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그의 삶과 철학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지음, 김기복 외 옮김 / 이제이북스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으로 프로이트가 내 공부의 시작이었다면, 니체는 그 공부의 안전핀을 완전히 제거해 버린 철학자다. 덕분에 모든 학교 공부가 부질없어졌으며, 학교를 그만 두었고, 당시 청하판 니체 전집을 거의 한 달도 안되는 기간 동안 맹렬하게 읽었었다(민음에서 나왔던 [디오니소스 송가]도 사서 읽었다). 누구든 삶에서 한 번 정도 '미친 시기'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니체를 읽고 노트에 내 생각과 니체의 생각을 마구 섞어 정리하던 17살의 그 시기가 '미친 시기'였다.

청하판 전집을 읽는 중간에 난 그때 요약판으로 번역된 이보 프렌첼의 니체 평전도 보았었다. 지금 기억에 그 평전은 그리 세세하지도 않았고, 평전이라기 보다는 전기에 가까웠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보 프렌첼의 책이 완역되었어도 좀체 손길이 가지 않았다. 번역판인데다가 다른 공부하기도 바빴으므로.

홀링데일의 이 니체 평전은 훌륭하다. 1844에서 1900에 이르는 니체의 정신사를 거의 완전할 정도로 복원한다. 그리고 평전의 이름에도 걸맞게 니체를 절대 우상화하지도 않는다. 홀로 사유한 철학자들이 흔히 겪게 마련인 통속적인 신비화와 자의적인 해석을 피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런저런 의혹들에 대한 평가를 제출한다. 이를테면, 니체의 병원에 대한 구구한 설(매독), 엘리자베트와 루 살로메, 니체 간의 갈등, 니체가 정신을 놓은 1889년 1월 3일 이후 엘리자베트 니체의 전횡 등등. 책의 말미에는 니체 전집 간행과 유고에 대한 평가도 곁들인다. 연구자 입장에서 니체 유고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는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평전을 쓰면서 흔히 놓치기 쉬운 사상에 대한 해석도 각 장의 말미에 주요 저작을 중심으로 제시해 놓았다. 이 부분에서도 홀링데일은 무리하게 저작을 해석하거나 피상적으로 지나치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번역상 어색한 부분도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참에 이런 말도 하고 싶다. 요즘 알라딘이나 네이버 등에서 자주 출몰하는 소위 '오역 사냥꾼들'이란 얼마나 유치한가.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외국어에 대한 특권을 쥐고 있는 듯이 행동하면서, 그와 함께 '고급 독자'인 양 허세를 부리는 '지적 마적단'에 불과하다. 더 혐오스러운 것은 그들은 한 번도 자신들이 '번역 작업'을 할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번역'이라는 수고로운 작업 영역에 '사전'이라는 성스러운 책(?)으로 무장한 채, 그곳이 자신의 관할인 양 행세하는 이들은 네티즌과 독자들이 거기에 더 반응할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면서 쾌감을 느끼는 노출증 환자와 같다. 정작 그들의 육체란 빈약하기 그지 없는 영양 결핍의 상태인데도 말이다. - Noma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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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27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니체의 문체가 왜 이리 와닿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몇번 시도를 해봤으나 다른 철학자들의 문체와 너무도 다른지라 적응하기 힘듭니다. 제가 인내심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요.

nomadia 2007-05-28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체가 의식적으로 전통적인 형이상학 개념을 쓰지 않고, 자신의 개념을 창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니체의 책을 문학 작품처럼 읽기 시작하면 쉽게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하이데거가 경고했듯이) 그건 니체철학에 대한 문학적 곡해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저는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와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개념이 어떤 식으로 착종되는지 이해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2019-11-07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