 정치적 행동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혁명 운동 자체도 물질적 이해관계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 [49/22]베버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신념의 윤리와 책임의 윤리를 대비시겼다. ... [50]「직업으로서의 정치」의 전체 구조와 수사를 통해 우리는 베버가 이런 윤리적 입장을 선택했고, 자신의 적들인 볼세비키와 스파르타쿠스단의 해악적 아마추어리즘에 반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지젝이 베버와 아주 유사한 용어들을 사용하는 걸 지켜보는 일은 정말이지 기묘하다.

[50/23]책임의 윤리와 신념의 윤리(the ethic of responsibility and of conviction)를 구분하는 작업은 사실과 가치를 신칸트주의적으로 분류하겠다는 구상에 기반하고 있다.[51] 후자의 윤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규범적 목표들의 절대적 특성은 그 목표들이 일체의 실질적 과제 상황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 책임의 윤리에 수반되는 결과 평가는 현실의 정치관행(활동)으로 구성된다.

[51/23]앤더슨이 베버의 “결정론”(결단주의, decisionism)이라고 적절하게 지칭한 것은 레닌의 정치 이해 방식과는 아주 동떨어진 세계이다. ... [53/25]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실상은 레닌이 엄청나게 다급한 환경에서조차 이론과 실천 사이의 끊임없는 진동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한발 뒤로 물러서 상황을 이론적으로 재검토했다는 사실이다. ... [54]레닌이 1917년에 한 일을 살펴 보면 그의 정치 사상의 두 가지 핵심 테마를 발견할 수 있다. (1) 역사의 복잡성과 예측불가능성(the complexity and unpredicability of history), (2) 정치적 개입의 필요성(the necessity of political intervention). ... 레닌은 1917년 2월에 결합되었던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한다. 1차 대전이라는 “강력한 가속기”, 열강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러시아, 영국과 프랑스의 부추김 속에서 로마노프 왕조가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고 결론 내린 보수파 및 자유주의 정치인들의 음모, 노동자와 페트로그라드 수비대에서 점증하던 불만 등등. 요컨대 “아주 독특한 역사적 상황의 결과로서 전혀 다른 흐름들, 완전히 이질적인 계급 이해관계, 완전히 상반되는 정치적, 사회적 쟁투들이 합쳐졌다. 그것도 아주 ‘조화롭게’ 말이다.” ... [55/26]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도 2월 혁명에 허를 찔렸고, 깜짝 놀랐다. 당대의 사유는 메를로-퐁티가 칭한 역사의 모호성을 인정하면서 대개 정치 행동을 회피했고, 아주 복잡한 사회 세계가 제시한 얄궂은 결과를 수수방관했다. 레닌은 그렇지 않았다. 역사의 그 예측불가능성이 우리가 개입해서 역사를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정치적 개입은 맹목적이고 무모한 짓이 아니다. 무엇이 핵심 고리인지 파악하려면 주의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또 그러려면 “전체 사슬”(whole chain)을 이해해야 한다.

[56/27]물론 세력균형에 대한 그 어떤 평가도 부분적으로나마 잘못으로 판명날 수 있다. 우리는 바로 이런 견지에서 레닌의 나폴레옹 인용(또는 잘못된 인용, (mis)quotation)을 해석해야만 한다. “일단 해 보면 알게 된다.”(On s'engage et puis ... on voit) 혁명가들은 가능한 최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개입한다. 그렇게 개입함 - 혁명가들에게 사슬의 핵심고리로 비친 것을 부여 잡기 - 으로써만 그들은 자신들의 분석이 맞는지 틀린지 알 수 있다.

[57/28]역사의 예측불가능성(the unpredictability of history)은 역사의 불확정성(its indeterminacy)과 다르다. 이론적 분석은 특정한 상황을 구성하는 구조와 경향을 파악한다. 그러나 그렇게 밝혀진 구조와 경향이 상황을 남김없이 규명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개념화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혁명가는 상황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최상의 분석을 바탕으로 사태에 개입한다. 상황의 결정적 요소들(로 비치는 것들)에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최고의 이론이라도 어쩔 수 없는 한계 - 맞다고는 해도 상황을 철저하게 규명할 수 없는 한계 - 로 인해, 내가 앞서 레닌의 정치적 실천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주장한 내용, 곧 분석과 개입 사이의 끝없는 진동(분석과 행위 사이의 끝없는 상호 추적the constant tracking backward and forward between analysis and action)이 생길 수밖에 없다. 사태가 잘 풀리면 (정말이지 많은 경우 그렇게 되지 않지만) 그 결과는 상호계시(상호조명mutual illumination)의 과정이 된다. 그 속에서는 성공적인 개입으로 이론이 정련되고, 더 나은 실천으로 되먹임된다.

[59/29]지젝이 관심을 집중하는 결과는, 현재 시점에서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해 줄지 모르는 미래의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그는 이 세계에서 착취와 억압을 제거하기 위해 수행되어야만 하는 불쾌한 과업을 우리가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그런 훈계는 희망적 사고를 교정해 줄 때에만 가치가 있다. 문제는 그런 훈계가 적절한 맥락에서 신중하게 채택되지 않을 경우 변명에 동원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65/34]스탈린주의가 레닌주의의 완결이기보다는 레닌주의와 단절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가 부상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었다. 1923년 10월 독일 혁명이 최종적으로 패배하면서 볼셰비키가 처했던 상황의 우발적 결과가 스탈린주의의 부상이었던 것이다.(its emergence was not inevitable but was a contingent outcome of the circumstance in which the Bolsheviks found themselves, particularly as a result of the final defeat or the German Revolution in October 1923.)

[69/36]오늘날의 레닌주의... 1. 자본주의를 전략적으로 분석하는 것의 중요성. 레닌은 위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 사상가가 결코 아니었다. ... 레닌이 다른 어떤 마르크스주의자들보다 더 확연하게 보여 준 게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를 이론적으로 분석하고, 이에 따라 정치적 행위자들을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것(strategically situating political actors)의 중요성이다. ... 좌파는 자본주의의 현 시기 발전 단계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70]이와 관련해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훌륭한 책 『제국』은, 사람들이 그들의 분석에 얼마만큼 동의하고 또 의견을 달리하는가와는 무관하게, 당대 자본주의의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중요성을 가진다. 『제국』이 발전시키려고 하는 종류의 이해 방식이 없다면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행동하게 될 것이다.

2. 정치의 구체성과 중심성(The specificity and centrality of politics). ... 대다수의 평자들은 경제가 전지구화되면서 민족 국가가 약화되었다고 믿고 있다. 나는 그 입장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선 첫째로 전지구화의 촉진자로서 국가 권력의 행사가 결정적이었다. 국가 권력은, 크게 보아 여전히 국가 단위로 구성된 자본가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옹호하는, 주요한 수단 가운데 하나로서 여전히 건재하다. ... 하트와 네그리는 레닌의 가장 약한 고리 개념이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형성된 “제국”에서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고 주장한다. 제국은 모든 지점이 취약하다는 것이다.[71] 그러나 자본의 힘과, 자본이 착취하는 사람들의 힘이 이 세계에 균일하게 분포되어 있지 않다면 선전과 선동의 우선순위를 밝히려는 노력은 절대적으로 불가피해 보인다.

3. 정치조직의 필요성. ... 자본가의 권력이 국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 맞서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에너지 역시 한데 모아야 한다. ... 반자본주의 운동 내부의 다수가 그런 중앙 집중화된 조직의 필요성에 이의를 제기한다. ... 그러나 그런 전략이 각오해야 할 혼란과 탈진의 위험성은 제쳐 놓는다 하더라도 효과적인 급진 운동이라면 구체적 불만을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개선할 수 있는지에 관한 보다 포괄적인 그림으로 통합 수렴해 내는 방법과, 그런 비전을 현실로 바꿔낼 수 있는 정연한 수단을 요구할 것이다. / 현대의 정당은 그런 강령적,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출현한 제도적 형태이다. 그런 형식이 진부해져서 쓸모가 없다는 널리 유포된 관념을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데 실패한 대중 운동들의 운명을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72]자본주의 사회가 야기하는 그 모든 불만에 관심을 기울이고 일반화하는 사회주의 정치조직이라는 정당의 문제는 당대의 좌파와 관련해서 레닌의 양도할 수 없는 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3. 포스트모던 시대의 레닌 - 테리 이글턴

[78/42]포스트모던 시대는 경제주의의 어설픈 환원론에 저항한다. 포스트모던 시대가 선호하는 권력모형은 중앙집권적인 것이 아니라 복수적인 것, 산재하고 편재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협소하게 계급이라는 개념에 기반한 정치에 대해 회의를 품으며, 대신 민족 간의 차이와 대지의 저주받은 이들에 주목하는 정치를 갈망한다. / 한마디로 말해 포스트모던 시대가 추앙하는 것은 곧 … 레닌주의인 것이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던 시대가 말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레닌주의에 전부 들어맞는 사실이기 때문이다.(What a postmodern age admires, in short, is ... Leninism. For all this is true of Leninism too.)

[79/43]염세주의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우리는 우리 시대에 사회주의로부터 무관심이나 반동으로 옮겨 갔던 것이 아니다. 대신 우리는 사회주의로부터 반자본주의로 이동해 왔다. 이는 물론 커다란 변화가 전혀 아니며, 최근 현실 사회주의의 운명을 고려했을 때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하나의 퇴보이다.

[81/44]문학과 혁명은 둘 다 물론 또한 예술 형식이다. 특히 혁명은 한없이 복잡한 실천의 작용이며 어떤 각도에서 보자면 맥주 마시기보다 뇌수술에 더 가깝다. 누구나 혁명을 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성공적인 혁명을 완수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언제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으며, 또 성공적인 혁명에서는 이런 이들이 전면에 부각되기 마련이다. 전위의 문제란 이렇듯 의심의 여지없이 확실한 것이 아니다. 전위의 문제란, 예를 들자면 그러한 종류의 전문가들이 대중에 의해 자발적으로 산출되는 것인가, 아니면 잘 훈련된 개인으로서의 혁명가가 이미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정치적 위기의 시기에 대중이 그를 자발적으로 따르는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85/47]전위가 우둔한 대중에 대해 사회적, 영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선다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해 전위라는 고전적 레닌주의의 교리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할 필요는 없다. / 첫째로, 엘리트는 자기 영속적인데 반해 전위는 자기 파괴적이다. ... [86]해방적인 종류의 권위라면 거기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다. 일단 그러한 권위의 경험이 일반화되고 그 기능을 다하게 되면 전위는 그 임무를 마치고 사그라질 수도 있다. 확실히 전위는 엘리트주의로 경직될 수 있는데, 레닌주의로부터 스탈린주의로의 이행을 이런 식으로 설명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적절하지 못하다. ... 광부들, 여성 참정권 지지자들, 미래주의자들,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종의 전위였지만, 그들이 모두 빠짐 없이 엘리트로 변모하지는 않았다.

[86/48]혁명이란 비일상적이며 비정상적인 사건(unusual, aberrant affairs)이라는 자명한 진리를 통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혁명은 매일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혁명적 운동이 유토피아의 전조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일상생활의 소우주처럼 여겨져서도 안 된다. 사실 혁명은 그 행위와 관계를 통해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 가치들을 예시해야 하는데, 이는 단순히 도구적이기만 한 볼셰비키주의에는 없는 차원이다. ... 혁명은 유토피아에 대한 이미지도 아니다. ... [87]혁명이 응당 강조하는 투쟁과 갈등과 엄격한 자기부정 등의 규율을 자유, 번영, 평화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미래의 정치상으로 오해할 일은 점점 줄어든다. 이는 아마도, 혁명 운동에 가장 활발히 참여하는 사람들이 ... 그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뜻일 것이다. 브레히트가 「후손들에게」라는 시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아, 우리는 / 친절함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했으나 / 우리 스스로 친절할 수는 없었다.”(Ach, wir / Die wir Boden bereiten wollten für Freundlichkeit / Konnten selber nicht freundlich sein)

[88/49]우리는 동인 집단을 정의상 원래 그리고 독자적으로 전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런 전위란 존재할 수 없다. 엘리트는 그 정의상 보통 사람들을 경멸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능력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다면 전위는 활동하지 못할 것이다. 기호학적으로 말하자면, 전위와 군대 사이의 관계는 은유적이라기보다는 환유적이다. 이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는 것은 아마도 대체주의라는 이단이 될 것이다. 볼셰비키 자체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라고 하는 주변적이고 격하된 지시대상 위에 내걸려 있었던 것처럼, 전위 또한 떠다니는 기표가 될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레닌주의적 전위 개념은 레닌주의와 자주 혼동되곤 하는 단순한 폭동주의나 블랑키주의와는 매우 다르며, 이는 또한 레닌 자신이 언제나 거부했던 것이기도 하다.

[93/52]벤야민이 모스크바에 대한 글에서 관찰했던 것처럼, 그 결과는 “기술적 삶의 양태와 원시적 삶의 양태 사이의 완벽한 상호침투”(a complete interpenetration of technological and primitive modes of life) 인데, 말하자면 이 두 경우에서 모두 일직선적인 시간성은 내부에서 폭발하고 위대한 고전적 역사주의들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폭로되며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은 카이로스kairos의 시간이 되고 공허한 동질적 역사의 흐름은 벤야민이 “지금시간”jetztzeit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갑자기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의 시간이 무르익는 순간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계급이 들어가게 될 좁은 문이 되며, 또한 이 순간은 절대주의의 역사, 부르주아와 민주주의의 역사,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 지방 프티부르주아의 역사, 국가의 역사와 세계시민의 역사 등 여러 다양한 역사들이 순환하고 새로운 배치 안에서 직조되는 지금시간이 된다. 벤야민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처럼, 혁명은 과거의 쓰레기더미에 애처로운 시선을 보내면서 미래로 떠밀려 간다.[94] 그리고 일반적으로 혁명의 시간이 자기동일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순전히 산만하지도 않은 것처럼, [/53]모더니즘의 시간과 볼셰비키 실험의 시간 또한 그렇다. 한편에서는 한 국가의 문화가 잡종, 혼합어, 세계시민적 자본 - 여기서는 새로운 공통어(lingua franca)나 세계적인 은어(argot)가 예술 그 자체인데 - 에 치욕적으로 자리를 내주고 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적 혁명에 의해 해방된 권력이 자본주의의 세계적 공간을 왜곡하고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국제주의적 접합들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국가적 혁명을 터뜨려 국가 자체라는 시간적 연속체로부터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blasting the national revolution out of the temporal continuum of the nation itself into another space altogether)이다.

[96/54]레닌은 당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를 일소하고 제거하는 가차 없는 결벽주의자였지만, 정치적 혁명이라는 실제적 과업에 있어서는 결벽주의자가 아니었다. ... 순수한 혁명에 대한 희망 속에서만 사는 사람은 결코 그러한 순수한 혁명을 보지 못할 것(whoever lives in hopes of a pure revolution will never see one)이라는 이유에서이다.

[97/55]레닌이 포스트모던적인 틀에 순응하기를 완고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문화와 관련된 지점에서이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레닌은, 비록 문화라는 용어의 의미는 다를지라도, 문화의 가치 자체는 높게 평가했다. ... 실제로 그는 문화를 러시아 혁명의 실행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로 봤으며, 또한 동시에 문화를 러시아혁명을 위협했던 유일하게 중요한 요인으로 보기도 했다. ... 러시아에서 혁명의 실행이 가능했던 것은 문화가 취약했기 때문에, 곧 시민사회가 결핍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정교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부족했기 때문에, 따라서 또한 “문명화되고” 통합된 노동계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러시아의 노동계급은 문화적으로 취약하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더 강력했던 것이다.그러나 혁명의 지속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 또한 과학, 지식, 교양, 기술, 노하우라는 또 다른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부재하는 문화 때문이었다.(ironically, the Russian working class was ideologically stronger just because it was culturally weaker. But it was the relative absence of culture, in the alternative sense of science, knowledge, literacy, technology and know-how, which made it so hard to sustain.) 기대치 않게 혁명이 탄생할 수 있도록 했던 똑같은 일이 반대로 혁명을 망칠 수도 있는 위협이 되는 것이다.

[99/56]레닌의 가장 대담한 전위적 텍스트는 확실히 『국가와 혁명』인데, 이 책은 정치적 신랄함의 정점에 서 있다는 의미에서 전위적일 뿐만 아니라 형식의 정치를 촉발한다는 보다 기술적인 의미에서도 또한 전위적이다. [100]사회주의 권력은 단순히 하나의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의 이행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 양태로부터 또 다른 권력 양태로의 이행(not simply from one class to another, but from one modality of power to another)을 내포하는 것이라는 『국가와 혁명』의 논지는 마르크스의 생각에서 파생된 것이다.

[101/57]결국 볼셰비키는 그들이 할 수 있었던 만큼 노동계급을 신뢰하기에는 단지 너무 두려움이 많았고, 그들의 가차 없는 전위주의(relentless vanguardism)는 결국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스탈린주의에 토대를 제공하는 결과를 빚었다. 만약(말하자면, 레닌과 스탈린 사이에서) 순전한 연속성을 설정하는 것이 “형이상학적”이라면, 몇몇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그들 둘 사이에 알 수 없는 심연을 설정하는 것 역시 똑같이 형이상학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포스트마르크스주의적이며 포스트모던적인 형태의 레닌주의로 통하는 기괴한 희화화(grotesque travesty)는 도전 없는 회피이기에 허용될 수 없다.

[102/58]그 체제는 인민을 총으로 위협한 채 모더니티 속으로 행진하게 했던 것이다. 또한 만약 자본주의의 강력한 반대자인 레닌이 너무 서구 자본주의의 한쪽 면만을 봤다면, 오늘날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반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저 사회주의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저 “전위적” 부정을 잊고 있다. 그들은 동시에 사회주의가 위대한 혁명적 부르주아의 전통과 그 물질적 발전에 대해 지고 있는 빚을 냉정하게 인정해야 하며, 도덕주의적 독선에 사로잡혀 단순히 그 빚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연속주의가 없다면 부정도 없다. 레닌의 결점들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모더니티의 이익을 향유하는 이들만이 동시에 그러한 모더니티를 경멸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Whatever his failing, Lenin stands as a perpetual reminder that only those who enjoy the benefits of modernity can afford to be so scornful about it.)

4. 레닌과 수정주의-프레드릭 제임슨

[107/60]여기서 나의 전제는 레닌이 여전히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한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그 무언가가 결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The premise is that Lenin still means something: but that something, I want to argue, is not precisely socialism or communism.) 공산주의에 대한 레닌의 관계는 절대적 믿음에 속하는 것이며[108] 레닌은 이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기에 우리가 그의 저작에서 이에 관해 새롭게 생각할 것은 따로 없을 것이다. 맑스는 하나의 대타자이자 유일한 대타자인 것이다.(Marx is a big Other, the big Other. 맑스는 하나의 대타자, 즉 바로 그 대타자인 것이다.)

[110/62]레닌은 항상 정치적으로 사유했다. 이러한 의미에서라면 레닌이 쓴 글도, 그가 행한 연설도 [111] 그가 초안한 시론이나 논문도 정치적이지 않은 것은 없으며, 더구나 이 모두는 동일한 종류의 정치적 충동(political impulse)으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 [/63]정치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어쨌든 이것이 전통적인 개념의 정치나 정치학적 이론과도 별 상관이 없으며 또한 최근 프랑스에서 le politique[정치적인 것]와 la politique[정치] 사이에 행해지고 있는 저 번역할 수 없는 구분과도 별 관계가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114/65]나는 보다 깊은 구조적 문제(deeper structural issue)를 지적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하나의 사유체계로서 (또는 더 정확하게 말해서, 정신분석처럼 하나의 독특한 “이론과 실천의 조합”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특수성 - 그리고 또한 그 독창성이 - 두 개의 완벽한 스피노자적 양태가 서로 겹쳐지고 공존하는 방식에 있다고 느껴 왔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양태(capitalist economics)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계급과 계급투쟁(socail class and class struggle)의 양태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둘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 두 어휘는 어떤 메타언어를 통해서도 상관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또한 끊임없이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의 번역translation - 나는 트랜스코딩transcoding이라고까지 말하고 싶은데 -을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그렇게 각각 군림한다. 그렇다면 레닌의 지배적인 코드는 확실히 계급과 계급투쟁의 코드일 것이며 경제학의 코드는 훨씬 덜 지배적일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또한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어떤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심급으로서 경제학이 지니고 있는 우위를 주장하고 싶다.(If this is so, then Lenin's dominant code is clearly that of class and class struggle, and only much more rarely that of economics. But I also want to insist on the priority, within Marxism, of economics as some ultimately determining instance) ... [115/66]내가 말하는 것은 분명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경제학은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를 다른 주제로 대체하거나 추가적이고 병행적인 다른 주제 - 전통적인 의미에서 권력이나 정치 등의 주제 -를 제시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마르크스주의 자체가 지닌 독창성과 힘을 구성했던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제를 정치로 대체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모든 부르주아의 공격이 취했던 표준적인 모습이었다.

[115/66]{마르크스의 ‘경제’와 관련하여}우리는 성이 프로이트주의의 중심이라고 긍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성이라는 사실로부터 후퇴하는 것은 일종의 수정주의를 열어 젖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프로이트 자신이 언제나 재빠르고 기민하게 비판하고 비난해 마지않았던 것이다. (이는 죽음충동이라는 프로이트의 후기 개념이 그의 신경제정책이라는 것을 의미하는가?)

[116/66]어떤 형태로든 권력이라는 수사학은 언제나 수정주의의 근본적 형태로 간주되어야 한다.(The rhetoric of power, then in whatever form, is always to be considered a fundamental form of revisionism.) 나는 여기서 주장하고 있는 이 대중적이지 못한 의견이 이전 시대(냉전시대나 제3세계 해방의 시대)보다 오늘날 더 합당하지도 모른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분명 모든 것이 다시금 경제적이 되어 버린 시기이며, 특히나 가장 속류화된 마르크스주의의 의미에서 그렇기 때문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전지구화 안에서, 곧 전지구화의 국가 내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그것의 외적인 역학 관계 안에서, 순전히 정치적이거나 권력적인 문제로 보였던 것들조차도 그 배후에 어느 정도 경제적 이해관계가 작동하고 있음이 훤히 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117/67]내가 만약 이러한 미래의 철학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몇 가지 사항들을 개략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여기서 나는 두 가지 다른 층위들을 주장하고 싶다. 이 두 층위는 어쨌든 혁명의 순간에 아주 잠깐 동안이나마 서로 하나로 통합되고 합치될 것이다.[118] 하나는 사건(Event)의 층위인데, 우리는 이것이 어떤 절대적 분극화polarization를 성취한다고 말해야 한다. ... 이러한 분극화는 계급에 대한 이분법적 정의가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하나의 계기를 구성한다. / 혁명은 또한 인간의 삶이 지닌 집단적 층위가 하나의 중심적 구조로서 표면에 부상하게 되는 독특한 현상이기도 한데, 이러한 혁명의 계기 속에서 하나의 집단적 존재론은 개인적 실존에 귀속되는 부가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혹은 시위나 파업 등의 도취적 순간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포착될 수 있다. ... 그러나 이러한 모든 특징들은 여전히 폭력을 전면에 내세우는 고전적인 이미지들을 불러일으키기 쉬운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곧 혁명적 상황에서는 폭력이 처음에는 우파로부터, 곧 반작용으로부터 출현하고, 그리고 다시 좌파로부터 폭력이 그러한 반작용에 대한 또 다른 반작용으로서 등장한다고 말이다. ... [119/68]이 때문에 우리는 이 지점에서 혁명이 그만큼 본질적인 또 다른 얼굴 혹은 또 다른 층위를 갖는다고 주장해야 할 텐데, 그것은 곧 (사건과는 반대되는) 과정 자체(process itself)의 층위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혁명은 체제 변화라는 길고 복잡하며 모순적인 전체 과정을 의미하며, 또한 망각, 고갈, “도덕적 동인”이라는 절망적 발명품인 개인적 존재론으로의 후퇴에 의해 위협 받는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혁명은 무엇보다 집단적 교육법pedagogy의 긴급성을 요청하고 있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집단적 교육법이란 수많은 개인적 사건과 위기들이 그 자체로 어떤 거대한 역사적 변증법을 이루는 방식들을 하나하나 지형도로 만드는 것인데, 이러한 변증법은 개인이 위치한 각각의 지점에서는 감각적 지각과 마찬가지로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으며 반대로 그 변증법의 전체적 운동만이 그 지점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부재하는 것과 현전하는 것의 통합,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통합, 세계적인 것과 국지적인 것의 통합이다. ... 이는 곧 혁명이 그 각각의 실존적 일화들 안에서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한 어떤 집단적 자각을 매 단계마다 요구한다. ... 레닌의 진정한 의미는 오히려 우리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저 과정으로서의 사건과 사건으로서의 과정 안에서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 혼재하는 형태에 있다.(The true meaning of Lenin is the perpetual injunction to keep together in that Event-as-process and process-as-Event we call revolution) 레닌의 진정한 의미는 혁명을 살아 있는 것으로 유지하라는, 심지어 혁명을 그것이 일어나기 전의 어떤 가능성으로 살아 있게 하라는, 일상화와 타협과 망각 등으로 실패하고 악화될 위협 속에서도 혁명을 매 순간마다 과정으로서 살아 있게 하라는, 그런 영속적인 명령인 것이다.

[121/69]우리가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해야 하는 이유는 사회민주주의의 불가피한 실패가 진정한 좌파의 어떤 기본적인 교훈과 근본적인 교육법(the basic lesson, the fundamental pedagogy) 을 구성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여기서 사회민주주의가 전 세계를 통틀어 이미 실패했다는 사실을 덧붙이려고 한다. ... 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 곧 모든 것을 바꾸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것.(one cannot change anything without changing everything.) 이것이 바로 체계의 교훈이며 ... 동시에 혁명의 교훈임을 알게 될 것이다.

[122/70]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혁명적 경험 또는 실험은 그 혁명 지도자의 이름으로 대표되어 왔고 또한 종종 그 지도자 개인의 운명과 생물학적으로 동일시되어 왔다.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떤 수치스러움(scandalous)을 느껴야만 한다. 무엇보다 하나의 집단적 운동이 한 인간 개인의 이름으로 대표된다는 것은 우의적으로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125]『제국주의』는 세계시장의 부분적 등장을 이론화하고자 했던 레닌의 시도를 대변했다. 현재 그러한 세계시장은 전지구화를 통해 그때보다 더 완전한 형태로 혹은 최소한 경향적으로는 완전한 형태로 등장했으며, 또한 질과 양의 변증법을 통해 레닌이 묘사했던 상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게 변모했다. 일견 그 고리를 끊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전지구화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globalization)은 우리의 정치적 사유가 천착해야 할 우리의 “결정적 모순”(determilnate contradiction)인 것이다.

5. 오늘날 레닌주의적 제스처란 무엇인가: 포퓰리즘의 유혹에 맞서 - 슬라보예 지젝

[128/74]여기서 진정한 과제는 10월 혁명의 비극을 사유하는 것이다. 곧 그 위대성, 그리고 유례없는 해방적 힘과 함께 스탈린주의로 귀결된 역사적 필연성을 동시에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는 두 가지 유혹에 맞서야 한다. 하나는 스탈린주의가 궁극적으로는 우발적인 일탈(contingent deviation)에 불과하다고 보는 트로츠키식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공산주의 기획이 본질적인 차원에서 전체주의적이라고 보는 관점이다.

[132/77]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구-공산권 국가들로부터의 이주노동자 유입이 다문화주의적 관용의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78]그것은 실상 노동자들의 요구를 통제하기 위한 자본의 한 전략이다. 미국에서 부시가 노동조합의 발목이 잡힌 민주당보다 멕시코 불법 이민자의 지위 합법화에 더 열성적이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여기서 좌파가 배워야 하는 교훈은 포퓰리즘적 인종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증오를 외국인들에게 전치하는 것과 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그 전치된 계급적 내용을 간과하고 다문화적 개방을 명분으로 포퓰리즘적 반-이민 인종주의를 반대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호의적 의도에서라 하더라도 단순히 다문화주의적 개방만을 고집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에 반대하는 가장 기만적인 형식이다.

[133/78]기성의 탈정치적 좌표계에서 벗어난 어떠한 사고도 “포퓰리즘적 선동”이라고 자동적으로 기각해 버리는 것은 우리가 실상 새로운 사고금지Denkverbot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가장 순수한 증거이다.

[134/79]포퓰리즘은 특수한 정치운동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의 가장 순수한 형태이다. 즉 그것은 어떠한 정치적 내용도 취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의 “굴절부”inflection이다. 포퓰리즘의 요소들은 순수하게 형식적이고 초월적이며, 실체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포퓰리즘은 일련의 특수한 “민주주의적” 요구(더 나은 사회적 안전, 의료 서비스, 낮은 세금, 전쟁 반대 등)가 등가적 요구의 사슬로 엮여서 보편적 정치 주체로서의 “인민”을 생산할 때 발생한다. 포퓰리즘을 특징짓는 것은 이런 요구들의 실체적 내용이 아니라, 그 사슬을 통해서 “인민”이 정치적 주체로 출현하고 다른 모든 특수한 투쟁과 적대가 “우리(인민)”와 “그들” 사이의 총체적인 적대적 투쟁의 부분으로 나타나는 형식적 사실이다. 거기서 다시금, “우리”와 “그들”의 내용은 미리 규정될 수 없으며, 그것은 정확하게 헤게모니 투쟁에 달려 있다. “그들”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야만적인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같은 이데올로기적 요소들조차도, 포퓰리즘이 등가적 요구의 사슬에 엮여 들어갈 수 있다.

[136/81]포퓰리즘에서 적은 존재론적인 실체로 외부화되거나 구체화되며(비록 이 적이 허깨비더라도), 그것의 제거는 균형과 정의를 회복시키게 된다. 이에 상응하여 포퓰리즘적 정치의 행위자로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 또한 적의 공격에 앞서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된다.(In populism, the enemy is externalized or reified into a positive ontological entity (even if this entity is spectral), whose annihilation would restore balance and justice. Systematically, our own - the populist political agents -identity is also perceived as preexisting the enemy's onslaught.)

[137/81]포퓰리스트가 보기에, 문제의 원인은 궁극적으로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타락시키는 침입자이다(예컨대, 자본가 자체가 아니라 금융투기자), 즉 구조 자체에 기입된 치명적 결함이 아니라 구조 안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어떤 요소이이다.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가 보기에(프로이트주의자도 마찬가지다) 병리적인 것(어떤 요소의 일탈적 비행)은 정상적인 것의 증상, 곧 “병리적인” 폭발의 위험을 안고 있는 구조 그 자체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말해주는 지시자이다. 마르크스에게서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에게서 히스테리의 폭발 같은 병리적 현상은 “정상적인” 주체 구성(과 그 작동을 지탱하는 숨겨진 적대)의 열쇠를 제공해 준다.

[139/83]포퓰리즘은 정의상 이데올로기적 신비화의 최소 형식, 기본 형식을 포함한다. 비록 포퓰리즘이 실상 서로 다른 정치적 변형(반동적 민족주의자, 진보적 민족주의자 등)이 가능한 정치적 논리의 형식적 틀, 혹은 모체이지만, 그럼에도 내재적인 사회적 적대를 통합된 “인민”과 그 외부의 적 사이의 적대로 전치시킨다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포퓰리즘은 “최종심급에서는” 장기적, 원형적 파시즘의 경향을 품는다. / 이것은 또한 어떤 종류이든 공산주의 운동을 포퓰리즘의 한 변형으로 간주하는 것이 미심쩍은 이유이다. 공산주의를 “포퓰리즘화”하는 데에 맞서, 우리는 정치가 주어진 각 국면에 개입하는 기술이라는 레닌의 개념에 충실해야만 한다. 레닌에게서 이 국면들은 “주요” 모순(적대)이 특수하게 집중되는 방식으로 정립된다.(the art of intervening in the conjunctures that are themselves posited as specific mode of concentration of the "main" contradiction(antagonism).) 진정한 “급진적” 정치와 여타의 모든 포퓰리즘을 구별시켜 주는 것은 바로 이 “주요” 모순에 대한 지속적인 참조(persisting reference to the "main" contradiction)이다.

[141/85]하지만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주된 위협은 이런 양극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상품화를 통한 정치적인 것의 죽음(the death of the political through the commodification of politics)에 있다. 여기서 문제는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기본적으로 [142]상품처럼 포장되고 판매된다는 데 있지 않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선거 자체가 상품(이 경우엔 권력)을 구입하는 행위로 간주된다는 데 있다. 선거는 서로 다른 상인-정당 사이의 경쟁이며, 우리의 표는 우리가 원하는 정부를 구매하기 위한 화폐와도 같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구입하는 또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 보는 관점이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관련된 이슈나 결정에 대한 공적인 논쟁의 공유로서의 정치이다. / 그래서 민주주의는 적대를 포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대를 요청하고 전제하며 제도화하는 유일한 정치적 형식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는 다른 정치 시스템이 위협(권력의 “자연스런” 계승자가 결여돼 있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을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한 긍정적 조건으로 고양시킨다. 권력의 자리는 비어 있고 그 자연스런 청구자는 없으며, 폴레모스polemos 또는 투쟁은 해소불가능하며, 모든 실정적 정부는 자웅을 겨루는 투쟁을 통해서 얻어져야 한다.

[143/85]만약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내기가 적대적 투쟁을 규칙에 따라 제어되는 경쟁으로 바꿈으로써 그것을 제도화된 차별적 공간으로 통합하는 것이라면, 파시즘은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된다. 파시즘은 그 활동 양태로 보면 적대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이지만(자신과 적 사이의 “목숨을 건 투쟁”을 말하고, 비록 실현하지는 않더라도 복잡한 법적-제도적 경로를 무시하고 “인민의 직접적 압력”과, [/86]제도 바깥의 폭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을 언제나 견지한다), 정반대로 극도로 위계화된 사회적 체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삼는다. ... 민주주의는 적대적 투쟁을 자신의 목적... 으로 인정하지만 그 절차는 규제적-체계적이다. 반대로, 파시즘은 고삐 풀린 적대란 수단을 통해서 위계적으로 구조화된 조화를 달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지향한다.

[147/88]우리는 여기서 엄격히 구분되는 보편성의 논리(two opposed logics of universality to be strictly distinguished 엄격히 구분되는 보편성에 관한 두 가지 대립적인 논리)를 다루고 있다. 한편으로 사회의 보편적 계급(혹은 더 넒은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경찰로서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보편적 수호자로서의 미국)으로서의, 혹은 전지구적 질서의 직접적인 대행자로서의 국가 관료 체제가 있다. 다른 한편으론, “정원 외적(surnumerary)” 보편성, 곧 기존 질서에서 빠져나온 요소에 구현된 보편성이 있다. 이것은 그 질서에 내재해 있으면서도 그 안에 자신의 자리를 갖고 있지 않다(자크 랑시에르가 “자기 몫이 없는 부분”("part of no-part) 이라고 부른 것이다). 문제는 이 두 보편성이 단지 서로 다르다는 것 정도가 아니다. [/89]투쟁이 궁극적으로 보편성의 특수한 요소들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이 두 보편성 사이의 투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특정한 내용이 보편성의 빈 형식에 대한 헤게모니를 쥘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이라기보다는 보편성 자체의 상호 배제적인 두 형식 사이의 투쟁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working class)과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구분했다. “노동계급”은 실상 특정한 사회집단인 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주체적 입장을 가리킨다. 그리고 레닌은 여러 사회적 실천 가운데 정치적 차원이 갖는 특수성에 대한 깊은 감수성에서뿐만 아니라, 고도로 이질적이며 [148]모순적인 것으로서의 “계급”에 대한 인식과 이런 계급과는 차별화된 것으로서 당에 대한 그의 “비유기체적”(non-organic) 개념을 통해 마르크스를 따르고 있다.

[150/91]더 나아가 우리는 정치경제학 비판이란 용어 자체가 지시하는 바를 잊지 말아야 한다. 경제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때문에 우리는 정치 투쟁을 단순히 보다 기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과정의 부수효과 내지는 이차적 효과로 축소시킬 수 없다. 이것이 마르크스에게 “계급투쟁”이란 말이 의미했던 바이다. 경제의 바로 그 핵심에 정치적인 것이 존재하며, 이것이 마르크스가 계급투쟁을 직접 다루고자 할 때 『자본론』3권의 원고가 중단된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한 이유다. 이 중단은 단순한 누락이나 실패의 신호라기보다는 사유의 방향이 자신에게로 되돌아가고, 이미 언제나 거기에 있었던 차원으로 회귀한다는 신호이다. “정치적” 계급투쟁은 처음부터 모든 분석을 관통한다.(The "political" class struggle permeates the entire analysis.) 정치경제라는 범주는 (가령, “노동력”이라는 상품의 “가치” 혹은 이윤율)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데이터가 아니라 언제나 “정치적” 투쟁의 결과를 보여주는 데이터이다.[151]

[151/92]“자본주의”는 단순히 실제적인(positive) 사회 영역을 구획하는 범주가 아니라 사회 공간 전체를 구조화하는 형식적이고 초월적인 모체, 문자 그대로 생산양식(mode of production)이다. 자본주의의 힘은 바로 그 약점에서 나온다. 자본주의는 자체의 근본적인 적대, 구조적인 불균형과의 조우를 회피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역동적 상태로 항구적인 긴급 상태로 밀어 넣어진다. 그런 한에서 자본주의는 존재론적으로 “개방”되어 있다. 그것은 항구적인 자기-극복을 통해서 스스로를 재생산한다. 미래로부터 빌려와서는 그 청산일을 영원히 유예하는 [152]식으로 자본주의는 자신의 미래에 빚을 진 것처럼 보인다.

[152/92]그것의 기본 태도는 상황의 복잡성과 대면하기를 회피하고 그것을 유사-구체적인 적의 형상(pseudo-concrete enemy figure)(브뤼셀의 관료들에서부터 불법이민자까지)과의 분명한 투쟁으로 환원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포퓰리즘”은 정의상 부정적인 현상, 거절(refusal [진실에 대한] 거절)에 기반한 현상, 심지어는 무력함의 암묵적 승인이다. 우리 모두는 가로등 아래에서 흘린 열쇠를 찾는 한 남자에 대한 오래된 농담을 알고 있다. 어디서 잃어 버렸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캄캄한 구석에서 잃어버렸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그는 왜 여기 불빛 아래서 찾고 있는가? 왜냐하면 여기가 훨씬 잘 보이기 때문이라고. 포퓰리즘에는 항상 이런 종류의 속임수가 있다.

주10]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체제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은 차베스의 현란하다 못해 때로는 어릿광대 같은 스타일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로 실각했을 때 놀랍게도 다시금 그에게 권력을 되찾아 준 가난하고 배제된 사람들의 대중적인 대규모 자가-조직운동을 대조하기를 좋아한다. 이런 관점의 오류는 전자 없이 후자가 가능하다고 보는 데 있다. 대중운동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라는 동일시 형상을 필요로 한다. 차베스의 한계는 다른 곳에 있다. 그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요인인 바로 그것, 오일머니다. 석유는 당장의 저주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길흉이 뒤섞인 축복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오일머니 덕분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도 사회경제적 차원에서 정말로 새로운 것을 발명하지 않고서도 그는 자신의 포퓰리즘적 태도를 계속 견지해 나갈 수 있다. 돈은 실제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행위, 곧 근본적인 변화를 연기하면서 (포퓰리즘적인 반자본주의적 조치들을 취하면서 동시에 기본적으로 자본가들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는) 모순적인 정책들을 수행할 수 있게 해준다. (반미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와 미국 사이의 협약이 정기적으로 체결되도록 꽤 신경을 쓴다. 그는 실로 “석유를 갖고 있는 피델 카스트로”다.)

PART TWO 철학에서의 레닌

6. 레닌과 변증법의 길 - 사바스 미카엘-마차스

[165/103]계속한다는 것은 동일한 것의 성장, 확장, 반복이 [166]아니다. 계속성은 하나의 모순, 스스로 예리해지고 절박해진 나머지, 이전과 다른 새로운 모순을 향해 그 자신을 초월해가는 그러한 모순이다. 그래서 계속성은 그 필연성의 열매일 뿐만 아니라 계속성이 이뤄질 수 없다는 불가능성의 열매이기도 한 것이다.

[177/111]레닌이 라이프니츠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는 사실은 그동안 거의 완벽하게 무시되어 왔다. ... 라이프니츠에 대한 이 새로운 관심은 포이어바흐의 책을 읽으면서 생겨난 우연한 일탈이 아니다. ... 마르크스가 라이프니츠를 어떻게 평가했든지 간에, 레닌은 이 『모나드론』의 사상가에 의해 물질을 외부에서 오는 생명 없는 덩어리로 보던 데카르트적 관점이 완전히 극복되었다고 보았다. 라이프니츠에게 신체적 실체corporeal substance는 “그 내부에 역동적 힘, 결코 소진되지 않는 활동성의 원리”[178]를 갖고 있는 무엇이었다. “라이프니츠는 신학을 통과해, 물질과 운동 사이에는 분리 불가능한 (그리고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관계가 있다는 원리에 도달하였다”고 레닌은 쓰고 있다. ... 그것은 기계적 유물론과는 대립되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현대의 비-뉴턴 물리학이 발견한 물질 개념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185/116]요컨대 변증법은 교훈적 사례들의 총합이 아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의 발견이다. 달리 말해, 변증법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인식론”이며 “사태의 본질(the essence of the matter 물질의 본질)이다. 플레하노프는 그것에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하물며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알튀세르와는 달리 레닌에게 철학은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 아니다. 단지 어떤 조건하에서만, 이를테면 어떤 인식론적 허약함이라는 조건, 특히 부분이 전체로부터 분리되거나 상대적인 것이 절대적인 것으로 변형되는 그런 조건 하에서만, 철학은 우리를 “수렁 속으로” 이끌게 되며, “거기서 그것은 지배계급의 계급적 이해에 닻을 내리게 될 뿐이다.”

[187/117]문제를 현재의 시점까지 끌고 내려와 보면,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스탈린주의가 붕괴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유산들, 무엇보다도 변증법적 방법이 그 잔해 아래 함께 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모든 모순이 폭발하는 시기에, 냉전-이후의 세계를 특징짓는 난폭한 이변과 첨예한 불연속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는 바로 이 시기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평화롭고 점진적인 진보라는 진화론적 관념에 빠져 거의 순응주의자가 다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처럼 수치스런 아니러니가 또 있을까. ... 변증법은 무엇보다 이행에 대한 연구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위기 속에서의 이행에 관한 이론이 결여돼 있다. 가로막힌 역사적 이행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가 저 차단벽들을 넘어서고자 한다면, 오직 혁명적 초월만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If we are to escape the blocked historical transition in which we exist now, we can only achieve it by a revolutionary transcendence of the impasse. 만약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꽉막힌 역사적 이행을 벗어 나고자 한다면, 오직 이 교착상태의 혁명적 초월에 의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

7. “변증법은 살아 있다”-철학과 세계정치에서 변증법의 내구성과 생명력에 대한 재발견(The Rediscovery and Persistence of the Dialectic in Philosophy and in World Politics 철학과 세계 정치에서 변증법의 재발견과 지속성) - 케빈 B. 앤더슨

[192/120]레닌의 사상에는 몇몇 결정적 취약점들이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두어야 할 것 같다.(Since this chapter will stress Lenin's theoretical achievements, I would like to state at the outset that I also see some serious weaknesses in Lenin's thought. 이 장은 레닌의 이론적 성취를 강조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는 레닌의 사유에 있어서 몇몇 심각한 약점들을 찾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전위당의 주도적 역할에 대한 레닌의 지지는 마르크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각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혁명조직에 대한 우리의 사고를 빈곤하게 만드는 짐이 되어왔다. [/121]둘째, 1917년 이후 레닌의 행보들, 특히 일당 지배 국가를 만들고 노동자 소비에트를 붕괴시킨 점 등은 결코 혁명적 민주주의의 모델로 간주될 수 없다. 셋째 ... 변증법 사상에 대한 레닌의 기여는 아주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고른 일관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이를테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 같은 저작은 거칠고 기계적이다.

[194/122]서구 마르크스주의와 비판이론의 역사에 대한 표준적인 해설들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과소평가하거나 아예 빠뜨리고 있다. [195]첫째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더라도, 헤겔에 관한 레닌의 중요한 저작인 헤겔 노트는 1914~15년에 작성된 것으로 1923년에 나온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에 비해 거의 10년이나 앞선다. ... 이러한 사정으로 미뤄보건대, 레닌이 루카치를 위해 앞길을 닦아 놓았다는 것은 분명하다.(Thus Lenin helped pave away for Lukács. 따라서 레닌이 루카치의 앞길을 도운 것이다.) / 1960년대 서독의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거의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 둘째, 전문적인 수준에서 보았을 때도, 서구 마르크스주의 또는 비판적 마르크스주의에 끼친 레닌의 영향을 보여주는 증거는 프롬의 에세이 말고도 꽤 많이 있다.

[199/125]변증법적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 책{『유물론과 경험비판론』(1908)}은 두 개의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첫째, 마르크스주의 유물론을 “객관적인 현실의 모사, 현실에 근접한 모사”로 보는 조야한 반영이론을 내비친다. 둘째, 레닌은 모든 형태의 관념론을 “윤색된 유령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199/125]... 본격적인 헤겔 연구가 시작된 1914년의 지적 위기 동안 ... 제2인터네셔널의 마르크스주의와 정치적으로 결별 ... 새로운 인터네셔널의 창립을 요청 ...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키자고 요청 ... 혁명적 패배주의 ...

[200]그런 의미에서 레닌이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재점토했던 기간은 정치적 과업에서 풀려나 조용히 침잠했던 시기가 아니라 자신의 근본 원칙들을 송두리째 재조직할 것을 요구받은 소란스런 시기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와 노동자 계급을 배신하고 그들을 전쟁의 참호라는 도살장으로 내모는 데 일조하고 있던 제2인터네셔널의 지도자들이야말로, 레닌 자신도 이제껏 추종해 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 [/126]전쟁이 시작되던 1914년 10월에서 이듬해인 1915년 1월에 이르는 몇 달 동안 레닌은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 헤겔을 파고들었다.

첫 번째 변화는 레닌이 조야한 유물론에서 벗어나 헤겔의 관념론적 변증법을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쪽으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 그러나 레닌은 곧이어, 철학을 관념론과 유물론의 “양대진영”으로 나누는 엥겔스의 이분법을 넘어서 다른 무언가로 나아가게 된다. ... [201]레닌은 “속류 유물론”(vulgar materialism)이라는 새로운 범주를 처음 도입하고 있다. ...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두말할 것고 없이 레닌의 입장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발언은 통상 ‘정통 레닌주의’라 일컬어지는 어떤 것보다 차라리 ‘비판적 마르크스주의’라 불리는 것에 더 가깝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202/127]레닌은 어디선가 헤겔의 변증법을 “자기-운동과 생명력의 내적 충동”(the inner pulsation of self-movement and vitality)이라 불렀다. 레닌은 관념론을 거부한 예전의 태도로부터 점차 거리를 두게 되며, 이제 문제는 [관념론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헤겔의 변증법적 관념론을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접속시키는 것이 된다. 철학사를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양대 진영으로 구분했던 엥겔스에 맞서, 레닌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변증법적 종합(dialectical unity between idealism and materialism)이라 불릴 만한 어떤 입장에 접근해 가기 시작한다. 레닌은 알지 못했지만, 비슷한 변화가 1844년 마르크스에게서도 나타났었다. 그즈음 마르크스는 “관념론과 유물론 모두로부터 구분되는 또한 동시에 그 둘의 통일적 진리를 구성하는” “일관된 자연주의 또는 인간주의”("a consistence naturalism or humanism" that was "distinguished from both idealism and materialism")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203/127]두 번째로 나는 레닌이 투박하고 조야한 반영이론으로부터 차츰 거리를 두었으며 1908년의 관점으로부터 자신을 떼어내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의 분명한 증거는 헤겔 노트의 거의 말미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인간의 의식은 객관적 세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창조해 내기도 한다.”(Man's cognition not only reflects the objective world, but create it) 이는 헤겔의 관념론을 혁명적, 능동적, 비판적으로 전유하는 한 사례이다. 인식은 자본주의의 비인간적인 사회적 관계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향해 현재의 물질적 조건 너머로 나아간다. 여기 이 “최종 분석”의 자리에서는 [인식의] 유물론적, 혹은 반영적 측면이 우선권을 가질 수 없다. 그와 반대로 레닌의 문장은 우리를 “관념이나 개념들이 객관적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 쪽으로 이끈다. ... “(레닌에게서) 변증법은 단지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단언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인식을 주체와 객체의 영원한 상호작용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며, 여기서 둘 중 어떤 것이 절대적 우선권을 갖는다는 식의 주장은 변증법의 핵심을 벗어나는 것이다”(콜레하노프)

[207/130]레닌은 지구를 뒤덮은 제국주의에 의해 억압당하는 수천만의 민중들과 해방을 향한 그들의 열망에 관해 쓰고 또 썼다. 그는 억압된 민족들 내부에서 움튼 해방적 민족운동과 지배민족들의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유럽, 미국, 그리고 일본과 같은 열강들의 민족주의가 제국주의를 부추기고 지탱했던 반면, 약소민족들의 민족 해방 운동은 지구적 제국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대립물이었던 것이다.

[216/136]오늘날 과거와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이전에 식민과 점령의 고통을 당했던 민족들도[217]일단 독립한 다음에는, 지구적 자본주의하에서 그들이 지속적으로 대면하는 지배관계에 따라, 국경 안에든 밖에서든 다른 민족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여기에 어떤 특정한 형태의 민족주의가 반동적 성격을 띨지 아니면 해방적 정치를 활성화하게 될지에 관한 레닌의 요점이 있다. 레닌은 민족주의가 반동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은 영국이나 미국 같은 강대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219]“ ... 객관적인 태도로 그의 글들을 읽어본다면,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과 헤겔 노트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헤겔 노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레닌의 사유는 유연하고, 생동감 있고 … 한 마디로 변증법적이 되었다. 레닌은 1914년 제2인터네셔널이 붕괴하기 이전까지는 변증법을 참되게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르페브르는 각주에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였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내세우면서 헤겔 노트는 뒤로 밀쳐 주었던 스탈린주의자들의 저 오랜 침묵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 / 뒤늦은 이 고백이 핵심적인 문제를 짚고 있지만, 그의 주요 저술이나 레닌 관련 논문이 아니라 두꺼운 자서전 한 귀퉁이에 나오는데다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되는 형편이어서 1960~70년대에 루이 알튀세르와 그의 학파들이 반변증법적이고 반헤겔적이며 마오쩌뚱-근본주의적인 해석들 - 특히 알튀세르의 『레닌과 철학』에 잘 드러나 있는 -을 쏟아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139]『레닌과 철학』의 표제 논문은 1968년에 행해진 대중 강연의 원고인데 『유물론과 경험비판론』과 레닌의 경제 관련 저술들만 언급하고 있지 헤겔 노트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장 이포리트가 이 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나서야 알튀세르는 마침내 헤겔 노트에 집중한 논문을 한 편 제출했는데, 거기서나 다른 곳에서나 알튀세르가 레닌과 헤겔에 관해 논평하는 것을 보면 실은 정반대인 두 사람의 텍스트를 한데 비비꼬아서 헤겔에게 해야할 비판을[220] 레닌에게 겨누면서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

[221/140]{두나예프스카야는} 레닌의 헤겔 복귀를 마르크스의 헤겔 복귀와 함께 다루기도 했다. “『자본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먼저 헤겔의 『논리학』 두 권을 열심히 다 읽어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속뜻은 분명 아니었다. 결정적인 것은 레닌이 낡은 개념을 가지고 어떤 중요한 돌파구를 열었다는 것인데, ‘인식은 세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창조한다’는 말보다 그 점을 더 예리하게 표현해주는 말도 없을 것이다. … 레닌은 헤겔에게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통일성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획득하게 됐으며[222] 1915년 이후 레닌의 저작들에 지속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것이 바로 이 새로운 이해이다.”

[222/140]두나예프스카야는 레닌의 헤겔 전유에 대해 몇몇 설득력 있는 비판을 전개하기도 했다. 첫째 그녀는 레닌이 헤겔 변증법에 관한 자신의 새로운 사고를 보다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그 유산을 모호한 상태로 남기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 [/141]두나예프스카야가 보기에 이 모든 문제는 레닌이 1920년에 러시아에서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이 재출간되도록 허용했을 때부터 뒤엉켜 버렸다. 공식적으로 레닌은, 『제국주의』와 『국가와 혁명』을 완성함에 따라, [이 저작들과 철학적 바탕을 달리하는]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번역 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차츰 스탈린주의적 성향을 띠어가던 기관들이[223] 1927년에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을 여러 언어로 번역해 광범위하게 출판했고 국제 공산주의 정당들도 관념론에 대한 이 책의 투박한 공격들을 마음껏 활용하기 시작했다. ... 두나예프스카야의 두 번째 비판은 레닌이 매우 중요한 결절점에서 변증법의 실천적, 행동적 측면을 과도하게 강조한 나머지 그 이론적 측면을 축소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헤겔 『논리학』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나오는 ‘선의 이념’을 다루는 레닌의 논의에서 잘 드러난다. / 세 번째로 그녀는 레닌이 여러 곳에서 헤겔을 너무 협소한 유물론적 시각에서 해석했으며, 특히 『논리학』의 마지막 장인 ‘절대적 이념’을 다룰 때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레닌이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6)에 나오는 엥겔스의 생각을 부분적으로 깨뜨렸던 것은 사실이다. ... 레닌은 엥겔스와는 다른 길을 택해, ‘절대적 이념’ 장이 관념론적이라기보다 유물론적이어서 마르크스주의에 의해 전유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나예프스카야는, 레닌이 엥겔스보다는 깊이 있게 파고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결정적 실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레닌은 ‘부정성’negativity이라는 헤겔의 핵심 개념에 무게를 두지 않고, 대신 ‘모순’에 초점을 맞추었다.[224] 여기서 그는 제2인터네셔널 문서고에 방치된 채 잊혀져 있던 『1844년 수고』에 나오는 부정성의 변증법에 관한 마르크스의 논의와 친숙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 확실히 레닌은 『논리학』 마지막 장을 끝맺는 문단에서 헤겔이 ‘논리에서 자연으로의 이행’에 관해 쓰고 있음을 파악했으며, [/142]그 대목에서 헤겔이 “유물론 쪽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LCW 38: 234)고 썼다. 하지만 두나예프스카야는 레닌이 이 부분 바로 뒤에 이어져 있는 헤겔의 논의를 무시했다고 지적한다. 거기서 헤겔은 또 다른 이행을 말하고 있으니, ‘논리에서 정신으로의 이행’이 바로 그것이다. / 네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두나예브스카야는 제국주의와 민족 해방 사이의 모순을 통해 세계 정치를 변증법적으로 재해석한 것은 레닌의 위대한 업적이지만, 그가 전위당이라는 엘리트적 개념을 변증법적으로 재해석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 그녀는 이러한 전위당 개념을 대신해, 그녀가 조직과 철학의 변증법이라고 부른 새로운 조직의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헤겔 뿐 아니라 마르크스가 1840년대 공산주의 연맹 이래로 1860년대 제1인터네셔널과 『고타강령비판』(1875)에 이르기까지 조직 활동 속에서 확장했던, 그러나 종종 무시되었던 조직 문제에 관한 저술들에 뿌리를 둔 것이어야 할 것이다.

8. 도약! 도약! 도약! -다니엘 벤사이드

[234/149]마르크스는 헤겔의 국가철학에 관한 1848년의 주석에서 “국가가 모든 것에 유효한 것은 아니다”라고 썼다. 이는 관료국가를 추상적 보편성의 구현으로 만들어 버리는 지극히 과장된 정치적 요인에 대해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일방적인 열정을 넘어 마르크스는 억압된 자들의 정치가 출현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정치는 비국가적 정체(政體)의 구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국가를 [총체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으로 약화시키는데 필요한 방법을 준비하는 것이다. / 중대하고도 시급한 문제는 아래로부터의 정치라는 문제, 곧 지배계급의 국가정치에 의해 배제되고 제거된 사람들을 위한 정치의 문제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과 그 반복되는 비극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 [235]강요된 노동이라는 비자발적 예속상태 때문에 육체적이고 도덕적으로 일상생활에 고착되어 있는 하나의 계급은 어떻게 인간해방의 보편적 주체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이 점에 관한 마르크스의 답변은 어떤 사회학적 내기(sociological gamble)에 기대고 있다. 산업의 발전은 수치상의 성장과 노동계급의 집결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노동계급의 의식과 조직에서 진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논리 자체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지배계급으로 구성”해 준다는 말이다.

[235/150]레닌의 정치적 사유를[236] 전략으로 파악하는 사유이며 또한 약한 연결고리에서 유리한 계기를 찾아내는 사유이기도 하다. ... 레닌은 정치를 투쟁으로 가득찬 시간으로, 위기와 좌절의 시간으로 생각했다. 레닌에게 정치의 특수성은 혁명적 위기의 개념 속에서 표현되는 것인데, 이러한 위기란 사회운동의 논리적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모든 계급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가 총체적으로 맞게 되는 위기를 뜻한다. 그리하여 이 위기는 국가적 위기로 정의된다. 이러한 위기는 상품이라는 신비한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던 전선을 확연히 드러내 주는 작용을 한다. 그때야 비로소 프롤레타리아트는 “프롤레타리아트 본연의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소위 필연적으로 무르익게 되는 역사적 단계의 시기(inevitable historical ripening)와는 무관한 것이다.

[237/150]레닌의 접근법은 정치적인 것을 사회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조잡한 노동자주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레닌은 계급의 문제를 당의 문제와 뒤섞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계급투쟁은 단지 노동자와 그 고용주 사이의 적대라는 문제로만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이란 자본주의 생산의 총체적 과정이라는 층위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자본가 계급 전체에 대립시키는 것인데 ... [/151]따라서 레닌에게 하나의 정당으로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란 단지 몇몇 고용주들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뿐만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모든 계급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도, 그리고 조직된 권력으로서 국가와의 관계라는 측면에서도 또한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것이었다.

/ [237/151]레닌주의적 전략에서 적절한 계기로 여겨지는 시간은 더 이상 선거의 시간이 아닌데 ... 오히려 레닌에게 알맞은 시간이란 투쟁에 [238]어떤 리듬을 부여하는 시간, 위기에 의해 중단된 시간이다. 이 시간은 필연과 우연, 행위와 과정, 역사와 사건이 서로 함께 맺어지는 독특한 접합의 시간, 알맞은 계기의 시간인 것이다. 우리는 혁명이라는 것을 어떤 단독적인 행위의 형태로 상상해서는 안 된다. 혁명은 다소 깊은 고요의 상태와 다소 폭력적인 분출들이 빠르게 번갈아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레닌에 따르면 이러한 까닭으로 당의 본질적 활동은 그 활동의 본질적 중심은 가장 폭력적인 분출의 시기와 고요의 시기 양쪽 모두에게 가능하고 필요한 작업이 되어야 한다. 곧 당의 본질적 활동은 그 두 시기에서 모두 통합적 정치 선동의 작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 혁명은 가속과 감속으로 특징지어지는 그 자신만의 박자를 갖고 있다. 또한 혁명은 직선이 두 갈래로 나뉘고 급작스럽게 선회하는 그 자신만의 기하학도 갖고 있다. 이렇게 하여 당은 새로운 관점에서 부각된다. ... 당은 전략의 작동자, 일종의 변속장치이자 계급투쟁의 대표자가 된다. 발터 벤야민이 명확히 인지했던 것처럼, 정치의 전략적 시간은 계급 역학의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어떤 불연속적인 시간, 곧 사건들을 잉태하는 여러 매듭과 원천들로 가득차 있는 시간인 것이다.

[240/152]“순수하고 단순한 노동운동”이 그 스스로 어떤 독립적인 이데올로기를 구상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반대로 노동계급 운동의 순전히 자발적인 발전이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의 종속”만을 부를 뿐이다. 왜냐하면 지배 이데올로기란 의식의 조작이라는 문제가 아니라 상품 물신성의 객관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직 혁명적 위기와 당의 정치적 투쟁만이 그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의 철권통치가 강요하는 예속 상태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할 수 있다. [/153]바로 이것이야말로 마르크스의 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에 대한 레닌주의적 답변인 것이다. / 레닌은 정치를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존재하게 되는 침입(the invasion whereby that which was absent becomes present)으로 개념화한다. 확실히 계급구분은 최후의 보루로서 정치적 결집의 가장 핵심적인 기초가 되는데, 이러한 최후의 보루는 오직 정치적 투쟁에 의해서 확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말 그대로 사회적 삶의 모든 지점들로부터 분출하는 것이며 확실히 그 꽃은 모든 곳에서 피어난다. 만약 그러한 배출구들 중 하나가 특별한 조처로 막혀 있다면, 공산주의의 전염력은 때때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출구를 찾아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불씨가 불꽃을 점화하게 될지 알 수 없다.

[242/154]레닌이 카우츠키의 정전과 같은 텍스트를 바꾸어 말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그가 카우츠키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하게 왜곡시켰음을 알 수 있다. 카우츠키는 “과학”이 “계급투쟁의 외부에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배태되어”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도래한다고 썼다. 특이할 만한 어구상의 변화를 통해 레닌은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다르게 옮겨 적는다. “계급의 정치의식”은 (“과학”이 아니라!) “경제적 투쟁의 외부에서”(사회적인 만큼이나 정치적이기도 한 계급투쟁의 외부에서가 아니라!) 그리고 더 이상 사회적 범주로서의 지식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영역을 특정하게 구성하는 한 작용자로서의 당에 의해서 배태되어 도래한다고. 이 두 문장의 차이는 매우 본질적이다.

[244/155]레닌은 자신만의 고유한 논리를 통해 의회제도도 없고 민주적 전통도 없는 한 나라에서의 다원성과 대표라는 문제를 파악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는 못했다. 여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레닌은 프랑스 혁명을 사례 삼아, 일단 압제자가 제거되고 나면 인민(혹은 계급)의 동질화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156]인민들 내부의 모순은 오직 타자(이방인)로부터, 반역으로부터 도래한다는 것이다. 둘째, 정치와 사회적인 것 사이의 구분은 치명적 전도를 막아주는 보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을 사회화하지 않는 대신 [245]자칫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사회적인 것을 관료적으로 국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6/157]모든 영역을 선동하라! 가장 예상할 수 없는 해결책들에 주의를 기울여라! 급작스런 형식의 변화에 대비하라! 모든 무기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라! / 이것이 바로 정치를 예기치 못한 사건들의 기술art로 파악하는, 그리고 또한 정치를 결정적 접합의 효력을 지닌 가능성들의 기술로 파악하는 격언들이다. / 정치에서의 이러한 혁명은 「제2인터네셔널의 붕괴」에서 체계화했던 혁명적 위기의 개념을 상기시킨다. 혁명적 위기의 개념은 한 상황 안에서 몇 가지 가변적인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정의된다. 상부의 요소들이 더 이상 예전처럼 군림하지 못할 때, 하부의 요소들이 예전처럼 억압 받는 것을 더 이상 참지 못할 때, 그리고 이러한 이중의 불가능성이 대중들의 급작스런 비등으로 표출될 때가 바로 그때이다.

[249]며칠! 한 주 1917년 9월 29일에 레닌은 혁명을 결행할지 망설이고 있던 중앙위원회 앞으로 글을 써 보냈다. “위기가 무르익었다.” 기다리고만 있는 것은 죄악이었다. 10월 1일에 레닌은 “당장 권력을 쟁취”하고 “당장 봉기에 돌입”할 것을 강력히 권고했다. 며칠 후 그는 재차 주장했다. “나는 이 문장들을 10월 8일에 쓰고 있다. … 러시아 혁명과 세계 혁명의 성공이 2~3일 동안의 싸움에 달려 있다.” 그는 계속해서 주장한다. “나는 이 문장들을 [250]24일 저녁에 쓰고 있다. 상황은 극도로 중대하다. 봉기를 연기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될 거라는 점이 이제 실로 분명해졌다. … 이제 모든 일이 경각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바로 오늘 저녁, 바로 오늘 밤에”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251/160]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의 환상이 남아 있는데, (오늘날 권력이 특정한 지역적 범위와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고 따라서 도처에 산재해 있는, 곧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었다는 명목으로) 우리가 대항권력(counterpower)이라는 수사학을 통해 정치권력의 쟁취라는 문제를 제거함으로써 저 응답의 어려움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환상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 권력은 아마도 더욱 광범위하게 산재하게 되었지만, 또한 그러한 권력들은 어떤 면에서 그 이전보다 더욱 집중화되기도 했다. 우리가 권력을 모른 척할 수는 있을 테지만, 권력이 우리를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권력을 취하기를 거부함으로써 우월한 듯 행동할 수는 있겠지만, 1937년의 카탈루냐로부터 치아파스와 칠레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경험들이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권력은 주저 없이[252] 우리를 가장 난폭한 방식으로 취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해 대항권력이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중의 권력과 그 해결이라는 관점에서뿐이다. 누가 승리할 것인가?

[252/161]공산주의의 민주적 중앙집권제를 피상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레닌을 비방하는 이들은 무엇보다 스탈린 시대의 당이 가장 나쁜 형태로 예시하고 있는 극단적인 관료중심주의를 문제 삼는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반대되지 않는 어느 정도의 집중화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존속하기 위한 본질적 조건이다. 왜냐하면 당의 경계를 한정짓는 것은 지배 이데올로기의 분쇄 책동에 저항하는 수단이며 또한 당원들 사이에서 어떤 평등을 목표로 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253/161]당(운동, 조직, 연맹, 당 등 주어진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이 [/162]없는 정치란 대부분의 경우 정치 없는 정치로 귀결한다. 그러한 정치는 사회적 운동의 자발성을 향한 맹목적 추수주의일 수도 있고, 엘리트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전위주의의 가장 나쁜 형태일 수도 있으며, 또한 미학적이거나 윤리적인 것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결국 정치적인 것을 억압하게 되는 일일 수도 있다.

PART THREE 전쟁과 제국주의

9. 헤겔의 독자 레닌: 레닌의 헤겔 『논리학』 노트를 독해하기 위한 몇 개의 가설적 테제들 - 스타시스 쿠벨라키스

[264/166]모든 것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으며, 무엇보다 노동운동이 그러했다. 제2인터네셔널의 붕괴, 제국주의적 갈등의 폭발 앞에서 제2인터네셔널이 보여준 총체적 무능은 사실상 1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존재해 왔던 뿌리 깊은 경향, 즉 운동 조직들(그리고 운동의 사회적 기반 대부분)을 제국주의 중심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질서를 지지하는 쪽으로 타협해 가던 “통합”의 경향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었다. 따라서 레닌의 표현을 쓰자면, 이 “붕괴”는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의 정치적 실천 전반의 붕괴를 의미했으며 그들 모두가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재검토를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해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세계대전이 우리의 투쟁 조건들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 자신까지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쓰고서 “숨이 끊어져 가는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에 생명을 불어넣을” “가차 없는 자기-비판”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270/170]레닌의 행위는 무엇보다 먼저 헤겔과 변증법에 대한 평가절하 혹은 헤겔 억압이라 불릴 만한 시류에 대한 거의 본능적 반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런 반헤겔적 태도는 일반적으로 제2인터네셔널의 마르크스주의를 변별해주는 특성이었고, 더 특정해서 말하자면 러시아에서 철학적 문제에 관한 한 제2인터네셔널을 대표하는 인사이며 인터네셔널 내에서도 상당한 권위를 인정받았던 ... 플레하노프 마르크스주의의 성격이기도 했다.

[273/172]사실 플레하노프가 억압하고자 했던 대상은 정확히 헤겔 자체가 아니라(어떤 의미에서 러시아 지식인들은, 플레하노프도 주장했듯이, 유럽의 다른 지역들에 비해 헤겔을 훨씬 덜 억압했다고 할 수 있다), 헤겔에 들어 있는 변증법이라는 문제, 레닌이 『논리학』을 읽고 난 후 플레하노프에 대해 철학적 평가를 내리면서 썼던 표현을 빌리자면, “사태의 본질”(essence of the matter)에 관한 문제였다.

[274/173]레닌은 헤겔의 체계에서 진짜 문제가 대두되는 곳은 헤겔의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텍스트나 역사를 다룬 텍스트라기보다는 가장 추상적인 텍스트, 가장 형이상학적이고 관념론적인 텍스트라는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레닌은 후기 엥겔스로부터 상속되어 제2인터네셔널 전체에 의해 축성되었고, 레닌 자신의 “이전의 철학적 의식”도 거기에 포함돼 있던, 철학적 문제들을 다루던 어떤 방식과 돌이킬 수 없이 [275]결별하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 방식이란 철학을 유물론과 관념론이라는, 서로에 대해 기본적으로 외재적이고, 상호 적대하는 계급의 이해를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두 개의 대립적 진영으로 구분하는 것이었다. ... [275]레닌은 관념론과 유물론 사이의 제3의 길, 중도적이거나 융화적이거나 혹은 둘 사이의 대립을 넘어서는 어떤 범주 같은 것들을 언제나 정언적으로 거부했다. 그런 류의 태도는 일괄적으로 제거해 버려야만 할 이론적 메커니즘의 잔재를 존속시킬 뿐이다. 그와 달리, 레닌의 시도는 “단지” 헤겔을 유물론자로 읽는 것(Lenin "simply" attempted ... to read Hegel as a material) - 그러나 이 단순한 시도 속에 모든 어려움이 엉켜 있다 - 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방식으로, 그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길을,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진정한 재정초를 위한 길을 열게 되었다.

[276/174]레닌이 집필한 『그라나트Granat 백과사전』의 ‘마르크스’ 항목 ... 이 텍스트에는 “속류” 유물론으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욕망이 도드라져 보이는데, 이 “속류” 유물론이라는 정식화는 제2인터네셔널의 시각에서는 상당히 수상쩍은 것이었다. 우리는 제2인터네셔널이 어떠한 유물론이든 그것이 유물론이기만 하면 족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음을 떠올려 보아야 한다. 레닌은 그러한 유물론을 “변증법에 반한다는 의미에서 형이상학”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이런 고발은 플레하노프의 머리에는 떠오를 수가 없는 생각이었다. 플레하노프에게 낡은 유물론이란 그저 “일관성 없는” 유물론, “물질” 일원론이나 사회자연적 “환경”에 의한 결정론에 충실하지 않은 유물론, [277]요컨대 충분히 유물론적이지 않은 유물론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기껏해야 “일면적인” 유물론을 뜻했을 뿐이었다. / 같은 글에서 레닌은 진화와 혁명의 문제 양쪽에 똑같이 관심을 기울이면서 “진화에 관한 현재의 생각들”과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진화”를 구분하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진화는 “비약, 파국, 혁명”(여기서 핵심어는 “파국”catastrophe이다)에 의한 진화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당시의 통상적인 생각들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이었다. ... 특히 의미심장한 것은 레닌이 “철학적 유물론”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절을 “혁명적 실천 행위”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하며 끝맺고 있다는 점인데, 이 “혁명적 실천 행위”(revolutionary practical activity)는 정통파들의 결정론적 진화론에 의해 엄격하게 폐기되어 온 생각이었다.

[282/178]헤겔을 향한 레닌의 경로는 그리하여 우리가 되돌아가 보아야 할 세 개의 서로 다른 경로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것은 서로 구분되는 다른 양태들을 가지고 있으나 각각 나름의 내적 필연성을 갖고 있으며 상호 독립적이지만 넓게 보자면 동일한 이론적 줄기에서 나온 세 개의 가지이다. 게르첸과 마르크스가 풀어야만 했던 것은 동일한 정치적 수수께끼였다. 그것은 그들 각각이 마주한 사회 구성체들의 비-동시성(non-contemporary of their respective social formation)이라는 수수께끼, 다시 말해 그 사회구성체의 지체를 뒤집어 한발 앞선 진보로 바꾸는 것, “너무 이른” 그리고 “너무 늦은”이라는 용어를 변형시켜, 결정된 정세 속에서 혁명적 과정의 특수한 현실성으로 바꾸는 주도적 힘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변증법의 문제이며, 레닌은 자신의 길 위에서 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283/178]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논의를 시작해야만 한다. ‘헤겔 『논리학』에 대한 레닌의 노트라는 텍스트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 말하자면 그것들은 사적인 용도로 작성된 필기들일 뿐이며, 혹은 적어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출판될 것을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어떤 것들이다.

[284/179]헤겔 『논리학』에 대한 레닌의 노트는 아주 기이한 텍스트로,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도 전례 없이 독특하다. 헤겔의 저작에서 발췌한 인용문들과 주석들을 모아 놓은 이 텍스트는 무슨 책이 이런가 싶을 정도로 콜라주의 외관을 하고 있고, 애초부터 파편적이고 이질적이도록 구성돼 있으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다수의 텍스트들이 여러 층위에서 서로에 대해 하위 텍스트로, 상호 텍스트로 기능하면서 끊임없이 뒤섞이게 되어 있다. 또 파편적 텍스트 각각은 끝없이 다른 텍스트들을 지시하며, 특히 어떤 부재하는 (하위) 텍스트, 즉 『논리학』으로부터 베낀 것이 아닌 모든 텍스트들을 가리키게끔 작용한다.

[285/180]대상에 대해 외재적인 “방법” 혹은 (후기 엥겔스의 공식에서처럼) “체계”로부터 떼어낼 수 있는 것으로서의 변증법이 아니라, 사유에 의해 파악된 사물의 자기-운동의 내재성의 정립(the very positing of the immanence and self-movement of things, 말 그대로 내재성의 정립이면서 사물들의 자기-운동)이자, 동일한 운동을 가로질러 자신에게로 귀환하는 사유로서의 변증법. 각개의 사물은 그것 자체이며 동시에 그것의 타자이므로, 그러한 자신을 자기 안으로 반영함으로써 통일성이 깨지고 쪼개지게 되며, 다시 차이의 계기 자체로부터 자신을 떼어내고, 바로 그 자기-매개의 운동 속에서 그것의 “절대적” 자기동일성을 주장함으로써 그것[차이의 계기]을 취소하는 어떤 방식을 통해 다른 것이 된다.

[287/181]슬라보예 지젝은 “반영”에 들어 있는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깔끔하게 정식화한 바 있다.

레닌의 “반영이론”이 지닌 문제점은 그것의 암묵적인 관념론(implicit idealism)에 있다. 의식 바깥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적 현실에 대한 레닌의 강박적 요청은, 의식 자체가 그것이 “반영하는” 현실 바깥에 놓여 있어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을 은폐하는 일종의 증상적 전치(symptomatic displacement)로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 [/182]거울이 오직 거울 바깥에 있는 대상만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 오직 세계 바깥에서 현실을 관조하는 의식만이 “실제 있는 그대로의” 현실 전체를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요점은 저 바깥에, 나의 외부에 독립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여기 바깥에”, 현실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헤겔의 논리학의 언어로 다시 말해 보자면, 이 논의에서 레닌이 보지 못한 것은 존재와 의식의 [서로에 대한] 이 최초의 외재성은 주체적 행위에 의해 - 그 개념이 정확히 바로 그러한 사태를 지시하고 있듯이 - 초월된다는 것, 그리하여 폐기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반영” 혹은 더 낫게 말해, 반성(독일어 Reflexion은 “숙고함”이라는 뜻에 더 가깝다)은 외적 현실의 복사가 아니라 매개의 계기, 부정성의 계기로 이해될 수 있다.

[289/183]그러므로 우리가 처음부터 강조해야만 할 사실은 “반영”이라는 개념은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이제 보게 되겠지만, 이중의 행위를 내장하는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그 자체가 “변증법화”된다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은 헤겔 논리학의 참된 내용으로 하여금 “정통”에 의해 강하게 억압되었던 헤겔-마르크스 관계를 다시 구축하게 하는 것, 그리고 같은 조처를 통해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혁명적 추진력, 즉 그것의 변증법적 핵심을 되살려내는 것이었다. [290]이러한 과정에서 “반영”은 의식에 대한 사물의 외재성 혹은 자연의 정신으로의 환원불가능성 등, 처음(『논리학』에 관한 레닌의 노트가 시작될 때) 주장되었던 바와는 사뭇 다른 어떤 것이 된다. ... 레닌이 도달한 결론은 헤겔을 “유물론적으로 전복”하는 과제가 ... ‘개념론’에 개진된 ‘주체적 활동성’을 관념론적인, 따라서 전도된 혁명적 실천의 “반영”으로 읽어내는 데서 성취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헤겔은 “물질”이 아니라 혁명적 실천으로서의 물질적 이행의 선차성(the primacy ... of the activity of material transformation 물질적 변형이라는 현실성의 선차성)을 주장하는 새로운 유물론,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더 가까우며, 그런 점에서 정통 “유물론자들”보다 (혹은 마르크스 이전의 유물론보다) 한없이 더 유물론에 가까이 있다.

[294/186]본질의 외관, 즉 “반영”은 (단지 모사하고 있을 뿐인 어떤 참된 물질적 존재로 그것을 되가져다 놓음으로써) 환원되어야 할 환영이 아니라, 외적 운동의 투사된 이미지이다. 그것은 실재를 현실성Wirklichkeit으로 이끄는, 그래서 자기 결정의 과정을 시작하게 해주는 계기이다. ... 헤겔적 ‘운동’의 참다운 내재성 ... 외부의 자리에서 관조된 우주의 흐름, 만유유전이 아니라, 자기-운동selbstbewegung이다. “운동과 ‘자기-운동’(이것에 주의하라! 자주적인, 자립적인, 자발적인, 내적 필연적 운동) … 이것이 ‘헤겔 풍’의, 즉 추상적이고 난해한 … 헤겔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을 그 누가 믿겠는가?? 이 핵심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살려내고hinüberretten, 알맹이를 가리고, 정련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바로 그것을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수행하였다.”

[300/190]이상적이거나 합목적적인(목표에 정향된) 행위에 대한 헤겔의 이러한 분석으로부터 레닌이 끌어내고자 하는 결론은 이중적이다. 첫째 레닌은 “진리”를 향한, 개념과 객관의 절대적 동일성을 향한, 자기 안에 주관성의 작업을 포함하며 또한 그것을 인지하는 객관적 진리를 향한 매개로서의 인간 활동에 대한 헤겔의 분석의 중요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따라서 헤겔이 역사유물론과 “매우 가까워” 보이는 것은 (단지 주관적 목적의 합리성의 매개화의 첫 번째 형식에 불과한 도구에 대한 복권의 제스처에 의해서가 아니라), 포이어바흐에 관한 두 번째 테제의 언어로 규정하자면, 실천의 우선성에 의해서이고 “인간이 자신의 실천을 통해 이념, 개념, 지식, 과학의 객관적 정확성을 입증한다는 견해”에 의해서이다. 이때 “정확성”은 이러한 실천들에 내재적이며, 그러한 실천은 자신의 타당성의 척도를 스스로 생산한다. / 같은 이유에서 헤겔에 대한 “유물론적 전복”도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여기서 문제는 더 이상 자연과 정신, 존재와 사유, 혹은 물질과 관념이 아니라 논리와 실천적 행위 사이의 관계, 그 둘의 “동일성”이다.[/191] 헤겔이 내놓은 [301]사상의 “대단히 심오하고, 순수하게 유물론적인 내용”이 찾아져야 하는 곳도 바로 여기이다. “유물론적 전복”은 이제 [객관의 우선성이 아니라] (인간의 활동 속에서 논리학의 여러 식들을 “수십억 번”을 반복함으로써) 논리 그 자체의 공리들을 생산하는 실천의 우선성을 주장하는 데 있게 된다. ... 논리를 실천의 과정적 성격의 기반 위에서 외화의 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

[304/193]엥겔스가 『포이어바흐』에 썼던 것과 반대로, 절대적 이념은 고집불통처럼 앞뒤가 꽉 막힌 “독단적 내용”이 아니라, 인식의 궁극적 목표로서의 ‘헤겔의 체계’와 동일시될 수 있으며 자기-준거적 지점에서 포착된 과정 자체(the process itself taken to its point of self-reference)이다. 이는 관점의 전도가 일어나는 빛나는 순간이다. 거기서 우리는 이론 자체 “안에” 언제나 이미 이론과 실천의 통일성이 존재함(안토니오 그람시가 비범한 방식으로 발전시킨 테제)을 이해하게 되며 “형식”과 “내용”의 통일성이라는 문제는 그 자체가 형식의 문제, 그것 바깥에서는 어떠한 내용도 존속할 수 없는 “절대적”형식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306/194]절대적인 방법으로서의 변증법은 그것이 생산하는 효과들의 총합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 레닌이 헤겔 독해를 통해 획득한 새로운 철학적 입장 ... 그러한 입장은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1차 대전 발발 이후 레닌이 보여준 철학적 개입들(실천들)에 잘 드러나 있다. ... 첫 번째는 ‘제국주의 전쟁의 내전으로의 이행’이라는 테제이며, 거기에는 억압된 민중들이 식민지에서 벌이는 민족해방투쟁과 대도시에서 벌이는 반자본주의 투쟁이라는 이중적 차원이 있다. ... 전쟁을 고전적인 국가 간 갈등이 아니라 적대의 과정으로 이해 ... “총력전” 안에서의 대중들의 분출을 무장봉기로 “전환”하는 것, [/195]달리 말해 대량살상 산업 쪽으로 쓸려 들어가는 대중들의 힘을 돌려 세워, 식민세력과 부르주아 지배라는 내부의 적에 대항하는 쪽으로 뒤집는 것이다. / 두 번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으로의 이행이라는 테제이다. ... 문제는 혁명적 과정이라는 모순의 내재성 속에,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 그리하여 ... [307]사회민주주의적 정통파의 “단계론적” 전망과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과제를 수행할 수 없는 러시아 부르주아의 무능력이라는 추상적인(추상적으로 올바른) 전망, 이 정반대로 대립하는 두 전망 사이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었다. ... 슬라보예 지젝이 힘주어 강조한 바 있듯이, “2월이라는 계기에서 10월이라는 계기로”의 전환은 결코 하나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의 전진일 수 없으며, “최대주의”라는 증상의 발현이나, 혹은 조건의 “미성숙”을 주의주의적으로 뛰어넘는 것일 수도 없다. 그것은 차라리 “단계”라는 통념의 기준을 규정하는 근본적 좌표 그 자체의 전복(but rather a radical questioning of the very notion of "stage", a reversal of the fundamental coordinates that define the very criteria of the "maturity" of a situation차라리 “단계”라는 바로 그 통념에 대한 근본적 질문, 즉 상황의 “성숙”이라는 이왕의 기준을 정의하는 근본적 좌표의 역전)을 뜻한다.

10. 전쟁이 규정한 정치에서의 철학적 계기: 1914~16년의 레닌 - 에티엔 발리바르

[323/323]엄밀하게 볼 때 레닌에게는 단 한 번의 철학적 계기가 있었는데, 그 계기를 규정한 것은 바로 전쟁(전쟁과 관련된 쟁점들, 전쟁의 즉각적인 결과)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철학의 대상과 정치의 대상이 분리될 수 없다면, 이 사실은 철학에 중요할 수 있다.

[325/208]레닌이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자는 아니었다고 주장하련다. 레닌이 자기 식대로 생산한 것은 기존의 철학적 논쟁에 개입하는 이데올로기적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 그러나 {『철학노트』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등에 대한) 이런 비판적 독해는 철학적 담론에는 이르지 않았고, 또 그것을 의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1915년 이후 레닌은 더 이상의 철학적 저작을 결코 집필한 적이 없다.

[329/211]1915-16년 레닌이 쓴 텍스트들은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역사적 “경향들”로부터 나온 추정에 기초한 경제적 진화주의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점진적 형태(자본주의의 점진적 변환)였든 파국적 형태였든(자본주의의 갑작스런 붕괴) 제2인터네셔널 시기의 사회주의 사상을 지배해 왔던 이 경제적 진화주의는 레닌이 새롭게 제시한 “전술”과 갈수록 조화를 이루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이런 진화주의는 혁명의 순간이 다가오기 직전인 1916년 말~1917년 초의 분석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수정된다. 이제는 모든 역사적 발전이 “불균등한”(uneven) 것으로 이해됐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영역의 복잡성을 “경향들”의 논리로 환원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루이 알튀세르 식으로 말하며, 우리는 이 사실을 이론적 영역과 전략적 영역에서의 계급적대에 내재하는 중층결정의 발견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331/212]우리는 레닌이 1915년 이후, 특히 자신의 투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연루되어 있던 세 개의 잇따른 혁명(1917년의 2월 혁명과 10월 혁명, 그리고 이후의 신경제 정책 혁명)을 거치며 끊임없이 변해 왔음을 볼 수 있다. “전술”에서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와 당의 역할(또한 그 구성 자체)에 대한 분석에서도, 그리고 그에 따른 “혁명적 주체”의 정체성에 대한 분석에서도 그렇다. 이제 [레닌에게] 계속 문제가 될 이 혁명적 주체는 (의식화, 즉 즉자적 계급이 대자적 계급으로 “변형”되어가는 형태까지 포함해) 이미 확보된 사회경제적 전제조건(an established socioeconomic presupposition)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구성과정(the result of a complex political construction)의 결과로 등장하게 된다. 내 견해로는 전쟁이 제기한 질문들로 인해, 그리고 전쟁이 자극한 철학적 사유로 인해 혁명적 주체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전쟁 와중에 이미 레닌의 사유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결국 이 질문은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소멸”("disappearance of the proletariat)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것이다(그것도 극적인 형태로 말이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이론과 실천의 관계가 더 이상 단순한 응용 관계가 아니라 미리 결정되지 않은 구성의 관계(the relationship ... of non-predetermined construction)로 여겨지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33/214]레닌이 헤겔의 정식과 클라우제비츠의 정식을 결합하려 했던 것은 “총력전”(total war) 이론의 의미에서 계급 투쟁이 총력전의 특정한 형태라고 말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사실은 이런 결합 자체가 본질적으로 중요하다(레닌은 클라우제비츠가 “헤겔의 신봉자”였을 것이라는 잘못된 견해를 몇 차례씩 반복하면서 이런 결합을 회고적으로 역사에 투영한다). 그러나 레닌은 이중의 정정이라는 맥락에서 헤겔과 클라우제비츠의 정식을 결합시킨다. 한편으로는 클라우제비츠의 실용주의를 갖고 헤겔의 사변(혹은 이성Vernunft)을 정정하고, 또 한편으로는 헤겔의 변증법을 갖고 클라우제비츠의 실용주의(분석적 오성Verstand의 응용으로서의)를 정정한다.

[334/214]레닌이 헤겔에게서 정정하는 것은 정세와 독립되어(independently of the conjuncture) “상대 속에 절대”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변증법적 모순 개념과 대중 동원이 “우연적인” 형태로 이뤄진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역사변증법을 실천적으로 해석함으로써 레닌은 단지 마르크스를 통해 헤겔을 읽을 뿐만 아니라 클라우제비츠를 통해서도 헤겔을 읽는다. 이 실천적 해석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전쟁 자체에 전쟁에 대한 정치의 우위성이 존재한다(즉, “다른 수단에 의해”, 그리고 “다른 형태”로일지라도 계급투쟁은 부단히 그 효과를 생산한다[전쟁에 영향을 끼친다]). 그에 따라 계급투쟁의 복잡성은 군사적 계기가 강제하는 “단순화”를 늘 넘어설 뿐만 아니라 계급투쟁 자체를 단순한 “충동”인 양 여기는 단순화된 표상도 늘 넘어선다. 이렇듯 (정세에 개입하기 위해서) 정세를 사유한다는 것은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중의 단순화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계급정치를 일시적으로 “분쇄하면서” 강제하는 (또는 전쟁이 실현하는 듯한) 단순화, 그리고 이런 단순화에 관념적으로 맞서서 민족전쟁을 계급전쟁으로 그저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여기에는 룩셈부르크처럼 자기 진영을 배반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포함된다)의 단순화.

[335/215]레닌은 전쟁이 이중성을 지닌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216]즉, 전쟁은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대결일 뿐만 아니라 각 교전국이 “자신의” 프롤레타리아트를 굴복시키기 위해 적대국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힘 자체는 결국 프롤레타리아트 혹은 프롤레타리아트화된 대중으로 만들어진다.따라서 전쟁의 고통을 격화시킬 뿐만 아니라 갈등의 객관적, 주관적 여건을 변형시키게 될 전쟁의 지속기간이 결정적 요인이 된다. ... [336]일단 전쟁에 연루되면 대중은 조작가능한 단순한 “대상”이 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통제불가능한 힘이 된다는 이중적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336/216]사회주의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데 전쟁은 어떻게 사회주의를 “생산”할 수 있을까, 라는 골치아픈 질문으로 되돌아가면, 우리는 이 질문의 답변이 열려 있음을 알게 된다. 경제의 사회화, 그리고 전방과 후방에서 대중이 일으킬 잠재적 반란은 단지 혁명적 상황을 규정할 뿐이다. 이 상황은 실제적인 단절 쪽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전쟁이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전쟁이 그 대립물로부터 어떤 유형의 “계급의식”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를 알려면 프롤레타리아트의 내적 분할을 분석하는 동시에 그 분할이 발전하는 방식을 따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 [338/218]결국 전쟁이 혁명적 상황이라는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형시킨 듯하다. 이제 혁명적 상황이란 더 이상 (전쟁이 그 징후인) 자본주의의 “성숙” 같은 개념과 연관된 가정이 아니라, (특히 러시아의 경우처럼) “선진국들”과 “후진국들”이 공존하며 상호침투하는 변별적인 세계구조에 전쟁이 끼치는 효과 자체를 분석해서 나오는 결과가 된 것이다.

11. 제국주의에서 전지구화까지 - 조르주 라비카

[353/228]아직도 우리에게는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에 있어 그 효과를 상실하지 않는 몇 가지 용어들이 있다. 제국주의는 바로 이런 용어들 중 하나로[354] 수많은 개념들의 성좌를 계속해서 지배해 왔으며, 자본주의와 착취, 소유, 계급들과 계급투쟁, 사회민주주의와 혁명적 이행이라는 개념들은 그 속에서 완전한 의미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355/229]다시 말해 유럽과 일본은 지배 권력인 미국에 대해 하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오늘날은 완전히 속국화되어 하도급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지구화는 오직 하나, 미국화Americanization - 또는 미합중국화 - 와 동일한 것이라고 불리는 것이 정확하다.[356]

[360/232]“전지구화”의 핵심 단계라고 알고 있는 투기자본과 관련된 사례 하나만을 들어보기로 하자. [/233]브레튼 우즈 협정의 포기와 금본위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통화제도의 종식 이후로, 이미 불안한 것으로 여겨졌던 1969년의 500억 유로달러는 8조 유로 달러로 치솟았는데, 그럼에도 이는 단지 “세계 금융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예전의 “새로운 제국주의”에서는 알지 못했던 요소들을, 당시에는 그저 존재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몇몇 사례에서 그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던 그런 요소들을 최종적으로 고려해 본다면, 국제적인 통화 기구들이 조절하는 부채의 압력은 이제 대륙 하나(아프리카)를 통째로 파멸로 이끌 수 있을 정도로 압도적이며, 우리는 이런 압력을 핵무기의 위험이나 환경파괴, 식수의 고갈위험이나, 장기 매매와 대규모 아동매춘으로까지 확장되는 상품화 같은 것처럼 지니고 있다.

[364]모든 국제주의자internationalist들이 꿈꿔온 진정한 의미의 전지구화는 여전히 쟁취해야 할 어떤 것으로 남아 있다. 제국주의의 비밀을 파헤친 로자 룩셈부르크의 다음과 같은 판단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본주의는 전지구화를 성취할 수 없다. 내적 모순들이 이 지점에 도달하기 전에 자본주의를 삼켜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지구화를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회주의뿐이다.

주 52)“(자본주의는) 보편이 되려고 몸부림침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이런 그 자신의 경향성 때문에 붕괴되고 만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내재적으로 생산의 보편적 형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자신의 역사 속에서, 자본주의는 자체로 모순적이며, 그래서 그것의 축적 운동은 갈등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동시에 이 갈등을 악화시킨다. 발전의 특정한 단계에서는 사회주의의 원칙들을 적용시키는 것 외에는 다른 방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의 목표는 축적이 아니라 전 세계의 생산력을 발전시킴으로써 고통 받는 인류의 바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바로 그 자신의 본질에서 조화롭고 보편적인 경제 시스템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Rosa Luxemburg, The Accumulation of Capital(London: Routledge, 1963), 467.

12. 레닌과 ‘지배민족’[Herrvolk] 민주주의 - 도메니코 로쉬르도

[375/242]대도시에서의 법치는 식민지에서의 계엄 상태, 경찰과 관료조직의 폭력 및 자의성과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결국 미국 역사에서 일어났던 것과 똑같은 일이 유럽의 역사에서도 있었다. 다만 유럽의 경우엔 식민지 사람들이 대도시가 아니라 대양 건너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덜 또렷하게 보였을 뿐이다.

[379/245]국제적인 언론에는 이스라엘을 찬양하거나, 적어도 정당화하려는 논조와 기사들로 넘쳐난다. 어쨌든, 중동에서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있고 민주적인 정치체제가 작동하는 유일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거시적인 디테일은 은폐된다. 법과 민주적인 보증에 의한 정부는 오직 주인종족을 위해서만 유효하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살던 땅에서 쫓겨날 수 있으며, 재판 없이 체포되고 투옥되고 고문받고 죽을 수 있다. 하여튼 군사정권 아래서 매일같이 인간의 존엄성이 모욕당하고 짓밟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정치적이기보다는 인식론적인 대안 앞에 서 있다.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약탈할 이스라엘의 권리, 식민주의적이거나 반(半)식민주의적인 억압을 가할 권리를 용일할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에 의지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지배와 약탈, 억압의 현실로부터 이스라엘의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특징을 고려해야 하는가?

[380/246]봉쇄(embargo)는 강제수용소의 포스트모던식 버전이다. 전지구화의 시대엔, 더 이상 사람들을 쫓아내야 할 어떤 필요도 없다. 이라크에서처럼, 약간의 식료품과 의약품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약간의 “지능폭격”만으로 상수도관, 하수 시스템, 공중위생 기간시설을 파괴하는데 성공할 수 있다.

[382/248]“새로운 국제질서”의 윤곽이 분명하게 떠오르고 있다. 한편에서는 “국제적인 경찰활동”에 나서야 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 나라가 있으며, 다른 한편에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불법적인 행동을 때려눕혀야 할 “깡패국가”, 불량국가, 더 정확히는 비국가가 있다. 여기서 환기되는 세계국가의 종류에 관해서, 서구는 배제당한 이들을 희생시키는 정당한 폭력의 독점을 완성한다.[383] 그리고 이는 탈해방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PART FOUR 정치와 그 주체

13. 레닌과 정당, 1902~17년 11월 - 실뱅 라자뤼스

[392/255]20세기 정치의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조직이다. 조직적이지 않은 정치활동은 없으며, 실제로 정당이라는 단어가 이를 잘 보여준다. / 1871년에 구성되었던 파리코뮌을 통해 알 수 있듯이, 19세기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지형이 펼쳐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치 활동의 기본은 봉기(insurrection)였다. ... [/256]이 과정에서 정당들의 계급관계이데올로기적, 강령적으로 바뀌었다. 계급문제는 더 이상 당원들의 사회적 출신 성분에 따라 판단되지 않았다. 당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강령에 따라 모든 사회계급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 [393]19세기 말에 정치를 담는 유일한 그릇이었던 계급이라는 범주가 몰락했다. 20세기 말에는 국가 정당이라는 정당형태가 몰락했다. / [/257]그렇게 해서 이제 우리는 정당 없는 정치 활동(politics without party)이라는 명제를 부여잡게 되었다. 이 메커니즘은 권력과 국가를 겨냥하지 않으며 인민을 지지하고 편든다(on the side of the people). 국가를 규정할 능력이 있지만, 국가의 주변에서 입장을 취하면서도 외부에 존재하고, 동시에 국가와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Hence we have these theses on a politics without party, and a mechanism not aiming at power and the state but on the side of the people, though still capable of prescribing for the state, that is, taking a position in its vicinity while remaining external and radically heterogeneous to it. 그러므로 여전히 국가에 대해 이러저러한 처방을 내릴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주제들을 정당 없는 정치의 측면과 권력과 국가를 겨냥하지 않고 인민의 편에 서기를 원하는 어떤 메카니즘에서 취한다. 다시 말해 국가에 대해 외재적이고 근본적으로 다른 것으로 남는 반면, 그 부근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395/258]『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현대 프롤레타리아트 계급 내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자생적으로 출현한다는 『공산당 선언』(1848)의 명제와 결별했다. [/259]그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는 곳에 공산주의자가 존재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에 반대했다.[396] 레닌은 자생적인 사회민주주의 (곧 혁명적) 의식이 말도 안 되는 사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반대 입장을 극단으로 밀어붙였다.

[397/260]1917년 2월에서 10월에 이르는 시기의 저술을 살펴보면 레닌이 정치와 역사를 명백히 분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역사는 명백했고(전쟁분석), 정치는 불투명했다(1917년 3월에 레닌은 발동이 걸린 혁명의 장래가 미결정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아무도 모르고, 알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역사와 정치가 그렇게 위상이 달라졌다. ... 이 단계에서 정치는 철학과 그리하는 것처럼 역사와 끝없이 토론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둘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정치는 내재적인 자체 사상을 가져야만 했다. 정치가 존재하려면 그래야 했다. 둘 사이의 분리가 요구된 시점도 바로 그때였다.

[398/261]그렇게 정당의 정치적 유효성이 1917년 11월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혁명이 키워드로 등장하는 정치학의 역사주의적 문제 상황에 진입하게 된다. 레닌주의는 그렇게 최종적으로 두 가지 논점을 제기했다. 정당형식의 정치적 소멸과 혁명이란 범주의 진부화(the political lapsing of the party form and the obsolescence of the category of revolution).

[399/291]두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나는 국가와 정치를 구별했고, 그에 따라 국가의 구조가 바뀌는 것이라는 혁명의 개념을 폐기했다. [/262]정치 활동의 방식, 그러니까 일련의 연속적 상황에 관한 이론 속에서는 결국 “혁명”이 의식과 주체성을 가리키는 용어일 때에만 역명을 언급할 수 있다. 혁명적 방식 말이다. / 둘째, 그 용어는 일반적으로 역사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나한테 “혁명”은 역설적이게도 정치 개념과 동일하지 않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여기서의 논쟁이 정치와 혁명의 관계뿐만 아니라 둘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지 아는 것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402/264]이론적이고, 정치적이며, 개인적인 당대의 유일한 과제는 국가와 역사주의가 불필요하게 정치를 포박한 상황을 풀고, 혁명의 개념을 해방하는 것이다.

[404/266]적어도 프랑스에서는 “혁명”은 1968년에 쓸모없는 개념이 되어버렸다. 바로 그때 혁명이 핵심어였음에도 불구하고 봉기나 국가 권력에 대한 도전과 의문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국가에 의문을 더 이상 제기하지 않은 것은 국가가 더 이상 공통의 유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405] ... 계급주의는 1968년에 사망했다. ... 다시 말해 계급의 견지에서 정치에 접근하는 태도는, “계급”과 “계급정당”이 국가와 관련해 구체적인 계획을 전혀 제출하지 못하고 외부적이거나 내부적인 사건을 목표로 삼지도 못하면서 쇠퇴했다. ... 국가는 중요한 문제였지만, 더 이상 정치의 핵심이 아니었다.

[405/266]첫째, “혁명들”(revolutions)은 정치와 동일시된다. 놀라운 창의력과 독창성이야말로 모든 혁명의 특징이다.("revolutions"are identified by politics, and each one by a remarkable inventiveness. “혁명들”은 정치와 동일시된다. 그리고 각각의 혁명은 놀라운 창의성과 동일시된다.) 혁명들(Revolutions)은 복수로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이 보통의 사건으로서 정부와 국가에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를 의미한다는 부적당한 개념에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오히려 모든 혁명은 아주 구체적이고 독특한 특성을 갖는 특이성의 무대가 될 것이다.(but each time with singularities of an extremely specific character. 오히려 각각의 혁명의 시간은 극적으로 특유한 특성을 가지는 특이성들을 의미한다.) 러시아 혁명의 경우는 『무엇을 할 것인가』, “4월 테제,” 봉기 결정, 직업 혁명가들, 단독 강화가 발명이자 발견이었다. 우리는 확실히 여기서 단절(break)을 발견한다. 그러나 노력과 활동의 의미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 둘째 “혁명”이 정치적 역량을 낳는다는 엄격한 의미를 적용할 경우에는 단 한 가지 사건만이 존재한다. 프랑스 혁명이다. 다시 말해 프랑스 혁명은 정치적 주체성에 관한 사상이 만개한 유일한 혁명이었다. 반면 1917년 10월은 사상이 범주화된 혁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로 전락한 혁명이었다. ... [407/268]셋째, 정치는 역사적 사실에 앞서고 그것을 만들어 내며, 운반하고 지원한다. 우리는 역사주의를 끝낼 필요성에 직면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먼저 그 과정을 재개봉해서 (혁명, 정당, 국가 등의) 술어를 재조사하고, 우리의 이름으로 선언해야만 한다. 역사주의는 더 이상 필요가 없고, 그 확인과 종결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14. 정확함의 사도 레닌, 혹은 재활용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 장 자크 르세르클

[409/269]레닌은 재활용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의 전형, 더 정확하게는 근본적으로 만회하기가 불가능한 마르크스주의(a form of Marxism that is radically irrecuperable)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413/271]언어철학에서도 레닌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곧 이 점에 대해서 다룰 텐데 레닌은 마르크스주의 언어철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어렴풋이 보여준다. 둘째 레닌이 체화하고 있는 덕목은 마르크스주의가 (완전히 행방불명인 게 아니라면) 기껏해야 주변부에만 머물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적 국면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413/271]레닌의 첫 번째 덕목은 엄격함(hardness)이다. 레닌은 간단없고 단호한 논객이다. 레닌에게는 어딘가 냉혹한 면이 있는데, 그의 특별한 텍스트들이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세를 퍼부어야할 때 레닌은 주저하지 않는다. 괴팍함을 타고나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표현대로 전쟁 중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다. ... 이것이야말로 현재의 정세,즉 마르크스주의가 묽게 희석된 채로 혹은 소심하게 재활용되고(watered-down or faint-hearted) 있는 정세(이런 정세 속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강함으로 착각한다)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다.[414] 공세적인 마르크스주의(Marxism on the offensive)(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레닌주의의 원칙은 이렇다. 늘 공세를 취하라!), 지배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갖가지 위선을 폭로할 수 있고, 기꺼이 폭로하는 마르크스주의 ... 를 말이다. ... [/272]레닌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끊임없이 주장했고, 프티부르주아의 도덕을 동정하지 않았다. / 레닌의 두 번째 덕목은 확고함(firmness)이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의 전략적 힘을 정확히 이해했다. ... 다시 말해서 교조주의자 레닌은 자신이 확고한 이론적 토대 위에 서 있어야 함을 결코 잊지 않았다. 여기서 레닌주의의 또 다른 원칙이 나온다. 혁명이론 없이 혁명운동은 없다. ... /레닌은 세밀함(subtlety)을 세 번째 덕목으로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하라는 이론이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슬로건 등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여한 주요 공로도 바로 이런 부분에 존재한다.

[415/272]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공세와 이에 따른 마르크스주의의 후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가 언어의 문제를 주제로 삼거나 언어이론을 제시한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바로 이 때문에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이데올로기 투쟁이 가장 중요해진 이 시대에 무장해제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 언어철학과 관련해 보면, 재활용되지 못한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의 진면목은 슬로건 이론을 통해서 드러난다.

[417/273]이 구체적인 힘의 중심성은 마르크스주의 언어철학이 어떤 것이 될 수 있을지에 관해서 무척 중요하다. ... {“On Slogans”의} [/274]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의미의 개념은 발화가 이뤄지는 정세와 연결되어 있다. 의미는 힘 관계(rapport de force)의 결과물, 즉 상호협력적인 언어게임이 아니라 정치적인 투쟁의 결과물이다(여기에는 일정한 규칙이 없다. 혹은 정세가 변할 때마다 재검토되어야 하는 끊임없이 변해가는 규칙이 있을 뿐이다). 둘째, 이렇게 보면 결국 발화는 정세의 사태에 대한 기술(記述)이 아니라 개입(intervention)이 된다. 발화는 발화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힘의 관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변형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슬로건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된다. ... 셋째, 올바른 슬로건은 정확한 슬로건, 정세 속에서 작동하며 정세와 일치하는 슬로건을 의미한다. 정세의 적합한 계기를 명명하는 슬로건과 슬로건을 의미있게 해주는 정세는 서로를 순환적으로 반영한다.[418] 이와 같은 의미의 정세성(conjuncturality)은 정확함(justness)이라는 개념으로 파악된다. 요컨대 올바른 슬로건은 진실은 아니지만 정확하다. 넷째, 그러나 이 팸플릿에서 레닌은 인민이 “진실을 들어야만 할” 때, 즉 당면 정세에서 국가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게 누구인지(계급의 대표자이든, 한 계급의 하위집단이든)를 인민이 알아야 한다고 말할 때 진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이런 진실은 슬로건의 정확함에 따라 엄격하게 좌우된다. 진실은 정확함의 결과, 그도 아니면 그 영향이라는 것이다. 발화-행위 이론의 개념으로 설명하면, 발화수반적 정확함(illocutionary justness)이 발화효과적 진실perlocutionary truth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 내는 의미의 효능을 보장해 주는 것이 바로 진실과 정확함의 결합(combination of truth and justness)이다. 마지막은, 이 팸플릿이 주장하는 것은 담론, 즉 개입으로서의 담론이라는 정치적 개념이다. 지극히 정치적으로 도덕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 팸플릿은 프티부르주아지의 도덕성 운운하는 것은 환상이며 “사태의 본질”(the substance of the situation) 운운하는 것은 상황을 호도할 뿐이라고 부장한다. ... 이런 질문은 대중이 혁명에 배반당해 왔음을 대중에게 알려줬다. 정치와 도덕의 대립은 구체와 추상의 대립이다. 여기서 레닌주의의 또 다른 원칙이 나온다. 혁명의 시기에 혁명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극악하고 위험한 죄는 구체적인 것을 추상적인 것으로 대체하는 것(the substitution of the abstract for the concrete)이다.

[419/275]『천 개의 고원』에서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레닌의 슬로건 이론을 해석한 구절은 잘 알려져 있다. ... 슬로건의 힘은 수행적(performative)일 뿐만 아니라 슬로건 자체가 호명하는 계급을 탄생시킬 수 있을 만큼 구성적(constitutive)이라는 것이다. ... 이들이 말하는 언어학적 결합체nexus, 기호체계(regime of signs), 기호계적 기계(semiotic machine)등은 발화(utterance)(이 경우에는 슬로건), 함축적인 전제(슬로건이 노리는 효과를 수행하는 행위), (수행성이나 슬로건이 명명하는 힘에 영향을 받는) 비물체적 변형의 혼합물이다. 슬로건이 핵심부분을 이루는 언표행위의 아상블라주assemblage에 존재하는 내적 변수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420/276]가타리의 첫 번째 에세이 모음집 『정신분석과 횡단성』의 서문으로 기고한 이 텍스트에서 들뢰즈는 자신이 ‘레닌주의적 단절’(Leninist break)이라고 부른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 유일한 문제는 이 승리의 가능성, 혁명으로 이어진 이 전환이 혁명과 당의 주체를 부르주아 국가와 경쟁하는, 따라서 그 모습을 본뜬 [또 하나의] 국가장치로 만들어 버리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이뤄졌다는 것이다. ... 들뢰즈는 이 문제, 역병처럼 늘 공산주의 운동을 따라다녔던 (지금도 따라다니고 있는)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한다. 가타리가 제시했듯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기꺼이 할) 종속집단groupe assujetti과 (언젠가는 스스로 소멸되어야 함을 늘 주장하는) 주체 집단groupe sujet을 구분함으로써 말이다. / 나는 들뢰즈의 이 해법이 정치적으로 타당할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이 해법은 뭔가 도움이 되기에는 소비에트 권력 초기에 좌익 공산주의자들이 보인 편향과 지나치게 비슷하다(레닌은 팸플릿이나 글을 쓸 때마다 이런 편향을 격하게 비판했다). 그렇지만 나는 정치와 언어가 연결되어 있으며, 언어가 혁명적 사회변혁에 뭔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들뢰즈의 지적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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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5-05-2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식 남겨둡ㄴ다 두고 읽어봐얄텐데 자신은 없네요
 
다중과 제국 아우또노미아총서 30
안토니오 네그리 지음, 정남영.박서현 옮김 / 갈무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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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가 하트와 함께 [제국]을 출판했을 때, 학계와 사회운동계는 환호성과 우려를 함께 쏟아냈다. 현재로서는 환성을 지른 쪽이 세계 사회 운동의 한 축을 차지하고, 운동의 흐름을 네그리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공식화'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려하던 축들(주로 캘리니코스 등)도 이제는 네그리와 하트의 개념들이 현실정합성을 전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그리가 '다중'과 '비물질 노동'을 이야기할 때 다소 어두운 지역을 헤매는 듯한 느낌이 드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혹시 이건 내가, 또는 먹물들이 현장이라고는 머리속에 떠도는 상상으로만 겪어 본 것 뿐이라 그런 건 아닌가? 네그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의문에 일정정도 우회적으로 답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들의 관점을 난 잘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이 대답은 말 그대로 '우회적'이다. 즉 '우회적인 비판'이다. 투쟁의 현장에 있으면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긴 [뉴욕열전]의 저자인 코소가 네그리를 들뢰즈와 더불어 인용하는 것이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먹물스러운 내 정체성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구좌파의 대부분이 아나키즘이나 자율주의를 '반동'이라느니, '소부르주아 이론'이라느니, '노동가치 이론의 폐절'이라느니 '무식한' 말을 이제는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한국 땅에서 네그리와 그것을 처음 소개한 조정환 선생 그리고 갈무리의 공헌은 지대하다 할 수 있겠다. 논쟁을 통해 자율주의를 번식시키는 데 일조하신 그 모든 '헛소리들'에 일정정도 경의를 표하면서, 네그리의 말들을 경청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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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발췌와 코멘트]

서론 : 설명해야 할 몇 개의 개념

[7]우리(마이클 하트와 나)가 다듬어낸 방법론이 분명 개념에 도달하긴 하지만, 그것은 결코 이념적이지 않은, 미리 고정되지 않은, 형이상학적이지 않은 개념이다. 그 개념은 ‘공통된 이름’nome commune이라 불린다. 우리의 방법은 진정으로 유물론적이다. 그 핵심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들을 명명하고 경험에 기초하여 그것들에 다소 일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며, 그렇게 하여 정의(定義)가 도달한 확대된 일반성을, 특[8]징 짓고자 하는 것이다.

[R-Commentary] 이 과정 속에서 물론 연속적인 것들이 분절되며, 그런 와중에 놓치는 개별적인 것들(the individual)이 있을 수 있다. 확대된 일반성은 그러한 놓쳐버린 것들을 기반으로 한다. 즉 잔여(residuum). 잔여적인 것들의 들끓음, 이것은 이론의 운명일까?(나는 지금 해묵은 보편논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12]문제는 국민국가가 끝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국가가 (전쟁을 행하는 권력 혹은 화폐를 주조하는 권력과 같은) 몇몇 근본적 권력들을 이전하는 때에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문화, 언어, 정보에 대해서도 국민국가는 더 이상 중심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적대적 흐름들이, 그리고 다방면에 투입되는 언어와 문화가 국민국가를 지속적으로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국민국가가 스스로를 헤게모니를 쥔 존재로서 제시할, 그리고 문화적 과정을 통제할 가능성을 제거한다.

[R-Commentary] [제국]에 대한 오해의 매듭 하나. 그렇다면 국민국가가 ‘경향적으로’ 끝나가고 있다, 는 어떨까?

[13-17: ‘지구화와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여러 입장들]

1. 고전적 사회민주주의 입장-국민국가가 배제된 지구화는 불가능하다는 입장. 지구화는 국민국가의 발전으로부터 동력을 얻고, 민주주의는 국민국가 내에서만 가능하다. 주로 노동조합에서 옹호하며, 서구 민주주의 급진적 좌파 그룹의 넓은 층이 공유하고 있다. 폴 허스트(Paul Hirst), 그레이엄 톰슨(Grahame Thompson). 이와 관련하여 미국 제국주의의 팽창을 지구화를 동일시하면서, 유럽의 팽창을 문화적인 방면에서 강조하는 주장. 제3세계론에 연원을 두는 주장들. 요컨대 이는 좌파적 입장이다.

2. 자유주의적 세계시민주의적 입장-지구화와 민주주의의 양립가능성 주장. 지구화와 문화적 혼합, 무역의 조화가 지구적 시민사회의 이상을 앞당긴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세계정부에 대한 낙관까지. ‘조화’를 열망하는 좌파들의 휴머니즘적인 버전. 리처드 포크(Richard Falk), 데이비드 헬드(David Held), 울리히 벡(Ulich Beck).

3.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입장-낙관론의 우파 버전. 지구화=민주주의의 지구화. 미국적 삶의 방식에 대한 최종승리 확인. 역사의 종말 테제.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

4. 전통주의적 보수주의 입장-비관론의 우파 버전. 국민국가 통제 쇠퇴=전지구적 무정부주의. 미국적 삶의 방식 확대가 국가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뿐이라는 주장. 다문화 혼합, 가치 혼종에 대한 거부. 문명의 충돌로 인한 혼란. 존 그레이(John Gray), 쌔무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

(...)[17]이 입장들 각각은 (...) 결론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 『제국』의 방법론적 차별성은 (...) 지구화 과정을 최종적 표상에서보다는 그 동학에 있어서 고찰한다는 점에 있다. 자본주의 발전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에 의해 본질적으로 결정되는 동학이다.

(...) 이 현상들이 자본의 관계 안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는 데 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과학적인 『제국』의 주장이다. (...) 우리의 삶의 상황을 이루는 계급 대립, 권력에 대한 우리의 경험,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저항 및 탈주의 실천, 그리고 우[18]리가 구성하는 바로 그 노동 활동, 이것들은 사실 맑스가 경험했던 것과 다르다. 투쟁, 즉 자본 관계가 사회적으로 펼쳐지는 것이 모든 정치적 실재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근본적인 것으로 남아있더라도 말이다.

[R-Commentary] 이 ‘자본의 관계’에는 반드시 ‘노동자/노동의 힘’이 중심이다. 또는 적대의 당파적 경향성이 존재한다. 오뻬라이스모의 네그리라는 걸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제국」에 관한 안또니오 네그리와 다닐로 졸로의 대담

[24]우리는 푸꼬와 맑스를 함께 취했습니다. (...) 저의 오뻬라이스모Operaismo적 맑스주의를 프랑스 탈구조주의의 관점과 교배시켰던 것입니다. (...) [25]공장으로부터 사회로 착취 과정의 계보학을 이동시킨 푸꼬의 맑스 독해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푸꼬는 분명 자유를 지향하지만 개인주의적이지 않은 인류학의 저술가이며, 더 이상 개인이 아닌 (특이성들로 충만한!) 주체를 형성하는 삶정치의 구축자입니다. (...) 롤스John Rawls나 하버마스 같은 근대의 창백한 계열과 단절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계급투쟁에는 필요한 변경을 가한 사유가 요구된다는 점을 마키아벨리와 함께 (그리고 모든 다른 이들과 함께) 인식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R-Commentary] 푸꼬의 ‘삶’에 대한 배려는 맑스의 ‘계급’에 대한 전유와 어떻게 결합될 것인가? 이때 중요한 것인 ‘신체’의 문제는 아니겠는가? 인간 중심적인 그런 신체가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 기계와 연합한 노동의 흐름이 응결되는 일종의 매듭으로서 개별-집합체로서의 신체, 또는 사회체.

[27]제게 맑스주의의 회복과 그 혁신은 기독교사의 초기에 교부들의 호교론이 가졌던 바와 같은 강력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키아벨리적 의미의 ‘원리로의 회귀’입니다. (...) 그것은 역사의 변증법에 대항하여 비목적론적인 계급투쟁론을 구축하는 것이며, 나아가 자본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완전히) 포섭한 시대에 이루어지는, 일반지성을 통한 가치화에 대한 분석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론과 관련해서는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합치점인) 주권을 착취를 실행하는 중심적 계기이자 주체권을 신비화하고 파괴하는 중심적 계기로서 포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35]저는 미국이 전지구적 권력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습니다만, 단지 다른 개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미국 권력 자체가 그것과 다른 경제적, 정치적 구조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대화를 그리고/혹은 각축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9.11 테러리스트 공격은 제국의 구성에서 구조적으로 대의되기를 의도하는 힘들 사이에 개시된 내전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 주지하듯이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은 많은 부문 핵무기 사용의 불가능성에 의해 중화됩니다. (...) 화폐의 관점에서 미국은 금융시장에서 점점 더 위험에 노출되고 있으며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 요컨대 필시 미국은 곧 제국주의적이기를 그만두도록, 그리고 자신이 제국 안에 있음을 인식하도록 강제될 것입니다.

[37]우리의 정치적 문제는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모든 투쟁들에 적절한 공간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 저는 국민국가가 거짓되고 유해한 이데올로기보다 덜한 어떤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이와 달리 운동들이 운동의 네트워크들은 세계에서 자유롭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그렇듯이 다극적입니다. 그것들은 서로 교차하며 그리하여 어려움 없이 통합된 운동을 구축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구축해왔습니다. 이러한 통합과 그에 뒤따르는 공통의 목표들의 인정을 방해하는 모든 시도는 반동적입니다.

[R-Commentary]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네그리에게 가장 기본적인 상황이며 가장 초보적인 맑시즘인 것으로 보인다.

[41]저 역시 국민국가가 사라지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제게 이것은 명백해 보입니다. 또한 제게 명백해 보이는 것은, 보편적 지배 기능 및 내적 공공질서가 (그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각 국민국가에 특화되어 구현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국민국가의 많은 기능들이 존속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국민국가가 경향적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그것이 직접적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국민국가는][42]제국의 위계화 및 특화과정들 안에서 파악되어야 합니다.

[R-Commentary] 제국이라는 전체 자본주의기계 안에 국민국가는 하나의 중요한 지절이자 부품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의 직접적인 역할은 점점 제국적 명령의 연결체계로 변해가고 있으며, 그것을 강제력을 통해, 또는 기만과 사기, 이데올로기 조작을 통해 원활히 하는 데 봉사하게 된다.

[42]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전지구적 탈안정화의 시나리오를 개시하기 위해서 제국의 지[43]점들 중 어떤 하나에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러한 구도에서만 지배규칙과 착취 규칙의 변형이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45]윤리적, 정치적 관점에서 혁명을 사유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는 또 심오한 인류학적 변형, 즉 인구의 지속적인 혼종과, 몸의 삶정치적 변형이라는 관점에서도 혁명을 사유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투쟁의 첫 번째 영역은 지구의 모든 표면에서 이동하고, 일하고 배울 보편적 권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혁명은 제국 안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제국을 통해서도 있습니다. 혁명은 있을 것 같지 않은 동궁(冬宮)(여기에는 백악관을 폭격하고자 했던 반제국주의자들이 있을 뿐입니다)에 맞서서 싸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모든 중심적, 주변적 구조들에 맞서서 그 구조들을 빈껍데기로 만들고 또 자본으로부터 생산력을 빼내는 데까지 확장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R-Commentary] 제국의 모든 지점이 약한 고리일 수 있다. 중심이든 주변이든 제국은 항상적인 내전상태로 공포를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의 가장 극악한 한계에까지 다중을 밀어붙일 것이다. 다중은 이 한계지점에서, 이 심리적, 물질적 마지노선에서 퇴각하지도, 무모하게 스스로를 던지지 않는다. 다만 엉덩이를 까보이고, 모욕한 후, 탈주한다. 유쾌하게.

[47]다중은 어떤 의미에서도 대의적 통일성을 찾을 수 없는 특이성의 다양체입니다. 반면 ‘민중’은 근대국가가 정당화라는 허구의 토대로서 필요로 하는 인위적 통일체입니다. 다른 한편 ‘대중’은 현실주의 사회학이 (자유주의적 형태의 자본 관리에서든 사회주의적 형태의 자본 관리에서든)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바탕에 설정하는 개념으로서, 어떤 경우에도 무차별적인 통일체입니다. 이 두 경우와 달리 우리에게 인류는 특이성, 특이성들로 이루어진 다중입니다. (...) [다중을] ‘계급’과 대립시킨다는 사실 (...) 노동자는 점점 더 비물질적인 생산력의 담지자로 나타납니다. 노동자가 노동도구를 스스로 재전유하는 것입니다. 비물질적인 생산적 노동에서 도구는 두뇌입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도구에 대한 헤겔적 변증법도 종식되는 것입니다.) 노동의 이러한 특이한 능력이 노동자를 계급보다는 다중으로 구성하는 것입니다. (...)[48]우리는 다중을 독특한 정치적 활력으로 정의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적 범주가 통일성을 전제함으로써가 아니라 공통적인 것을 분석함으로써 식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1]저는 왜 세계 전역의 많은 인구의 이주와 희망 탐색이 ‘프로메테우스적 보편주의’로 조소되어야만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주가 단지 빈곤을 피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으며, 그들이 자유, 지식, 부를 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욕망은 구축적 활력이며 특히 그것이 가난에 근거할수록 더 강력해집니다. 사실 가난은 단순한 빈곤이 아니라, 욕망이 지시하고 노동이 생산하는, 대단히 많은 것들의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이주자는 진리, 생산, 행복을 찾는 사람의 존엄을 갖고 있습니다. (...) 세계는 정말이지 유목주의와 혼[52]종화에 의해서 변하는 것입니다.

[R-Commentary] 국내적, 국제적 ‘이주’는 가난에 떠밀려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주’는 불행과 슬픔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의 실현과 새로운 세계와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를 해방하는 하나의 기획이다. 비록 여전히 정착적 습관이 그러한 사유를 방해하지만 말이다.

1부

강의1 역사적 방법에 대하여 : 인과성과 시기구분

[58]자본 개념은 사회적 관계의 개념입니다. 그런 한에서 이러한 관계는, (...) 자본주의 명령능력이 재생산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제되어야만 합니다. (...) 이제 다름 아닌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주권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도록 강제하는 첫 번째 단절이 일어납니다. 이 단절은 1968년 이후의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1971년에서 1973년 사이에 정의됩니다. 이 시기에는 달러의 고정환율제 즉 달러-금 등가제가 종식되고 제1차 오일쇼크가 일어났으며 핵무기제한에 관한 협정(1972년 ABM 협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바로 일국적인 주권적 규제 기구를 통해서만 자본주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굳어진 순간, 즉 개별 국가의 공간 [59]안에서 자본관계를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굳어진 순간이었습니다. (...) 이 국면에서 [연대기적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최초의 초국적 명령 형태들이 출현했습니다. (...)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되면서 (...) 자본주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일련의 기구들(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이 발전을 통제하는 일반적 기구들로 변형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소위 ‘워싱턴 컨센서스’라 불리는) 미국의 힘의 투사일 뿐만 아니라, 초국적 균형점이자 세계적 규모의 발전의 규제점이기도 한 것입니다.

[R-Commentary] 이 초국적 명령형태들은 삶정치의 맥락에까지 침투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체를 변형시키고, 정신의 지향성을 규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물음: 정치적 변동의 과정에서 신체는 어떻게 감응하는가?

[인과성에 대한 인식:] 새로운 상황을 특징짓는 두 번째 요소는 자본주의 발전의 제국주의 국면이 종식된 것 (...)입니다. 이 또한 1960년대와 1970년대 사이에 일어났으며 명백하게 대단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

[60]최종적 요소는 제2세계의 종식, 즉 ‘현실 사회주의’ 혹은 실현된 사회주의 세계의 종식입니다. (...) [61]러시아 국민국가의 공간에서 그리고 소비에트 제국주의 체제의 공간에서 주권을 위기에 빠뜨린 것은 자유에 대한 요구였습니다. 요구된 것은 물질적이며 삶정치적인 자유였습니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거쳐, 그리고 장벽을 우회하면서 생산자 대중을 동독에서 서독으로 이끈 저 노동 탈주의 에피소드, 유목주의의 에피소드 (...) 이 경우 전제정치를 타도한 것은 이동성이었습니다.

[R-Commentary] 위기와 건설의 두 계기는 그래서 항상 외부로부터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주체를 포함하는 단일한 내부의 ‘운동’이다. 이 내부의 외부. 잔여의 힘 또는 내파와 건설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토포스.

그러므로 우리는 (...) 그것이 자본주의적 명령 안에서 자본주의적 명령에 대항하여 역사를 만든 투쟁이며, 특히 국민국가의 통제 공간을 폭파시키고 제국의 구성을 추동한 투쟁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61]『자본론』에서 노동계급 개념은 노동력 개념의 정치적 정련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노동력은 가변자본이라는 경제학적 개념의 사회적 형상입니다. 따라서 노동력과 가변자본은 자본 안에서 형성되었습니다. (...) [62]맑스주의 전통에서 노동계급 운동을 자본 관계의 독립변수로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저 맑스의 해석을 전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계급이 투쟁을 통해 모든 발전에 동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은 그 주체적 존재에 의해서 스스로를 사건으로 드러내는 능력에 의해서, 스스로를 사회적 구성으로 배치하는 능력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입니다.

[R-Commentary] 노동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적 신체를 지탱하는 잠재적 활력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을 ‘주체화’로 견인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어떤 폭력적 전일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 ‘다중’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를 항상 ‘잠재성’으로, 긍정적 생의 약동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것.

[64]더 이상 부정적으로가 아니라 구성적으로, 그러므로 주체가 자본주의적 관계 안에서 움직일 때 전진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것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이 과정에 대한 심화된 정의를 발전시켜야만 합니다. (...) [65]역사적 발전 일반은, 인과적 분석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미리 주저지지 않으며 언제나 과정 안의 주체의 행위에 의존합니다. 그래서 주체의 행위-만약 그것이 노동계급의 자율성에 연결된다면-는 언제나 측정불가능한 행위입니다. ‘척도의 외부’에 있다는 의미의 그리고 또 ‘척도 너머’에 있다는 의미의 측정불가능함입니다. (...)

사실 가치 개념이 가치법칙으로 표현될 때, 이는 그것이 노동 규정에 척도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자본 관계에 대한 닫힌 파악으로부터 적대[66]에 기반을 둔 열린 파악으로의 이행은 노동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모든 생산과정과 모든 투쟁 과정의 핵심에서 확증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가치척도가 제거되며 발전의 균형이라는 기존의 관념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

[R-Commentary] 법칙에서 적대로의 이행. 자본론에 대한 정치적 해석(해리 클리버). 명령의 특수한 국면에서 노동의 전면화. 네그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봤을 때, 헤겔의 몰락이며 스피노자의 새로운 발견이다.

가치법칙에 대한 논의-이는 맑스와 고전경제학에 전형적인 것입니다-자체가 노동조직화의 특수한 국면과 결부되는데, 그 국면에서는 노동이 실제로, 고전경제학 이론이 예견했듯이, 노동시간이라는 단위로 측정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가치화 과정은 노동의 사회화를 통해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구체화되며, 역사적 인과성은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시기의 맥락에서 정의되는 것입니다.

[72]맑스는, 자본의 국가를 세계 시장의 통제 구도 안에 배치시켜야 하는 만큼, 자본의 국가에 대해 말할 때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맑스는 자본의 국가를 국민국가로 파악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맑스는 자본주의 발전의 일반적 도식을 필요로 했는데, 그에게 이 일반적 도식은 전지구적 수준에서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맑스는 국민국가를 자본주의 발전의 장애로 간주했으며, (시초축적의 어마어마한 지렛대였던 경우에는) 자본주의 이전 시대의 잔존물로 간주했습니다.

[R-Commentary] 그래서 맑스에게 ‘국가론’은 그의 한계가 아니라 ‘여지’ 또는 ‘잔여’인 것이다.

[75]실질적 포섭은 사회적인 것의 자본화를 의미합니다. 결국 착취의 중심이 직접적으로 사회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가치법칙의 위기는, 그리고 그에 따른 (...) 착취와 수탈의 탈측정화는 명령의 직접성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실질적 포섭의 시기에 명령은 착취 과정 외부에서 덧붙여지는 어떤 것이 더 이상 아니며, 착취 과정을 직접적으로 조직하는 어떤 것입니다. (...) 우리는 주권개념과 자본 개념 사이의 일종의 임계적 동일성을, 혹은 적어도 일종의 심오한 상동성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R-Commentary] 이 명령의 최종 목적은 명령을 다중에게 내면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명령’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군사적이고 위계적인 의미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푸코적이 개념사 안에서 ‘명령’은 훈육과 더불어 존재하며, 또한 삶권력의 작동 방식이며 삶정치의 활력 속에 기생하는 ‘스위치’와 같다. 이것은 외생적이기를 그치는 순간, 특히 다중의 신체 안에서 자동화되는 순간, 스스로를 은폐하고 물러난다. 그래서 이 명령은 자주 ‘국가캠페인’이나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금연캠페인’과 ‘학교 상벌제’ 같은 것을 보라. 이것은 과거의 방식보다 훨씬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다중이 항상 감시를 내면화하도록 작동하며, 그것이 완전히 무의식화되는 순간 작동을 멈춘다. 다중의 삶이 포섭되는 그 순간 말이다. 이때 다중의 사회적 신체는 텅 빈 환등기처럼 ‘구조’와 그것의 ‘본질’을 비출 뿐이다. 다중은 이때 서로 간에 ‘구경꾼’이거나 순간순간 역할을 바꾸는 ‘죄수-간수’가 된다.

[77]자본주의의 시간성은 스스로를 불연속적인 것으로 만들면서 구성적으로 되며, 불시성(untimeliness)은 주체성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실질적 포섭에 대해 앞서 이루어진 논의와 축적관계의 사회화에 대해 앞서 이루어진 논의 사이에는 명백히 크나큰 유사성이 있는데, 이 축적관계는 사회적으로 되면서 말하자면 주체화됩니다. 이렇듯 생산적 시간의 불연속성에서 존재론적 이행이 결정되며, 구성된 존재는 언제나 새로 구성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보 론

주권

제한된 주권과 9.11

[79]그것[9.11 테러]은 실체론적 주권개념이 부적절함을 드러냈다. 주권은 자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오히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관계이다. 주권적 권력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80]은 끊임없이 피지배자에 대한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고 재생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복종하는 자가 명령하는 자만큼이나 주권의 기능과 주권의 이념 자체에서 본질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실체론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식의 주권의 배타적 원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R-Commentary] 관계론적 실체개념으로 ‘주권’을 이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실체를 양태들의 상호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실체의 표현으로서 양태들의 활력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스피노자의 이론적 전략이기도 하다.

(...) 미국 정부는 주권의 자립적 원천이 아니라 주권의 현재 형태를 정의하는 전지구적 관계들의 체제에 통합되어 있음을 9.11이 결정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램분자적 역사와 분자적 역사

[81]냉전 시기 동안 일어난 주권의 변형은 그 과정을 그램분자적 관점에서 보는지 아니면, 분자적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대단히 상이하게 드러난다. 그램분자적인 것과 분자적인 것의 차이는 단순히 규모와 관련되는 것이 아니며, 또 개인적인 것과 집단적인 것의 차이와 관련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 [이 두] 용어는 모두 사회적 집단을 가리킨다. (...) 그램분자적인 것은 통합과 대의의 과정을 통해 응집되고 통일된 총체를 구성하는 [82]거대한 집성체 혹은 통계적 집단과 관련된다. 반면 분자적인 것은 동질성에 기반을 두지 않는 성좌 혹은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미시다양체들 혹은 더 정확하게는 특이성들을 가리킨다. (...)

그램분자적 관점에 따르면 냉전 기간은 초강대국의 주권 이외의 모드 주권들을 박[83]탈하는 (결코 완전하거나 절대적이었던 것은 아닌) 경향을 함축하는 것이다.

주권의 모순들

[87]이제 주권의 절대적 통제의 모든 측면이 균형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군사권력은 언젠가는 시합에 참여하도록 상대방을 초빙해야만 한다. 조만간 국제상관습법은 자신의 보증인에게 구원을 요청해야만 하는데, 이는 국가(와 다중)를 경기에 참여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그 어떤 지배형태와 독재 형태도 언어를 통제하면서 동시에 언어적 생산을 장려할 수가 더욱더 없는데, 이는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직접적으로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각의 측면과 관련하여 제국은 자신의 내적인 한계와 이중적 본성을 인정하도록 강제되는 것이다.

[R-Commentary] 제국의 한계는 제국 자체라는 것. 제국은 자기자신을 지양함으로써만 스스로를 극복한다는 이 논리. 변증법이다! 과연 네그리는 변증법을 극복한 것일까? 네그리 정치철학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제대로 보충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에 ‘일의성’이 필요하다. 과연 자율주의의 일의성은 무엇인가? 또는 누구인가?

내전

몇몇 고고학적 전통들

[90]오늘날 주권의 위기는 심각하며 심대하다. 왕은 진정 벌거벗었다. 주권은 단지 무용한 지배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는 경향이 있다. (...) 통치하기 위해서는 군사력, 금융력, 언어력을 독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주권을 절대적 권력으로 변형하려는 기획은 [91]환상이다. 그리고 이는 비극적 망상으로 끝날 수 있다.

주권과 전쟁

[92]지구화가 바람직한 것일 수 있으며, 혁명 과정에 상응할 수 있고 그것의 일부일 수 있다 (...) 근대시기의 혁명 과정에는, 지구의 지배적 국가들에서의 노동계급의 봉기와 스스로 계급이기를 거부하는 그들의 욕망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또한 식민지 민중의 해방 투쟁과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그들의 욕망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지구화의 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욕망이 주권의 실제적 가능성을 파괴할 수 있다. 이 욕망은 제국적 지배를 파열시키는 내전에서 발현된다.

[R-Commentary] 맑스주의의 비밀. 적어도 한 세대 전체를 앞서가기, 비록 그 시대 안에 잔혹함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이것이 맑스의 마키아벨리즘일까?

(...)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영속적인 전쟁의 억압적 상태를, 진정한 사회적 평화를 해방전쟁으로 변형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다중에 걸맞은 기획인 것이다.

2부

강의2 사회적 존재론에 대하여 : 물질노동, 비물질노동, 삶정치

[98]우리는 비물질노동의 존재론, 혹은 더 정확하게는 비물질노동의 헤게모니가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물질적 존재의 존재론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는데, 여기서 비물질노동은 주체들과 사회운동들에 의해서 표현되는 (그리하여 그들이 생산에 이르게 되는) 지적, 소통적, 관계적, 정동적 활동의 총체로 간주됩니다.

(...) 이러한 가설의 토대는 맑스의 소위 ‘기계에 관한 단상’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99]우리는 한편에서는 노동시간이 다른 한편에서는 이 시간의 척도(그리하여 가치법칙)가 생산의 중심적, 계량적 요소로서 점점 덜 중요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회적, 집단적 개인이 생산가치를 규정하는데, 이는 노동이 소통적, 언어적 형태로 조직되고 지식이 협동적인 어떤 것인 상황에서는 생산이 지적, 언어적 노동을 구성하는 연관들 및 관계들의 통합성에 (즉 이러한 집단적 개인에) 점점 더 의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R-Commentary] 분자적으로 존재하는 개인, 주체성이라기보다 개체성에 가까운 이것임(whatness).

[101]사실 거대한 위기는 우리가 소위 ‘도구의 변증법의 종식’을 목격한다는 사실에 달려 있는데, 여기서 도구성은 자본이 노동자에게 노동 도구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뇌가 노동도구를 재전유할 때, 자본은 도구에 대한 명령을 구현할 가능성을 더 이상 갖지 못합니다. (...) 도구의 변증법이 존재하는 한 자본은 생산과 재생산에서 개인을 훈육하거나 인구를 통제할 것입니다. 하지만 노동의 패러다임 전체가 [102]변화될 때, 노동이 대중지성에 의해서 생산에 투입되는 지식 전체를 구성할 때, 정치적 통제는 전쟁을 통해서 행사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전쟁이, 그리고 오직 전쟁만이 기생적 자본에 의해서 행사되는 통제형태입니다. 전쟁이 바로 자본주의적 질서의 장치가 되는 위기인 것입니다.

[R-Commentary] 좀 더 논의를 진행시켜보자. 전쟁을 통해 자본은 노동을 통제하는데, 이때 ‘내면화’ 그리고 ‘검열’은 중요한 기제가 된다. 내면화되는 것은 ‘공포’와 ‘불안’이며, 그 경로는 ‘신체’를 통해서다. 검열은 내면화될수록 더 작동한다. 하지만 내면화된 검열은 두뇌의 생산적 특질에 질곡이 되는데, 이것이 위기, 즉 이윤의 위기로 발전한다. 한편으로 이 위기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인 ‘자유’를 억압하기 때문에 어떤 매개도 없이 폭력적인 성격을 띄게 되며, 그 저항의 성격도 폭력적일 수 있다. 이 폭력이 계급 내부로 향할 때 두뇌는 폭파하여 자학이나 자살로 이어지고, 외부로 향할 때 ‘테러리즘’이 된다. 이럴 경우 오직 ‘공통성’에 의한, ‘감성의 정치’를 통한 조절기제만이 노동을 본연의 가치로 이끌어 갈 수 있으며, 테러리즘의 샛길을 피해 진정한 혁명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 준다. 현재 이 조절기제는 가상공간이거나, 또는 현실 공간에서의 ‘문화’다.

(...) 여기서 명령기능은 정보를 봉쇄하는 위협으로, 인지적 과정에 대한 훼방으로 조직됩니다. 요컨대 기생적 자본은 특히 지식, 협동, 언어의 운동을 정지시킴으로써 가치를 추출하는 자본인 것입니다. 자본가는 살고 또 재생산하기 위하여 매번 사회에 공갈을 칠 수밖에 없고, 사회적 생산과정이 명령을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날 때마다 그 과정을 봉쇄할 수밖에 없습니다.

[R-Commentary] 내 생각에 이 ‘초과’는 존재론적으로 ‘잔여’에 기반한다.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을 잇는 공감/공통 능력, 그것이 ‘잔여’다.

[106]우리는 방법을 지식의 관점에서 즉각 산 노동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유래하는 생산과정은 지성이 모든 생산에 제안하는 긍정적 혼종화에 열려있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방법은 언제나 노동의 변형을 그 각각의 형태에서 안으로부터 뒤따를 것입니다.

[107]자본이 삶 전체를 점령했다고 말하는 식으로 외부로부터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도달합니다. 삶 전체를 점령한 것은 노동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 [108]물질노동과 비물질 노동의 혼종화 (...) 전자는 조금씩 발전하면서 후자의 안으로 끌려들어갑니다. 즉 물질노동은 자신을 변형하면서 점점 더 지적, 비물질적 노동의 내부로 들어가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113]삶권력은 권력의 거대한 구조와 기능을 지칭하는데 쓰이며, 반대로 삶정치적 맥락 혹은 삶정치는 권력 관계, 권력 투쟁, 권력 산출이 전개되는 공간을 가리키는 데 쓰입니다. (...) 저항의 복합체에 대해 생각할 때, 권력의 사회적 장치들이 충돌하는 경우들 및 그 정도에 대해 생각할 때 삶정치 혹은 삶정치적 맥락을 말합니다. (...) 요컨대 이러한 공간에서 차이들은 흩어져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삶정치를 말할 때에 무엇보다도 우리는 강력하게 구성된 교직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 이런 관점에서 삶정치는 계급투쟁의 확장입니다.

[R-Commentary] 프랙탈 차원의 교직물. 그것은 0차원 이하에서부터 n차원에까지 나아갈 것이다. 이 교직물을 삶권력은 결코 완전히 포획하지 못한다. 거기에는 언제는 ‘초과되는 잔여’가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잔여로서의 초과’이지 ‘초과로서의 잔여’는 아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115]제국에 대한 우리의 최초의 삶정치적 인식은 노동의 이동성, 거대한 이주과정, 거대한 삶정치적 운동의 발전 위에 뿌리를 두고 있[116]습니다. 이러한 운동들은 단순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며, 빈곤 혹은 폭정으로부터의 탈주를 나타내는 것만도 아니고, 자유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면서 움직이는 운동, 부, 고용, 발명을 향한 운동, 비물질노동의 중심성을 향한 운동, 이러한 회로들로 들어가려는 거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운동이기도 합니다.

[116]착취 기능이 협동능력과 가치 창조 능력 이외에 호흡, 공간, 운동 또한 제거하는 것이라면, 빈자는 배제된 자일뿐만 아니라 또 착취의 전형적인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빈자와 노동자는 함께 투쟁해야만 합니다.

달리 말해 빈자는 역사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산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여기 내부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외부, 배제, 가난의 장소인 이러한 비장소는 그 자체가 저항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서 말하려는 기본적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으로부터의 엑소더스의 핵심은 바로 노동[117]자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권력을 파괴하기 위해 투쟁하는 데 있습니다.

지구화와 민주주의

[121]너무도 자주 이러한 주장은 양자택일로서, 즉 국민국가가 여전히 중요하다든가 아니면 새로운 지구적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사실 양자가 모두 옳다. 지구화 시대는 국민국가의 종말을 가져오지 않는다.

(...)[122]우리는 국민국가의 기능과 권위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아마도 국민국가의 주요한 기능-통화유통, [123]경제의 흐름, 이주, 법규범, 문화적 가치 등에 대한 규제-이 그 중요성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의 지구화 과정을 통해 변형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발본적인 질적 변화는 주권과 관련하여 인식될 수 있다. 국민국가는 근대시기에 맡았던 최종적인 주권적 권위의 역할을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다. 이제 제국이 최고의 권위로서 국민국가 위에 군림하며, 사실상 주권의 새로운 형태를 구성하는 것이다.

3부

강의3 정치적 주체 : 다중과 구성권력 사이에서

보 론 다중의 존재론적 정의(定義)를 위하여

4부

강의4 주체성의 생산에 대하여:전쟁과 민주주의 사이에서

보론1 대항권력 203

보론2 「무엇을 할 것인가?」로 오늘날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일반지성의 신체

5부

강의5 논리학, 탐구의 이론 : 주체 및 에피스테메로서의 전투적 실천

보 론 맑스의 발자취

옮긴이 후기

주요 용어 대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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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과학사상사》

 

G. E. R. 로이드 지음, 이광래 옮김, 지성의 샘, 1996

 

 

 

 

G. E R. 로이드(Sir 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1933~ ): He is a historian of Ancient Science and Medicine at the University of Cambridge. He is the Senior Scholar in Residence at the Needham Research Institute in Cambridge, England.

 

Lloyd was raised in London and Wales. His father, a Welsh physician, specialized in tuberculosis. After a nomadic early education in six different schools, he obtained a scholarship to Charterhouse, where, despite an indifferent academic culture, he excelled in mathematics, and learned Italian from Wilfrid Noyce. The curriculum was biased to classics, which he was advised, misleadingly in his later view, to pursue. On obtaining another scholarship to King's College, Cambridge he came under the influence of the pre-Socratics specialist John Raven. He spent a year in Athens (1954-1955) where, apart from learning modern Greek, he also mastered the bouzouki

 

A keen interest in anthropology informed his reading of ancient Greek philosophy, and his doctoral studies, conducted under the supervision of Geoffrey Kirk, focused on patterns of Polarity and Analogy in Greek thought, a thesis which, revised, was eventually published in 1966. He was called up for National Service in 1958 and was posted to Cyprus after the EOKA insurgency. On his return to Cambridge in 1960, a chance conversation with Edmund Leach stimulated him to read deeply in the emerging approach of structural anthropology being formulated by Claude Lévi-Strauss. In 1965, thanks to the support of Moses Finley, he was appointed to an assistant lectureship. A recurring element of his approach was the consideration of how political discourse influenced the forms of scientific discourse and demonstration in Ancient Greece.

 

After a visit to lecture in China in 1987, Lloyd turned to the study of Classical Chinese. This has added a broad comparative scope to his more recent work, which, following in the wake of Joseph Needham's pioneering studies, analyses how the different political cultures of ancient China and Greece influenced the different forms of scientific discourse in those cultures. In 1989 he was appointed Master of Darwin College, where he remains as an Honorary Fellow. Presently he spends a part of each year in his other home in Spain,[citation needed] where much of his writing is now done.-from Wikipedia

 

차례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배경과 기원

2장 밀레토스 학파의 학설

3장 피타고라스 학파

4장 변화의 문제

5장 히포크라테스전집의 저자들

6장 플라톤

7장 기원전 4세기의 천문학

8장 아리스토텔레스

9장 결론

 

부록: 그리스 수학 이야기

참고문헌

용어찾기

인명찾기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배경과 기원

[24]그들[밀레토스 학파]의 탐구는 매우 좁은 범위의 주제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순수한 ‘과학적 방법’이라는 개념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관심을 갖고 [25]있던 문제를 ‘질료’와 ‘실체’ 같은 개념을 쓰지 않고 정식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와 같은 뜻의 그리스어는 기원전 4세기까지 명확히 정의되기는커녕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레토스 철학자들의 사색을 그리스이든 아니든 간에 이전 사상가들의 사색과 확실히 구별해 주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다. 하나는 자연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 하나는 이성적인 비판과 논쟁의 실천이다.

 

[R-Commentary] 로이드의 이 말은 아예 단어 자체가 없었다는 뜻으로 새기면 안 된다. 단어의 함축이 철학적, 과학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ousia는 철학 용어로 ‘실체’ 또는 ‘존재’의 의미를 가지지만 자연철학자들 이전에는 명확하게 그런 의미가 없었고 단지 ‘재산’이란 의미의 일상어로 상용되었다.

 

2장 밀레토스 학파의 학설

[41]그[아낙시메네스]가 생각하는 근원적 실체는 공기이기 때문에 얼핏 보면 그것은 [아낙시만드로스에 비해] 사고의 역행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는 보다 상상력 풍부한 [42]가정을 한 후에 탈레스의 물같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제1실체로 되돌아 간 것이다. 단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낙시메네스가 사물이 유래하는 근원적인 실체에 대한 학설을 그 사물들이 어떻게 그것에 유래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생각, 즉 희박과 농후의 과정에 의한다는 견해와 연관시켰다는 점이다. (...) 세계가 무차별적인 ‘한정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성장한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재기 넘치면서도 자의적인 생각과는 달리 아낙시메네스의 학설은 자연현상에서 작용하는 관찰 가능한 과정들에 대한 언급이었다.

 

☞로이드의 의견과 유사한 다음 의견 참조: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은 우리의 경험에 낯설고, 묘사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으며, 따라서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를 우리가 제시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더구나 우주의 산출(발생)에 대한 설명에서 대립자들의 산출과정은 기원이 모호한 어떤 것(‘산출자’)에 의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아낙시메네스의 공기가 아페이론보다 우수한 원리이다. 변화의 원리를 포함하는 단일 실체로서의 공기는 우주 내 사물들의 폭넓은 다양성을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산출해 낸다.”(『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김인곤 외 옮김, 아카넷, 2005, p. 695)

 

 

3장 피타고라스 학파

 

4장 변화의 문제

[65]엠페도클레스는 근원적이면서도 단일한 실체들에 대한 생각을 이전의 저술가들보다 더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어로 원소를 나타내는 전문용어가 된 ‘스토케이온(stoicheion)’을 쓰지 않는다.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그러나 그는 흙, 물, 공기, 불에 대해 명확히 정의된 의미로 ‘rhizomata(뿌리)’를 사용한다. 첫째, 뿌리 그 자체는 생성하지 않고 영원하며 무에서는 창조되지 않는다. 이것들은 원래의 것이라는 의미에서 원소적이다. 둘째, 세상에 존재하는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뿌리의 혼합, 분리의 원인이 되는 ‘사랑’과 ‘투쟁’과 더불어 생겨나게 된다. 특히 엠페도클레스는 합성물과 합성물을 만들어 내는 성분을 확실히 구별했다.

(...)

[66]구성요소라는 생각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어떤 철학자에 의해서보다 엠페도클레스에 의해 더욱 명확하게 파악되고 있다. 그의 네 가지 뿌리는 영원하며 단순하기도 하다. 다른 것들이 이것으로 분해될 수 있지만 이것들은 더 이상 다른 것으로 환원불가능한 구성요소이다.

 

 

5장 히포크라테스전집의 저자들

[81]《의사의 마음가짐(잠언, Precepts)》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주목할 만하다. 이 논문은 의사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쓸데없는 걱정을 시킬지도 모르므로 보수에 대해서는 환자와 신중히 논의할 것. 그리고 보수를 정할 때 의사는 환자의 재산을 고려해야 할 뿐만 아니라 무료로 치료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둘 것.”

 

[R-Commentary] 당시의 소피스트들이 때로는 거액을 받고 수업을 했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이들은 일찍부터 연구윤리가 무엇인지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88]질병의 원인에 대한 문제는 인체의 구성요소의 문제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바로 의사의 관심이 자연철학자의 관심과 중복된다. 또한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문제를 연구하는 바른 방법에 대해서도 논쟁하게 한다. 《고대 의술에 대하여》의 저자는 특히 철학자의 방법을 의술에 [89]적용한 사람들에 대해 격렬하게 항의한다. 그가 누구보다도 비난한 사람은 ‘열’, ‘냉기’, ‘건조’, ‘습기’ 같이 ‘히포테시스(hypothesis)’-가정 또는 상정-라고 부르는 것에 기초하여 자신들의 이론을 세우는 이들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러한 이론이 ‘질병의 원인에 대한 원리를 짜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의술은 기술 ‘techne’이며 훌륭한 의사이건 그렇지 못한 의사이건 모두 기술자라고 그는 제1절에서 말하고 있다. 환자에 대한 치료는 그럭저럭 요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경험을 요하는 것이다.

(...)[90]사실상 이것은 과학이론에서의 검사의 필요성에 대한 진술이다. 검증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기준에 의하면 천상이나 지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사색은 적어도 검증불가능하기 때문에 가치가 없는 것이다.

(...)[94]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자들은 많은 중요한 생물학상의 학설에 대해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종자의 구성 문제에 관해 기원전 5세기 말과 4세기에 제기된 중요한 아이디어의 대부분은 임상의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들-특히 처음엔 데모크리토스, 이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이 제공한 것이다.

 

[R-Commentary] 최근의 ‘지적 사기’ 논쟁이 떠오르는 구절이다. 고대의 과학과 철학 간의 논쟁이 지금의 구도와 다른 점은 철학이 먼저 자연에 대한 개념을 제기했던 고대와는 달리 지금은 과학이, 특히 현대물리학과 생물학이 새로운 개념들을 무더기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철학은 그러한 개념들을 ‘전용’한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먼저 발끈하는 쪽은 과학자들인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소위 ‘지적 사기’ 논쟁에 대해서는 위키에 아주 잘 설명되어 있다.

http://ko.wikipedia.org/wiki/%EC%86%8C%EC%B9%BC_%EC%82%AC%EA%B1%B4

 

 

 

 

이 희대의 사건의 주인공인 앨런 소칼의 저서는 이미 2000년에 번역되었다. 번역되기 전부터 학계에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96]몇몇 이론적 문제들에 관해서는 그들[철학자와 의사]의 관심사가 같았지만 우주론자들의 견해를 비판할 경우 몇몇 의사들은 의학과 철학의 관계에 관해서나 논의중인 문제에 대한 올바른 연구방법에 관해서 광범위하게 이의제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 이러한 논쟁의 성과 가운데 하나는 방법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의술서의 저자들과 철학자를 분리시키는 한 가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그것은 (...) 그들의 기본적인 탐구 공기에 있다. (...) 우선 의사는 철학자와 달리 결국 실제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의술은 훌륭한 개업의와 그렇지 못한 개업의 모두에게 공통되는 하나의 기술이다. 의사들이 염두에 두고 있던 궁극적인 목적은 사실상 환자의 치료였던 것이다.

 

[R-Commentary] 플라톤이라면 의술 ‘자체’는 존중했겠지만, 그것의 기술적 사용은 경멸했을 것이다. 과연, 이런 측면에서 철학적 관념론이 땅을 딛고 섰으면서도 그 땅의 ‘더러움’을 경멸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방면에서 수많은 소재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당시나 지금이나 더 진지한 쪽은 과학자들이다. 철학자들은 마땅히 ‘진지함’보다는 다른 쪽에서 더 탁월한 윤리적 가치를 발휘할 것이지만 말이다. 즉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철학자들이 시큰둥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철학의 임무는 그런 것이 아니니까.

 

6장 플라톤

[114]그[플라톤]가 감각이나 관찰보다도 이성을 선택한 것은 자연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유익하면서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일 수 있다. 자연현상에 대한 그의 연구방법은 몇 가지 점에서 그보다 더 경험주의적인 동시대인들 특히 의학서 저작자들의 그것과 불리하게 대비될지도 모른다. 모든 원인에 대한 그의 설명과 관련하여 경험에 의존하는 자세한 탐구를 시도하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만일 그가 때때로-예를 들어 해부학에서-그렇게 했다면 많은 것을 얻어냈을 것이다. 감각의 사용을 모욕하는 그의 도발적인 갖가지 말들은 관찰이 전혀 무가치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찰이 추상적인 사고보다 못하다는 것을 암시할 뿐이라고 해석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말들은 몇 가지 점에서 역시 경험적인 연구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플라톤의 적극적인 면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자의 연구는 경험적인 데이터의 배후에 있는 추상적인 법칙을 발견하[115]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옳았다. 우주의 수학적 구조에 대한 그의 신념-피타고라스 학파로부터 이어받아 발전시킨 것-이나 이상적, 수학적 천문학과 물리학이라는 그의 개념은 그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하고도 결실 있는 아이디어였다. 우리가 오늘날 이 두 가지 아이디어를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은 고대에서 그것들의 가장 강력한 대변자로서 이룩해 낸 플라톤의 업적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이는 것이다.

[R-Commentary] 이 책 전체에 걸쳐서 로이드는 고대 철학을 현대과학의 기준에서 헛되게 비판하거나, 현대과학과 고대철학의 엉뚱한 연속성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경계한다. 플라톤에 대한 이 관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이나 생물학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7장 기원전 4세기의 천문학

*에우독소스의 천문학

 

☞에우독소스의 천문학을 설명하는 그림들

 

 

 

               <에우독소스 히포페데(Hippopede)>

 

 

 

 

 

 

                 <에우독소스 동심천구론>

 

 

 

<수성의 궤도>

 

☞에우독소스(Eudoxus of Cnidus, 410 or 408 BC – 355 or 347 BC) 관련해서 두 개의 인명사전:

http://www-groups.dcs.st-and.ac.uk/~history/Biographies/Eudoxus.html

http://en.wikipedia.org/wiki/Eudoxus_of_Cnidus

 

*칼리포스의 천문학

 

☞칼리푸스(370 BC – ca. 300 BC) 관련 인명 사전 링크:

http://en.wikipedia.org/wiki/Callippus

http://www-history.mcs.st-andrews.ac.uk/Biographies/Callippus.html

 

‘칼리푸스 주기’ 네이버 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150778

 

*헤라클레이데스의 천문학

[134]“지구는 중심에 있으면서 회전하고 있으며 하늘에 정지해 있다. 헤라클레이데스는 이러한 가정에 의해서 현상을 해석하려고 생각했다.”[심플리키오스, 《아리스토텔레스 천체론 주석》 중] (...) 이 가설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가정될 수밖에 없었던 천체운동수가 상당히 절감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 학설은 아리스타르코스(Aristarchos: BC. 310~230)의 태양중심설과 마찬가지로 고[135]대에는 거의 지지받지 못했다. 그 이유도 또한 비슷했다. 고대의 천문학자들은 지구가 어떤 움직임이든 간에 공간 내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낙하하는 물체의 움직임과 구름의 움직임에는 확실한 영향이 나타나야 할텐데 실제로 어떠한 영향도 관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헤라클레이데스 관련 인명 사전 링크: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262434/Heracleides-Ponticus

http://en.wikipedia.org/wiki/Heraclides_Ponticus

 

[138]기원전 4세기 천문학의 가장 큰 중요성은 관측방법의 진보에 있는 것도 아니며 경험적 데이터의 수집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수학적 방법을 복잡한 자연현상에 적용하는 것을 성공시킨 데에 있다. 어찌보면 그러한 방법을 적용시키려는 자극은 철학에서 얻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천문학을 엄밀과학으로서 다루어야 한다고 제일 먼저 주장한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 따라서 에우독소스와 헤라클레이데스가 플라톤과 연관된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는 할 수 없다.

 

8장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과 물리학

[150]얼핏 보기에 물질의 궁극적인 구성요소에 관한 그의 이론은 실망스러울 만큼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원자론자나 플라톤의 양적, 수학적 이론이 나온 뒤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시 양적 이론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다른 모든 실체는 흙, 물, 공기, 불같은 네 가지 단순물체가 합성된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그것들은 각각 흙은 냉기(cold)와 건조(dry), 물은 냉기(cold)와 습기(wet), 공기는 열(hot)과 습기(wet), 불은 열(hot)과 건조(dry)라는 네 가지 기본적인 상반된 성질들 가운데 둘씩 조합시킨 것으로 취급된다-하지만 그리스어의 ‘hygron’과 ‘xeron’은 영어의 ‘wet’와 ‘dry’보다도 넓은 의미를 갖고 [151]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hygron’은 액체와 기체로도 형용할 수 있는 말이며, 특히 ‘xeron’은 고체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도식:

 

 

 

 

 

 

[153]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지구상의 모든 물질은 흙, 물, 공기, 불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천체는 전혀 다른 실체, 즉 제5원소인 ‘aither’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이 학설은 아마도 고대 이래 다른 어떤 과학이론보다도 많은 비판이나 조소를 받았을 것이다. (...) 문제가 되는 것은 천체의 영원하고도 변함없는 원운동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 우리는 천체가 영원불변한 운동을 한다고 가정한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 [154]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히 원운동하는 것은 지상의 구성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일 수도 없고 그것들의 복합일 수도 없다. 지상의 요소의 자연적 운동은 상승하든가 하강하든가 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만일 그것이 원운동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돌이 돌던지기 기구같은 인위적인 힘이 가해져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처럼 그 운동은 강제된 것이 된다. 따라서 거기에는 자연히 연속적으로 원운동하는 그 무엇인가가, 즉 제5원소가 없으면 안 된다.

 

[160]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거듭 말할 수 있다. 그는 이 분야를 개척한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만일 과학적 문제 전반에 대한 그의 방법과 연구방법에 간해서 그의 물리학의 이 분야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이론을 정립하는데 아프리오리한 원리에 따라 관찰된 사실을 마음대로 무시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이론이 다소 피상적인 관찰에 근거하여 성급하게 일반화되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

[164]그가 이끌어낸 결론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논의는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문제 그 자체를 정식화할 때의 명확함이고 둘째는 그 어떤 논의를 전개하고 분석할 때의 교묘함과 날카로움이다.

 

판게네시스(pangenesis)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과학

 

☞테오프라스토스(Theophrastos, BC373~BC287): 그리스의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친구이자 제자이며, 그의 학교 리케이온(Lykeion 혹은 Lyzeum)의 후계자이다. 스승의 학설을 발전시킨 많은 저작이 있지만 일부분밖에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그가 그의 『형이상학』 속에서 스승의 경험론적인 경향을 발전시켜 스승의 목적론적 고찰 방식에 비판을 가하고 목적 원인의 적용에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 것은 중요하다. 그는 『식물학』, 『식물의 여러 원인』을 통해 식물학의 시조로 알려졌으며 또한 『윤리적 성격들』에서는 각종의 인간 성격을 뛰어나게 묘사하였다. 철학사의 자료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연학의 역사에 관한 저작도 남아 있다. - 『철학사전』, 중원문화

※ 아주 상세한 ‘위키 사전’도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Theophrastus

 

☞스트라톤(Straton, Physius, ?~BC269년경): 랑부사코스 사람으로, 테오프라스토스에 이어 페리파토스파(Peripatetics)를 지도하였다. 데모크리토스의 영향 아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개조하여 유물론적 세계관에 도달하였으며, 세계는 따뜻하고 찬 두 가지 성질을 지닌 분할 가능한 미립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자연학자'(physikos)로도 불려지며,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의학, 천문학, 기계학 등에 영향을 미쳤다.- 『철학사전』, 중원문화

※ 마찬가지로 ‘위키’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Strato_of_Lampsacus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171]자연과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부분의 작업은 그의 스승 플라톤과 공유하고 있던 기본적 가정을 특징으로 한다. 두 철학자 모두 세계는 이성적 기획의 산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철학자가 연구하는 것은 형상과 보편이지 개별이나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지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확실하며 반박가능한 것 뿐이라고 간주했다. 그러나 (...) 관점을 달리하면 자연과학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몇 가지 점에서 그들의 의견은 아주 달랐다. 플라톤이 이데아는 개별적 사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한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부정하여 형상과 질료는 사고에서는 구별할 수 있지만 우리를 둘러싸는 세계 속의 사물에서는 실제로 구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또한 플라톤이 이성의 역할을 강조하고 감각의 역할을 무시한 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찰이라는 것을 복권시켰다. 그들은 우리가 과학자라고 부를 만한 중요한 공헌을 했지만 그 공헌의 성격에서는 아주 다르다. 플라톤은 주로 자연현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 수학을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반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룩한 근본적이고 영원한 공헌 가운데 하나는 자세한 경험적 탐구를 이론상으로 주창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수행해 보인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과 과학의 비교에 관한 잘 된 요약문: http://www.wisdomworld.org/additional/ancientlandmarks/PlatoAndAristotle.html

 

9장 결론

*초기 그리스 과학의 경제적 배경

[174]과학적 탐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무엇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는지에 대해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보완적인 해답이지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즉 (1)독립적인 수단, (2)의술이나 교수 활동 같은 보수가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것, (3)사람들로부터의 후원 등 세 가지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인 독립적인 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재산을 평가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 [175]비교적 큰 도시국가의 많은 시민들이 자연에 관한 탐구 이외에 많은 문화적 생활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모략과 법정 소송 같은 비교적 비생산적이고 반생산적인 활동에 많은 시간이나 에너지를 소비할 수 있을 정도로 금전적인 걱정을 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과학 그 자체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 과학 사상의 발전에 대해 너그러운 의미에서 직업이라고 불러도 될 듯한 일, 특히 의술이나 교수활동을 함으로써 돈을 번 사람들이 이룩한 몇 가지 중요한 공헌이 있다. (...) [176]의술이라는 ‘직업’의 유행이 그리스 과학에서 중요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개업의(開業醫)로서 과학에 종사한 사람들: 헤로필로스(Herophilos), 에라시스트라토스(Erasistratos), 페르가몬의 갈레노스(Galenos: AD. 129?~199?)

 

☞그리스 철학과 과학의 경제적 하부구조를 알기 위해서는 조지 톰슨(George Thomson), Studies In Ancient Greek Society V2: The First Philosophers (『고대 사회와 최초의 철학자들』, 조대호 역, 고려원, 1992)이라는 책이 매우 중요하다. 이 책은 철학과 과학 그리고 정치와 경제가 뒤얽힌 그리스 사상의 이면을 매우 철저하게 파헤치는 역작이다.

그 중 일부를 인용하자면,

 

세 사람[솔로, 아낙시만드로스, 탈레스] 모두 청동기 시대부터 계승된 전통들을 간직한 유서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며, 이 가문들은 상업적 활동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상업귀족mercantile aristocracy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계층으로 발전하여 토지 소유자들로 이루어진 소수 지배계급과 인민대중 사이의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원시적 사유 안에서는 사회와 자연은 하나였다.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는 자연을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외적인 실재로 제시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솔론은 사회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는데 성공했고 그것을 인간 특유의 제반 의무에 기초한 도덕적 질서로서 제시했다. 달리 말하자면 아낙시만드로스가 자연을 대상화했던 것처럼, 솔론은 사회를 대상화했던 것이다(267)

 

우리는 민주적 사고 안에서 세 가지 주된 흐름을 구별할 수 있다. 첫째는 밀레토스의 아낙시만드로스와 아테네의 솔론에 의해 대표되는 것으로, 이것은 새로운 상인계급과 운명을 같이했던 귀족의 일파에 의해서 수정, 발전된 낡은 귀족적 전통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이미 논의한 바와 같다. 둘째는 파산한 소농층의 전통과 열망을 구현하는 것이다. 이것에 있어서는 사정의 본성상 대표자가 될 만한 어떤 유명한 인물은 없지만, 오프페우스라는 신화적인 인물과 관련된 신비적인 제의를 통해 연구해 볼 수 있다. ... 셋째는 다른 두 흐름의 종합으로 볼 수 있는 피타고라스 철학이다(276).

 

그 운동[오르페우스 운동]이 소농층 사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은 오르페우스교 문헌을 헤시오도스의 시들과 비교해 보면 한층 더 굳건해진다. 오르페우스교 저술가들은 호메로스에게는 힘입은 바가 거의 없지만 헤시오도스에게는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이것은 의미심장한 점인데, 그 까닭은 그 자신이 소농이었던 헤시오도스가 주로 소농층을 겨냥해서 자신의 시들을 지었기 때문이다(278).

 

파르메니데스는 모이라, 디케, 아낭케에 똑같은 속성을 부여한다. 한 세기 뒤에 플라톤의 [국가]에서 아낭케는 모이라의 지위를 빼앗고 그녀의 방추 장비까지 갖춘 모습으로 나타난다. 호메로스 이래 그리스 문헌 전체에 걸쳐 아낭케, 즉 ‘강제’와 둘레이아douleia 즉 ‘노예신분’의 관념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전자는 항상 노예의 지위와 노예들이 겪는 가혹한 노동과 고통을 함께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282).

 

반란이 일어났던 BC. 2세기 말엽 이 광산에 고용된 노예의 수는 수만명을 육박했다. BC. 6세기에는 노예와 자유민을 합친 작업 인구가 더욱 줄어들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BC 1세기 이집트의 금광에 대한 디오도로스의 설명을 통해 노동조건을 어느 정도 머리 속에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284). ... 차안과 피안에 대한 오르페우스교의 수많은 비유들 - 어린아이 적부터 손발이 쇠사슬에 묶여 전혀 햇볕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갖혀 있다는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물과 진창과 불과 유황으로 뒤범벅된 지하 미로들이 있다는 타르타노스에 대한 지형 묘사나 또는 정의로운 자들의 영혼들이 안거하고 있다는 맑은 하늘 아래의 상층계에 대한 묘사 - 의 밑바닥에 놓인 상상을 최초로 자극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실상들이었다(286-7).

 

(...) 가르치는 일은 그리스 과학의 발전에서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중요했거나 중요해졌다. 첫째 이것은 의술과 마찬가지로 생활의 양식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며 둘째, 아카데메이아와 리케이온 같은 학술기관이 연구 조사를 하는 데 공동작업의 기회를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 아카데메이아는 수학이 더 강하고 생물학은 비교적 약했던데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 시대의 리케이온은 그 반대였다. 하지만 이소크라테스학교 같은 기원전 4세기의 다른 학교에서 과학은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또한 재정면에서도 학교마다 달랐다. 아카데메이아는 적어도 처음에는 예외였는지 모르지만 보통은 학생이 청강료를 내거나 (이에 덧붙여서) 학교의 전반적인 유지를 위해 기부금을 내야 했다. 아무튼 (...) 가르치[178]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거나 보조적인 수입원이었음이 분명하다.

 

[178]아리스토텔레스는 분명히 기원전 342년에 필립포스왕에게 선택되어 알렉산드로스(Alexander: BC. 356~323)의 스승이 되었기 때문에 그 당시(기원전 342년)에나 그 이후(기원전 335년)에 아테네에 돌아왔을 때마다 마케도니아의 호의와 총애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179]만 그의 학교가 알렉산드로스로부터 또는 그 섭정자인 안티파트로스(Antipatros)로부터 직접적인 원조를 받은 것은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 강력한 지배자의 후원이 그리스 과학자의 작업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은 알렉산드리아 박물관의 청설(기원전 280년 경) 이전에는 없었다.

 

*실용적 지식과 과학

 

*요약

[196]우리가 고찰해 온 시기의 끝 무렵(리케이온의 설립 이후)에서도 과학은 소수의 개인적 관심사에 지나지 않았으며, 아테네가 아닌 다른 곳과 우리가 다른 시기 이외에는 실제로 과학자의 존재가 아주 희귀했다는 것을 밝혀 두어야 할 것이다. (...) 과학 그 자체가 국가의 지원을 받은 적도 없었다. (...) 과학이 물질적인 진보의 핵심이라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지배적인 생각이 고대에는 전혀 없었으며, 바로 그러한 생각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그들의 과학적 활동의 범위도 보잘 것 없었던 것이다. 이 연구에서 논의해 온 과학자 모두를 합쳐도 오늘날 대학에서 과학을 담당하고 있는 교원 수에 못 미칠 것이다.

 

[R-Commentary] ‘국가의 지원’을 현대의 기준으로 놓고 본다는 건 하나마나한 소리가 되겠다. 하지만 로이드는 당시 철학과 과학의 주체들이 대개 귀족 가문 출신들이었으며(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은 물론이고) 아테네 도시국가 자체가 노예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즉 국부의 대부분이 국가 생산력의 상당한 주체(노예 노동)에 의해 담당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방면에서는 George Thomson이 훨씬 유능한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198]가장 중요한 업적은 (1)자연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학을 적용하였다는 것과 (2)경험적인 탐구를 하려는 의도로 방법론상 주요한 두 가지 원칙[가설적 모델의 구상과 경험적 관찰]을 전개한 것이다. (...) [199]이 두 가지 원칙은 우리에게는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R-Commentary] 이런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설계(design, 히브리적 창조의 원관념)와 제작(demiurge, 헬라스적 창조의 원관념)의 이상은 애초에 어떤 매개를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경험’과 ‘관찰’이었다고 말이다.

 

 

부록: 그리스 수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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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7 09: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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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 미천한 것, 별 볼일 없는 것, 인간도 아닌 것들의 가치와 의미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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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사구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이란 치기넘치고 득이양양한 한 권의 비합서적으로 운동권 논쟁을 한획으로 정리했던 내공을 접했던 사람이라면, 이진경이라는 이름을 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후에 그가 '서사연'의 맥을 잇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로 돌아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다시한번 사회구성체론의 신성이 어떤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한 손에는 맑스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들뢰즈를 들고 기우뚱하게 세상에 걸쳐 있는 폼에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내공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는 건 이후의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올 때마다 증명되었다.

 

한때의 맑시즘 투사가 아나키스트의 혐의를 받는 들뢰즈를 번역하고 있었으니까, 이건 변졀(?)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든지 말든지. 이진경은 많은 책을 썼고, 정치적인 사안에 나름의 희안하(?) 방법으로 개입했으며, 얼마전까지만 해도 제주도 구럼비를 쏘다니다 왔다.

 

이 책은 그의 이런 지적, 정치적 여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일종의 정신적 탐색 목록으로 보인다. 사회과학에서 생물학 그리고 들뢰즈 철학, 최신의 정치철학까지.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말자. 이 책이 무지무지하게 어렵거나, 철학 개념으로 도배된 책은 결코 아니니 말이다. 공부가 깊어진 사람일수록 '지상의 언어'를 더 심오하게 부리는 법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들 것이다. 다음은? 도대체 이 '불온함의 목록'들은 언제 '철학'이 또는 '정치'가 될 것인가? 이들 '불온한 것들'이 언제 초리얼(hyperreal)한 이 2MB시절에 리얼하게 등장할 것인가? 결국 그의 사유 전반은 여기 맞닿아 있다. '변혁의 전망 그리고 그 주체' 결국 맑스에서 시작해서 다시 맑스로?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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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와 참고자료, R-Commentary]

1장 불온성이란 무엇인가?

불온성: 기분 혹은 감정

[25]불온성이란 오히려 수나 힘 같은 양적 지표에 반비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세심하게 보면 초기에 아주 [26]작은 수였을 때는 보이지 않고 지각되지 않기에 전혀 불온성을 느끼지 못하다가, 그것의 규모나 힘이 성장해 불편함과 불안함을 야기하면서 지각이 되기 시작하면, 가시적이지만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로 인해 야기되는 불온성의 감정이 급격히 상승해 극대화된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행동이나 움직임이 반복되면서 패턴화되어 예측가능한 것이 됨으로써, 그리고 그것의 존재가 상식이나 통념 속에 자리 잡으며 익숙해짐에 따라 불온성의 강도가 점차 감소할 것이다.

그렇다면 초기의 감지되지 못하던 때와 불온성의 강도가 상승해 극댓값을 취할 때의 차이는 불온한 것의 정체가 파악되고 이해되는 데 필요한 문턱, ‘이해가능성의 문턱’을 표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수적으로 다수화하면서 불온성이 감소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익숙해진다는 면과 더불어, 그것들이 조직되면서 포섭할 수 있는 ‘실체성’을 갖게 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수적으로 소수일 때는 포섭해봐야 무[27]의미하거나 새로이 생성되는 다른 것들로 인해 무효화되며, 그래서 포섭할 수 없게 된다. 노동조합도 장애인단체도 조직화되어 어떤 ‘대표성’을 갖게 되면, 이제 그것만 포섭하거나 길들이면 되기에 불온성은 실질적으로 감소한다.

[R-Commentary]

1. ‘조직화→이해가능성=실체성=대표성’

2. 하나의 고전적 질문: “그렇다면 일체의 조직화는 불온성의 강도를 약화시키는가?”

불온과 불안

[28]엉뚱한 곳에서 난데없이 밀고 들어오는 자 혹은 밀고 들어와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자가 불온성이라는 감정의 첫 번째 측면을 촉발한다면, 그 웃음의 알 수 없음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침입자의 모호함, 거기에 담긴 모종의 불길함이 그 감정의 두 번째 측면을 촉발한다. 시간적으로는 전자가 일차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후자가 일차적이다. 왜냐하면 나를 잠식하고 침몰시킬 것 같은 불안함이 없다면, 횡단이나 교란이나 침범은 비난이나 징치(懲治)의 대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략)

1970년대의 노동조합이나 지금의 비정규직 노동자처럼, 명시적 목표는 전혀 전복적이라 할 수 없고 현행적 힘이나 수에서도 결코 상대가 되지 않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해 지배자나 자본가가 보이는 그토록 지나친 반응은 그것이 그들 말대로 장차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 불안이 히스테리를 일으키듯 불온한 것들은 불온함의 감정에 의해 증폭된 과잉반응을 일으킨다. 볼온성이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두려움의 예감이다.

(중략)

[32]근본적인 면에서 불온성이 야기하는 불안은 정신분석의 그것과 상반된다고 말해야 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불안을 “초자아에 대한 자아의 두려움”이라고 이해하지만, 우리가 말하는 불안은 차라리 자신이, 자아가 믿고 동일시했던 초자아가 동요하고 와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초자아로 상징되는 세계가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정서적 반응, 그것이 불온성에 내포된 불안의 핵심이다.

[R-Commentary]

3. 때로는 이 ‘지나친 반응’이 불온한 자들의 죽음을 불러 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때 불온한 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라는 범주 안에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불온한 자들은 어떻게 해야 그 불온성을 전염시킬 수 있는가? 언제 약자라는 소극적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이것도 하나의 고전적 질문인가?

4. 저들은 이 불안감을 극대화시켜 임계점을 통과시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실수’하도록 하는 것(때로 치명적인 실수?). 혹시 이것이 하나의 투쟁법, 또는 투쟁의 recipe인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ex) 나꼼수 등등

감각적 각성

[36]예감적 정서인 이러한 불안 뒤에서 맨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감각적 각성’일 것이다.

(중략)

불온한 것들이 우리의 익숙한 감각 속으로 낯설게 침입할 때 우리는 ‘감각적 각성’에 이르게 된다. 각성이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는 사건이다. (...) [38]감각적 각성이란 기존의 익숙해진 감각에선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느끼고 감지하게 되는 사건이다.

(중략)

벤야민[1]의 말처럼 [약물적 각성과는 다른] ‘세속적 각성’이 이와 구별되어 정의되어야 한다면, 일단 먹어보라고, 일단 믿어 보라고, 요컨대 일단 들어와 보라고 요구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으로 각성시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약물이나 믿음을 가정하지 않고 뜻하지 않는 세계를 보게 하는 것, 그런 식으로 세상의 비밀을 보게 하는 것.

불온한 자들,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고 우리의 경계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들이야말로 이런 세속적 각성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39]불온한 것들이 야기하는 불편함과 불안함을 긍정할 수 있을 때, 그들에 매혹되어 그들이 이끄는 미지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갈 때, 가장 먼저 발생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감각적 각성일 것이다.

(중략)

인간의 혁명,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신체를, 자신의 감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사적 소유의 지양은 모든 인간적 감각들과 속성들의 완전한 해방이다” 혁명을 위해서 현실보다 한발 앞서 수립해야 할 것은 바로 ‘감성의 코뮨 권력’이라고 하는 타니가와 간[2]의 말 또한 바로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이런 감각적 각성이 오기 전에 뜻하지 않게 세계가 먼저 바뀌는 사건도 있을 것이다. 그 경우 혁명을 긍정하는 자들이 그 바뀐 세계 속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이미 닥쳐온 혁명 속에서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것은, 바로 이러한 감각적 각성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40]까? (...) 경계를 유지하던 오래된 감각을 뒤집는 전면적인 감각적 각성의 사건 (...) 아마도 이것이 혁명을 꿈꾸는 자들이 불온한 자들에게 쉽게 매료되는 이유일 것이고, 혁명의 정치학이 불온한 자들의 존재론에 쉽게 침식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R-Commentary]

5. ‘전면적인 감각적 각성의 사건’이 불온한 자들의 존재론에 머물 것인가, 혁명의 정치학으로 진화할 것인가? 문제는 이것이다. 존재론에서 혁명론으로 가는 그 길목에서 감각적 각성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조직론은? 전략과 전술은? 아, 위험하다. 혁명이여.

2장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존재와 존재자: 존재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47]존재와 존재자는 다르다. 존재자가 존재하지 않을 때도 존재자는 존재자다. “그 산엔 곰이 한 마리도 없어”라는 말은 곰이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지만, 그 경우에도 ‘곰’은 곰이라는 존재자임이 분명하다. 특정한 규정을 갖는 한, 존재자는 존재하는가 여부와 무관하게 존재자다. 존재하는가 여부와 무관하게 표상되는 명사적 실체다. 반면 존재는 동사적이다.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에서처럼 어떤 존재자인지 규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 (...) [48]존재가 드러나게 하려면 존재자가 말하기를 중단해야 한다. 존재자가 말의 뒤편으로 물러서야 하며, 말이 존재자와 거리를 두고 멀어져야 한다. 말이 존재자를 따라 말하길 그치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존재자의 형상을 지울 때에야 존재가 드러날 수 있다.

(...) “시는 침묵이다.” 존재는 그 침묵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R-Commentary]

6. 존재는 침묵 속에서 드러나기도 하지만, 한없는 소음, 대중의 잡담, 수다를 통해 도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다음 발췌문에 나오는 논의 참조. 그렇다면 침묵과 수다는 어떤 관계성 안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인가?

[50]시인을 부러워하지만 결코 시인이 될 수 없고 무위의 언어에 감탄[51]하지만 결코 무위의 언어를 꿈꿀 수 없는 자가, 존재자 저편의 침묵에 이르기 위해 찾아야 할 길은, 침묵과 그 반대편을 향하는 이 길이 아닐까 싶다. 시적인 고요와 고독의 침묵, 반대로 이 소란스런 소음을 반복해서 섞고, 최대한 밀고 감으로써 침묵 속의 존재에 도달할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사는 세계의 소란과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자의 안정성을 와해하는 곳까지 밀고 가는 것 (...) 소음마저 모두 싸안는 어떤 소리의 평면

(...) 침묵으로 존재자의 형상을 지우며 오는 목소리와 존재자의 형상을 뒤섞어 지우며 오는 목소리는 차라리 반대 방향으로 우리를 끌고 가리라[는 것]

(중략)

[52]이 경우 존재론이란, ‘인간’을 뜻하는 인칭적 보편성을 통해 인격/인칭을 초월한 보편성에 도달하고자 하기보다는, 인격을 갖지 않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통해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가며 ‘우리’를 침몰시키는 어떤 일반성을 그리는 것이 될 것이다.

[R-Commentary]

7. 이것은 차라리 ‘횡단성’(traversité)이라고 해야 더 정확하지 않겠는가?

존재론의 장소

[53]존재란 모든 존재자에게 공통된 어떤 성질을 뜻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자를 하나로 묶어주는 어떤 유(상위 범주)를 뜻하지도 않는다. 존재는 차라리 그런 공통성질이 사라지고 지워지는 곳, 그런 유적 동일성이 사라지는 곳에 있다. (...) ‘존재하다’라는 말이 하나의 단어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있음’이라는 어떤 공통성 때문이 아니라, 어떤 공통성도 갖지 않아 모든 차이를 담을 수 있는 미규정성 때문이다. 존재란 모든 존재자의 규정성이 녹아드는 하나의 거대한 심연이다.

[R-Commentary]

1.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자로서 들뢰지앙다운 진술이다. 여기서 ‘공통성’은 ‘일의성’과 구별되어야 하겠다.

[55]존재한다는 것은 존재자에게 발생하는 동사적 사태다. 내가 존재한다, 저기 나무가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는, 무엇이 ‘나’란 말에 ‘존재하다’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지, 무엇이 저 나무를 존재하게 해주는지를 묻는 것이다.

(중략)

[56]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차라리 이런 점에서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이 조건들과 같은 외연을 갖는다고 해야 한다. (...) 따라서 존재란 존재자를 존재하게 해주는 조건 자체, 그런 조건의 절대적 미규정성이다.

존재의 그 미규정성은 어떤 규정성도 결여한 텅 빈 상태라기보다는, 반대로 모든 규정성으로 가득 찬 것이라고 해야 한다. (...) 존재의 미규정성, 그것은 규정의 절대적 결여가 아니라, 절대적 과잉을 뜻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자를 향해, 모든 규정성을 향해 열[57]려 있는 절대적 과잉.

[58]존재론의 장소는 존재자가 보이지 않는 저기 어딘가에 따로 있는 ‘심연’이 아니라, 바로 존재자가 있는 곳이고, 그 존재자들이 만나는 곳이며, 또한 갈라지고 헤어지는 곳이다.

(...)[59]존재론들은 우리에게, 우리의 존재에 어떤 방향과 규정을 부여할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다른 존재자와 만날 것인지, 혹은 다른 어떤 존재자와 만날 것인지는 각각의 존재론이 존재로 가기 위해 선택한 길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존재란, 우리의 존재의 지속이란, 혹은 우리의 삶이란 항상 그때마다 자신이 더듬어 찾아온 그런 방향에 의해, 존재를 사유하는 그 출발점에 따라 이미 앞서서 규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론은 레비나스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윤리학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항상-이미 윤리적이다. 그것은 ‘존재’라는 말의 초역사적 포괄성으로 인해 흔히 표상되는 것과 달리 처음부터 역사적이다. 그것은 또 존재라는 말의 아득한 추상성이 표상하게 하는 것과 달리 항상-이미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결부되어 있으며, 그것의 [60]변환을 위한 집합적 행동을 함축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충분히 정치적이다.

[R-Commentary]

9 하지만 이때 ‘존재’는 ‘존재자’와 동일하지도 유사하지도 않다.

10‘존재’는 그것이 구체적인 삶의 ‘표현’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역사적이지만 그 자체로는 오히려 ‘비역사적’이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초월적이다.

어떤 존재론?

[64]존재론은 정의상 우리의 존재를, 혹은 우리의 삶을 포괄하지만, 사실 우리는 존재론 속에서 살지 않는다. 반대로 존재론이, 아니 수많은 존재론이 우리의 삶 속에 있으며, 그 삶에 의해 방향 지어지고 분화되고 이론화된다. 삶이 그리는 선의 궤적 안에서 존재에 대한 사유는 방향을 잡는다. 따라서 어떤 존재론을 할 것인지는 묻지 않는 순간에도 이미 항상 물어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답이 제시되기 전에 답을 알고 있다. 그렇게 이미 주어진 방향에서 존재에 대한 사유는 시작된다.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68]결코 통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어떤 특이성을 갖는 것이 탁월한 것을 포함한 모든 존재자를 잠식해 들어갈 때, 그것이 우리를 존재론적 일반성으로 인도한다. 대개는 ‘미천함’의 부정적 감정으로 인해 눈을 피해왔기에 우리의 눈을 잡아끌지 못하던 어떤 특이성의 ‘평범함’이 역으로 모든 ‘평범한 것’의 어떤 특이성을 보게 해줄 때, 그리하여 평범함의 일상적 시선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해줄 때 우리는 모든 존재자를 끌어안는 어떤 특이성과 대면하게 된다.

[69]인간의 위대함이나 탁월함에서 시작하는 보편화란, 그것에 포함될 수 없는 것들, 그것에 의해 어두운 부정의 색이 칠해진 어떤 대상을 지우고 제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포괄성을 완성하려 한다. 이는 인간이라는 주체로부터 ‘정념적인(pathological) 것’을 제거함으로써, 다시 쓰면 ‘병리적(pathological) 것’을 소거함으로써 선험적 주체라는 도덕적 보편성에 이르고자 했던 칸트에게서도 다르지 않았다. 이 선험적 주체란 라캉의 말처럼 ‘주이상스(Jouissance)’라는 ‘실제적’ 대상이 제거된 주체라는 의미에서 ‘텅 빈 주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적 특이성들이 비루한 결함으로 간주되어 제거된 주체라는 의미에서 ‘텅 빈 주체’리고 해야 할 것 같다.

[R-Commentary]

11 에피쿠로스적 의미에서 ‘선별’과 ‘측정’은 여기서 말하는 칸트적인 ‘선별’과는 아주 다를 것이다. 후자는 ‘부정적’이며, 전자는 ‘긍정적’이며 디오니소스적이다.

3장 장애자: 존재, 장애의 그늘 속에 있는 것

장애의 그늘

[82]존재는 장애자에 대한 동정이나 장애에 쉽게 실리는 슬픔의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 그것은 특정한 존재자의 형상에 실린, 보는 자의 감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장애자이 몸을 통해 존재는 자신을 조용히 드러내지만, 장애자를 보고 장애에 눈이 매인다면 존재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 우리의 눈이 장애자에 매이지 않을 때에만 그 드러남과 만난다.

(...)사실 세상과의 불화가 존재하는 곳에서 우리는 모두 장애자다. (...) 따라서 세상에 불화가 존재하는 한, 그 불화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한, 그 세상에 사는 자들은 모두 장애자라고 해야 한다.

[R-Commentary]

12 여기서 ‘사유’의 특권이 나타나면 안 될 것이다. 물론 ‘감각’의 소외를 통해 역으로 ‘존재’를 말하는 방식도 불완전하다. 이제 이진경은 아래에서와 같이 그것을 어떤 집합적 감각으로 파악하려 할 것이다. 들뢰즈라면 개별자의 타자성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폐를 끼치는 자’

‘폐’를 지우는 것

[89]교환이 지배적인 사회,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선 누구든 남에게 신세를 지며 산다는 것, 폐를 끼치며 산다는 것을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도 돈이 없는 자들은 좋든 싫든 남에게 폐를 끼치고 산다는 것을 자각하며 산다. 폐를 지워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폐는, 우리의 기대어 있음은 이처럼 지불수단의 부재, 지불능력의 결여를 통해 드러난다. 반대로 돈이 많은 자들은 자신이 항상 타인들에게 기대어 산다는 것, 폐를 끼치며 산다는 것을 결코 알지 못한다. 지불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자신이 끼치는 모든 종류의 폐를 미리 지우기 때문이다.

그늘 속의 우주

[91]모든 존재자는 항상-이미 다른 수많은 존재자에 기대어 그것들에 ‘폐를 끼치며’ 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장애자다. (...) 이 경우 장애는 존재 그 자체와 결부된 것이라는 점에서 존재론적 장애다. 이런 점에서 모든 존재자는 ‘동등하다.’ (...) 장애자란 이렇게 하나로 묶인 모든 존재자를 지칭한다. 장애자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존재론적 일반성’에 도달한다.

[R-Commentary]

13. 이진경-랑시에르? 이진경-레비나스? 후자보다는 전자가 더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장애의 선물

[97]존재자가 아니라 존재를 본다는 것은, 폐를 끼치는 자에서 눈을 돌려 그가 폐를 끼치는 자를 보는 것이다. 그가 폐를 끼치도록 해주는 자들의 거대한 연쇄가 폐를 끼치는 자에게 주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때 기댐과 가져감은 의도 없는 ‘줌’으로 전환된다. 그것은 방향을 바꾸어서 보는 것이고, ‘끼침’을 ‘줌’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경우 줌과 받음, 끼침과 끼치게 해줌은 비대칭적이며,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다. 반면 존재와 존재자 간에는 거대한 비대칭성이 있다. 존재는 각각의 존재자를 존재하게 해주고, 그것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을 준다. 존재[98]자들의 거대한 연쇄가 각각의 존재자들이 존재할 수 있도록 떠받쳐준다. 존재자는 그러한 ‘줌’에 기대어 있다.

(중략)

[99]장애가 있는 곳에 선물이 있다. 모든 존재자는 자신이 폐를 끼치는 모든 타자로부터 존재라는 선물을 받고, 자신에게 폐를 끼치는 모든 타자에게 존재를 선물하는 연쇄에 가담한다.

[R-Commentary]

14. 줌(giveness)의 문제. 오래된 문제. 비대칭성도 마찬가지. 그런데 여전히 존재의 ‘줌’은 분명하지 않다. 왜 그럴까?

문턱과 장애자

문턱과 혁명

[111]계급이론은 문턱의 이론이다. 그것은 장애의 정치학에 속한다. (...) 혁명이란 문턱을 제거하려는 집합적 운동이다.

(중략)

[112]근본적으로 하나인 존재론의 평면에 적대가 들어앉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적대, 그것은 문턱을 유지하려는 자와 제거하려는 자 간에 존재하는 관계다. (...) 적대란 이해관계가 상반되는 [113]두 집단의 대칭적 대립이 아니라, 문턱을 설치하고 유지함으로써 흐름과 이동을 저지하려는 자와 문턱을 제거함으로써 흐름과 이동을 자유롭게 하려는 자의 대립이기 때문이다. (...) 혁명이 근본적으로 탈영토화 운동인 것은 이 때문이다.

[R-Commentary]

15. 조심해야 할 것은 ‘흐름과 이동의 자유’가 자본주의라는 절편에 의해 주도될 때는 허위-탈영토화의 경향성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가타리의 말처럼 이러한 허위-탈영토화를 더 앞서 빨리 가야한다.

4장 박테리아: “우리는 모두 박테리아다”

존재와 생성

[122]존재란 생성의 결과를 표시하는 어떤 개체의 지속이다. 어떤 규정을 갖는 존재자의 지속이다. 그 규정으로 명명되는 어떤 상태의 지속이다.

존재자의 존재란 ‘지속’의 형태로 포착된 생성이다. (...) 베르그손이 말하는 ‘지속’이 생성이요 변화임을 안다면, 이렇게 바꿔 말해도 좋을 것이다: 존재의 본질은 생성이다.

따라서 생성만이 존재한다. 어떤 개체의 ‘출현’과 그 개체의 ‘지속’이라는 구분 속에서 생성과 존재로 대비되었지만, 그래서 흔히 전자는 불연속적 비약이고 후자는 연속적 상태로 거기 대비되지만, 양자 [123]모두 생성이라는 점에서 하나의 평면 위에 있다고 해야 한다.

[R-Commentary]

16. 그래서 사실상 ‘존재’는 생성의 ‘표현’이거나 그것의 생산일 뿐이다. 존재가 ‘대칭성’을 함축한다면, 생성은 ‘대칭성 깨짐’을 의미한다. ‘실재’는 항상 이 대칭성 깨짐의 상태에서 ‘지속’되므로, 항상 잠재적인 ‘파국’을 내장할 수밖에 없다. 물은 언제나 물이지만 얼음은 언제나 얼음일 수 없다.

[125]순수존재란 모든 규정성을 삭제한 무가 아니라, 수많은 규정성으로 가득 찬, 그래서 어느 하나의 규정을 들어 말할 수 없는 그런 무일 것이다. 그것은 생성이나 존재자의 출현을 설명해줄 어떤 배경이 아니라, 이미 진행된 어떤 생성, 그 결과의 지속일 뿐이다. (...) 존재와 생성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성을 통해 존재를 이해하는 것, 존재와 무의 변증법으로 탄생하는 어떤 종합으로 생성을 위치 짓는 게 아니라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존재에 앞서는, 항상 새로이 시작되는 ‘기원’으로서 생성을 위치 짓는 것, 그것만이 존재와 생성을 이어주는 끈일 것이다. 존재조차 생성으로 정의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R-Commentary]

17.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18. ‘새로이 시작되는 기원으로서의 생성’-이것은 생성을 ‘배치’ 또는 ‘하나의 거대한 주사위 놀이’로 보게 하는 것이다. 관점의 전환.

[126]존재자의 탄생, 그것은 사실 매 순간 이루어지고 또 이루어진다. 그것은 이질적이고 우연적인 만남에 의해, 뜻하지 않은 실수나 실패에 의해 엉뚱한 곳으로 표류하는 선을 그리며 이루어진다. 생성을 통해 존재를 사유한다는 것은, 존재자의 존재란 이런 이질성과 우연성과 외부성을 항상-이미 포함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그 이질적[127]인 것들이 만나며 결합해 하나의 개체로 개체화되는 것을 통해, 그런 개체화의 지속을 통해, 그 지속이 생산하는 공동성에 의해 존재자는 존재하게 되고 그 존재를 지속할 수 있다. (...)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질적인 것, 외부적인 것을 추방하고 잘라내는 끝없는 배제의 푸닥거리는 결코 유지될 수 없는 환상이다.

[R-Commentary]

19. 우리는 ‘우발성’과 ‘우연성’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필연성의 상보물이지만 하나는 그렇지 않다. 여기서 이진경은 형이상학과 정치학 사이에서 담론을 진행한다. 이 책 전체가 그러하다고 보이지만.

개체화와 개체성

[130]모든 것은 분할가능한 부분들로 이루어졌다. 분리되어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부분들로. 애초의 ‘전체’란 그 분할 가능한 것들의 집합체였던 것이다. (...) 모든 개체(individual)는 분할가능한(dividual) 것들의 집합체다. 모든 개체는 복수의 분할가능한 요소들이 무리[衆]지어 형성된 집합체고, 항상-이미 그런 무리로서만 존속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개체는 ‘衆-生(multi-dividual)’이다.

(...)모든 개체는 복수의 분할가능한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개체로 개체화된 결과다. 개체화가 작동하는 모든 지점마다 개체는 존재한다. (...)개체화에 의해 존재하고 지속하게 된 개체는 모두 진정한 개체다.

[R-Commentary]

20.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개체는 일종의 ‘창발’의 결과다. 하지만 이 유기체는 더는 ‘존속’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바닥’의 혼돈에 잠겨들 수 있는 불안한 개체,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맹목적인 자유(필연성에 붙잡혀 있다는 의미에서 맹목적인)를 추구하는 개체다.

박테리아의 평면[3]

[132]모든 개체는 공동체다. 개체화 과정에 말려들어간 복수의 요소로 구성된 공동체다. 모든 공동체는 개체다. 제각각의 이질적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개체화에 의해 존재하는 개체다.

[R-Commentary]

21. 이 절을 더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물학, 진화론에 대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133]경쟁이상으로 현실적인 공생이 있다. 그것이 원핵생물에서 진핵생물로의 진화, 그리고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로의 진화에서 매우 결정적 계기를 이룬다는 것은 지금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핵의 발생사가 아직 해명되진 않았다고 해도, 원핵생물에 없는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가, 어떤 세균이 다른 세균을 먹었지만 먹힌 것인 죽지 않은 채 내부에서 살아남아 공생하게 된 결과임은, 이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사실에 속한다. 미토콘드리아의 DNA가 핵의 DNA보다는 프로테오박테리아라는 원핵생물의 그것과 더 유사하며, 엽록체의 DNA 역시 핵보다는 남세균의 DNA와 훨씬 가깝다는 사실은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가 잡아먹힌 세균이었음을 뜻한다.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는 이중막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다른 세균에게 잡아먹힐 때 잡아먹은 세균의 원형질막이 한 겹 더 둘러쳐지며 만들어진 것이다. 유글레나의 엽록체는 삼중막을 가지고 있으며, 홍조문에 속하는 쌍편모조류에는 사중막을 가진 엽록체도 있다. 이는 공생관계를 형성한 세균을 다시 잡아먹었지만, 역시 살아남아 2차, 3차의 공생관계를 형성했음을 의미한다.

잡아먹힌 세균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자신을 잡아먹은 세균 안에서 산소를 먹어치워 에너지(ATP)를 제공하고, 먹은 세균은 그것에 산소를 제공하고 그것을 보호하며 종류에 따라 이동성을 제공하는 관계, 혹은 광합성을 해서 자신을 잡아먹은 세균에게 영양을 제공하고, 마찬가지로 보호나 이동성을 얻는 관계가 공생관계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런 공생관계기에 그것들은 10억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공생은 서로의 선의를 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심지어 먹고 먹히는 경쟁과 적대의 결과로 출현한 것이다. 서로 먹고 먹히는 적대적 관계가, 경쟁을 위한 선의 없는 만남이 ‘실패’에 의해 공생으로 귀착된 것이다.

(...) 19세기적 위계의 감각이 아직도 남아 있는 말인 ‘하등’ 생물의 이 역설적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가장 ‘고등’한 생물이자 가장 진화한 종임을 확신하는 인간 자신 역시 사실은 이 하등한 동물들의 거대한 집합체, 몇 겹으로 겹쳐진 박테리아들의 거대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우리[136]의 신체를 이루는 모든 세포에 포함된 미토콘드리아는 그러한 사실의, 지울 수 없는 증거다.

(...) [137]좀 더 큰 동물이 작은 것보다 더 ‘고등’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면, 좀 더 많은 수의 집합체가 적은 수의 그것보다 더 ‘진화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면, 단지 그 크기와 형태를 달리할 뿐인 박테리아의 집합체들 사이에 우열이나 진화의 위계를 수립하려는 시도 또한 어리석은 짓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요컨대 ‘종’이라고 불리는 존재자의 집합, 혹은 생명을 갖는 개개의 존재자들의 존재는 뜻밖의 실패로 끝난 만남, 혹은 뜻하지 않게 서로가 말려들어간 어떤 만남에서, 그 만남으로 인한 어떤 비약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한쪽의 죽음으로 귀착되지 않으며 새로운 분기의 선을 그리는 어떤 표류의 지속, 그것이 바로 진핵세포에서 오징어와 거북이와 인간, 혹은 미역과 은행나무에 이르는 모든 생물이 존재의 장으로 들어서게 한 결정적 문턱이었다.

[R-Commentary]

22. 따라서 ‘죽음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어떤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생명의 도약이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가 로두스다!

공생과 공동성

[137]개체화는 불쑥 솟아나는 어떤 것의 출현으로 시작한다. (...) 그것은 요소들 사이에 있다는 점에서 외부지만, 개체화를 통해 내부가 되는 모호한 공간에서 출현한다. 전체였던 것들을 부분으로 만드는 어떤 합체 속에서, 그 합체를 하나의 실재로 만드는 어떤 프로세스가 출현하면서 시작된다. 그 프로세스가 어떤 안정성 혹은 지속성을 가질 때 새로이 출현한 개체의 존재는 지속된다. 즉 개체는 계속 존재할 수 있다.

[R-Commentary]

23. residuum. 개체발생의 잔여.

[139]개체화에 말려들어간 요소들이 ‘하나처럼’ 공조(共調)하여 움직이고 활동함으로써 그 과정 밖에 있는 것들과 구별되는 리듬의 안정적 패턴을 형성할 때 그 요소들은 하나의 또 다른 개체로 개체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 드나듦이 가능한 열린 상태에서, 초월적 제3자를 가정하지 않아도 어떤 개체들이 모이며 ‘상위’의 개체를 구성하는 것은 이런 리듬적 공조를 통해서다. 리듬적 공조는 일시적 발생인이 아니라 개체가 존재하는 한 계속되는 지속적 발생이다. (...) [140]리듬적 공조가 중단되어 더는 하나처럼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 그 개체는 개체이길 중단하고 해체되고 만다.

(...) 분명한 것은 행운이든 불운이든 이미 그런 개체화에 말려들어가기 시작했다면, ‘나’라고 부르던 개체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움직이고 함께 존속하는 이웃들 사이로 ‘나’는 소멸한다. 혹은 그 사이에서 ‘나’는 다시 탄생한다. 함께 움직이는 것, 무언가를 주고받는 관계의 지속은, 이 분할가능한 요소들 사이에 어떤 ‘공동성’을 수립한다.

[R-Commentary]

24. 따라서 유기체든, 무기물이든 평형성을 지속한다는 것은 ‘진동’한다는 것이고 그 ‘진동’의 짧은 주기마다 ‘잔여’를 남긴다는 것이다. 잔여가 존재하지 않으면 개체는 해체된다.

[141]에너지 차원의 항상성이 미세한 시간적 차이를 두고 각 요소의 작용이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어떤 결과를 주고받으며 요소들 사이에 공간적 공시성을 형성한다면, 리듬적 차원의 안정성은 공조에 의해 하나의 시간을 발생시키면서 신체적 ‘단수성(단일성)’을 형성한다. 이 ‘단수성’은 스피노자가 잘 말해주었듯이, 항상-이미 복수의 요소가 공동으로 작용하여 산출하는 결과의 단수성이고, 그 단일한 결과에 의해 소급적으로 정의되는 단일성이며, 현행적인 결과에 의해 소급적으로 구성되는 잠재적 개체성이다.

[R-Commentary]

25. 개체의 발생과 시간의 생성은 함께 가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은 잠재성의 차원에서 먼저 나타나고, 개체의 차원에서 소멸하여 공간화되는 것인가?

면역과 개체성

[144]공동체가 면역이라는 개념과 대쌍을 이룬다는 점을 어원학적 방식으로 지적했던 것은 에스포지토[4]였다. 공동체를 가리키는 코무니스(communis)라는 말은 ‘증여’, ‘의무’를 뜻하는 무누스(munus)에 ‘함께’, ‘결합’을 의미하는 com(cum)이 합쳐져 만들어졌다. 증여의 의무를 통해 개인이 타자와 결합된 관계, 증여를 통해 타자에게 자신을 여는 관계, 그리하여 타자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관계를 표시한다. 반면 면역을 뜻하는 임무니스(immunis)는 동일한 munus에 ‘면제’를 뜻하는 임(im)이 붙어서 증여의 의무로부터 면제되었음을, 면제를 통해 자기를 보호하는 것을 표시한다.

(...) [145]증여의 의무가 공동체 내부의 관계를 규정한다면, 의무의 면제는 공동체와 그것의 외부자 간의 관계를 규정한다. 전자가 복수의 요소가 공동체로서 개체화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면, 후자는 개체로서의 공동체가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148]어떤 생물도, 아니 [149]어떤 개체도 개체화의 범위를 갖는 한, ‘자기’와 비자기를 구별하는 경계를 갖는다고 해야 한다. 다만 그 경계를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막이나 껍질 같은 외연적 형태를 취하는 것이 있거나, 그 형태에 더해 내부로 들어온 것에 대해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체계가 있거나 하는 구별이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자기’라고 불리는 개체화의 경계를, 원생동물이나 식물 또한 동물과 마찬가지로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외부적인 어떤 요소를 받아들이거나 적극적으로 흡수하는 방식으로 열려 있으며, 따라서 가변적이라고 해야 적절할 것이다. 즉 자아는 어떤 불변의 실체 같은 것이 아니다.

[R-Commentary]

26. 이런 생물학적인 ‘자아’를 손쉽게 철학적 ‘자아’로 환원하거나 그 반대로 해서는 신중하지 못할 것이다. 이 둘 사이에 무슨 거대한 심연이 있는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밀접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렇게 본다면 여기서 ‘불변의 실체 같은 것이 아니다’고 하는 것은 가능할까?

면역능력과 면역계

[154]능력으로서의 면역이란 이질적인 것, 외부자들과의 공존능력이라고 정의해야 한다. 무균사육 동물의 면역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 위생의 ‘발전’이 면역능력의 저하를 야기하여 약간의 오염이나 감염만으로도 질병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 반대로 치명적인 감염조차, 거기서 살아남은 것에게는 새로운 공생관계로 발전한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다.

(...) 이런 점에서 질병의 관념 또한 바꾸어야 한다. 외부의 세균에 신체가 잠식된 상태로 질병을 정의하는 것은 피감염자의 신체만을 고려한 일방적 정의다. (...) 숙주의 신체에 ‘기생’하기 위해 들어간 원인균으로선 숙주가 죽는 것은 결코 ‘유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자신도 같이 죽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사태다. (...) 이런 이유로 감염을 견뎌내는 경우에는 면역계의 ‘기억’에 의한 반격만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인균의 독성자체도 급격히 완화되며, 죽음이나 치명상을 피해 서로 공존할 가능성이 확대된다. 서로에게 적응하는 것이다.

[R-Commentary]

27. 이 ‘적응’, 일종의 ‘투쟁하는 적응’이란 개체화가 공동체적인 개체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가? 과연 그렇다면 그 역도 가능한가? 즉 ‘적응하는 투쟁’ 어느 것이 더 관건인가? 적응? 투쟁?

[156]면역능력의 공백, 그것의 무능력 지대에서 면역계가 작동한다. (...) 개체화가 외부자와 만나는 지대, 만나는 방식마다 다른 외연의 경계선이 그려지고, 다른 기작의 면역계가 작동한다. (...)[157]자아와 비자아의 그 경계는, 면역능력에 의해서, 개체의 신체적 수용능력에 의해서, 다시 말하면 개체화의 개방성에 의해서 규정된다.

이런 점에서 자아란 신체적 구별로 존재하는 경우조차 확정적 실체가 아니며, 조건에 따라, 능력에 따라 가변적인 경계를 갖는다고 해야 한다.

[R-Commentary]

28. 즉 자아란 환경과의 모호한 경계지대를 감싸고 도는 ‘세속화된 아우라’이며, 그것이 곧 데카르트가 놓친 지점이라 할 것이다.

5장 사이보그: “태초에 사이보그가 있었느니라”

존재와 부재

[167]효과가 ‘존재하다’라는 동사를 가능하게 한다. 존재하는 것이 효과를 갖는 게 아니라, 효과를 갖는 것이 존재한다고 하게 한다. (...) 따라서 이러한 효과의 범위를 통해 존재한다는 말이 갖는 타당성의 범위를 규정할 수 있다. (...) 기독교도에게 신은 존재하지만, 무신론자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R-Commentary]

29. 이제 잘 살펴 보면, 여기서 이진경이 말하는 효과(ramification)는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거의 헛것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동=효과=가상→존재’라는 이 공식의 기원은 어딘가? 내 생각은 이것은 헤라클레이토스와 니체의 것이다.

[169]존재는 존재자가 걷어차고 뛰어간 것을 따라, 흔들고 멈춘 것을 따라 다가온다. 존재자는 자신의 효과를 통해 존재한다. 어떤 효과를 산출하며 ‘작용하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 (...) 물론 하나의 효과를 산출하는 작용에는 복수의 요소가 참여하고 가담함을 앞서 충분히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스피노자처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작용하여 어떤 결과를 산출하는 것들은 ‘하나의 존재자’로 존재한다.

기계를 넘어선 기계

[172]한편 그것[사이보그]은 기계를 넘어선 기계를 뜻한다; 다른 한편 그것은 기계라고 비난받는 기계를 뜻한다. 하지만 이 모두는 사이보그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와해하고 지우는 자임을 뜻하는 것일 게다. 사이보그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자다.

횡단한다는 것, 사이보그에게 그것은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뜻한다. 사이보그는 유기체아 기계, 혹은 생명과 기계라는 거대한 균열을 처음부터 가로지르며, 그 균열에 의해 분할된 것들을 ‘하나로 모은다’.

최초의 사이보그

최[181]초의 사이보그, 그것은 처음으로 도구를 사용하여 원하는 결과를 얻었던 원시인이다. 도구를 손에 들고 움직이는 인간, 그것은 기계와 유기체가 결합해 하나처럼 작동한 최초의 사이보그였다. 만약 그보다 먼저 도구를 들어 열매를 따던 원숭이가 있었다면, 혹은 도구를 사용한 다른 동물이 있었다면, 그에게 최초의 사이보그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 것이다. ‘기계’와 ‘도구’를 구별함으로써 첫 번째 사이보그의 자리를 탈환하려는 시도는 포기하는 게 좋다. 왜냐하면 이미 여러 사람이 보여주었듯이 도구와 기계를 구별해주는 뚜렷한 경계선은 없기 때문이다.

[R-Commentary]

30. 이진경의 이 논의가 겨냥하는 바는 분명해 보인다. 즉 그는 도구와 기계의 분리를 임의적인 역사적 사실로 취급함으로써 사이보그라는 후기모더니티의 개념을 존재론적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며, 그것을 정치적으로 하부구조 속에 정위함으로써, 어떤 변혁의 역량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항상 느끼지만 이진경의 논의에는 줄기차게 지속되는 ‘혁명론’의 저변이 존재한다.

[184]사이보그의 탄생과 진화, 그것은 엥겔스가 노동이라고 명명한 이러한 작동의 산물이다. 그것은 도구라고 명명된 사물이 유기체와, 기계가 유기체와 하나의 개체로 개체화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사물과 유기체의 공생(Symbiosis)’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사물과 유기체의 ‘공진화(co-evolution)’라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이것을 제외하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노동이 혹은 인간이 처음부터 이[185]질적인 것들이 섞이는 이런 혼성과 혼합의 지대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인간의 미래

[191]사이보그는 인간 신체의 외연으로부터 개체화의 경계를 벗어나려 한다. (...) 전기적 신호로 연결된 신체들, 그것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강한 의미에서 하나의 개체인 것이다. 사이보그는 이처럼 인간의 외연을,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경계를 부수어버린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등의 거대한 네트워크-신경망에 의해 연결되고, 카메라 녹음기 등 새로운 감각기관을 덧대어 장착한 채, 수많은 저장장치에 기억된 자료들을 가공하면서 하나처럼 움직이는 대중은 사이보그가 해체한 개체의 자리에서 새로이 출현한 또 다른 양상의 개체다. 거대한 집합적 신체를 갖고,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가로지르며 하나처럼 작동하는 집합적 개체, 수많은 기계와 수많은 유기체가, 모호하지만 그때마다 수렵적인 어떤 조절의 프로세스에 따라 하나처럼 움직이는 이 거대한 집합체, 그것은 거대 네트워크 시대에 새로이 출현한 집합적 사이보그의 또 다른 형상일 것이다.[5]

[R-Commentary]

31. 이 말은 ‘새로운 주체성’이라는 말로 고쳐 써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들뢰즈의 자장 안에서 ‘주체’개념을 쓰지 않고 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사이보그’를 통한 주체의 존재론적 확장과정에서 ‘인간의 미래’는 혁명적 전망을 간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최후의 사이보그

오염과 변조의 존재론[6]

197]오염과 감염은 지금 시대 사이보그의 존재 방식이 되었다. 오염에 의해 자아의 경계를 잃어버리고, 감염에 의해 서 있던 곳에서 이탈하고 그 이탈로 타자들을 감염시키는 것. (...) 기계에 의한 오염, 사물에 의한 오염은 기계가, 상품이 인간의 세계 속에 비약적으로 밀려들어올 때마다 수많은 철학자가 비판하고 경고하던 것 아니었는가! 접속의 시대가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물질성’이라는 저항의 두께가 얇아졌다는 점, ‘복사’나 ‘복제’라는 말이 일반화될 정도로 오염의 폭이 넓어졌다는 점, 그리하여 애초의 원본이 무엇인지, 복제 이전의 ‘원형’이 원래 있던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접속의 시대는 일반[198]화된 오염의 시대다.

(...) 소통은 항상-이미 오염된 정보의 소통일 뿐 아니라 오염시키는 정보의 소통이며, 따라서 오염의 소통이라고 말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따라서 ‘소통’이라는 말은 접속의 시대를 담기엔 매우 부적절한 말이다.

(...) 소통은 없다. 오염과 감염이 있을 뿐이다. 소통은 없다. 변조와 변형이 있을 뿐이다.

(...) 변조란 오염되는 것 이상으로 오염시키는, 주어진 것을 초과하는 변형의 과정이다. 변조는 오염의 시대에 ‘나’를 구성하고 다시 구성하는 일반화된 방법이다. 문제는 오염이나 감염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염과 감염을 초과하는 변조능력을 가동하는 것이[199]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신체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구성하는 것이다. ‘주체’라는 오래된 개념은 이 변조를 통해 그때마다 새로이 구성되는, 변조 과정의 결과물을 지칭하는 방식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R-Commentary]

32. 언제나 그렇듯이 이념이 제 역할을 하고 물러나면 전략이 중요하게 된다. 이 ‘변조능력’의 정체는 무엇일까?

[199]‘정보’라는 말[은] (...) ‘형태를 부여하다(informare)’라는 말에서 파생되었음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 그것은 어떤 것도 있는 그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특정한 형태로, 어떤 형식에 의해 포섭된 방식으로 알려주며, 그 소재 이상으로 형식을 전달한다. 알려지는 내용은 항상-이미 형식화된 내용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앞서 그랬듯이 정보란 오염이며, 항상 오염되었다는 것 (...)

[200]정보보다 먼저 형식이, 그 ‘정보’를 틀 짓는 잉여적인(redundant) 것이 먼저 전달된다. 내가 채취하여 수행하는 정보의 변조는 그런 잉여성에서 자유롭지 않다. 채취한 정보를 따라다니거나 그것이 배제하는 다른 정보들과의 연결고리들에 매이고 오염되며 변조한다.

상식이라고 불리는 통념이나 ‘이데올로기’, 혹은 이런저런 종류의 지식이 정보 변조라는 종합의 과정에 항상-이미 개입한다.

(...)정보변조가 항상-이미 권력의 문제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사이보그의 작동/활동은 존재론적 층위에서 이미 정치적인 것이다. (...)[201]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떤 선을 따라갈지, 어떤 선을 그릴지를 끊임없이 다시 묻고 다시 그리는 것일 게다. 전복을 꿈꾸는 사이보그로서.

[R-Commentary]

33. 이 ‘선’은 분명 ‘전복의 선’이다. 이미 정치적인 개체성으로서의 사이보그-우리는 무엇보다 ‘신체’의 층위에서 이 선을 그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전략이다. 아니면 혹시 나는 이 ‘전략’이라는 단어를 옛 방식대로 이해하면서 질문의 포지션을 잘못 정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전략’, 그 사이보그의 전략은 어떤 것인가?

6장 온코마우스: 시뮬라크르의 정치학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들

인간, 목적론적 초월자

[215]인간이 이런 환상[목적성의, 초월성의 환상]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런 것인지 이해하긴 어렵지 않다. 하지만 환상은 실재를 가린다. ‘인간’의 얼굴로 목적성의 부재를 가리고, 목적의 초월성으로 목적과 수단의 내재성을 가린다. 자신이 많은 경우 수단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다는 오인을 야기한다. 그것이 존재를 보이지 않게 한다. 인간은 존재의 의미에 관심을 갖기에 존재의 의미를 보지 못하는 존재다.

[217]목적론은 미래/도래의 시제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규정한다. 현재에 항상 작용하고 있는 미래, 그것은 목적의 시간성이다. 도래할 것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형성할 때, 그 목적의 시간성 속에서,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은 목적성의 환상 속에 빠져든다. 언제나 목적일 수 있으리라는 환상의 세계 속으로 불려 들어간다. 그러나 존재에 눈을 돌린다는 것은, 때로는 목적으로, 때로는 수단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존재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일 게다. 그것은 때로는 목적으로서, 때로는 수단으로서 현재를 현재로 긍정하는 것일 테고, 그때그때의 현재에 매진하는 것이다. 그러한 현재를 통해 형성되는 어떤 포텐셜의 잠재성을 믿는 것이다. 미래란 그 잠재성의 포텐셜이 도래할 어떤 사건들과 만나며 펼쳐지는 가능성의 장일 것이다. 수다하게 열린.

[R-Commentary]

34. 윤리학, 또는 정치학으로 가는 문턱. 하지만 이 문턱에서부터 잠재성의 포텐셜이 어떤 선을 그릴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과연 어떤 선인가? ‘전복의 선’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단으로서의 생명

원본과 복제

[231]복제는 원본을 모델로 하지만, 항상 원본을 초과하는 경향을 갖는다. 온코마우스 또한 그러하다고 말해야 한다. 생쥐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복제하여 생산하는 것은, 원본에 없는 어떤 것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 암세포를 갖고 태어난 생쥐란 보통의 생쥐보다 명백히 유용한 강점을 갖는다. 여기서도 복제인 온코마우스는 원본인 생쥐보다 좀 더 나은 강점을 갖는다.

[235]질적인 것이든 양적인 것이든, 복제의 초과는 복제가 원본과 경쟁하며 원본을 모방하던 사태를 넘어선다. (...) 원본은, 더는 복제가 지향하는 목표가 아니다. 차라리 원본은 복제의 소재가 되거나 변형의 대상이 된다. 복제는 원본으로부터 이탈해 자신의 길을 가기 시작하며, 원본과의 거리를 통해 자신의 원본됨을 주장한다. 복제가 원본을 초과하는 또 다른 원본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R-Commentary]

35. 이 단락에서 중요한 것은 ‘거리’라는 이 개념으로 보인다. 다른 구절들은 익숙하다. ‘거리’ ... ‘거리를 통해’ 원본이 된다, 는 것. 이때 ‘거리’는 무엇인가? 망각? 또는 혼잡함과 소음? 백색희망? 중요하다, 중요하다...

물질성의 저항: 목적론의 외부

[239]절망을 직시하고 그 절망을 긍정하는 것, 살아 있는 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기대를 그 절망에 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재난에, 합목적성을 이탈하여 되돌아온 물질성의 저항에, 거대하게 증폭된 이탈에, 정신의 간교함을 흘러넘치는 그 거대한 범람에 몸을 싣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것이 이성의 한 형식이라고 덧붙일 때조차 절망의 이유는, 외부성은 그것을 이탈하고 벗어날 것이다. 정신으로, 이성으로 환원불가능한 그 무능력의 지대를 주시하고, 그것을 다시 또 우리의 목적성에 쓸어 담기보다는 그것이 자신의 길을 가도록, 목적성[240]의 외부지대를 형성하도록 맡겨두는 편이, 그러기 위해 충분히 절망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R-Commentary]

36. 무의식, 이데올로기의 거대한 하부구조, 경제 결정론을 항상 흘러넘치는 욕망의 기계적 흐름들 ...

지하의 오이코스

[240]‘오이코스(oikos)’, 그것은 수단으로서의 존재자가 사는 거처다. ‘인간’들의 삶을 결정하는 목적성의 영역을 위하여, ‘인간’들이 ‘폴리스(polis)’라고 불리는 그 고상한 세계에 들어갈 충분한 자격을 갖추도록 노예가 되고 그림자가 되어 주인의 합목적성에 복무해야 하는 자들의 거처다. (...) 필연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이에 반해 폴리스는 생계의 문제에서 자유로운, 그렇기에 자유에 대해 논하고 자유를 위한 정치를 논하는 영역이며, 명예를 위해 자신의 삶을 거는 고상한 세계다. 하지만 (...) [241]폴리스가 고상할 수 있는 것은 오이코스의 비천함에 발 딛고 섰기 때문이다.

[R-Commentary]

37. 오이코스는 필연성이 지배하는 세계, 외부로부터 강제된 목적론이 삶을 쥐고 흔드는 세계이며, 폴리스는 오이코스의 비천함을 항구화하기 위한 이성의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관계는 금새 역전될 수 있다. 필연성이 자유를 압도하는 단계, 폴리스에 비천함이 전염되는 단계, 형이상학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우연’이 필연성 범주를 덮치는 니체적인 주사위 놀이, 기독교라는 계시의 우연성이 로마라는 잘 기획된 제국을 오염시키는 그 단계 ... 정념(복수, ressentiment)이, 디오뉘소스가 ...

7장 페티시스트: 사랑의 존재론 혹은 페티시즘으로의 초대

매혹과 사랑

[254]‘사랑’이라는 말이 이런 매혹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빈번하게 사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이란 매혹에 의해 야기된 감정이다. (...) 사랑이 마치 자신의 능동적 선택이라도 되는 양 능동적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경우에도 그것은 매혹에 대한 반응을 표시할 뿐이다.

(...) 무언가에 매혹되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감정을 고양하는 것이라고 해도 사실은 상승과 고양의 운동이 아니라 하강과 침몰의 운동을 야기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 타락하고 오염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 [255]그것은 자아를 찾는 여정이 아니라, 자아를 떠나 뜻하지 않은 곳으로 가는 여행이다. 매혹의 강도, 사랑의 강도는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그 거리에 의해 정의될 것이다.

[R-Commentary]

38. 최초의 ‘매혹’은 어디로 간 것일까? 그것을 찾는 것이 주요할 것이다. 프루스트의 ‘되찾은 시간’은 그러한 것이 아닐까?

[256]정신없는 사랑은 (...) 수동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 자아를 회복하고 자신의 지고성을 되찾기 위한 게임을 시작한다. 자신이 매혹되었던 대상을 자기 가까이에 붙잡아두고자 하며, 그것에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고자 한다. 자아와 타자의 변증법 속에서 매혹은 ‘사랑’에게, ‘나의 사랑’에게 자리를 내주게 될 것이다. 시간은 매혹보다는 ‘정신’의 편인 셈이다.

[R-Commentary]

39. 매혹의 편인 시간도 물론 존재할 것이다. 이때 시간은 공간화된 시간이 아니라 개체의 변용을 가능하게 하고, 또 스스로 변용을 통해 구성되는 시간, 잠재적이며 표현적인 그런 시간일 것이다.

탈생식화된 성욕

[261]성욕이 음지에서 벗어나 ‘발전’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아마도 1929년의 대공황이었을 것이다. 전 세계로 파급된 유례 없는 규모의 그 공황은 프로테스탄트적 금욕주의와 포드 공장의 어셈블리 라인으로 상징되는 대량생산 간의 모순이 더는 공존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징후적 사건이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이제 절약 대신 소비를 촉구해야 했다. 소비를 위해 ‘수요’에 필요한 돈을 풀어야 했다. 뉴딜이 그를 위한 ‘정치적’ 출구였다면, 케인즈주의는 그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이었다. 어느 쪽이든 대중의 소비를 투자유인으로 삼는 것, 그를 위해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직접적 목표로 하고 있었다. 금욕주의라는 억제된 욕망의 체제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이다.

[R-Commentary]

40. 경제사는 소비와 긴축 또는 내핍의 순환 과정이다. 이를 베버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금욕과 쾌락의 순환일 것이다. 경제는 곧 윤리학을 위한 새로운 자양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케인즈는 모순적인 금욕주의자들, 키니코스들 중 한 인물일 수도 있다.

젠더와 성

[268]성이나 성적 신체가 구성적인 것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자연이라는 영역을 지우는 것은 적절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런 발상에는 자연적인 것은 불변적이고 문화적인 것은 가변적이라는 관념이 전제되어 있다.

(...) 성의 이항적 관념을 비판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것을 문화의 영역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자연적 성의 개념이 ‘생물학적 차원’에서 구성되는 것임을 보는 것이다; 성적 이항성이 구성된 것임을 말하기 위해 생물학적 성질이나 기능을 추방해버리는 게 아니라, 생물학적 차원에서도 그 이항성이 부적절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R-Commentary]

41. 이러한 ‘구성주의’가 가지는 강점은 확실히 존재론적 지평을 유사-물활론에 근접시킨다는 것에 있다. 이때 물활론은 어떤 존속하는 실체(substratum)를 가정하기보다 존속 그 자체를 영속적인 유동성의 상태에 놓아둔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별성이 관계 안에서 변용되게 한다.

수많은 성들

[278]우리의 신체는 수많은 분자적 성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개체고, 그렇기에 지극히 다양한 성적 조성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이 변함에 따라 이런저런 ‘중간적’ 상태를 오가는 가변성 속에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 성적 행위는 단지 수정이라는 목적에 귀착하는 수단이 아니다. 그렇지만 수정이라는 목적을 떠날 줄 모르는 목적론적 사고는 모든 사랑의 행위를 ‘결국은 2개의 성’으로 분할하고 이성애로 귀착시킨다. 생식 내지 수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한,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론처럼 보일 것이다.

(...)[279]유기체의 생식기관을 벗어나서는 그 속에 들끓는 수많은 분자적 성의 움직임을 보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성애주의가 ‘자연적 본성’, ‘자연적 실체성’으로 보이게 되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R-Commentary]

42. schizophrenia, 즉 분열증적 성

두 가지 페티시즘

페티시즘으로의 초대

8장 프레카리아트: 프롤레타리아트의 불가능성

귀속과 이탈

[308]그들[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의 노동자라는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방식으로 포함되어 있다. (...) 이들은 모두 소속과 포함의 뚜렷한 외연을 더럽히고 지워서 모호하게 만든다. 사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모든 존재자는 이미 이전에 자신이 속해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아직 자신이 소속되어 있지 않은 상태로 가는 도중에 있다.이들을 소속이나 포함으로 다루는 것은 이들이 변화를 시작하기 전의 ‘신원’으로 이들의 변화를 환원하는 것이거나, 이들이 ‘결국은’ 귀착될 결과로 이들의 존재를 귀속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나 변이에서 본질적인 것은 이들이 주어진 자리에서 이탈한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변이와 변화를 자신의 ‘본성’으로 하는 존재자는 귀속이 아닌 이탈의 벡터를 통해 그 존재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R-Commentary]

43. 그래서 항상 문제는 ‘이동’이며 ‘잠재성’이며, ‘방향’이다. 일상이든 존재론이든. 탈주의 벡터

대중 혹은 ‘소속’과 ‘포함’의 문제

[311]대중은, 굳이 바디우식 용어로 말하자면, 상황에 소속되지만 소속에서 이탈하는 자들의 ‘집합’이고, 상황의 부분에 포함되지만 그 부분에서 벗어나는 자들의 ‘집합’이다. (...) 항상 이동하고 이탈 중인 존재자들의 무리, 항상 뒤섞이며 혼합되는 존재자들의 무리는, 처음부터 소속과 포함의 정연한 존재론에서 벗어나는 자들이다. 그것은 점들 간의 일대일대응을 통해 사고하는 집합론과 달리, 처음부터 점에서 벗어나는 점이고, 선을 그리는 존재자들이다.

[313]그[바디우]가 이런 경우를 상정했던 것은 그에게 사건이란 전에 없던 것의 ‘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건의 출현을 다루기 위해 그는 소속/포함의 교차 개념 대신 ‘사건적 장소’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사건적 장소란 사건이 출현하는 그 “장소에 속하는 원소와 사건 자체를 [314]원소로 하는 집합”으로 정의되며, ‘사건의 수학소’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장소에 속한다는 점에서 상황에 속하지만, 상황에서 벗어나는 사건 자체를 원소로 하기에 상황에 속하지 않는다. (...) 따라서 “사건에 대해 존재론은 어떤 말할 것도 갖고 있지 않다”고하는 것은 이런 의미일 것이다. 이는 이탈이나 침입을 다룰 수 없는 소속과 포함의 개념이 갖는 난점을 뜻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은 소속과 포함을 통해 존재를 포착하는 ‘귀속의 존재론’에 한정된[315]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탈이나 침입의 선을 다루는 존재론, 변이나 생성, 출현이나 소멸을 다루는 ‘이탈의 존재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소속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형성되는 대중에 대해서도, 소속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소속하는 사건에 대해서도 충분히 말할 것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R-Commentary]

43. 그래서 항상 문제는 ‘이동’이며 ‘잠재성’이며, ‘방향’이다. 일상이든 존재론이든. 탈주의 벡터

44. 대중으로의 회귀, 하지만 그것이 mass라는 것은 변함없다. 물론 mass에서 시작되고 그것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더 많으며, 그래왔다. 하지만 그들은 또한 people이 됨으로써 소속되며, proletariat가 됨으로써 군대가 된다. 하지만 다시 이탈, 탈주. 분명한 것은 탈주의 벡터만으로도 또는 정주의 집합론만으로도 ‘혁명이라는 이 생물’(뒤집어진 리바이어던?)을 정의내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중과 계급

[319]계급이 귀속의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작용한다’면, 즉 ‘존재한다’면 대중은 이탈의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구성하고 작용한다. (...) 물론 노동자는 쉽게 대중이 되며, 대중 또한 그렇다. (...) 2008년 촛불시위 후반기에 거리에서 보았던 것처럼, 노동자가 대중 속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노동자-대중은 대중의 흐름과는 섞이지 않은 독립된 덩어리로 움직이고, 따로 놀며 층류화된다. 대중이 노동자가 되는 경우 그 덩어리는 해체되어 하나하나 세어지고 선별되며, 정해진 지위와 역할에 대응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를 얻는다.

[320]대중의 창출은, 소속과 지위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무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소속된 것으로 개개인을 귀속시켜 조직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무리의 창출을 뜻한다. 이들이 그 당시[영국 엔클로저 당시] 사회의 가장 중요한 ‘불안 요인’이었고, 사회 전체를 불안하게 만들던 자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불온한 자들’이었다.

(...) [321]그러한 무산자대중은 자본이 존재하는 어디에나 항상-이미 있다고 해야 한다.

[R-Commentary]

45. 이 사실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섬세하게 들여다 보면 대중과 계급의 이러한 상호교환과 층류화는 애초부터 그 두 계열이 식별불가능한 지점에서 서로의 입자를 주고 받는 것을 통해 생성의 과정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치적 개체는 어느 한 집합 안에 귀속되는 방식이 아니라 사건의 도약이 일어나는 지점지점마다 변용되고, 변용함으로써 서로에게 기쁨의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계급과 대중은 정치-윤리적 이념의 동선이다. 이것은 연대라기보다 거리의 확인이다.

대항계급 혹은 가능한 계급

[325]그것은[맑스의 프롤레타리아 발명] 혁명적 대중의 흐름에서 그 흐름을 혁명적 권력의 장악 내지 구성으로 인도할 명확한 계급으로 조직해야 한다는 절박한 감정에서 기인할 것이다. (...) 그것은 부르주아지 계급에 대항하기 위한 계급이고, 부르주아지 계급에 포섭되어 자본화된 노동자(가변자본)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할 계급이 뿐 아니라, 계급의 존재 자체에 대항하기 위한 계급이라는 점에서 대항계급(counter-class) 혹은 반계급(anti-class)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328]대항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미 ‘있는’ 계급이 아니라 아직 부재하는, 만들어져야 하는 계급이다. 아직 없지만 만들 수 있는 객관적 가능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가능한 계급’이라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개인들이 ‘계급의식화’를 통해 도달 가능한 한계치라는 점에서 ‘가능한 계급’을 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것은 해방의 가능성을 담지한 계급, 새로운 사회를 지배할 가능성을 담지한 계급이라는 의미 또한 부가될 수 있을 것이다.

[331]역사는 ‘가능한 계급’ 개념에 포함된 가능성이 또 다른 가능성들을 오직 하나의 ‘객관적’ 가능성에 귀속시켜버릴 수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이탈하는 선들이 갖는 잠재력을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가 도래할 가능성을 아예 소거해버린 것은 아닌가 묻게 해주었다. 대중의 흐름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항계급, 가능한 계급에 멈춰 있을 수 없는 것은, 대중의 흐름을 반복하여 주목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R-Commentary]

46. 이 논의는 목적론의 함량이 높다.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를 ‘가능성’으로 규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방식, 그로인해 결국은 하나의 ‘형상’ 또는 ‘이데아’로 정위하는 방식이 아니라, 계급의 내적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탈신비화함으로써 ‘현실성’과 표면의 효과로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맑스의 호명을 따라 대지에 번져 가는 바로 그 존재, 또는 스피노자-네그리식으로 말하자면 기쁨의 코뮤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보다 심층에는 계급과 대중이 교환과정(혹은 다른 무엇?)이 있다.

프레카리아트: 비계급화하는 계급

[333]고용의 유연성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그 결과 ‘유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축적체계가 전 지구적 스케일로 만들어졌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을 뜻하는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를 합쳐 만든 이 단어가 출현한 것은 이런 조건에서였다. (...)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속한 증가가 그것이다. (...) 더불어 프레카리아트가 노동자계급을 잠식해 들어가 노동자계급 전체의 존재방식을 바꾸어놓고 있다.[7]

[335]프레카리아트는 명확한 소속과 뚜렷한 구별을 특징으로 하는 노동자계급과 그러한 소속이나 위치에서 이탈하는 선을 그리는 비계급 대중 사이에 있다. (...) 따라서 프[336]레카리아트란 비계급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계급이라고 해야 적절할 것이다. 그것은 와해되기 시작한 노동자계급이고, 와해된 지점에서 계급의 경계 밖으로 흘러나가는 노동자계급이다. (...) 이 계급 아닌 계급을 ‘탈계급’(post-class)이라고 명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경우 ‘탈’이란 말은 post라는 말이 표현하듯이 노동자계급 ‘다음’에 오는 것을 지칭한다고 해도 좋겠지만, ‘벗어남’을 뜻하는 ‘탈’이란 단어 그대로 현행적인 계급적 조건에 포함된 이탈의 벡터를 지칭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338]프레카리아트란 불안정한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불안정하게 만드는 계급이다. 노동자계급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계급이고, 계급적 규정 자체를 동요시키고 지우는 계급이다. 비움의 포텐셜로 노동자계급을 계급에서 이탈하도록 만드는 계급이다. 계급이기를 중단한 계급이다. 따라서 여기에 ‘불온한 것’이란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극히 타당한 일일 것이다. (...) 그런 방식으로 불온성의 벡터를 가동하는 존재자다. 프레카리아트의 존재에서, 불안정에서 불온성으로의 힘의 이동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R-Commentary]

47.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러니까 이 지점이다. 이탈의 벡터가 담지하는 강도에 따라 결정되는 ‘무엇’. 아래 발췌문도 참조. 따라서 이진경의 ‘불온성’은 이탈의 벡터, 그 강도의 문제가 된다.

불가능한 계급, 프롤레타리아트

[339]프레카리아트는, 노동자계급의 경계를 흘러넘치며 그 규정을 지우고 비워낸 것처럼, 대항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리라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에 존재론적 변위를 가해야 한다. 노동자 계급 내부에 유동성을 끌어들이는 프레카리아트의 이탈의 벡터를 통해, 노동자를 계급과 비계급 사이의 공간으로 밀어넣는 그 ‘비움의 포텐셜’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를 재정의하고 다시 사유하게 해야 한다.

(...) 부르주아지에 대항해 권력장악을 목표로 하는 경우조차, 주어진 자리에서 주어지는 명령을 엄격한 규율로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관철하는 ‘노동자의 군대’가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과 조건, 만남의 양상 속에서 이탈의 벡터를 가동하며 뜻하지 않은 역할에 말려들어가는 그런 (반)계급이 있을 수 있지 않을[340]까? (...) 기관에서 이탈해 다른 ‘기계’로 변환되며 탈영토화하는 투쟁기계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계급적 규정에서 대중의 무규정성이 작동하게 하는 계급이. 조직 안에서까지 대중적 유동성이 유효하게 가동되게 하는 그런 계급이.

[R-Commentary]

48. 관접을 ‘사회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이러한 전략에서 핵심이다. 프레카리아트를 공장에 가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변위’는 ‘사회적 프롤레타리아트’(네그리)와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치론의 붕괴’를 다룰 수도 있다. 혹, ‘이탈의 벡터’, ‘비움의 포텐셜’은 이 포스트적인 사태와 관련 있는 것은 아닐까?

[341]무한히 연기되는 프롤레타리아트. 이제 프롤레타리아트는 총체성을 갖는 완결된 전체가 아니라 결코 완결될 수 없다는 점에서 전체화될 수 없는 계급이 될 것이다. 비-전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

[342]그것은 가능성의 끝이라는 이름으로 특권화되는 하나의 프롤레타리아트 규정을 반복하여 비우고 다시 지우는 방식으로 존재하는 프롤레타리아트란 점에서 ‘가능한 계급’이 아니라 ‘불가능한 계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영원히 되돌아오는 프롤레타리아트 (...) 프롤레타리아트를 끊임없이 비워내고 재탄생하게 하는 이 영원한 반복에 우리는 맑스가 제안했던 ‘영구혁명’이라는 개념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R-Commentary]

49. 에필로그 바로 앞의 전체 내용 마지막 부분을 ‘프레카리아트’보다 ‘프롤레타리아트’로 마무리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에필로그-출구 혹은 입구

[358]불온한 것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낯설고 불편했던 것들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반대로 익숙해지는 것보다 빠르게 그것들과 낯설어지고, 익숙했던 것들마저 다시 낯설고 불편하게 만나는 것이다. (...) 어떤 낯선 것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열린 감각’을 갖는 것 이상으로 낯섦 자체를 자신의 감각으로 만드는 것이고, 모든 익숙한 것을 다시 낯선 것으로 만날 수 있는 ‘미친 감각’을 갖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모든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고, 그 낯섦을 통해 인근의 인접한 자들을 하나둘 뜻하지 않은 바다로 끌고 들어가 침수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R-Commentary]

50. 책의 마지막 단락이다. 여기서 희안하게도 내가 ‘러시아 형식주의’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농담이 될까? 불온성의 정치학=낯설게 하기.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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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년 7월 15일 ~ 1940년 9월 27일)은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또한 비판이론의 프랑크푸르트 학파와도 관련이 있다.

생애

발터 벤야민은 1892년 베를린의 샤를로텐부르크에서 고미술품상이었던 아버지 에밀 벤야민(Emil Benjamin, 1856-1926)과 어머니 파울리네(Pauline, 1869-1930)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독일사회에 편입되어 있던 유대인 공동체에 속해 있었고, 그는 유년시절을 베를린에서 보냈는데, 그 시기의 기억은 그의 책인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에 실려 있다. 청년 시절 그는 청년운동으로서의 구스타프 비네켄(Gustav Wyneken)의 그룹에 가담했고 거기서 젊은 시절 친구인 시인 하인레(Christoph Friedrich Heinle)를 만났다.

1912년 프리드리히 왕립학교를 졸업한 이후, 벤야민은 프라이부르크에서 철학, 독문학, 미술사 공부를 시작하였고 베를린으로 옮겨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1914년 8월 8일 그의 친구인 하인레의 자살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이었고, 벤야민은 그의 죽은 친구를 위해서 시를 지어서 바치고 하인레의 유작을 출판해주고자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15년 점차 높아지는 전쟁열 때문에 그는 스승이었던 비네켄과 작별하게 된다. 같은 해, 벤야민은 자신보다 4살 어린 수학도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을 알게 되고 그와 평생 친구로 남는다. 1917년 도라 켈너(Dora Kellner)와 결혼하였지만, 결혼생활은 13년 만에 파경에 이르고 둘 사이에는 아들 슈테판 라파엘(Stefan Rafael, 1918-1972)이 있다. 결혼과 함께 (또한 점차 높아지는 징병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베른으로 이동, 2년후 리하르트 헤르베르츠(Richard Herbertz)의 지도 아래 그의 박사학위인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비평 개념>을 완성한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 이후, 벤야민은 자유기고가와 독립출판가로 활동한다. 1921년 보들레르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번역가의 역할"이라는 에세이를 책 서두에 넣는다. 그가 같은해 출판한 철학 에세이인 "폭력의 비평"은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다. 앙겔루스 노부스(Angelus Novus)라는 잡지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1923년, 24년 교수자격 심사 논문을 제출하고자 프랑크푸르트로 떠난다. 거기서 벤야민은 그보다 어린 아도르노(Theodor Adorno), 크라카우어(Siegfried Kracauer)와 친분을 쌓는다. 그의 교수자격 논문인 <독일비극의 원천>은 벤야민이 기존의 학술계과 비교해서 상당히 파격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벤야민은 이 논문이 심사에서 공식적으로 탈락되는 것만은 피하기 위해서 1925년 스스로 교수자격 논문제출을 포기한다.

1926년에서 27년까지 벤야민은 파리에서 지내면서 프란츠 헤셀(Franz Hessel)과 함께 프루스트의 작품을 번역하는 일을 한다. 1924년경부터 갖게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은 그를 1926년, 27년 겨울에 모스크바로 향하게 한다. 공산주의운동에 대해서 점점 동정을 하게 됨에 불구하고 벤야민은 평생 동안 그 스스로를 "좌파 아웃사이더"라는 위치를 고수한다.

주요 저작

생전에 나온 작품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비평 개념》, 1920년, 박사학위 논문 Begriff der Kunstkritik in der deutschen Romantik. Verlag A. Francke, Bern 1920, 111s.

보들레르의 파리 | 조형준 옮김| 새물결 펴냄 | 2008 Charles Baudelaire, Tableaux Parisiens. Deutsche Übertragung mit einem Vorwort über die Aufgabe des Übersetzers, französisch und deutsch, Verlag von Richard Weißbach, Heidelberg 1923, XVII+67s.

《일방통행로》새물결, 조형준 옮김, 2007년 Einbahnstraße. Rowohlt, Berlin 1928, 83s.

독일 비애극의 원천 | 최성만 김유동 옮김| 한길사 펴냄 | 2009, 교수자격 제출 논문,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Rowohlt, Berlin 1928, 258s.

《독일인들, 일련의 편지들》, 1936년, 서간 선집, Deutsche Menschen. Eine Folge von Briefen. Auswahl und Einleitungen von Detlef Holz [Pseudonym]. Vita Nova Verlag, Luzern 1936, 116s, Auflage: 500 Expl.

주요 개별 출간물

폭력비판을 위하여, Zur Kritik der Gewalt. In: Archiv für Sozialwissenschaften und Sozialpolitik. 1921 (pdf)

《괴테의 친화력》, 1924년, 에세이, Goethes Wahlverwandtschaften. In: Neue Deutsche Beiträge. 1924/1925

《발터 벤야민의 모스크바 일기》그린비, 김남시 옮김, 2005년, Moskauer Tagebuch, 1926/27

초현실주의 Der Surrealismus. In: Die literarische Welt. 1929

《푸르스트의 이미지》, 1929년, 평론, Zum Bilde Prousts. In: Die literarische Welt. 1929

《칼 크라우스》, 1928년, 작가론 Karl Kraus. In: Frankfurter Zeitung. 1931

《프란츠 카프카》, 1934년, 작가론 Franz Kafka. Zur zehnten Wiederkehr seines Todestages. Auszüge in: Jüdische Rundschau. 21. Dezember und 28. Dezember 1934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1935년, 에세이,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vier Fassungen 1935-1939). In: Zeitschrift für Sozialforschung. 1936 [franz. Übers.] 《현대 사회와 예술》문학과 지성사, 1980년

《얘기꾼. 나콜라이 레스코프의 작품에 대한 고찰》, 1936년, 평론, Der Erzähler. Betrachtungen zum Werk Nikolai Lesskows. In: Orient und Occident. 1936

《수집가이자 역사가로서의 에두아르트 푹스》, 1937년, 평론, 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 In: Zeitschrift für Sozialforschung. 1937

보를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Über einige Motive bei Baudelaire. In: Zeitschrift für Sozialforschung. 1939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1942년, 에세이,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 (1940). In: Walter Benjamin zum Gedächtnis. 1942; Die Neue Rundschau. 1950

《아케이드 프로젝트》새물결, 조형준 옮김, 2005년, Das Passagen-Werk (1928–1929, 1934–1940), hrsg. von Rolf Tiedemann, 2 Bände,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83 [Taschenbuchausgabe] 파리의 원풍경

보들레르의 파리

도시의 산책자

방법으로서의 유토피아

부르주아의 꿈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탄생

《베를린의 유년시절》솔출판사, 1992년, 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1932–1934/1938). Mit einem Nachwort von Theodor W. Adorno und einem editorischen Postskriptum von Rolf Tiedemann. Fassung letzter Hand und Fragmente aus früheren Fassungen.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87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베를린 연대기 | 윤미애 옮김| 길(박우정) 펴냄 | 2007

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Gießener Fassung, hrsg. und mit einem Nachwort von Rolf Tiedemann. Suhrkamp, Frankfurt am Main 2000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민음사, 반성완 옮김, 1983년 《문예비평과 이론》문예출판사, 1989년

벤야민 선집(길 출판사 펴냄)

1.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

2.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3.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 베를린 연대기

4.보를레르의 작품에 나타난 제2제정기의 파리 / 보를레르의 몇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5.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폭력비판을 위하여 / 초현실주의 외

6.언어 일반과 인간의 언어에 대하여 / 번역자의 과제 외

출처: 위키사전

[2]

타니가와 간은 누구인가?

유민의 코뮨을 환시한다-‘운동체’로서의 타니가와 간

1) 타니가와 간의 부활

타니가와 간의 부활의 조짐이 일고 있다(2006 <<서클 마을>>복간, 운동 관계자들의 재평가 작업). 왜 그럴까? 또 어떻게 다시 읽어야 할까? 최근 신자유주의의 진행 속에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난민화, 유민화(비정규노동자, 파견노동자)와 그 속에서의 새로운 코뮨 운동(‘새해 맞기 파견 마을’)의 등장이, 2차 대전 후 주변화되어 가던 민중(광부와 가난한 농어민)과 함께 싸웠던 그 사상과 운동에 다시 주목하게 하고 있다.

그동안 타니가와는 신좌파의 기원이나 원류처럼 읽혀왔다. 2.26 사건의 우익 파토스와 전공투의 신좌익 파토스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타니가와를 읽고 농촌에 뿌리 내린 애국심을 기반으로, 내셔널리즘과 아시아주의로 통하는 관점에서 다시 읽는 시도도 있다(마츠모토 켄이치). 그러나 이건 말도 안 된다(오키나와와 자이니치에 대한 타니가와의 관점). 타니가와 간의 사상은 ‘집단’에 대한 사상이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는 전공투 세대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친 카리스마적 사상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본령은 ‘집단’과 코뮨 활동, 그것을 네트워크해가는 활동에 있었다. 그는 이질적인 것을 이어내는 ‘공작자’로서 사람들을 움직이고, 그 속에서 자신 또한 변해갔다. 50년대 전반 비주류 국제파에 속해 있던 타니가와는 ‘공작자’라는 키워드를 다시금 내걸어 당과 민중의 틈에서 새로이 ‘집단’ 형성을 시작한 것이다.

2) 우에노와 모리사키와의 연관과 결별

‘침묵’의 우에노와 ‘요설’의 타니가와 사이에는 감성의 차이가 짙게 있었다. 우에노는 ‘타이쇼 행동대’와 ‘타이쇼 광업 퇴직자 동맹’의 활동에 대해 “저것은 룸펜 프롤레타리아를 모은 타니가와 씨의 놀이”라고 야유한 적이 있다.

모리사키는 나카마 시의 여성들과 함께 서클 잡지를 내고 있었고, 머리만 굵은 남자들과는 다른 여성들의 생활에 대한 실감 속에서 어떻게 말이 직조될 수 있는지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활동하고 있었기에, ‘요설’스런운 지식인인 타니가와의 ‘말의 폭력’에 대해 쓰디쓴 비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리사키가 전하는 일화(“말로 노동자를 낚는 놈으 죽여버리겠다!”며 타니가와를 식칼로 위협했던 젊은 광부)와 타니가와의 도쿄로의 이주를 두고, 노동자의 생활세계로부터 괴리된 타니가와가 좌절 속에서 철수했다는 식으로 상투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와 함께 ‘타이쇼 투쟁’을 만들어 낸 ‘동지’들은 자신들과 타니가와는 노동자와 지식이라는 관계로 사귀었던 것도 아니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동지’로 대등하게 활동했다고 증언한다. 그 동지들은 타니가와가 ‘자립건설’운동이 궤도에 오르면서 실업 광부들이 자립해갔기에 할 일이 없어졌고, 그래서 그곳을 떠난 것은 아닌가라고 증언한다. 노동자 속에 들어가려다 못한 지식인이 철수했다는 틀에 박힌 스토리를 만들어버리면 실제로 ‘자립’해갔던 이런 노동자의 관점이 누락돼 버린다.

3) 라보 교육운동으로부터 ‘모노가타리 문화회’로

중 산계급의 안정된 가정과 아이들로 그 계급적 기반은 바뀌었지만, 타니가와에게 있어서는 라보교육운동 역시 집단, 코뮨을 만들어내면서 그 속에서 주체성과 감수성을 변환시켜가는 운동체였다. (68년부터 71년에 걸친 ‘테크 쟁의’ 시 타니가와가 보여준 ‘변절’은 라보 또한 운동체라는 생각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인체교향극’에서 출현하는 것은 바로 시시각각 유동해가는 일시적인 코뮨이다. 고도성장 하에서 많은 노동자가 일본형 경영의 기업체에 편입되어 춘투로 편안하게 임금투쟁을 하는 노사협조시스템이 확립되어 가던 시기, 타나가와는 그 속에서 노동자의 감수성에서의 어떤 변질을 보고 있다. 머리는 전투적인 좌익의 마음으로 있지만 신체의 감수성은 고도성장기의 소비사회의 욕망에 말려들어가 있는 것. 타니가와는 그것에 저항하는 자립적 감수성을 어떻게 직조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는 그 키를 언어, 이야기에서 찾아냈고, 이야기를 해독해가는 아이들의 감수성 속에서 가능성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타니가와는 강렬한 개성을 갖는 카리스마가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사상운동을 사적 소유로부터 해방시켜가는 ‘사상의 무서명성’을 향한 갈망을 볼 수도 있다(모순 덩어리 같은 존재로서 타니가와 간이라는 ‘공작자’, ‘운동체’).

4) 환영의 혁명정부에 대해서(타니가와 간)

나는 내 생애에 어떤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만들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여러 개의 자아와 그런 자아의 생산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당적(黨籍)은 과거를 포함하고 현재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반쪽 증명서에 불과하다.

(눈이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거울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하나의 논리가 자신을 보기 위해서는 이질적인 반사 장치, 즉 또 다른 논리를 필요로 한다. 서로 완전히 배척하는 뿌리를 갖고 있지만, 마치 서로 분신인 것처럼 닮아 있는 두 논리(가령 불교의 무상관(無常觀)과 레닌의 국가 사멸론, 관념론과 유물론), 이 대조되는 논리를 서로 맞물려 보면 그 범주 주변에 있는 애매한 영역이 떠오를 것이다. 만약 그 애매함이 행위를 통해 뛰어넘을 수 있는 허용 한도 내의 것이라면, 오히려 뛰어넘는 것이 틈의 넓이를 알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측량법일 것이다(가령, 일본 민중의 불교적 무상관을 관념론이라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레닌적 국가 사멸론으로 이끌 수 있다?) 한 개의 사상을 표현하는 복수의 형식이 가능하다. 한 사상의 골격을 이루는 주요한 논리는 반대 측면에서 어떤 충전을 받지 못한다면 행위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없다. 적절한 보충을 얻지 못해 생명체가 될 수 없었던 최고의 지적 산물이 (민중 속에) ‘무수히’ 존재한다(‘민중의 추상 능력’).

혁명가를 이상화하는 이러저러한 특징의 반대 속성을 집중시켜 하나의 인간을 만들어 내보자. 만약 그 인간이 ‘자아’나 ‘혁명’과 같은 것들과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면, 그 인간은 과연 어떠한 성질의 침묵을 소유하고 있을 것인가?(완전한 침묵 속에 있을 것이다.) 완전히 수동적인 몸을 지닌 인간, 가능한 것이라고는 침묵과 거절 밖에 없는 듯한 그런 인간, 이런 인간이야말로 흙 속의 흙, 돌 속의 돌, 이 세상에서 가장 민감하게 갈고 닦여 맑아진 정지(靜止)한 거울이다.

현대는 그 한쪽 극에서 모순 해결에 대한 책임을 주체적으로 짊어진 정치적이고 논리적인 전위(플러스의 전위)를 낳은 시대였다. 그러나 자칫하면 이것은 피라미드식 의식으로 전락하고 만다. 스스로를 의식의 극에 위치시키면서 부단히 그것과 대립하는 극과 연결하려는 조직체가 전위라면, 민중의 의식 밑바닥에는 반동사상을 가장 높고 가장 날카롭게 반영하고 있는 곳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곳에 미래를 지향하는 태아가, 어떤 초발운동을 하고 있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이다. 반동사상의 뿌리가 그 자체로 혁명사상의 맹아가 되는 관계…모방과 부정, 즉 비유의 탄력을 통해 이질적인 가치체계 사이를 이동하고 역행하는 미시적 지점(또는 순간)의 존재를 그 누가 거부할 수 있을까?

이 세상의 마이너스 극한, 잠재적 에너지의 우물, 이것을 나는 원점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것은 결코 후위도 반동도 아니다. 그것은 부호를 달리하는 전위(마이너스 전위)라고 보아야 한다(민중의 잠재성에 대한 무한한 믿음). 전위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후위를 타격함으로써 후위로부터 타격 받아야 한다(대중추수주의에 대한 비판). 따라서 전위의 책임은 최초로 점화하는 책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전위는 자신에게 한 순간의 점화 에너지가 내재하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렇다면 마이너스 전위인 원점은 어떻게 자신의 마이너스의 말, 이른바 침묵의 표현을 통해 플러스 전위에게 충격을 줄 수 있을까? 세계의 영상을 뒤집지 않는 한, 현실을 뒤집은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먼저 이미지를 변화시켜라! 이것이 원점의 역학이다. 비록 유물론에 대립할지라도, 민중의 정당한 혁명의 순로는, 물질적인 조건이 변할 때까지 기다려서는 결코 불가능하다(경제결정론, 대중추수주의 비판/ 일공의 ‘평화노선’ 비판).

개성이라는 언어의 속임수에 대해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우리들의 내부란 외부의 힘, 즉 대략 생리적 식염수와 동일한 농도를 가진 것이 집중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원점(감성, 하부의식, 대지, 고향)은 전위(논리, 의식, 기계, 수도)를 대조적으로 뒤집어 놓은 것과 같은 그림자 그림이며, 그것은 전위를 보충하고 수정하고 충전하는 하나의 마이너스 체계가 될 것이다. (기존의 전위와 대중의 ‘변증법적 통일’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전위와 원점이 일순간 통합되는 장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관념과 실재하는 집단을 혼동하는 위험을 범하고 나서야 전진하게 되는 작업이리라. 이른바 탄광, 특수부락, 화산재 지역의 빈농, 한센병, 외딴 섬…이 원점에 대한 믿음은 개별 자아의 틀에 끼워 맞춰진 그 어떤 도취와도 닮지 않은 쾌락으로 지탱되고 있다. 어려운 것은 감각의 다리(를 놓는 것)이다. 마이너스 전위가 아직 열리지도 못한 채 혈류만 밖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성문, 어떻게 그것에 이를 것인가? 요구되는 것은 불완전하고 애매한 소유형태인 사유(私有)로는 채울 수 없는, 강렬한 두 종류의 소유욕(자신의 사유를 버리고 분해해 그 에너지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는 플러스 전위와, 공유라는 형태가 아니면 아주 작은 땅조차 소유할 수 없는 마이너스 전위가 지닌 두 개의 소유욕) 이 포옹하는 고온고압의 상황이다.

나는 감성의 코뮨 권력을 ‘현실’보다 한발 앞서 세우려고 하고 있다. 정치에 종속된 문학이란 이런 식으로서만 종속하는 것이지 않을까? 나는 연대의 왕국을 필요로 한다(또는 연대와 왕국의 일치를 요구한다). 혁명의 마이너스 극, 여기에 나는 정신의 변방 소비에트를 세우고, 환영의 혁명정부를 선언한다. 분명 나는 그들(주류 공산당?)에게 이족(異族)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공민권을 요구한다. 외다리를 찾아 외다리로 걷는다. 어디로? 아무 것도 아닌 곳, 신도 다신 살지 않는 곳, 혁명만이 있어야 할 곳으로. 그러나 거기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 요네타니 마사후미 (변성찬 요약)

출처: 수유위클리 http://suyunomo.net/?p=4913

[3]

이 절을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한 레퍼런스들. 이진경이 직접 언급함 마굴리스와 닉 레인.

*린 마굴리스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년 3월 5일 - 2011년 11월 22일)는 미국의 생물학자로서 매사추세츠 대학 앰허스트(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대학교의 지구과학과 교수이다. 세포 생물학과 매생물의 진화 연구, 지구 시스템 과학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마굴리스는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과학국의 지구생물학과 화학 진화에 관한 상임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했으며, NASA의 지구생물학에 관한 실험들을 지도하였다.

마굴리스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업적은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의 기원을 진핵 세포(eukryotic cell)로 들어간 외부조직 공생적 관계를 이루다 정착했다고 보는 이론이다. (endosymbiosis) 이러한 공생이론 같은 충격적인 가설로 생물학계를 놀라게 했을 뿐 아니라 100여 종의 논문과 더불어 10여권의 책을 펴냈다.

그는 영국 대기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이 주창한 가이아 이론을 지지하며, 가설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또한 칼 세이건의 첫 번째 부인이었으며, 도리언 세이건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번역된 저서들

*닉 레인

닉 레인(Nick Lane)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저명한 과학저술가. 임페리얼칼리지런던에서 생화학을 배운 뒤 왕립시료병원Royal Free Hospital에서 이식 장기의 대사 기능 등에 관해 연구했다(박사학위 취득). 그 후 런던의 의료 관련 멀티미디어 기업을 거쳐 현재는 과학전문지 『네이처』 등에 기고하는 과학저술가로 활약 중이다. 또한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유전·진화·환경 부문에서 미토콘드리아 연구 컨소시엄을 구성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미토콘드리아: 박테리아에서 인간으로, 진화의 숨은 지배자』 『산소: 세상을 만든 분자』가 있다. 레인 박사는 현재 런던에 살고 있으며, www.nick-lane.net을 방문하면 그에 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번역된 저서들

[4]

Roberto Esposito is an Italian philosopher, who is important for his work in biopolitics and his book Communitas.[1] He was featured in the Summer 2006 issue of the journal Diacritics.

reference- http://www.biopolitica.cl/docs/Esposito_Immunization_Violence.pdf

[5]

집합적 개체화에 대한 최근의 좋은 예;

미치도록 기발한 잉여문화

이응일/영화감독/한겨레 2011. 12. 15

디시인사이드에서 시작된 인터넷 놀이 창작물들이 높인 한국 사회 집단창의성 지수

나꼼수(팟캐스트 ‘나는 꼼수다’)가 엄청 떴다. 필자는 그들의 정치폭로 못지않게 반가운 것이 ‘저렴하기 짝이 없는’ 4인방의 입담과 태도이다. ‘봉도사’ 정봉주의 도를 넘는 자기자랑, ‘씨바’로 요약되는 김어준의 건들건들함, ‘목사아들 돼지’ 김용민의 물오른 성대모사, 그리고 ‘누나전문기자’ 주진우의 어눌한 잔소리! 어쩌면 그들은 너무 점잖고 긴장해 피곤한 한국 사회의 정수리에 디오게네스의 감로를 흩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딩 시절부터 몸에 밴 거지 같은 겸양의 미덕 따위 던져버리고 나도 그들처럼 깔대기도 들이대고 어른들 앞에서 ‘씨바 졸라’ 말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개죽이, 소피티아, 싱하횽, 헥토파스칼킥…

나꼼수와 성격은 다르지만 우리에겐 그 이전부터 한바탕 웃음 주시고 스트레스 덜어 주시는 인터넷 ‘짤방’(삭제 방지라는 뜻의 기발한 합성사진) 따위 손수제작물들이 있었다. 대체 이것들은 누가 만들어 올리는 것일까? 그 근원을 추적해 보면 상당수가 ‘디시인사이드’라는 인터넷 커뮤니티다. 그들은 시간을 들여 일견 쓸모없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며 스스로를 잉여라 부른다. 그러므로 그들의 잉여 창작물을 모아 ‘잉여문화’라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초고속 통신망이 아파트 단지마다 파고들고 아이티(IT) 벤처 붐이 일던 시절, 1999년에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가 탄생한다. 처음에는 디지털카메라와 주변기기를 판매하는 쇼핑몰이 본업이고, 여기에 디카 마니아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에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는 갤러리를 개설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좀더 기발하고 재밌는 사진과 댓글을 경쟁적으로 올리더니, 어느 날 그들의 정체성이 선명히 담긴 최초의 발화를 낳았다. ‘아햏햏’.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표현하기 힘든 멍하고 괴상한 기분을 이르는 말. 곧이어 귀엽고도 이상한 디시의 마스코트 ‘개죽이’ 사진 등장.

이를 시작으로 디시는 온갖 해괴한 유행어와 합성사진의 진원지가 되었다. 초기의 햏자, 득햏, 주침야활, 면식수햏, 방법한다, 쌔우다, ~의 압박, 킹왕짱 등에서 최근의 코렁탕, 우왕ㅋ굳ㅋ, 포풍, 시망, ~긔체, 돋다, 병맛, 병림픽, 멘붕(멘탈 붕괴)에 이르기까지…. 나이 지긋하신 독자라도 이 중 한두 개 쯤은 철업ㅂ은(없는) 자식들 입을 통해 들어보셨을 것이다.

또 그들은 단지 유행어를 넘어서 우리말에 전혀 없던 훌륭한 개념어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손발이 오그라든다’. 이는 누군가가 자신이 놀림거리가 되고 있음을 모를때 그것을 보는 이가 괜히 창피해지는 기분을 일컫는다.

합성사진은 초기에 소피티아, 싱하횽, 헥토파스칼킥, 콩나물밥햏 등에서 출발해, 동영상 편집 기술이 보급되면서 동영상 짤방도 생겨났다. 미국의 게이포르노 배우의 민망한 영상을 모아 극단적인 반복 편집으로 재해석한 ‘빌리 헤링턴’ 동영상은 우리를 아스트랄한 세계로 이끈다. 그 만듦새와 전달하는 심상은 가히 첨단의 비디오아트를 뺨친다. ‘고자라니’ 동영상은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내가 고자라니!”라며 절규하는 심영 배우의 처절한 연기를 훔쳐온 것으로, 괴괴하기 짝이 없는 폭소를 자극한다. ‘슈퍼스타케이(K) 락통령 힙통령 리믹스’와 공중강하 체험하는 ‘기자양반’ 동영상도 포복절도를 보장한다.

합성사진, 동영상과 같이 고퀄(높은 품질)의 창작물을 만들지 못하는 디시 갤러(갤러리 유저)들은 댓글놀이에 탐닉한다. ‘늬들 컵라면 먹고 난 다음에 건더기까지 다 먹어라’나 ‘사람은 똥이야! 똥이라고! 히히! 오줌발사!’ 따위의 이상한 댓글을 수백 개씩 도배하는 ‘꾸준글’은 별다른 기술 없이도 쉽게 잉여 문화에 동참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실명이 아닌 ‘닉’(닉네임)으로 활동하면서도 열심히 잉여짓을 하는 것은 오직 즐거움 때문이다. 두근거리면서 반응을 확인하고, 또 큰 호응을 얻은 게시물은 ‘힛갤’(히트 갤러리)이라는 명예의 전당으로 옮겨지는데, 디시인이라면 누구나 힛갤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다. 필자의 닉은 누룽치인데, 작년에 디시에 바친 잉여에스에프(SF)영화 <불청객> 덕분에 드디어 힛갤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렸다.^.^V

현재 디시에는 ‘디시의 수도’ 4대 갤러리-코갤, 야갤, 와갤, 스갤-를 포함, 하위 갤러리와 지난 갤러리를 합쳐 1300여개의 갤러리가 존재한다. 디시는 포털을 제외한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로는 최초로 일일 조회수가 1억회를 돌파한(2007년) 공룡 사이트로 성장한다. 이제 디시는 더이상 마이너에 머물지 않고 ‘인터넷 하위문화의 저수지’라는 평을 들으며 3대 포털과 방송에서도 인용하는 새로운 원전이 되었다.

또한 디시가 커지고 이용자들이 디시인의 정체성을 내면화하면서 다른 커뮤니티와 영향을 주고받거나 오프라인으로 활동이 확대된 사례도 많다. 황우석 논문조작 규명에 과학 갤이 기여한 일이나, 피겨갤에서 안일하기 짝이 없는 빙상연맹을 대신해 김나영 선수를 그랑프리대회에 출전시킨 일, 북한 사이트 ‘우리민족끼리’ 해킹 사건, 일본 니코동, 2ch과 3·1, 8·15 사이버 대전 등등….

디시인사이드가 비록 인터넷 잉여문화의 선두주자지만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이 있다. 디시와 쌍벽을 이루(려 노력하)는 ‘웃긴대학’,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의 패러디 격인 엔하위키와 백괴사전. 또 포털의 특정 게시판이 발전해 자기만의 색깔을 갖기도 한다. 온갖 고민거리, 황당 체험, 귀신과 유에프오(UFO)가 난무하는 네이트 판, 인터넷 토론의 성지 다음 아고라, 자작 웹툰 등 유머의 산실 네이버 붐….

이렇게 미치도록 기발하고 이상한 창작물을 쏟아내는 누리꾼의 잉여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비록 형식의 완성도나 품위 따윈 없지만, 그 속엔 개인이 쉽게 흉내낼 수 없는 번뜩이는 재치, 집요함, 발상의 전환 등이 스며 있다. 필자는 이를 요즘 회자되는 창발성(emergence), 또 ‘집단 지성’에서 가져온 집단 창의성(collective creativity) 개념으로 설명해본다. 한마디로 ‘열 명의 신나는 범재가 뭉치면 한 명의 천재보다 낫다’는 얘기다. 누군가 올린 소스를 다른 이가 고쳐 올리고, 또 누군가 아이디어를 덧대며 좋은 안이 채택되고 발전하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한국의 잉여가 일본 오타쿠와 다른 점

또한 현실세계에서 분절된 개인들의 역량을 가상공간에서 하나로 모아준다는 점에서 ‘아랍의 봄’을 불러온 에스엔에스(SNS)의 힘이 생각나기도 한다. 현실도피적 오타쿠 중심의 일본 잉여와 달리, 한국의 잉여들이 곧잘 현실의 부조리한 풍경들을 재료로 삼고 성스러운 척하는 것들을 조롱한다는 점은 왠지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이제 5년이라는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올 것이다. 추위에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봄이 올 때까지, 그리고 그 봄의 푸른 들판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 흔들리지 않으려면, 명랑하게 씩씩하게 낄낄대며 가자, 자기. <끝>

[6]

이와 관련하여 요절한 시인 이연주의 시편들이 참조될 수 있다.

[7]

프레카리아트에 관해 참고할 만한 번역서.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아마미야 가린 (지은이) | 김미정 (옮긴이) | 미지북스 | 2011-07-15

저자 : 아마미야 가린 (Karin Amamiya): 일본 신사회운동의 기수로 알려진 아마미야 카린의 삶의 이력은 매우 독특하다. 홋카이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10대가 되기 전 따돌림을 경험한 바 있고, 초등학교 때는 레즈비언 행동을 하기도 했으며, 사춘기 시절에는 가출을 일삼으며 비주얼계 밴드를 쫓아다녔다. 한때 인형작가를 지망했지만 건강 문제로 좌절, 손목 긋는 일을 반복. 대학입시에서 떨어지고 재수할 무렵에는 아르바이트 일터에서 며칠 만에 해고되는 일이 연속되자 자포자기,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우익활동에 투신. 극우파 펑크록 밴드 ‘유신적성숙’(維新赤誠塾)을 결성해 보컬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좌파 감독 쓰치야 유타카 감독의 실험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새로운 신〉에 직접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참여하게 되고, 이 자기 반추의 경험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전환. 이후 자신의 파란만장한 체험을 기초로 한 작품 《생지옥 천국》이 주목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한다.

극단을 오간 삶이었지만, 그녀의 감성을 이루는 기반은 ‘고단한 삶’의 경험. 갈수록 심각해지는 격차 사회 속에서 절망적인 처지로 내몰린 젊은 세대 운동에 뛰어들어 왕성한 활동을 전개한다. 빈곤과 생존을 요구하는 운동에는 좌와 우가 없다며 프레카리아트 운동을 주도하면서 이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다.

저서로는 <생지옥 천국>, <자살의 코스트>, <살게 하라! 난민화하는 젊은이들>, <살아내기의 어려움에 대하여>, <살기 위하여 반격하라> 등 3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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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열전 - 저항의 도시공간 뉴욕 이야기 아우또노미아총서 25
이와사부로 코소 지음, 김향수 옮김 / 갈무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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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스로 다중이며, 민중이고 또한 히드라라고 생각하는 모든 맑시스트, 아나키스트들을 위한 전쟁교본과 같다. 코소는 뉴욕의 할렘과 브롱크스, 맨하탄을 오가며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펼쳐 놓는다. 뉴욕이 가지는 자본주의와 마천루의 아우라는 9.11이 상징하는 카타스트로피의 이미지 아래 여지 없이 무너지고 만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도시계획(젠트리피케이션)이 권력이 의도하고,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직면한 뉴욕과 미국 부르주아지의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코소는 자본관계가 결코 노동의 역능을 누락하고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그룬트리세] 이후의 오래된, 하지만 (아카데믹한 맑시즘에 의해) 은폐된 진실을 스냅사진을 보여 주듯이 감각적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인문학의 한 분과로서 '도시인문학'이 우리나라로 들어 오면서, 많은 책들이 번역되었다. 데이비드 하비를 위시한 많은 저자들의 책들이 주로 이론적인 전망을 통해 자본주의 도시문화에서 변혁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일군의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들뢰즈와 가따리의 기여, 벤야민의 유산을 기억하자)을 통해 형이상학적 근거를 마련하는 동안 코소는 직접 자전거를 타고 뉴욕 거리를 누비고 다녔던 것이다. 이건 마치 '이론의 투쟁'(알튀세)이 끝내 감당하지 못하는 어떤 미증유의 영역을 탐사한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코소는 내내 긴장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것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그의 문체는 할렘의 흥겨운 재즈와 더불어 어두운 골목에서 구걸하는 히스페닉들의 헐벗은 손이 금방이라도 느껴질듯 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코소가 들뢰즈와 벤야민에게 많은 부분 빚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난 이 책을 그렇게 읽지 못하겠다. 이 책은 차라리 들뢰즈와 벤야민이 횡단한 지적 지도를 거꾸로 뒤집고, 그들이 차마 걸어 들어가지 못한 '언더그라운드'에서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 그것은 마치 '수염 없는 맑스'를 보는듯 하다. 그리고 그런 장난스런 그라피티는 분명 뉴욕 구석구석 아직 거점을 잃지 않는 수많은 치마타에 실존하며, 그것이 코소가 우리 앞에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론은 회색이며, 흑과 적이 만나는 치마타에선 다중들의 축제와 같은 대공격이 언제나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뉴욕에 사는 히드라들, 그 혁명의 주체들의 춤과 반격일 것이다. - redbrig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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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와 관련자료 정리]

한국어판 서문 : 아직 뵙지 못한 한국의 독자 여러분께 5

서문 : 세계민중 도시로의 초대 13

[29]미국의 보수적 이데올로기는 결국 ‘내륙적 이데올로기’로서 ‘의사(疑似)적 자연생활’ 혹은 ‘교외적’ 생활 형태의 고수를 목적으로 하는 것 같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요한 묵시록에 근거하여 대도시를 종말론적이며 사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오늘날 현실에서 상실된 개척자 시대의 자연과의 접촉, 자연과 직접적으로 격투하는 노동을 신성화한다. 여기에서 이 결정적인 ‘상실’을 임시방편적으로 편리하게 대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쾌적한 ‘교외생활’이다. 이러한 ‘교외생활’을 방어하는 논점에 이르러 비로소 기독교 우파와 석유이권주의자들의 이해관계가 결합한다.

☞기독교 우파, 석유 이권, 부시 정부와 관련 읽을만한 포스팅:

http://blog.naver.com/mystarway?Redirect=Log&logNo=10132132475,

http://www.cyworld.com/rivertree1/2412283,

http://blog.naver.com/qnrkrk?Redirect=Log&logNo=70002446609

『용서받지 못할 자』J. H. 헤스필드 지음, 정지인 역, 시학사 2002, p. 110: 새 법으로 큰 혜택을 얻게 되는 석유사업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하원 법안의 대표적인 지지자는 미들랜드의 공화당 의원이며 부시와 가장 가까운 웨스트 텍사스 고향 친구인 탐 크래딕이다. 크래딕의 재정공개신고서를 보면 면세의 혜택을 받은 유정들 가운데 가장 큰 세 유정에서 그가 챙기는 연간 사용료 수입은 11.00다러에서 34,997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면세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민주당의 케빈 베일리 의원은 기자들에게 부시의 동기는 대통령 출마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비난했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는 주지사 부시는 공화당 내의 특정한 이익집단을 만족시켜야만 했고 석유이권이야말로 공화당원들이 갖고 있는 강력한 이권이다.”

[33]9/11은 틀림없는 카타스트로피였다. 통상적인 용어에 따르면 9/11은 정통적인 의미에서의 ‘파국’(카타스트로피)으로 불러져야 할 것이다. (...) 수직으로 기립하던 건축운동을 단숨에 ‘하나의 사건을 통해 부정’하였다. 즉, 마천루를 만들어 가던 건축방식의 본질이 마천루의 붕괴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 안토니오 네그리, 『다중과 제국』, 갈무리, 2011, pp. 79-80, 다음 구절도 참조:

“그것[9.11 테러]은 실체론적 주권개념이 부적절함을 드러냈다. 주권은 자립적인 실체가 아니며 오히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관계이다. 주권적 권력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그것[80]은 끊임없이 피지배자에 대한 헤게모니를 공고히 하고 재생산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복종하는 자가 명령하는 자만큼이나 주권의 기능과 주권의 이념 자체에서 본질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래서 실체론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식의 주권의 배타적 원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 미국 정부는 주권의 자립적 원천이 아니라 주권의 현재 형태를 정의하는 전지구적 관계들의 체제에 통합되어 있음을 9.11이 결정적으로 보여줬다고 할 수도 있다.“

  • [R-Commentary]관계론적 실체개념으로 ‘주권’을 이해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실체를 양태들의 상호성으로 파악하는 것이며, 실체의 표현으로서 양태들의 활력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스피노자의 이론적 전략이기도 하다.

[34]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은 ‘지금 현재 여기에 있는 어떤 거대도시(megapolis)’가 하나의 시공간을 대표하는 ‘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도시에는 다양한 차원의 시공간이 공존하며, 그 시공간조차도 일부에 불과하다. 이것이 바로 도시의 ‘위대함’인 것이다. 본 기획에서 주역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잡다한 민중’이며, 또한 우리들이 살고, 투쟁하며, 생산하는 ‘미시적인 시공간’이다. 이를 ‘일상성’이라는 개념으로 환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중의 다양한 일상적인 시공간은 개발의 시공간보다 훨씬 짧고 규모도 작다. 그러나 이는 다양한 미립자적 흐름을 조직할 수도 있으며, 신체와 정동을 생산할 때에는 ‘개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개발을 통해 시공간이 일단 제도화되어 버리면 민중의 시공간은 틀림없이 운명적으로 그것에 의해 규정된다. 그렇지만 민중의 실천은 독립적이고 훨씬 더 미시적인 차원에서 개발이 의도했던 방향들을 어긋나게 하고 흐름을 바꿔 최종적으로는 개발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잡다한 민중’이 본래 가지고 있는 ‘밀집’(congestion)과 ‘근접성’(propinquity)이야말로 뉴욕이 지닌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밀집과 근접성에 바탕을 둔 ‘군거공간’인 도시로부터 모든 것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로부터 나온 부와 삶의 양식은 자신[35]들의 ‘기원’으로 회귀하기 보다는 그 부와 삶의 양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제도가 되어, 자동적인 운동을 반복해 간다. 그리고 ‘잡다한 민중’은 그 내부에서 영구히 투쟁해 가는 것이다.

  • [R-Commentary]사실상 민중이 생활하는 이 ‘미시적 시공간’이 거대도시의 표면을 뒤덮고 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도시는 민중의 생활하는 이 치마타를 결코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거대도시가 생존하게 하는 숙주이기 때문이다. 민중들의 미시적 움직임 속에서 모든 것이 작동한다. 건물의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시장의 상거래 그리고 스포츠 센터 안에서 우글거리는 이들의 역능들.
  • [R-Commentary]거대도시의 계획자들과 권력은 이러한 두 가지 민중의 힘의 원천을 약화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동선을 끊어 놓는다. 한국에서는 그 유명한 ‘명박산성’이 있다. 이 방식은 그 이후로 시위 현장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1부 영토의 확장, 대지의 진동

1장 대지에 거처하기, 영토에 살기 045

서문 : 추수감사절과 미국의 선주민

대지에서 영토로

잡거지에서 센트럴파크로

집합주택에서 비장소로

[72]주거형태와 관련하여 ‘비장소’(non places)라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개념은 프랑스 인류학자 마크 오제(Marc Augé)가 제시[73]했던 것으로 기술 발전 자체는 아니지만 기술발전과 평행적으로 생성되는 공간적 경험이다. 기술발전이 상류계급의 생활에서 먼저 발생, 도입되면서 점차 일반화되는 것처럼, 이 현상도 상류계급에서 시작하여 일반화되는 공간적 경험이다.

(...) 이 개념은 현대에서 우리들의 일상을 점차 잠식하기 시작한 지금 바로 여기에 있는 ‘장소’와의 접촉을 상실하는 것이며, 장소를 매개로 한 관계의 생산성 상실, 그것도 ‘기능적 상실’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이 개념은 민중이 거주하고 교류하는 ‘도시’의 파괴와 이러한 파괴로부터 파생하는 ‘경험’이 지향하는 곳을 파악할 때 유효하다. ‘비장소’란 뉴욕에서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으며, 또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의 대기실에도 있고, 맨하튼의 업퍼 이스트 사이드의 고층 아파트에서 출발하여 뉴욕주 북측의 캐츠킬산의 별장으로 향하는 BMW 차내에도 있으며, 그 순간 파리에서 쇼핑을 즐기고 있는 부인과의 전화 속에도 있다.

[74] (...) “오늘날 세계의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장소과 공간, 장소와 비장소는 서로 뒤엉켜 있다. 비장소의 가능성은 그 어디라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장소는 인적이 드문 시골에 별장을 갖고 싶다고 꿈꾸는 비장소 중독자들의 피난소가 된다.”[Marc Augé] 이런 점에서 뉴욕과 세계의 수많은 도시공간은 분명히 ‘비장소적 장소’로 변하고 있다.

  • [R-Commentary]네그리는 ‘제국적 주권’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이 개념을 활용한다. 제국적 주권이 ‘비장소’의 특징을 가지게 됨으로써 외부가 사라지고, 제국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내전이 된다. 이는 또한 비장소적 갈등을 초래함으로써 제국의 위기를 심화시키기도 한다.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 김소영 저, 현실문화연구, 2006, p. 302: 성수대교와 같은 근대적 기념비들의 붕괴에서 정점에 이르는 파열된 근대성이 전광판에서 보일 때, 그것은 전광판을 둘러싼 관객성에 대한 최대의 도전이 된다. 마르크 오제(Marc Auge)의 초(super) 근대적 비장소(non-place) 또는 마뉴엘 카스텔스(Manuel Castells)의 흐름(flow)으로 표현되는 후기 산업 공간의 대표 아이콘으로써 전광판은 영화와 TV, 빌보드 사이의 경계를 교란한다. 그것은 또한 퍼블릭아트와 상업광고, 공익광고들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집단적 관객성과 관련해, 전광판은 영화 관객성에 근접하지만 내용물(상업물, 뉴스, 대중 공고)에서는 TV와 유사하다. (...)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대중들이 당시 우후죽순처럼 도시에 생겨난 전광판을 지각하는 방식이 현저하게 변화한 예를 보여 준 사건이다. 시청 앞 전광판은 집단 관객성에 걸맞은 퍼블릭 시네마와 거리 TV로써 부분적으로 기능했다.

☞조정환 지음, 『아우토노미아』, 갈무리, 2003, p. 21: 중요한 점은 그 공장이라는 장소가 화폐와 시간이 지배하는 국가와 회사의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그것으로는 아무리 단일화시켜도 결코 환원될 수 없는 특정한 상황하에서의 특이성(고유성), 잔여, 공백, 다수 또는 비장소(non-place)로 명확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역설적인 점은 그 비장소가 그러한 단일화를 지탱하지만, 또한 하나(一者, the one)로 환원하는 단일화를 파괴함으로써 노동자 정치의 장소, 즉 사건의 장소가 된다는 점이다.(...) 그 장소는 여전히 노동자 정치 현장의 잠재적 장소, 즉 비장소로 존재한다. 노동자의 현장은 이동하는 공장과 가족 그리고 지역 속에서 비장소의 형태로 국지화되어 여전히 존재한다. 그것은 고유한 역사성을 갖고 집단적으로 조직화되거나 사건으로 출현하는 사고의 형태 또는 정치양식으로서 양태 변화된 비가시적인 형태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언제나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이 사라진 노동자 정치의 장소를 어떻게 가시화하고 조직적 역량과 주체적인 투심에 기초하여 반전시킬 것인가이다.

이스트빌리지의 공간정치

2장 군집신체에 꽃을 피워라! 085

서론 : 집단이동의 현재

[87]만약 생명이 정당화된다면, 스쾃팅도 정당화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삶의 필수적인 요소’를 빼앗아 버리는 ‘사적 소유’의 세계 속에서 쉼터(Shelter)나 식료품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 필수적 요소를 지킴으로서 연명할 권리를 지닌다. 이것이 결과적으로 생필품을 훔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말이다. (...)

(...) ‘대지’와 대지에 대한 폭력적 수탈로서의 ‘영토’, 그리고 사적 소유화(=상품화)로서의 ‘부동산’과 부를 (초)다원적으로 축적한 ‘도시적 공간’의 연장선상에 있다.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공[88]간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 ‘거처하는 것을 둘러싼 투쟁’이다. 집단이동으로 인한 자본주의적 노동(시간)으로부터의 이탈, 그리고 (...) 이러한 이탈을 더욱 발전시킨 자율공간 구축은 현실 도시 속에서 밖에 이뤄질 수 없다. 바로 이것을 뉴욕에서 가장 현실적이며 근본적으로 실천해 왔던 것은 ‘스쾃운동’이며, 이 운동을 극적으로 실천한 것은 ‘도시 공동체 부흥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경기의 변동에 따라 흔들리면서도 도시의 ‘군집신체’(mass corporeality)가 지닌 조정기능을 저변에서부터 지탱해 왔다.

  • [R-Commentary]이 개념은 코소가 들뢰즈의 ‘집합적 주체’로부터 추론한 것으로 보인다. ‘떼’와 같은 의미이다.

☞한국의 ‘스쾃’관련 읽을만한 기사: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6860

약간의 배경

원예사들의 급진주의

[104]농업은 어디까지나 대지의 수확, 상품화,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작물의 상품화=자연의 자본주의화를 담당해 왔지만, 원예 혹은 ‘뜰운동’은 항상 그러한 농업적 활동의 외부에 위치해 온 실천이다. 들뢰즈 가따리 식으로 부연하자면, 이것은 대지의 영토화(territorialization)에 대한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을 지칭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거센 바람이 불어와 줄곧 영토화되어 가는 도시 공간 속에서도 정동을 통해 대지를 일으켜 세우며 우리들의 군집신체(mass corporeality)의 풍부한 네트워크를 조직한다. 이러한 활동은 우선 활동에 필수불가결한 꽃과 과실의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위에 우리들의 상상력을 조용히, 그렇지만 끊임없이 자극한다. 이러한 상상=꿈을 공유한 자들은 독자적인 시간(=공동체)을 [105]형성할 수 있다. 그때 우리들은 지금 여기에 존재하면서, 또 어딘가 멀리 이동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유토피아의 충동―<에이비씨 노 리오>

회귀하는 아메리카대륙―<태양의 집>

2부 투쟁하는 정동의 도시 125

3장 정동의 도시

들어가며 : 치마타의 기적

비물질노동과 정동노동-그 중복과 차이

진부한 나비 넥타이-42번가와 타임스퀘어

여성들의 거리

4장 정동의 조직론 161

들어가며 : 퀴어운동에 대해

... 거꾸로 ‘책임’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유일한 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기반을 치워 버린 후에, 즉 우리들이 결정을 내릴 때 믿게 되는 규칙과 지식을 버릴 때 비로소 나타난다. 기반이 없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들의 결정사항을 위해 참조할 만큼 의지할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책임’은 항상 서양의 윤리적, 정치적, 문학적 전통 속에서 ‘행위된 것’을 ‘아는 것’으로 분절시키는 형태로 사고되어 왔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우리들은 ‘책임’을 인식과 행동의 질서적 비대칭, 혹은 절편으로써 재정의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오히려, 마땅히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것조차 알지 못 할 때, 그리고 우리들의 행동의 효과와 조건을 더 이상 계산할 수 없을 때, ‘자신’(self)을 포함하여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을 때, 우리들은 처음으로 ‘책임’이라는 것과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Thomas Keenan, Fables of Responsibility,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pp. 1-2).

이것이 바로 AIDS 위기의 정점에서 ‘투쟁하는 정동’이 직면했던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림프(Douglas Crimp)는 “참된 책임이란 오히려 성행위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하는 최고조의 상태에 있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단정하면서, “나는 이러한 참된 책임을 퀴어라 부른다”라고 주장한 것이다.

뉴욕 게이의 개사(자료1)

뉴욕 레즈비언 개사(자료2)

퀴어 스페이스에 대해(자료3)

스톤월의 전후

☞이런 영화가 있었다. 2010년 작, 다큐멘타리. 영화를 무료로 볼 수도 있다.

http://video.pbs.org/video/1889649613/

액트업과 그 주변

[205]‘심리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 혹은 ‘개인적 심정, 치료’의 문제와 ‘공적 운동’의 문제로써 서로 따로 떨어져 있고, 결국 어느 한 쪽을 취하면 다른 한 쪽을 버리는 관계가 된다. 그리고 이 둘을 단지 ‘슬퍼하지 마라, 조직하라!’라는 슬로건으로 엮어내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크림프는 이러한 모순과 대립을 반전시켜, <액트 업>에서 전투성을 ‘정동적인(affective) 반응’으로 간주하고, 위로할 수 없는 심적 고통을 어떻게든 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애도’와 ‘전투성’의 특수한 결합을 고찰하기 위한 유효한 실마리는 프로이드적 정신분석에서 쓰이는 두 가지 대립적인 개념일 것이다. 첫 번째는 철[206]저한 조작(영어: Working-through, 독일어: Durcharbeitung, 불어: perlaboration)이다. 이는 정신분석에 의해 주체가 스스로 마음속의 억압된 요인을 인지하고 그 반복적인 메카니즘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마음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치유로 이어지는 하나의 방법이 된다. 이에 비해 ‘행동화’(영어: Acting, 독일어: Agieren, 불어: mise en acte)는 무의식적 희망이나 공상을 지닌 주체가 (희망이나 공상이) 발생하는 원인과 그 반복적인 성질에 대한 이해를 거절하면서, 마침 지금 현재에 발생하고 있는 현장감을 통해 희망이나 공상을 되살리려는 상태이다. 이것은 치유로 다다르지 못하고, 병리의 반복적 표현이 된다. 전자는 트라우마의 해소라는 좋은 반응이 되며, 후자는 그 반복적 상연으로써 나쁜 반응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 레즈비언 이론가인 앤 츠베트코비치(Ann Cvetkovich)에 의하면, AIDS 위기 중 운동하는 <액트 업>에서는 더 이상 이러한 분류가 가능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행동화’(Acting Out)로써 <액트 업>이 치마타에서 벌였던 행동은 개별의 내면에서는 결코 해소할 수 없는 트라우마를 공적 공간에서 상연하는 것이 되며, 이것이 트라우마에 대한 정치적인 대응이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 크림프가 말한 ‘비탄’(애도)과 ‘전투성’의 보기 드문 합성, 결합이 된다. 운동조직으로써 <액트 업>이 지닌 힘은 ‘해소되지 않는 트라우마’, ‘불완전 연소의 비탄’ 속에 꿈틀거리고 있다. 과거에 대해 계속 고집하는 것, 죽은 자와 함께 존재하는 것이 이 운동의 힘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 [208] 본성적으로 비극적인 이 운동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었다. 일찍이 신좌파들의 ‘정치, 사회운동’처럼 개별 인간의 삶을 미래의 이상사회를 성취한다는 명목 하네 관리, 통제하려고 했던 자세로부터 180도 바뀌게 만들었다. (...) <액트 업>이 늘 유토피아적인 요소를 보이고 있는 것은 욕망이라는 예측 불가능한 특성에 대해 ‘공명정대함’(justice)으로 관여하려는 정치적 생활을 부분적으로나마 실천했기 때문은 아닐까.

☞ 액트 업 관련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Q__wGtL_rOM

☞ 츠베트코비치 교수 강의 동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QJ2hFUtisWE

증여의 액티비티즘

3부 흑(아나키즘)과 적(볼셰비키즘), 그리고

5장 혁명운동의 밀월 215

들어가며 : 주의주장과 도시적 사건

[216]아직도 아카데믹한 담론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상정되어 있다. 즉, 우선 사상이 있고, 운동이 있으며, 그것이 민중을 조직하고 있다는 식이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우선 민중의 떼적 신체(mass corporeality)가 좋든 싫든 상관없이 하나의 추세를 만들고 있으며, 그 선상에서 조직가가 나타나 바로 그곳에 지식인에 의한 [217]이론적 개입이 발생하고, 이를 분석, 총괄하여 ‘당파운동’을 형성해 가다가 반드시 어딘가의 지점에서 무너지고, 분파가 생기며, 소멸하고, 또한 별도의 조직화가 시도된다.

여기서 이론과 실천의 변증법적 발전은 형성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이론과 실천을 명확히 분리해서 후자의 전자에 대한 선행성을 강조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상과 이론의 구축도 그 자체로 멋진 실천의 일부이다. 그러나 거꾸로 체계화된 사상과는 명확히 구분되는 별도의 ‘운동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 확실히 존재하며, 경우에 따라 보다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다.

(...) 우선, ‘떼적 신체’(mass-corporeality)와 그것의 거대한 운동이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전통적 ‘조직화’에 대한 반대급부적인 ‘자연발생성’(spontaneity)이라는 개념으로 전해져 온 우발성(contingency)으로 인해 추동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 민중’에게는 생활하는 것이 곧 즉자적인 조직화이며, 투쟁이며, 문화의 생산이었고, 이런 의미에서 ‘떼’(무리, mure; pack)라는 단위는 ‘미시적 조직화’를 통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착종체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엄밀하게 보면 ‘자연발생적’이지 않다.

  • [R-Commentary]이때 ‘미시적 조직화’라는 것은 다중의 신체와 정동이 교차하는 일상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관계성의 구축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직론적 차원에서 거대담론을 이루는 것이 아니며, 그들이 생활하는 그 순간과 그 치마타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런 방식의 조직화를 전통적인 조직론의 관점에서 재단하기 시작하면 그것이 마치 우발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로고스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튀케나 에로스의 영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눈에 헤라클레이토스는 ‘알 수 없는 말을 주절거리는’ 인물일지 모르지만, 당대의 시인들에게는 훌륭한 현자였을 수도 있다.

[221]‘노동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사례로 손꼽히는 ‘언더그라운드 철도’(Underground Railroad)이다. (...) 남부에서는 이러한 노동력의 소실만이 아니라 노예도주로부터 자극받은 백인 빈농들이 북부로 탈출하도록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농업 기반이 약화되어 농업 생산을 위해 카리브연안의 각지로 외[222]주를 주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건의 흐름 전체가 남부의 전력상실로 귀결되었다. 통속적인 미국사에서는 링컨에 의해 대표되는 북부의 양식있는 백인지도자가 무력하며 불쌍한 흑인을 도와준 덕택이라는 어감을 짙게 띠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반대였다. 어디까지나 노예의 투쟁이 이동하는 노동력 전체로써 북군에게 그 전쟁의 승리를 증여한 것이고, 게다가 북부의 모든 도시에서는 잉여가치의 창출이 없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항상 교체가능한 저변노동력으로써 근대적 산업의 발흥을 지탱했던 것이다.

☞ 언더그라운드 철도 관련 동영상:

http://www.teachertube.com/viewVideo.php?video_id=19374

근대 노동운동 개사

무장투쟁, 생디컬리즘, 그리고 다종다양성의 조합주의

워블리스의 야외극 혹은 ‘보헤미아의 쾌거’

뉴욕 지식인들의 궤적, 혹은 급진주의가 문화 속으로 흩어지다

노동자의 인종적 분단, 혹은 계급의 폐허(보론)

[266]현재까지도 롱 아일랜드의 [267]히스페닉계 하루벌이 노동자들과 백인 노동계급의 대립 등 뉴욕은 ‘인종’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은 일찍이 노동운동이 내포하고 있던 ‘계급의 가능성’을 해체해 버렸고, 모든 뉴욕인에게 ‘최악의 정치’를 계속해서 강요하려고 한다. 다만, 우리들이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예전의 ‘노동자의 시대’에서 ‘노동자의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백인중심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 오늘날 뉴욕은 점점 더 다종다양한 인종의 교환과 교류로 구성되었다. 그게 무엇이든 우리로선 이러한 도시를 긍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뉴욕의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음 속에서 어떻게 느끼며 무엇을 생각하는 것과는 관계 없이, 우선 신체 수준에서 유일한 것이 아닌 복수의 타자들과 매우 밀접하게 접하고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를 통해서만 오직 새로운 계급을 상상할 수 잇을 것이다.

6장 도시화와 변혁운동의 공생 269

들어가며 : 분열생성과 공생생성

[270]새로운 투쟁의 분포를 보면 (...) ‘산업과 관련된 것’(Industrial Nexus)으로부터 ‘도시공간’(Urban Space)으로 이행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 책에서 르페브르의 중심적 개념은 ‘도시화’(Urbanization)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과거에 모든 변화는 ‘산업화’(industrialization)으로 인해 추동되었고, 산업화를 위해 길을 비켜주었지만, 오늘날은 다른 차원에서 산업화를 능가해 버릴만한 (도시화의) 세계적 기세(global impetus)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산업화를 대신할 무엇인가가 아니라, 산업화를 다른 차원에서 통제하는 틀(프레임)로써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이것이 나의 해석이다. (...) 이러한 문맥 속에서 도시화란 ‘생산의 사회화’를 뜻하는 별도의 명칭이기도 할 것이다. 르페브르에 따르면, ‘도시화’에서 “새로운 것이 있다면 사회공간의 전[271]지구적이며 전체적 생산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지금까지 인간 사회에 존재해 왔던 모든 도시형태(정치도시, 상업도시, 산업도시)를 집어삼키고, 세계와 일체화되는 ‘위기적이며 동시에 비판적 권역(critical zone)’이 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도시적 현상은 오직 전체성의 관점에서만 이해되지만, 이러한 전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도시화’란 볼 수 없는 전세계 도시들의 네트워크, 혹은 ‘불가시적인 내재성’(black box)을 포함한 가상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도시화의 운동에는 ‘외향적 파열’(explosion)과 ‘내향적 파열’(implosion)이 동시적으로 진행되며, ‘고유의 장소성’(isotopy), ‘교통공간’(heterotopy), ‘유토피아’(utopia)라는 세 종류의 서로 다른 차원의 ‘장소성’(topos)이 서로 중첩되며, ‘차이화를 포함한 현실’을 만든다. 따라서 이 운동은 ‘형식’(form)으로서 고찰될 수 있을 뿐, ‘체계’(system)로서 파악할 수 없다.

(...) [272]보다 커다란 시점에서 보면, 통상 ‘68혁명’을 ‘학생주도’, ‘직접 민주주의’, ‘히피적 대항문화’(counter-culture)로써 동일시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일종의 ‘도시적 연합’(urban coalition)의 실험이지는 않았을까 (...)

[274]‘거시적 정치’에 대한 ‘미시적 정치’ 혹은 ‘분단’으로부터 유출되는 ‘흐름’은 아마도 ‘분열생성’(schismogenesis)과는 별도의 차원에서, 그러나 틀림없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공생생성’(symbiogenesis)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아[275]닐까?

학생주도의 운동 혹은 ‘신좌파’의 과격화에 대해

인종 : 지역적 급진주의에 대해

축제적 광경으로써 뉴욕 운동의 시원

[305]도시화는 개별 국민국가의 도시와 시골의 경계와 영지를 넘어서 대지와 다시 만나고 있다. 국가가 보호하는 영지는 지구의 표면을 ‘조리적 공간으로’ 만들면서 끝없이 확대하고 있지만, 동시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엄청난 강도로 자연재해와 유민들의 양자류가 밀려와 ‘조리적 공간화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야!’라고 울부짖고 있다. 이른바, 도시문화의 용어로는 더 이상 형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도시화는 이러한 파괴를 그 근저에 내포하고 있다. 그때, 우리들은 미국 선주민들의 목소리를 다시금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른바 ‘제4세계’의 목소리를 ….

7장 아나키, 자율, 예술-현대 뉴욕 액티비즘의 양상 307

들어가며 : ‘액티비즘’의 가능성과 미정성

[311]신좌파시대의 활동가와 오늘날의 액티비스트를 구별하는 가장 극명한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가 미래에 실현되어야 할 이상을 위해 ‘이념’에 봉사하는 자들이었다면, 후자는 자기존재와 존재의 일부분으로 구성된 집합성을 뛰어 넘어 존재하는 가치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이러한 집합성이 운동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라고 한 것에 있다. (...) 전자에서 모든 원리를 구성하는 ‘이론’은 절대적이다. (...) 세계의 경제구조 법칙을 파악하며, 그것으로부터 세계변혁의 원리를 도출한 사람과 이러한 ‘외재적 법칙’에 말을 부여하는 사람이 해방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 [312]이 경우 ‘투쟁 자체’는 해방을 위한 필요악이며, 희생적 행위가 되었다. 여기에는 행복이나 환희의 요소가 있을 수 없고, 또한 있어서는 안 되었다. 활동가의 최종적인 입지는 부여된 ‘사명감’이었다. 이에 대해 후자는 ‘투쟁이 곧바로 액티비즘[삶 그 자체로서의 투쟁-옮긴이]이 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풍요롭고 더욱더 크게 키워 가야할 목적이 된다. 요컨대, 오늘날 액티비스트의 이론적 주안점은 ‘이 행동’을 위한 ‘실용주의적 낙천주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액티비스트’ 속에는 상이한 이론적 입장들이 존재하며 이론적 입장 차이로부터 일상적인 대립과 투쟁이 발생한다. 단, 이러한 입장 차이로 인해 서로를 증오하거나 파괴하고 죽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들은 대립과 투쟁을 반복하면서 원리적으로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커다란 운동의 일부로써 취급한다. 투쟁전술에 대해서도 직접행동파는 비폭력주의를 경시하[거나] (...) 거꾸로, 비폭력주의자들이 모든 비합법적인 직접행동을 단속해서도 안 된다. (...) 전체를 형성하는 대행동의 내부에는 합법에서 비합법에 이르는 몇 가지 단계가 존재할 수 있으며, 행동형태도 강한 ‘퍼포먼스형’에서 ‘대결형’까지 몇 갈래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 (...)

‘액티비즘’은 철저한 ‘반권위주의’이다. 액티비스트는 스스로가 민중을 지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도 민중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따라[313]서 조직화란 지도가 아닌 네트워크의 확장인 것이다. 또 지성이란 그것을 겸비한 자가 가지고 있지 못한 자를 가르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필요한 경우에 ‘조사’하여 획득하고, 또 타자와 공유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 이러한 존재양태는 우리들에게 전혀 새로운 ‘집합적 존재성’의 환희를 가르쳐 준다. 또한 이 존재양태는 경제지상주의가 깊게 신봉하는 ‘이익’과는 다른 차원의 ‘환희 원리’를 집단적으로 개발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절대화되었던 ‘사적 개인’의 대극적 존재성을 지칭하고 있다.

지구적 공공공간의 개발

당인가 연합인가?―현재의 조직화에 얽혀있는 정경

예시적 정치의 이론, 혹은 존 홀로웨이와 데이비드 그레이버

[341]홀로웨이의 ‘반권력의 영역’과 그레이버의 ‘가치창조(상상)의 장’은 오늘날 ‘액티비즘’이 제1원리로 삼고 있는 ‘예시적 정치’(prefigurative politics)의 또 다른 이론적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예시적 정치’란 해방운동을 지향하는 자들이 타도해야 할 적들의 제도(국가권력)을 모방하여 스스로 제도를 형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운동을 형성하는 집단의 집합성 속에서 이미 ‘지금 이곳에서’ 해방된 관[342]계성을 형성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윤리적 결의를 갖는다. 이는 거의 대부분의 해방운동이 역사적으로 반복해 왔던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자기기만과 단절하려고 하는 젊은 세대로부터 터져 나온 요청이다. 이 운동 조직에게 유일한 무기는 스스로가 구축한 운동조직의 ‘정동’이다. 어떠한 강제력도 행사하지 않는 이러한 ‘액티비즘’은 스스로의 창조력에 의해 모두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풍부한 정치적 문화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을 통해 확산된다. 또한, 운동의 존재성의 확장은 이러한 ‘감염주의’(contaminationism)를 바탕으로 한 투쟁 이외의 다른 길은 없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그 어떤 것도 강제하거나 강요하는 것 없이 그들의 자유의지로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는 관계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 이미 이러한 모습은 사빠띠스따나 PGA[People's Global Action, 지구적 민중 행동]가 넓혀온 사상과 방법론을 통해 예증되어 있다.

‘예시적 정치’는 그 이름과는 달리 미래를 향한 시간적 발전에 대한 상정을 괄호 속에 묶어두는 운동이다. 미래는 순식간에 찾아오지만, 미래로의 발전을 투사적(投射的)으로 방법화시키는 것은 국가나 도시개발업자가 특기로 가지고 있을 법한 ‘권력이 하는 일’이다. 이에 비해, ‘예시적 정치’는 현재를 최대한 풍성하게 하면서도 사빠띠스따처럼 ‘전진하며 묻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레이버가 ‘윤리철학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도래해야할 이상사회는 지금 이곳에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액티비즘’이란 지금 이곳에서 실천하는 것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역사의 연속성을 분쇄하고 열 수 있는’ 가능성이 개재하고 있다. 개개인의 기능과 의욕과 정열에 대응하여 끝없이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액티비스트의 예술, 혹은 ‘노동’과 ‘학예’의 재회를 추구하며

[343]예술의 가능성은 예술제도가 어떤 식으로 정형화된다고 하더라도 그 틀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창작행동’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재생력’에 있다. 예술의 핵심은 (...) [344]‘물체’와 ‘개념’이 어긋난 차원과 유리성(遊離性)에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한 순간 홀로웨이와 거리를 두겠지만) ‘예술’의 제1 본성은 ‘명명성’에 있다. (...) 이러한 동인은 바로 ‘명명성의 자유’이다. 현대미술의 공헌은 변기를 예술로 명명한 뒤샹을 필두로 ‘자유로운 명명의 실천’을 통해 ‘예술 개념’을 끝없이 확장할 수 있음을 제시한 것에 있다.

(...) 예술작품의 ‘이름’을 치마타의 무명성 속으로 방출(해방)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여기서 나는 다시금 홀로웨이와 합류한다.)

(...) [345]<워블리스>가 역사적으로 키워 온 그래픽 예술과 포크송, 상황주의자, 네덜란드의 프로보(Provos), 시카고 초현실주의자 … 여기에 치마타의 그래피티 작가들 (...) 또한, <게이 해방 전선>과 <액트 업>의 멋진 선전활동과 가두시위를 예술로 부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이 예술이 될 것인가? (...)

[345]이들은 모두 예술과 액티비즘이 교차하는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 [346]이들은 서로 상이한 차원이면서도 본성적으로 ‘소외되지 않은 본래의 노동’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여기서 관계된 흥미로운 문제는 포스트포드주의 시대의 노동 특징으로써 분석되어 온 이른바 ‘정동노동’의 영역과 예술이 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 [347]웨이트리스, 웨이터, 건설노동자, 바텐더, 요리사, 점원, 예술가의 조수, 프리랜서 디자이너, 웹 마스터, 컴퓨터 프로그래머, 컴퓨터 기사 … 그들은 예전 포드주의적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사회로 집단적으로 이동한 모습(Exodus)을 보여준다. 그들은 대부분 일을 하면서 짬을 내어 참된 노동(=예술)을 실천하고 있었다.

‘정동노동’은 본성적으로 ‘예술’과 유사하다. 시각적 디자인과 시각예술의 유사성은 물론, 웨이트리스와 웨이터가 매일 실천하고 있는 것은 배려와 기술적인 측면에서 광범위한 의미의 ‘퍼포먼스’이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 ‘예술’ 자체가 ‘정동노동’의 일종이다.

(...) [348]‘예술’과 ‘액티비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으로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본래의 노동’으로 되돌아 가려는 쌍둥이 자매와 같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 ‘액티비스트’들은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 ‘무상의 생산’을 개인으로서가 아닌 집단적 관계성 속에서 보다 의식적으로 획득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집단을 세계화하려고 한다. 말을 바꾸자면, ‘액티비스트’는 스스로 ‘소외되지 않은 노동’과 ‘무상의 생산’을 추구하며, 사회적, 역사적 근거와 조건에 대해 의식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 [349]‘정동노동’이라는 범주는 도시공간을 무대로 삼아 예술과 액티비즘에 대해 ‘소외되지 않는 본래의 노동을 추구한다’는 본성을 ‘기술적이며 존재론적으로’ 가르치면서 이 양자를 연결시키려고 한다. (...) [350]액티비스트의 예술은 (...) 도시공간이라는 문맥에서 스스로를 ‘명명’하는 예술이 될 것이다.

4부 떠도는 지령의 장소

서론 : 운동하는 장소, 혹은 장소의 촉수

[354]민중이 살고, 투쟁하며, 교류하는 ‘치미타 공간’이란 물질적으로 고정된 건축공간과 다르다. 요컨대, 치마타란 이동하는 민중의 집합적 신체의 운동이다. 이동하는 민중은 이동하는 곳마다 자신들의 치마타를 만들고, 치마타들을 연결시켜 간다. 이는 ‘건축=장소의 고정화’로부터 도주하는 양자(量子)의 운동이다. 따라서 하나의 도시 내부에서 다른 도시의 이름이 산재한다. 도시들이 서로 지명을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도시는 다른 몇몇 도시의 ‘지령’(地靈: Genius Locii)을 흡수하면서 살고 있다. 민중의 이동과 함께 도시들은 촉수를 늘어뜨려 서로 얽혀가는 것이다. 이러한 네트워크가 바로 리좀Rhizome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도시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최종적으로 도시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밖의 도시와의 관련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를 형성하는 사람도 자본도 그들 사이를 왕복하는 유체(흐름)이기 때문이다. ‘통치제도’, ‘상징체계’로써 도시는 자신의 장소적 중심성을 주장하지만, 그 실재는 사람과 자본의 교통을 통한 이동과 운동이다. 이러한 ‘도시운동’, 혹은 ‘도시관계’는 하나의 도시 내부에서 다종다양한 이민자들의 주거구가 지닌 지역성과 지역성들 사이의 상극(相剋)으로써 표현되는 한편, 지리적으로는 광역적인 도시들 간의 위계적 관계성으로 나타난다.

18장 지하철과 뉴욕적 다중 359

19장 회귀하는 히드라 373

[382]영국 식민지 시대에 뉴욕의 노예들은 자기의 욕망을 억누르면서 주인가족에게 봉사를 하는 톰 아저씨(Uncle Tom)처럼 ‘좋은 노예’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투쟁하는 노예’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들은 카리브해역이나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막 도착한 문자 그대로의 타자였다. 그들 대부분에게 뉴욕 사회의 언어, 습관, 도덕, 종교 등등은 어느 것도 의미 있는 것이 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뉴욕적인 것을 갑자기 강요받는다면 누구라고 그것에 저항할 것이다. 아마 이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들(히드라)은 관습이나 언어도 다종다양했으며, 서로가 타자들로서 ‘순수한 이종성’(heterogenuity)을 지녔다. 따라서 지배자들의 ‘두려움’은 세계 각지에서 강제로 끌려온 히드라가 갑작스런 강요에 대해 스스로 반항할 이유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두렵게’ 생각했을 것이다.

10장 디킨즈의 파이브포인츠 389

11장 포위된 차이나타운의 수수께끼 399

12장 할렘 풍경론 415

할렘의 개사

[430]이 사건[줄리아니 뉴욕시장이 실시한 할렘개발]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건물에 대한 투자나 개축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준자. 이는 ‘공공 공간’의 위상을 완전[431]히 새롭게 기록하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치마타에서 벌어진 군집신체(mass-corporeality)의 왕래를 ‘위법행위’로 규정하면서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만들었고, 오직 거대 자본이 허용하는 교통과 왕래만을 ‘합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국가의 보호 속에 놓이게 된 것이다. (...) 일단 젠트리피케이션이 되어 버린 공간에서 존재할 수 있는 권리 및 그곳에 문화를 구축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기는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이러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사람들의 논거에는 이전부터 ‘그곳에 있었다’라는 과거의 사실이 있을 뿐,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면 이들의 논리는 더 이상 의미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할렘유람

13장 브롱크스―불꽃의 지역에서 449

화염에 휩싸인 치마타의 문제들

떼들의 문화혁명

[459]중요한 것은 힙합에서 팬이나 ‘작사가’, ‘음악가’, ‘댄서들’ 모두가 ‘패거리’(crew) 혹은 ‘친구’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랩의 정열적인 연구자인 트리시아 로즈(Tricia Rose)는 “이들은 갱단에 가깝고, 간문화적 유대로 연결되어 있는 새로운 가족이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단열재와 같은 역할과 지원을 하면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기초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다.”[Black Noise, Middletown, Connecticut: Wesley University Press, 1994, p. 34] 이것은 이 책이 관심을 지니고 있는 들뢰즈, 가따리가 엘리아스 카네티(Elias Canetti)로부터 인용한 ‘떼’(meute/pack)라는 개념과 관계된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아프리카 밤바타(Africa Bambaataa)의 경우처럼 이러한 ‘떼’야말로 ‘소년갱단’이 그대로 ‘힙합을 생산하는 그룹’으로 전향할 수 있었던 ‘혁명적 집단성’의 원리였다고 할 수 있다.

[467]그[아프리카 밤바타]는 ‘갱단으로서의 떼’를 ‘힙합 떼’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갱단으로서의 떼’ 속에는 이미 이러한 전환이 가능했던, 혹은 이를 갈구하는 요인이 있었다. 랩, 그래피티, 브레이크 댄스의 영역에서는 갱단과 힙합 그룹의 무리들이 중복되어 있었다. 이렇듯, 어떤 영역에서라도 ‘떼’와 ‘영역’을 통하여 타자의 세계들과 교류하였던 것이다. 갱단이 ‘영역’을 집중화하여 확장하는 몰(mole)적 움직임이었다면, 힙합은 ‘영역’과 접촉하면서 타자와 네트워크를 통해 교류하고 확장해 가는 분자적 움직임이었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어느 특정 시점에서부터 전자에서 후자로의 흐름이 주가 되었다. (...) 대립적인 긴장감이 축제적인 에너지로 전환된 것이다.

☞ 아프리카 밤바타 뮤비: http://www.youtube.com/watch?v=9lDCYjb8RHk

14장 상상의 세계공동체 브룩클린 자전거 유람 469

대륙의 군도적 세계

브룩클린 개사

브룩클린 자전거 유람

에필로그 : 뉴욕 개념장치 517

[518]이것[치마타]은 일찍이 발터 벤야민이 파리에 대해 취했던 특이한 고찰이었던 『파사쥬론』과 전혀 관계 없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도시공간이란 ‘지금’에 있어서 복수의 과거 기억이 살아 있는 장소, 복수의 시간이 교차하는 장소이다. 도시의 공간성이란 동시에 시간적 착종성을 지닌다. 만약, 우리들이 자본과 권력이 강제하고 있는 선적인 발전의 미래상에 대해 대안이 될 수 있는 변혁에 대한 상상력을 발전시키려고 한다면, 이러한 도시적 본성을 출발점으로 하는 방법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 [519]철학자 질 들뢰즈에게 ‘개념’이란 통상적인 철학적 조작에 있어서처럼 현실의 경험을 고정적으로 분류하는 장치가 아니었다. 개념이란 보다 능동적으로 사건의 우연에 대한 부정성(不定性)과 변이성(variable)을 사고하여, 경험을 뛰어 넘는 ‘변혁가능성’을 상상하는 장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개념이란 현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투쟁하는 자들의 무기였다. 『뉴욕열전』은 철학서를 사칭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지만, 뉴욕이라고 하는 특수 도시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하여, 가능하다면 ‘변혁’에 대한 상상력을 획득하기 위한 ‘개념장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기술해 왔다.

민중에 대하여

[521]‘민중’ 혹은 ‘잡다한 민중’이라고 하는 ‘이미지’(혹은 ‘개념’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괜찮을지 모르지만)를 다시금 음미하려 할 때, 바로 언더그라운드라는 개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민중’이란 공식적인 캠페인을 지향하든, 언더그라운드에서 실천하든, 때와 장소에 맞춰 전술을 어떻게든 변경시켜 가는 존재들이다. 아마도 ‘언더그라운드’의 영역이 활동의 전제로써 폭넓게 존재하며, 그 부분이 ‘오버그라운드’로써 표출된다고 하는 쪽이 타당한 논리적 순서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인 캠페인’이 없다고 하는 것은 투쟁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민중의 ‘존재’ 혹은 그 내용으로써의 ‘생활이자 그 자체 문화이며 투쟁인 것’은 외부의 예상을 깨면서 외부의 의도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혹은 외부의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방식을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 정의해도 바로 정의하는 지점에서 어긋나 버리고, 우리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권능을 드러낸다.

[523]정착할 수 없는 민중들은 ‘이동하는 자’이다. 그들의 문화는 대지를 영유함으로써 토지와 토지를 바탕으로 한 국민국가가 아니라, 그들 ‘개개의’ ‘집합적인’ 신체 속에 새겨져(inscribed) 있으며, 이러한 신체 속에 머물고 있다. 이렇듯, 도시공간의 ‘덧없는’ 물질성은 동시에 ‘신체적인 힘의 강도’(intensity)가 되기도 한다. 이른바, ‘흑인문화’의 힘은 이동하는 집합신체의 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흑인 민족주의’는 이에 대해 이름을 붙임으로써 스스로를 역능[힘]화시켰고, 자신들의 처지와 조건을 뒤엎으려는 운동이었다. (...) 지금은 우리들 모두가 ‘생을 형성하기’ 위해 보다 많은 ‘신체적인 문화’를 추구하게 되었고, 정동을 기반으로 한 보다 ‘신체적인 투쟁형태’를 개발하기 시작[524]하고 있다.

[524]‘민중’의 첫 번째 표현형식은 ‘정동노동’이다. 다만, 이러한 노동은 그/그녀들의 피억압의 상징임과 동시에 ‘권능의 상징’이기도 하다. ‘민중의 신체’는 ‘도시적 표상의 세계’에서 점차 보이지 않는 것이 되고 있지만, 물질적으로 우뚝 솟아 있는 뉴욕을 대지로부터 현실적으로 껴안고 있다. 뉴욕에서 인종적인 소수는 인종적 다수(특히, 서양 백인 상류계급)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거꾸로 후자는 전자를 거의 모르고 있다. 다수는 소수를 약간의 정형화된 틀로 파악하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 버리곤 한다. 즉, 후자는 스스로가 전자를 거의 알지 못하는 것조차 의식하고 있지 않다. 후자는 전자를 지배하고 있지만, 전자는 후자를 지성과 정동의 전략에서 능가하고 있다. ‘정동의 전략에서 능가한다’는 것이야말로 도시공간에서 투쟁하는 민중의 권능이자 가능성 그 자체이다.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에서 들뢰즈, 가따리의 『천 개의 고원』[525]으로 이어지는 ‘민중론’에서 ‘군중’(masse/mass)과 ‘떼’(meute/pack)를 분류한 다음, 떼에 대해서는 특권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군중’은 ‘몰화’(molar)에, ‘떼’는 ‘분자화’(molecular)로 대응하며, 이러한 ‘정치적 개념’의 문맥 속에서 ‘거시정치’와 ‘미시정치’에 조응하게 된다. 그들에게 이 두 가지의 계열은 어디까지나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지만, ‘분자화’와 ‘미시정치’가 선행하는 것이다. 이들의 차이는 이름 그대로 크기의 문제만이 아니다. 오히려 어느 일정한 프레임과 그 속을 흐르고 있는 ‘양자류’(quantum flow)의 동시적 존재=관계구조의 문제가 있다. 이는 또한 대상의 ‘상태’에 대한 ‘물리량’의 특성이기도 하다. 여기서 특권적으로 서술된 ‘떼’, ‘분자화’, ‘양자류’란 가따리의 용어로 말하자면 ‘기계적인’ 과정이다. ‘기계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정치사상을 통해 부여받은 동일성을 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며 가변적인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정치적 통일체-국민, 국가, 인민, 경제-가 지닌 불변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 대신, 그곳에서 탈주한 것을 탐구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소수자적 성질’이 또 하나의 ‘민중의 얼굴’이며 표현성인 것이다.

(...)[526]이 때문에 지배계급은 계속해서 ‘보수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민중’이란 무수히 많은 호칭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는 유동체인 것이다. (...) 궁극적으로 이들은 모든 ‘전위주의의 종말의 지표’인 것이다. 최종적으로 민중이란 ‘초월성이 없는 내재성’, 즉 우리들 자신인 것이다.

치마타에 대하여

[526]일본의 『코지엔』이라는 사전에 따르면, ‘치마타’(巷)란 본래 ‘길이 걸쳐 있는 곳’이란 뜻이며, ‘이별의 길’이나 ‘교차로’를 의미한다. 돌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서양의 광장과는 달리, 일본어적인 어감으로 보면, 치마타란 사람이 [527]집합하는 장소라면 어디라도 그 자리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교류와 교통의 공간’을 지칭한다. 따라서 각종 의식이나 축제의 공간, 퍼포먼스의 공간, 시장,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리스적인 광장이 지닌 이상형은 ‘건전한 시민사회’와 ‘공공 공간’이 어디까지나 ‘올바른 도시의 물질적 구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상형은 오늘날 자본주의적 개발에 따라 더 이상 현실성을 지니지 못한다. 따라서 ‘광장’보다는 오히려 일본어의 ‘치마타’라는 개념이 실재적이라고 생각된다.

(...) 그러나 물질적인 구성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보자면, 사실 뉴욕에도 도시의 실질적인 기초로써 ‘치마타’가 존재해 왔었다.

치마타는 도시형성에서 ‘분자적’인 운동이다. 비록 물질적이지만 보다 유연하며 유동적인 운동이다. 이 운동은 고정된 장소 및 구축물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나 나타나며 어떤 형태로든 구축물을 변모시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운동이다. 결국, 이 운동은 도시민중 내지 떼가 생활하고, 문화를 생산하며, 투쟁하는 ‘장소로써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도시형성이라는 운동이 구축적인 측면에서만 이해되기 쉽지만, 오히려 이 운동은 ‘양자류’로써, 혹은 ‘탈주의 선’으로써 볼 수 있게 해 준다.

(...) [528]여기서 ‘투쟁’이란 ‘개발계획의 시간’과 ‘민중의 일상행활 시간’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를 ‘건축적 시간’과 ‘치마타적 시간’의 투쟁으로 환언할 수 있다. ‘도시개발의 시간’은 도시에 존재하는 극대(거시적)의 시간이다. 이는 지역 공간을 변용시키는 ‘미래의 발전’ 방향을 통제하고 있다. 이것은 민중이 몇 세대에 걸쳐 쌓아왔던 ‘생활의 시공간’을 일거에 붕괴시킨다. 이에 비해 민중이 치마타에 새기는 시간 혹은 ‘치마타의 시간’은 극소(미시적)의 시간이다. 이는 일상적인 노동과 생활의 반복적 시간이며, 치마타를 형성해 온 민중의 신체가 지닌 ‘덧없는 일과성’의 시간이다. 민중들의 극소 시간은 개발이라는 극대 시간에 비해 현저하게 약하고 종속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망상(妄想)으로써 거대개발이 실현된다고 한다면, 이는 어디까지나 ‘치마타의 극소 시간’이 집적된 덕택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자야말로 대도시를 형성하는 힘의 본체이다. 틀림없이 그러하다!

망상으로써 개발이 실현되는 것, 즉 ‘치마타’가 파괴된 후에 민중은 다시금 ‘새로운 치마타’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바꿔 말하면, 그들의 ‘거주’(dwelling)에 의해 ‘다시 쓰기’(re-inscription)를 또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 이는 ‘들뢰즈적 건축’ 혹은 ‘잠재적인 건축’이다.

예술에 대하여

[539]‘예술-제도’ 속에는 대개 무엇인가가 있다고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을 것 같은 예감, 그리고 무엇을 보아도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뉴욕과 세계 속에 만연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재미없어 졌다.’ 예술에 희소가치를 찾아 보려고 하는 사람들로서는 비극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보다 중요한 사회적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문자 그대로 누구라고 예술가가 될 수 있다.

(...) 개별 작품의 우열과는 다른 차원에서 ‘작품’의 단독성은 물체 지상주의를 뛰어 넘어 ‘공통적인 것을 개발하는 노동’, ‘그 자체가 기쁨인 노동’, 즉 ‘공산주의의 이상’을 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위한 희망과 이것의 추세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몇 명의 유명 예술가들이 아니라 무수의 이름없는 예술가들이다. 예술은 ‘세계 변혁운동’으로 접근해 가고 있다.

투쟁에 대해

[543]민중의 새로운 운동 방향의 첫 번째 특성은 ‘비가시성’에 있다. 이것은 민중의 ‘생활, 문화, 투쟁’이 본성적인 측면에서 ‘언더그라운드’, 즉 비가시적인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 [544]두 번째 특성은 ‘회귀성’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크게 진행되고 있는 뉴욕(특히, 맨하튼)에서는 민중의 거주지역이 대폭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그/그녀들은 낮에는 맨하튼에서 일하지만 야간에는 지하철을 타고 사라진다. 도시적 표상에서 그/그녀들은 점차 비가시화되며, 그들의 존재는 점차 ‘덧없는 것’이 되어 간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장소를 둘러싼 투쟁’은 항상 ‘주거지역=근거지’를 둘러싼 투쟁으로부터 회귀하는 투쟁이 되어 왔다. 바로 일시적 자율공간(Temporary Autonomous Zone, T.A.Z)이 그것이다.

(...) 세 번째 특성은 ‘전지구성’(globality)이다. (...) [545]이동하는 자들의 운동은 이러한 문화를 신체에 새기는 ‘신체적 운동’이다. 이 운동은 동시에 ‘전지구적인 공통공간’(Global common space)을 개발하는 운동으로 향하고 있다.

뉴욕의 투쟁 현장에서는 맑스주의 중심의 아카데미즘과는 대조적으로 아나키즘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 ‘직접민주주의’이든 ‘예시적 정치’든, 아니면 상기의 투쟁 원리이든 특정의 ‘위대한 이론가’의 이름이 붙여 있던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이들의 투쟁은 인류사에서 비롯된 공통투쟁으로부터 출현한 사고법이었다. 이러한 원리가 각각의 투쟁에서 획득했던 승리는 수 없이 많은 액티비스트나 예술가들이 노력한 결정체였다. 여기서 영웅이 있었다고 한다면, 이는 특정 ‘계급’이나 ‘민족’이 아니라, ‘잡다한 단독성’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뉴욕 1980~2006

[549]뉴욕의 본질이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철저한 ‘반권위주의’라[550]고 할 수 있다. 뉴욕은 어떤 대사상가의 저작에 의해서도, 대건축가의 빌딩에 의해서도, 대예술가의 작품에 의해서도 표상되거나 대행되지 않는다. 이는 ‘잡다한 민중’이 생산하는 ‘치마타’에서의 ‘생활=문화=투쟁’의 집적이다. (...) 즉 뉴욕이란 무수히 많은 무명인들이 급진적인 투쟁을 벌이면서 형성된 도시였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미(美)’는 지금의 거리에서 보다는 1980년의 할렘과 브롱크스의 ‘치마타’에 보다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것만이 사실이다.

옮긴이 후기 551

인명 찾아보기 553

용어 찾아보기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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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2-23 0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